조지 클루니 | 굿나잇 앤 굿럭

데이빗 스트라선과 패트리샤 클락슨의 재발굴.


실존인물의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영화로 옮겨진다고 모두 드라마틱한 영화가 되는 건 아니다. 야심으로 가득찬 화면으로 시작해,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실제 인물의 무게에 짓눌려 플롯없이 그의 업적을 에피소드 식으로 급하게 나열하다 끝나버리는 영화들을 종종 본다. 이에 반하면 <굿나잇 앤 굿럭>은 야심을 최소화함으로써 오히려 감독의 야심을 실현한 예에 속한다.


58년 에드 머로(데이빗 스트라세언)에 대한 감사패 전달식에서 시작하는 영화는 곧 플래시백으로 넘어가 53년에서 54년 라둘로비치와 리모스에 대한 그의 방송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영화가 촬영된 곳은 100% CBS 스튜디오 안, 원래 TV용 영화로 기획됐다는 영화답게 규모가 작고 실제 뉴스필름들을 많이 사용했으며 등장인물은 고작 프로듀서 프레디(조지 클루니)를 중심으로 한 방송제작팀과 CBS 사장(프랭크 란젤라), 그리고 머로의 후배이자 같은 방송국에서 다른 시사프로 진행을 맡고 있는 돈 홀런벡(레이 와이즈) 정도, 게다가 흑백이다. 씬을 마무리하는 방식에서(예컨대 타자기를 치는 머로를 오래도록 비추면서 뒤로 빠지는 카메라 등) 감독의 무언의 코멘트가 느껴지긴 하지만, 조지 클루니는 대체로 이 영화를 인위적 개입 없이 뉴스필름 보여주듯 지극히 차갑고 건조하게 찍었으며, 심지어 음악의 사용조차 뉴스와 뉴스 사이, 막간곡을 삽입하듯 다이앤 리브스를 직접 노래부르게 하고 그 장면을 넣고는 다음 씬에서 사운드 오버를 하는 방식으로 시퀀스를 진행시킨다. 비록 선곡한 곡들의 가사는 매우 의미심장하지만.


이는 다시, 뉴스의 본질, 다큐메터리의 본질에 관해서 던지는 물음같기도 하다. 영화 초반, 방송의 적극적 논평에 반대하는 동료 테드(제프 대니얼즈)의 항변에 대하여, 머로는 우리가 믿는 객관 역시 결코 객관적이지 않다는 – 오히려 객관은 하나의 입장을 명확히 지지하되 반대편에 반론의 기회를 줌으로써 획득된다는 – 주장을 피력한다. 조지 클루니는 자신이 영화를 찍는 방식을 통해 그 주장을 반대로 증명한다. 즉, 그는 지극히 ‘객관적’인 형식 속에 매우 또렷한 정치적 입장을 담은 것이다.


이러한 차갑고 건조한 영화가 그 시대의 공포와 두려움과 혼란(특히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조를 통해서), 그리고 팽팽한 갈등과 긴장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데에 성공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팽팽한 갈등이 전달되는 장면은, 머로의 방송에 대한 신문의 리뷰를 셜리(패트리샤 클락슨)가 읽어주는 데에서의 홀런벡의 반응샷이다. 방송을 끝내고 술집에 모여있는 씬에서 바로 앞 장면의 다이앤 리브스의 노랫소리가 사운드 오버된다. 노래가 끝나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침묵 및 노 사운드. 마침내 신문을 사온 셜리가 신문 리뷰를 읽기 시작하고, 보수적인 잭 오브라이언의 리뷰 내용을 들으며 웃고는 있지만 어쩔 줄 몰라하는 홀런벡, 그런 그를 지켜보는 머로. 다시 이후 장면에서 잭 오브라이언을 다루자는 홀런벡의 부탁을 머로가 거절하면서 다시 불안이 가중된다. ‘승리의 순간’에 함께 전해진 홀런벡의 자살 소식은 영화의 ‘클래이맥스’로 좀 부족한 감이 없진 않지만, 각본가이자 감독인 조지 클루니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살아있는 전설이 된 머로의 영광 뒤엔 수많은 홀런벡이 있다. 감독은 머로가 스스로 겁을 내어 자기검열을 행했다는 사실을 말미에 슬쩍 던짊으로써, 머로의 저항의 한계를 암시한다. 머로의 저항은, 미국에 실제로 존재했던 ‘공산주의자들’과 ‘좌파들’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최고의 긴장. 중앙에 홀런벡이 보인다. 조지 클루니는 저런 장면에서도 섹쉬하고나...


조지 클루니가 이끄는 섹션에잇 엔터테인먼트가 이 시점에서 굳이 50년 전의 언론인, 에드 머로의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 의도가 매우 명백하다. 이 영화는 결코 과거 50년대 매카시즘의 광풍과 그에 대한 저항을 추억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부시의 전쟁을 지지하지 않고 반전을 외치면 곧바로 매국노로 몰리는 현재 미국의 분위기가 바로 매카시즘의 재현임을 웅변한다. 영화의 마지막, 다시 58년 감사패 전달식장으로 돌아와서, 연단에서 연설을 시작한 에드 머로는 진정한 언론의 역할에 대해 강조한다. 머로의 연설 내용은 “전쟁이 생방송으로 중계되는” 이 2000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과연 언론의 참 역할이란 무엇인가?


ps1. 영화를 보고나서 새삼 든 생각. 조지 클루니, 이 인간 정말 얄밉도록 ‘영리한’ 인간이다. 그는 스타파워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매우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필름메이킹에 있어 ‘훌륭한 기획자 마인드’로 어떻게 좋은 감독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구체화하고 있다. 클로즈업의 빈번한 사용은 역시 그의 본업이 ‘배우’임을 상기시켜 주고 특별히 탁월한 미학적인 미장센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지만, 교과서를 충실히 따르는 듯한, 매우 잘 계획되고 통제되어 있는 시퀀스를 선보인다. 젠체함 없이 어설픈 예술적 시도를 하지 않고 오히려 기획 프로듀서로서의 감독의 면모를 보여주는 듯한 느낌, 그리하여 오히려 간결한 형식미를 획득하고 있음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 인간 연기 잘 하는 배우 재발굴하는 데에 아주 도가 텄다.) 조대인 만세!


ps2. 하이퍼텍나다 마지막 프로포즈에서 상영해준 것, 또 상영기간을 연장해준 것에 너무너무 감사하고픈 마음이다. 놓쳤으면 정말 크게 후회할 뻔했다.

+ 1.15. 월, 7:00 하이퍼텍 나다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9 Comments

  1. 이거 보려고 멀리 강변역까지 갔었다는 … Dianne Reeves도 너무 좋았죠 … ^^

    • 부산에서 놓치고서 속상해했었는데, 이렇게 늦더라도 극장에서 볼 수 있게 되어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영화에 대한 만족감도 컸고요. 근데 조지 클루니는, 이 영화는 DVD로 봐야 더 맛이 날 것이라고 했다더군요. ^^

  2. 메카시즘에 관한 이야기나 언론인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 신선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주저했었습니다만,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었던 이 작품은 꽤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특히 긴장의 순간을 노래가사와 사운드로 표현해냈던 그 즈음이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기억날만한 장면이 아닌가 싶구요. 더불어 방송을 진행하면서 다리를 후들후들 떨던 머로의 모습도 기억나네요.
    조대인(웃음)은 영화를 만드는 쪽에도 상당한 재능을 가진 것 같습니다. 얼굴 잘 생기고, 연기만 잘 하는게 아닌 듯 싶네요.

    덧. 전 필름포럼에서 감상했었는데, 일요일날이었는데 열명도 앉아 있지 않더군요. 괜찮은 영화인데, 쩝.

    • “야심을 최소화함으로서 야심을 실행한다”는 게 조지 클루니의 전략이었던 거 같은데, 잘 맞아떨어진 영화였던 것같습니다. 거창하게 메카시즘과 언론의 자유를 설파하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한 인물에 아주 가까이 초점을 맞춤으로써 그 시대를 너무나 생생히 그려내고, 드라마틱한 긴장감도 아주 잘 만들어냈고요.

      필름포럼은 아무래도 저도 선뜻 가기가 망설여지는 극장이긴 합니다. 옛날부터 허리우드 극장을 별로 안 좋아해선지, 그 옆에 서울아트시네마도 아트시네마니까 가는 거지 아니라면 갈 일 없었을 거 같아요. ;;

  3. 나중에 DVD로 보더라도 어쩌고라도 심정으로 맨 마지막 줄만 봤어요. ^^;; 저는 조지 클루니가 연출하는 에피소드를 보면 er의 미미 레더 연출과 스티븐 프리어즈 연출(페일 세이프에서 같이 했죠)을 잘 빚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조지 클루니가 있을 때 연출한 er 에피소드 한 편 정도 있었으면 좋았을걸…하는 생각이 들어요. (안소니 에드워즈와 로라 이네스는 연출했던 걸로 압니다)
    추신 – 으하하 조대인 ;;;; 멋지십니다. -_-b 전 조대인이 오프라쇼 나와서 이탈리아 사람들의 여유 얘기해준 게 참 마음에 들었어요. 길 파던 노동자들이 다들 여섯시 땡하자 퇴근하면서 시장보따리에 빵이랑 포도주랑 장미꽃 한 송이씩 넣고 가는 모습에 대해 얘기하는데, 캐부럽 – -;;; 더군요. 그런 걸 잡아내는 눈빛도 멋졌고, 그걸 풀어내는 말솜씨도 좋았고, 목소리도 좋았고… 켁 입니다 -_-

    • 그 < 일 세이프>를 너무너무 보고 싶은데! 비디오든 DVD든 구하기가 힘들더라고요… 흑흑
      근데 조대인, 정말 멋을 아는 사람이네요. ‘길 파던 노동자가 여섯시 칼퇴근하면서 빵과 포도주와 장미를 챙길 수 있는 삶’의 아름다움을 잡아낼 수 있다는 것은… 아아 저도 제 주변 사람들도 그렇게 살 수 있었음 좋겠어요. 넘쳐나는 실업자에 일하는 사람들은 밤 몇 시든 상관없이 야근을 일삼고 피로에 지쳐 술이나 벗삼을 수밖에 없는 이 현실…ㅠ.ㅠ

      어쨌건 나중에 DVD로라도 영화 꼭 보세용. 영화 참 좋더라고요.

  4. 시각적으로 가장 즐거웠던 영화들 중 하나. 영화 전체가 잘 디자인된 흑백(적)포스터를 보는것 같았지. 특히 선명하고도 감칠맛나게 잡아낸 머로우의 담배연기는 끽연욕구를 대단히 자극하더군.

    • 살아있군. ^^
      영화에 들어간 Kent 담배광고, 그냥 당시 분위기 살리려는 거였을까 금연열풍에 대한 비아냥으로 특별히 집어넣은 걸까 대단히 궁금해지더군. ^^

  5. Pingback: 개구쟁이♡WA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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