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렌스 맬릭 | 천국의 나날들

천국은 어디인가

창세기의 아브라함의 이야기(사라를 여동생이라고 속였다가 왕에게 빼앗기고 되찾는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은 <천국의 나날들>은, 현대의 미국(아마도 대공황 시기)을 배경으로 날품팔이로 떠돌 수밖에 없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아직 어린 그들의 자식같은 동생의 여정을 따라간다. 도시 빈민들이 대단위로 집없이 떠돌며 하루의 빵을 위해 일을 하고, 대농장엔 떠돌이 일꾼들이 한철노동을 하고 또 이동을 한다. 창세기의 이야기가 고대사회에서 결혼이라는 제도에서의 여러 규칙과 금기를 강조하는 교훈적 기능을 한다면, 현대, 특히 근대 자본주의가 전세계적인 위기를 맞았을 때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는 가진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대립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테렌스 맬릭은 <천국의 나날들>을, 단순히 한 여자를 두고 “뺏으려는” 탐욕스러운 대지주와 “뺏길 수밖에” 없는 착한 빈민노동자의 도식적인 대립을 다룬 영화로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테렌스 맬릭은 이들의 신분과 계급과 존재의 본질마저 갈라버리는 ‘소유’라는 것이 대상으로 하는 것, 즉 땅과 자연이 가진 본질에 주목한다. 그리고 여자를 욕망하는 두 남성 – 농장주(샘 셰퍼드)와 빌(리처드 기어) – 의 공통적 속성을 끄집어낸다. ‘사랑’과 ‘결혼 제도’를 통해 여자를 소유하려는 남자들의 욕망은 소유와 독점욕과 경쟁과 질투로 분출된다. 자연을 여성에 비유하는 것은 아주 오래된 상투적인 상징이지만, 인간에게 곡식과 쉴 곳과 풍경을 제공하면서 계급을 가르고는, 이를 다시 비웃기라도 하듯 모진 재앙을 안겨버리는 자연은 인간이 결코 정복할 수도, 소유할 수도 없는 대상이다. 희망없이 부유하는 삶에 살아갈 이유와 힘, 그리고 웃음과 쾌락을 주는 여인 – 애비(브룩 애덤스)의 존재는, 두 남자 사이에서 위태한 긴장을 만드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러한 긴장과 재앙을 만들어내는 것은 대상이 아니라, 대상을 욕망하는 주체들의 선택이다. 메뚜기 재앙이 과연 아무짓 안 한 인간에게 어쩌다 찾아온 자연의 재앙일까? 조용히 자기 삶을 사는 남자들을 여자가 휘저어 놓으며 악의 구렁텅이로 빠뜨렸단 말인가? 아니, 우리는 또렷한 이유를 말할 수 없을 뿐이다. 그리하여 행복 속에서 장차 다가올(지도 모르는) 재앙을 두려워 하며, 마음을 놓고 있는 순간 마치 뒷통수를 때리듯 재앙이 혹은 변화가 찾아왔을 때 그 앞에서 당황하고 절망하면서 결국 무너져 버리거나, 다시 일어나 맞서서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선택을 할 뿐이다. 우리는 주저앉아 그러한 재앙을, 변화를 원망하고 마음아파할지언정 그 대상 자체를 부정하거나 버리거나 떠날 수는 없다. 떠났다가도 되돌아올 수밖에 없고, 그것이 옳은 방식이건 아니건 욕망할 수밖에 없으며, 그 품에 다시 안길 수 있기를 희망할 뿐이다. 그리고 그 품이 주는 때때로의 행복에 감사할 수 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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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빛으로 물들다


그리하여 매직아워 때의 촬영을 고집했다는 테렌스 맬릭이 네스토 알멘드로스의 카메라와 손과 눈을 빌어 그려내는 초원의, 들판의 황금빛과 해저무는 하늘빛, 그 하늘에 물든 구름은 극도로 아름다울 수밖에 없고, 심지어 메뚜기 떼가 덮쳤을 때조차 황금빛 화염이 불타는 한밤중의 밀밭에서 실루엣으로 움직이는 인간들의 사투 장면도 장엄할 수밖에 없다. 누더기를 입었든 결이 촘촘한 고운 쉬폰 드레스를 입었든 애비가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것처럼. 그리고 그 전투를 안팎으로 목격한 린다(린다 맨츠)는, 농장에서의 생활을 ‘한철 잘 논 것’으로 여기고, 문명을 체계적으로 학습시키는 ‘학교’를 떠나 다시 방랑의 길에 오른다. 부모도 아닌 오빠/언니의 세대와 연이 단절된 채, 끝없이 남자를 사랑하고 의지하고 그에게서 버림받는 친구와 함께.

ps. 이 영화를 필름으로 볼 수 있는 공간, 서울아트시네마가 있다는 것에 감사. 조금 더 욕심을 내보자면, 그 어느 때 좀더 커다란 화면과 좀더 좋은 사운드 시설로, 좀더 좋은 의자에서, 확고하게 ‘자기 집’을 마련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싶다. 70mm면 더 좋겠지.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6 Comments

  1. 선배가 한때 영화계에 몸담았던 자기 부인이 추천한 영화라고 할 때도 마음의 여유가 별로 없었던 때라서 보지 않았는데 아쉽습니다. 이번 영화제에서 다섯 편을 보기로 계획했는데 이래저래 시간적 심적 여유가 별로 없어서 <7년 만의 외출>, < 라바조> 두 편으로 대폭 줄였습니다. 물론 두 편 다 재미있었습니다. 제가 뭐 영화 매니아라고 할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상황이나 마음이 여의치 않으면 관람 계획을 내팽개치기 일쑤지요. < 라바조>는 인터넷 예매 표 교환하러 갔더니 어떤 사람이 표 교환해주는 사람에게 예매 취소한 사람 없냐고 묻더군요. 매진돼서 당일날까지 좌석을 기다린 사람도 있었나 봅니다. 아무튼 < 국의 나날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전 <7년만의 외출>, < 라바조> 둘 다 놓쳤답니다. 갑자기 알바들이 밀려오는 바람에 일주일 내내 밤을 새다가, < 림자군단>하고 < 행자>, < 국의 나날들>, 그리고 < 반티!> 정도만 간신히 봤네요.;;
      < 라바조>은 인기가 정말 좋던걸요. 현매까지 일찌감치 예매가 됐더라고요.

      < 국의 나날들>은.. 나중에 꼭 보시길. 테렌스 맬릭의 영화 편수 자체가 이제껏 네 편인가 그렇습니다. 모두 굉장히 아름다운 이미지를 자랑하는 영화들이죠. 영화는 역시 ‘이미지’와 ‘소리’와 ‘편집’의 예술임을 새삼 일깨워준달까요.

  2. 저는 그저 영상에 취해서 그닥 읽으려 하지 않고 고작 시대적 배경만 챙겼는데 많이 읽어 내셨네요.
    왠지 영화 반쯤만 본 듯한 이 억울함은 뭘까요?

    • 그 아름다운 영상에 흠뻑 취하는 것만으로, 이 영화를 제대로 본 게 아닐까요?

      저 역시 영화를 볼 때는 그저 보는 것에 몰입합니다. 이런저런 생각들과 ‘읽어내는’ 것은 보통, 보고온 영화의 장면과 이야기들을 곰씹으면서 글을 쓸 때이지요. 이 글, 영화를 본지 한참만에 완성해서 올린 것도 그래서랍니다. ^^;;

  3. 이영화 보고싶네요.
    조금은 무거운 내용과 아름다운 영상…

    삶에서 절망하면 그만이지만,
    희망은 늘 절망을 앞질러
    한 발 빠르게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언젠가 기회가 되시면 꼭 보시길…
      내용이, 그렇게까지 무겁진 않아요. 보고와서 워낙 제가 이 생각 저 생각 쓸데없이 하다보니 글을 좀 무겁게 썼지만…

      절망뿐인 현실에도 언제나, 비록 실낱같을지라도, 분명히 존재하는 희망… 그 희망의 힘이 sshplay님께도 항상 함께 하시길 빕니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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