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 영감님, 축하합니다.

‘뒷북 전문’ 아카데미 시상식이 이번에 마틴 스코시즈 감독에게 상을 줄 것이라는 사실은 오래 전부터 예상하고 있던 바다.  마티 할아범의 필모그래피는 숱한 ‘시대의 명작’과 ‘평범한 감독의 걸작보다 뛰어난 범작’들로 꽉 채워져 있다. 한국의 박스오피스에서 마티 할아범의 영화가 그닥 통하지 않았던 건, 그의 영화가 지독히도 미국적인 정서, 특히나 대체로 단일 민족으로 살아온 한국인들로서는 제대로 이해하기 쉽지 않은 다민족 이주민들로 구성된 미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을 기반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예를 들면 마티 영감님의 범작 <갱즈 오브 뉴욕>에서 서로 대립하는 집단의 정체성과 차이, 혹은 아이리쉬 어메리칸의 수난과 전투의 역사에 대해 명확히 인지하고 있는 한국관객의 숫자가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미국 땅에 이민온 다양한 출신의 이주민들이 어떤 공동체를 이루고 어떤 반복과 화해를 거듭해오며 미국의 역사를 구성해 왔는지, 일반적인 한국인들은 알지도 못하고, 솔직히 알 필요도 없다. 다만 이것을 알면 <갱즈 오브 뉴욕>이, 또한 숱하게 많은 미국 영화들이 좀 다르게 보인다. 그 이전 마틴 스코시즈의 초기작들 역시 마찬가지. 물론 <분노의 주먹>이나 <택시 드라이버> 같은 영화를 보는 데에 ‘이태리 이주민’으로서의 그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 굳이 필요한 건 아니다. 그러나 알면 보이는 게 많아진다.



작품상과 감독상, 각색상, 편집상까지 <디파티드>가 휩쓴 것을 두고 말이 많다. 물론 마티 영감님을 사랑하는 팬으로서는, 그가 수상한 작품이 필모그래피에 가득한 그 무수한 명작들이 아닌 <디파티드>라는 사실에 조금 씁쓸한 것도 사실이지만, 어차피 아카데미가 ‘뒷북 전문’인 건 공공연한 사실이니 이에 지나치게 실망하거나 마음 상할 이유도 없다. (마티 영감님 말고도 숱한 거장과 장인들이 최고작이 아닌 범작으로 상을 받곤 했다, 그것도 아주 늦게.) <디파티드>는 미국에서 평단과 흥행 모두에서 좋은 성적을 냈기 때문에, 어쩌면 이번 수상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디파티드> 같은 졸작에 작품상을 주다니 역시 아카데미는…”과 같은 의견을 보며, 조금 기분이 우울해졌다.


물론 원작이었던 <무간도>가 훌륭한 영화였던 것은 사실이고, 또한 이미 <무간도>를 본 관객의 입장에선 <디파티드>의 흠결이 더욱 크게 보이는 게 당연하다. 한 작품이 다른 작품의 리메이크인 이상 두 영화를 비교하게 되는 건 인지상정으로 당연한 일이다. 나는 <무간도>가 <디파티드>보다 훨씬 훌륭하다는 의견도 수긍할 수 있고 <디파티드>가 마티 영감님의 영화론 후지다는 의견도 수긍할 수 있다. 영화는 관객과 소통할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며, 관객이라는 집단은 다양한 맥락과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천하의 걸작이 다른 동네에 가서 쓰레기가 되는 건 분명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전에 <디파티드> 감상문에서도 의견을 피력한 바 있지만 <디파티드>가 그토록 (절대적으로, 영화 미학적 측면에서) 후진 영화인가, 그토록 졸작인가, 에 대해선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너무나 쉽게 ‘그런 졸작’ 운운하는 소리 앞에서 <디파티드>가 지나치게 부당한 폄하를 받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아무리 비슷한 줄거리를 공유하고 있다 해도, 두 영화는 접근하는 방향과 입장, 그리고 주제가 완전히 다른, 별개의 영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디파티드>가 거장의 범작이라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다른 평범한 감독들의 범작/걸작을 훨씬 뛰어넘는다고 생각한다. (근거는 이미 감상문에서 밝혔으므로 여기에서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차피 한국인을로서는 쉽게 이해가 안되는(그리고 굳이 이해해야 할 당위가 있는 것도 아닌) 미국식 사고에 기반한 영화를 만드는 마티 영감님이 쉽게 이해가 안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나 역시 그런 미국식 사고가 익숙한 것도 아니며, 그렇기에 그의 영화를 100%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그의 영화를 향한 미국 내에서의 환호가, 단순히 ‘훌륭한 영화(<무간도>)를 못 봐서인 것만은 아니다. 심지어 마티 영감님을 ‘그렇고 그런 흔한 헐리우드 감독 중 한 명’으로 가볍게 생각하는 관객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한, 영화를 사랑한다는 사람들이 넘치고 넘치는 대한민국 관객들에게 나의 냉소가 갈수록 짙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뭐, 마티 영감님의 영화가 한국에서 오해되건 말건 어차피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마티 영감님한텐 별 상관이 없는 일일 터이고, 사람들이 마티 영감님에 대해 저토록 오해한다 하여 내 애정에, 혹은 마티 영감님이 가진 굳건한 명성과 성취에 금이 가는 것도 아니다. 그래, 어쩌면 이 글의 본질이라는 것도 실은 ‘니들이 뭔데 마티 영감님을 욕해!’에 불과할런지도 모르겠다. …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마틴 스코시즈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상을 받을 만했다는 것. 그러므로 나는 그저 멀리서 작은 축하를 드릴 수 있다. 마티 영감님, 진심으로 축하해요. 앞으로도 계속 당신의 영화를 보여주세요.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9 Comments

  1. 역시 뒷북전문 아카데미… 받고 나서도 무관의 제왕이랑 깻잎 세장 정도밖에 차이 안 나잖아요. “기어이 받았다.”싶은.. 어쩌면 스콜세지 할아버지는 이제부터(이제야!!)아카데미한테서 완전 자유로울 수 있을테니(자신이 느끼는 것보다 주변의 시선에서 더) 앞으로가 만빵 기대되는구만요.

    • 함께 작품상에 오른 영화들이 사실 아카데미 취향엔 묘하게 어긋나는 영화들이죠. 보수적인 아카데미가 대중적으로 두루두루 상영되지 않은 < 스 리틀 선샤인>에게 상을 줄 리도 없고, 일본인 시각에서 다룬 < 오지마...>에 상을 줄 리도 없죠. 이냐리투는 ‘아직 우리 사람 아니다’라고 생각했을 거고, 영국여왕 얘기에 상을 줄 리도 만무하고.
      제발 마티 영감님, 건강하셔서 되도록 오래오래 영화 찍으셨으면 하는 게 제 소원입니다. 이스트우드 영감님도 그렇지만… 알트먼 감독 가시는 걸 보니 요즘은 나이 좀 드신 양반들은 하나같이 다 염려가 돼요.

      개인적으로는, < 오지마...>가 좀 아쉽긴 해요. 안그래도 워너가 몸사리느라 개봉 안 할 거 같은데, 작품상이건 감독상이건 받았다면 상황이 달라졌을지도 모르건만. 그러나 < 리언 달러 베이비>로 이미 감독상을 줬었는데 또 줄 가능성은 사실 없었죠. 이냐리투가 받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거 같은데, 근데 뭐 이 사람은 아직 젊으니까요.

  2. 뭐 사실 어워드이든 페스티벌이든 시상식은 순수하게 작품성만 가지고 한다기보다는 공치사적인 측면이 있는 것은 어디든 마찬가지이죠. 뭐 오스카가 이해할 수 없는 시상한 게 한두 번도 아니고 그러려니 합니다.
    사실 엔님만큼은 아니어도 마티 할배의 영화를 좋아하는지라 약간은 먹고떨어지라틱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제껏 마티 할배가 보여 준 행보에 대한 아카데미 나름의 예우라고 보는 것도 좋을 듯해요.
    그나저나 디파티드는 디비디를 땡겨 준다는 룸메의 말에 다른 영화에 밀려 버려 못 봤는데… 궁금하네요. ^^;

    • < 간도>를 잊고보신다면, 아주 흥미진진한 영화를 만난실 수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 간도>가 자꾸 생각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지요. ‘개인’의 정체성의 혼란과 구원을 다루는 < 간도>의 접근 방식이 좀더 한국사람들에겐 친근하니까요. ^^ 그걸 또 아주 잘한 영화이기도 하고요.

      흐, ‘먹고떨어져라’틱, 사실 그게 좀 씁쓸하죠. 사실 현대 미국영화사에서 마티 영감님만큼 탁월한 성취를 이룬 감독도 많지 않은데, 아무래도 그 세대 – 스필버그, 루카스를 위시한 – 감독들은 여전히 그쪽 영화판에선 ‘어린애들’ 취급을 받나 봅니다. 하하;;

  3. 하항 글 올리실 줄 알고 기다렸습니다. :D 저도 마티 영감님께서 드디어 받으신 거 너무 좋아요. 뭐 늦게 다른 거 안 준 기념으로 받아가셨지만…. 그래도 받을 걸 받았으니 좋아요. 재미있는 건 동시대 친구들이 옆에서 줄줄이… 저 시상자 나오는 거 보고 누가 받을 지 알았습니다. ^^;;

  4. 전 디파티드 꽤 재밌게 봤어여. 영화적 재미로만 본다면 오히려 무간도 보다 한수 위져. 물론 저도 무간도가 더 좋아여.
    마틴 감독님은.. 하필 그 좋은 영화 다 놔두고 디파티드로..? 하는 생각이 들긴 해여. 디파티드가 마티 아저씨 영화치곤 좀 빠지긴 하니까.. 음..작품상까지 가져간 영화니 빠진다는 말 정정~! ^^ 마틴 감독님 영화 치곤 뛰어난 건 아니니까..로..^^
    하지만 수상하시는 모습 보니 좋더라구여. 꽤 오래 기다리셨구나..싶은게…

  5. 정worry / 아 정말, 스코시즈를 ‘그렇고 그런 헐리우드의 감독 중 하나’로 취급하는 어떤 태도를 보고 열이 빡 오르더군요. 그런 사람이, ‘아카데미가 원래 그래?’가 아니라 ‘아카데미도 한물 갔구만’이란 식으로 말을 하는 거 보면 더 웃기고요. 아니, 아카데미가 언젠 안 그랬나. 그 뒷북질이 아카데미의 유구한(!) 특징인데 말입니다.

    lapis / < 링 아웃 더 데드>부터 힘이 좀 빠지신 듯하죠. 전 저거 < 시 드라이버> 속편이라며 무지 좋아하긴 했는데, 근데 이후 < 즈 오브 뉴욕>부터 좀 실망이긴 했어요. 회복 안 되시는 듯하고, 앞으로도 영영 회복이 안 되실 거 같고. 그래도, 거장의 범작은 범인의 걸작보다 훌륭하더라… 라는 게, 마티 영감님의 범작들을 보고 느끼는 감정입니다.

  6. 허허 디파티드에 대한 반응이 여기도 참 인색하군 ㅋㅋ. 스콜세지 팬이라면서 디파티드 욕하는 사람들 사실 이해안감. 내가 보기엔 영감 스타일 정석대로 잘 만들었더만. 갱스오브뉴욕도 혹평하는 사람들 많은데, 역시 이해안감. 생각해보면 같은 돈에 그만한 재미를 선사한 영화가 별로 없을것임. 스콜세지 팬으로서 무간도를 보지 않은채 디파티드를 먼저 본것을 신의 축복으로 여김. 재밌게 영화보기도 시간없어 죽겠는데 왜 불평거리를 기를쓰고 찾아내가면서 영화들을 보는지.^^

    • 난 별로 인색한 편 아닌데, ‘여기도’라니 좀 섭섭한걸. ^^ 마티 영감님이 과거 워낙에 걸작들을 줄줄이 내놓으셔서, 그게 기준이 돼버린 게지. 웬만큼 잘 찍어 내놓으셔도 소싯적 영화랑 비교당할 수밖에 없으니. (근데 좀 궁금하다, 남이 아닌 과거의 자기와 비교당하는 현재의 자신은, 기분이 어떠할까.) 게다가 < 간도>의 경우는, 각인효과라는 게 꽤 크니깐 말야.

      그리고 < 파티드>에선 아주 잘 어울렸지만 < 즈오브뉴욕>과 < 비에이터>에서 리오 디카프리오가 너무 거슬려서 영화에 몰입할 수가 없었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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