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 리 | 브로크백 마운틴

앙리는, 다음 행보를 도저히 짐작할 수 없다. 대만 출신 감독이 영미권 (특히 여성) 독자들이 가장 사랑한다는 제인 오스틴의 원작을 영화화한다 할 때도 허걱 했고, 다시 6, 70년대 미국의 중산층을 해부한다 했을 때도 놀랐고, 남북전쟁 당시 남부군에 있었던 청년들의 행로를 따라간다 했을 때도 기절할 뻔했으며, 무협물을 한다 할 때도 믿기지 않았고, 가장 미국적인 안티-히어로인 녹색괴물을 영화화한다고 했을 때도 충격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미국에서도 가장 시골 중 시골, 힐빌리들이 힐빌리스러운 음악을 듣고 힐빌리스러운 억양으로 힐빌리스러운 사고를 하는 곳을 배경으로 두 카우보이 남자의 사랑을 영화화한다… 히스 레저와 제이크 질렌할이 캐스팅되기도 전에 내 리스트에 넣어뒀다. (나는 그의 영화에서 실망한 적이 한번도 없다.) <브로크백 마운틴> 이후엔 샤를리즈 테론을 주인공으로 한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영화화한다고 한다. (그 커플은 레즈비언 커플이다.)


다소 거리를 두고 아주 냉정한 시선으로 미국 문화를 훑는 ‘이방인’ 앙리 감독의 시선은 너무나 놀랍다. 그는 외부자라는 것을 굳이 감추지도 않지만 굳이 강조하거나 드러내지도 않는다. ‘앙리’라는 이름을 듣기 전에, 그 감독의 커리어와 배경을 듣기 전에, 누가 <센스, 센서빌리티>를, <헐크>를, <아이스스톰>을, <브로크백 마운틴>을 보고, ‘역시 외부자의 시선이군’ 같은 말을 내뱉을 수 있는가. 그러나 그만큼 드라이하고 냉정하면서도 훌륭한 테크닉으로 연출을 해간다. 그가 영화의 씬을 쌓아가는 솜씨는 마치 영화로 작업하는 인류학자의 방식처럼 느껴진다.


생각만큼 잭과 에니스의 사랑에 가슴이 아프다거나 절절하다거나 하진 않았다. 내겐 앨마와 로린, 그 웨이트리스 같은 여성들이 훨씬 더 크게 보였으니까. E양의 말대로, ‘도대체 저들 사이에 있던 저것의 정체는 무엇이었나’ 묻고 싶다. 저렇게 주위 사람을, 상대를, 자신을 할퀴고 또 할퀴면서 20년을 간 그 집착, 그 떨림, 그 욕망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원하는 걸 갖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다른 삶에 대신의 만족을 얻지도 못했던 저 기나긴 세월, 그걸 만든 저게 과연 무엇인가, 에니스가 아내 앨마에게 가졌던 것, 웨이트리스에게 가졌던 것, 잭이 ‘새 목장 관리감독’과 가졌던 관계에서 가졌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나도 E양처럼, 에니스가 아내와 섹스하다가 그녀를 뒤집을 때, ‘아이를 더 낳지 않을 거라면 더이상 잘 이유가 없지’라고 말했을 때 분노했고, 실소를 터뜨렸다. 저 바보같은 인간, 어리석은 인간, 잔인한 인간, 그럼에도 자신이 주체할 수도 극복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짐을 한껏 지고 아무렇지 않은 척 거만하게 걷는 저 남자, 음절의 종성을 흐물흐물하게 뭉쳐 발음하는 저 촌스러운 액센트의 거만한 말투가 입에 밴 저 남자가 가진 지옥이, 그 정체가 과연 무엇인지, 정말로 묻고 싶었다. 금지되었기에, 스스로 금지라 선언했기에, 이룰 수 없었기에 더욱 길게 간 건 아니었을까. … 그리고 자신을 돌아봤다. 더없이 이기적이고 서툰 어린 아이 하나가 보일 뿐이다.

ps. 앙리 감독, <헐크>를 일컬어 “두 남녀의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 지독한 멜러”라고 한 적 있다. (나는 “그러면서 키스씬 하나 없더라!”라고 웃곤 했지.) 이번 영화엔 앙리 영화답지 않게 베드씬이 많이 들어간다. 하지만 냉정하다. 나는 그들의 사랑보다, 그들의 20년을 풀어내는 앙리의 방식이 더 지독하다. … 정말 지독한 인간. <센스, 센서빌리티>를 찍을 때 윌리엄과 매리앤의 장면에서 우연히 끼어든 호수의 백조들을 휘휘 내쫓으며 “내 영화가 쓸데없이 낭만적이 되잖아!”를 외쳤다던 일화가 떠올랐다. 그는 여전히 그런 인간이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그의 영화에 매번 감탄하는지도 모른다.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