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사랑하게 될 거란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어요

베로니카가 알렉상드르에게 말한다. 난 이미 알고 있었어요. 당신을 찾아가야 한다는 걸, 당신을 사랑하게 될 거라는 걸. 나도 알고 있었다. 오래 전, 아무 생각없이 처음 접했을 때부터. 나의 이성과 경험이 아직 당신을 감당할 수 없을 때부터. 언젠가 이 영화를 사랑하게 될 거라는 걸, 그리고 당신을 사랑하게 될 거라는 걸.

시시껍절한 글 하나 간신히 완성해서 올려놓고 집에 돌아와 나는, 당신의 얼굴과 당신이 남긴 이 영화의 장면들을 떠올리면서, 그저 울며 계속 중얼거리고 있다. 그래,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12년을 돌고돌아 마침내 당신에게 돌아왔다. 우리의 대량복제 문화가 마침 당신의 영혼의 일부를 디스크에 박제시켜 놓을 수 있다는 것에서 안도감과 다행을 발견하는 내가 얼마나 잔인하고 이기적인지는 안다. 하지만 당신, 죽은지 10년이 지나서도 나같은 사람에게 손에 잡힐 듯 가까운 느낌으로 충만한 눈물을 주고 있다는 사실에서 내 이기심을 용서해주기 바란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필립 볼테르의 죽음을 알았다. 어차피 일찍 알았든 늦게 알았든 변방의 영화팬에겐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는 건 알지만 마음이 아픈 건 아픈 거다. 나는 그가 왜 재작년, 40대 중반의 나이에 자살을 선택했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오래 전 <가면 속의 아리아>에서부터 눈을 빼앗았던 사람인데 오랫동안 이 사람을 잊고 있었다.



Zbigniew Preisner, Van den Budenmayer Concerto 1798 [La Double Vie de Veronique]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2 Comments

  1. 이 영화를 봤는지 아닌지 모르겠어요.
    헌데 이 포스팅 제목이 지금 참 가슴에 와 닿네요.
    이 배우 기억나지 않는데-여느 영화에서 보긴 했을텐데- 기사가 있네요. 뛰어난 재능이 있었고 타협을 몰랐던 사람이라고. “어두운 부분이 그의 모든 빛을 삼켜버렸다”
    슬픈 일이죠..
    http://20six.fr/lecoinducinephage/art/509658

    • 언젠가 기회가 되신다면 꼭 보시길…
      이 배우의 출연작, 제가 본 건 < 면 속의 아리아>, 이 영화, 그리고 < 가지색 - 블루> 정도예요. 라는 영화는 한국에 수입이 안 된 거 같고… 90년대 중반엔 이 사람이 주로 TV에서 활동했던지라, 과연 다른 출연작들을 구해볼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워낙 눈이 부리부리하고 인상이 강해서, 처음 본 순간부터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갔다는 걸 지금에야 알다니. 링크해주신 기사 고맙습니다. 오랜만에 불어사전 들고 서툴게라도 읽어보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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