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시마 테츠야 |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포스터부터 키치

급격한 도시화와 근대화가 이루어지는 당시 도시로 유입된 여성들이 젊은 여성들이 매매춘 산업으로 전락하는 과정을 담는 일명 ‘호스티스물’은, 특유의 신파의 정서를 바탕으로 젊은 여성 관객들에게 “남자 잘못 만나면 신세 망친다”는 아주 보수적이고 고답적인 교훈과 경고를 주는 영화들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이 장르의 영화들은, 역으로 여성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며 여성의 사회 진출을 장려하던 근대 사회가 여성의 ‘사회적 생존’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음을 그대로 폭로해주기도 한다. ‘단 한 번 삐끗’이 한 여성의 삶에 가져오는 파장이란 실로 엄청나다. 사랑을 주고받을 능력이 없는 남자들이 그녀들의 진심을 희롱하며 상처를 준다. 하지만 과연 이런 전형적인 신파 호스티스물의 줄거리를 가진 영화가 어떻게 코미디 뮤지컬로 성공적으로 표현될 수 있을까?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이 미션을,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은 너무나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 덕분에 관객은 눈물이 쏟아져야 할 시점에서 웃음이 터지는 걸 참을 수 없고, 그렇게 웃음을 터뜨리는 순간 웃음 속에 눈물이 배어버리는 아주 ‘난감한’ 경험을 영화 내내 겪어야만 한다.

공원에서 시체로 발견되기까지, 마츠코의 일생은 험난 그 자체다. 노래 잘 하고 인기 많은 발랄한 선생님이었던 마츠코의 인생은 제자의 도둑질을 해결해 보려다 해고당하고 가출한 순간부터 바닥으로 떨어진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자들의 품을 전전하면서 동거남에게 상습적 폭력을 당하고 결국 그의 자살의 목격자가 되고, 열등감 해소용 불륜녀가 되었다가 창녀도 되었다가, 살인범이 되어 감옥엘 다녀오고, 미용사가 되어 새로운 사랑을 만나면서 좀 사람답게 사는가 싶었더니 야쿠자 남자로부터 노상 얻어맞다가 그에게 결국 거부당하고는, 오갈 데 없는 중년 여성이 되어 결국 마음의 문을 꽁꽁 닫아건 채 사람답게 살기를 포기한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그녀의 넘치고 넘치는 사랑을 마르질 못해서, 아이돌 가수를 향해 열정적으로 짝사랑을 한다. 마츠코는 평생을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았고, 그 사랑은 여지없이 배신으로 마무리되었다. 인생의 목적이 단 하나,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었고, 욕망 역시 단 하나, 누군가로부터 온전한 사랑을 받는 것이었던 마츠코의 불행은 여기에 있다. 그녀가 가졌던 직업과 신분이 아니라, 그녀의 사랑이 단 한번도 보답받지 못했다는 것. 그럼에도 마츠코의 인생은 행복했다. 왜냐하면, 사랑을 받고싶다는 건 그녀의 욕망이었지만, 그녀의 삶의 추동력, 삶의 목적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그녀는 자신의 목적을 향해 충실히 노력하는 삶을 살았다. 나가시마 테츠야 감독은 이러한 마츠코의 삶이 보여주는 행복과 불행을 정확히 집어낸다. 그렇기에 마츠코를 향한 감독의 시선은 시종일관 따사롭고 유머감각이 넘치며, 가장 초라한 곳에서도 빛나는 아름다움을 건져올린다. 그는 웃음 뒤에 숨겨진 슬픔, 절망을 감싸는 웃음의 진정한 힘을 잘 알고 있고, 이를 매우 능숙하게 표현해낸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이렇게 발랄하게 행복할 때도 있었지만...

영화의 코믹 터치는 주로 앞부분에 몰려있는데, 이는 물론 관객들을 영화에 빠르게 몰입시키기 위한 목적도 있었겠지만, 마츠코가 가지고 있던 낙관적인 성품은 물론 20대 초반의 마츠코가 가지고 있던 생기와 발랄함을 생생히 전달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 관객들의 눈을 단박에 사로잡는 것이 바로 마츠코의 독특한 표정이다. 애초에 마츠코의 조카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 영화에서, 관객에게 마츠코라는 인물을 소개하기 위해 가장 처음 제시되는 것이 이 표정을 짓고 있는 마츠코의 사진이다. 그리고 이 사진이야말로 마츠코라는 인물이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격 – 애정결핍과 슬픔, 그리고 모든 고난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며 살아가는 건강하고 낙천적인 성격 – 을 반영한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마츠코의 인생의 각 단계마다 연출의 코믹터치는 줄어드는데, 마츠코 역을 맡은 나카타니 미키의 연기 역시 정교한 계산 하에 점차 과장된 코믹 연기에서 섬세한 표정 연기로 넘어간다. 마츠코가 선생님이던 때의 나카타니는 신체의 모든 부분을 과장되게 사용한 슬랩스틱 연기를 보여주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녀의 연기 표현은 점차 정극 연기로 진행되고, 감옥에서 출소하는 류를 마중나간 장면에 이르면 신체 연기를 극도로 절제하고 얼굴에서도 거의 표정을 지운 채 눈으로만 감정을 전달하는 극단적인 미니멀리즘의 연기를 보여주게 된다. 이 영화에서 나카타니 미키가 보여주는 연기는 여배우가 보여줄 수 있는 거의 모든 스펙트럼의 연기로, 관객 입장에서는 그저 감탄과 찬사를 바칠 수밖에 없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외롭고 힘들었지만,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

상투적인 이야기를 어떻게 진부하지 않은 영화로 보여줄 수 있는가? 이는 영화뿐 아니라 ‘서사’를 다루는 모든 예술가들의 숙원이다. 이미 오래 전에 소설의 죽음이 선언되고, 피터 그리너웨이가 영화의 죽음을 선언하고, 많은 이들이 연극에서 관심을 돌려버린 것은 이야기가 가능한 모든 형태의 줄거리가 이미 다 나와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두가 서사의 죽음을 선언한 순간, 혹은 그 이후에도 새로운 이야기는 새로운 이야기꾼을 통해 계속해서 튀어나온다. 한국에서도 이미 오래 전에 유행이 지나버린 호스티스물이 이렇게 새로운 영화로 등장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창작의 진정한 매력일 것이다. 그러나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 해낸 진정한 성취는, 장르를 막론하고 서사에서 가장 어리석은 여성의 대명사격으로 여겨졌던 전형적인 특징의 캐릭터를 무려 ‘신’의 성품으로까지 끌어올려 재해석해내고 이를 관객들에게 설득시키는 데에 성공했다는 점, 그리고 이로써 고난과 상처로 인해 더 아름다울 수 있는 삶을 제시해준다는 점에 있다. 슬픔과 절망에 지지 않고 이를 어떻게든 웃음으로 승화시키고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사랑하며 살았던 마츠코의 삶을, 그리고 그녀가 가진 에너지를, 누가 감히 ‘혐오스럽다’ 말할 수 있으랴.

ps1. 프레시안무비 리뷰

ps2. 제가 그 단어의 정확한 뜻을 알고 있지 않아서, 떠올랐지만 이 리뷰엔 굳이 안 쓰고 대신 ‘새로운’ 어쩌고 했는데 film2.0의 김영진 평론가가 언급해줘서 이젠 확신하고 쓸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영화는 새로운 걸 만들어냈다기보다는 “대단히 키치스러워서 오히려 새로워 보이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7 Comments

  1. 장점은 많아도 거슬리는 부분이 너무 크다고 말했지만
    사실 영화를 보고 있을때는 무수한 감정이입과, 거슬리는 부분이 신경쓰이지 않았을 만큼, 신기스러울만큼 잘 이끌어나간 영화인 건 확실한 것 같아요. 뭐랄까- 다 보이는데 보이지 않는다는 건 고단수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네요. 영화를 보고난후 몇시간 흐르고 나니 ‘뭐냐 그녀의 삶은!’이라고 짜증을 낼지언정.
    에이타란 미소년에 홀린 것도 제겐 컸다고 봅니다 ^^;
    참. 전반 5분을 놓쳤는데.. 다시 보러갈 맘은 없고 친구가 보면 얘기해달라고 할 참입니다;

    • 일본영화 특유의 어떤 면이 한국관객들에겐 아주 잘 들어맞거나 아주 거슬리거나, 그런 게 좀 있는 듯해요. 그래도 마츠코는 제 경우엔 크게 거슬리는 건 없었는데… 조금은 더 익숙해진 걸까요?
      참, 예전엔 짜증부터 나던 캐릭터요 이야기인데, 이 영화가 풀어내는 방식은 참… 놀랍더군요.

  2. 작년 PIFF 때 이 영화를 보았는데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분명 입밖으로는 ‘으하하’ 웃음이 터져나오는데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극장 안 다른 관객들도 처음 시작은 웃음이었지만 끝은 늘 코를 훌쩍거리는 울음이었지요.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다들 기다렸다는 듯 휴지를 찾아 주섬주섬. 어떻게 보면 정말 전형적인 이야기인데, 그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 또한 참으로 전형적인 것 ‘같은데’도 너무나 멋스러워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연출도 연출이지만 나카타니 미키도 참 멋졌어요. [케이조쿠]를 통해 이 배우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자칫하면 들뜨기 쉬운 캐릭터를 꽉 붙잡아두는 연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 그러게요. 일반 극장에서도 웃는 소리와 우는 소리가 같이 들리죠. ^^
      나카타니 미키, 정말 멋지더라고요. 여배우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연기를 보여주고, 참 차분하고 안정적으로 (misha님 말씀대로) ‘캐릭터를 꽉 붙잡아두는 연기’…

  3. 갑자기 바뀐 스킨이 덧글쓰라고 압박하는 듯한….ㅎㅎㅎ

    이 영화 요새 여기저기서 평 많이 나오네요. 보고 싶기는 합니다만, 하나TV에서 공짜영화만 보는 처지라 -_-;;

  4. 밀양 시사회가 있었다면서요? 이동진 기자께서도 밀양을 보시고 정말 흥분하셧나봐요^^ 올해개봉한 한국영화중에서 처음으로 ‘ 온전히 마음을 빼앗기셧다’ 라고 하실정도이니.. 밀양이 기대가 되네염^^ ….. 근데 생뚱맞게 밀양 이야기는 내가 왜 햇지? ^^

  5. 한윤형 / 흐… 봄이라고 녹색 연두색에 환장하고 있는 중이라서요. 영화 한번 봐보실 만합니다.

    lee / 포스터만 봐도 감이 오더군요. 이창동 감독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번 영화는 대단한 물건일 것같기도 하고…
    근데 전 아직 온라인홍보사들 리스트에 등록이 잘 안 돼 있는, 매체파워 없는 기자라서 시사회 공지나 보도자료를 잘 못 받고 있습니다. < 양> 시사회를 벌써 했는지도 모르고 있었네요. 이동진 기자도 별로 안 좋아합니다. -.-;;
    근데, 뉘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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