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림 | 우아한 세계

영화를 보기 전 모 영화 인터넷 기자로부터 들은 얘기 : “한재림 감독이 인터뷰 때 송강호의 캐릭터 강인구를 풍자 내지 조롱하려는 의도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영화 어디에도 그런 건 없더라, 그게 의도였다면 실패한 거다, 다들 강인구를 연민한다.”


우아한 세계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

그런데 웬걸, 풍자하는 거 맞구만. 영화는 분명 이 ‘조폭 아빠’를 무작정 연민하고 편들고만 있지 않다. 무엇보다도 마지막 장면이 그렇다. 그렇다면 왜 대다수의 관객들은 송강호의 캐릭터를 ‘우리 시대의 가장의 고단함’으로 이해하며 연민하며 나아가서 ‘감정이입’까지 하는가. 부하들이 묶고 두들겨패서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있는데도 목숨을 걸고 끝까지 뻗대고 있는 남자에게 주먹질을 더하고 심지어 몸을 붙잡고 손가락을 억지로 꺾어서 강제로 계약서에 피로 지장을 찍게 하는 게 강인구(송강호)의 첫 등장인데도!


길거리를 지나치다가 마주치는 개망나니 인간말종을 향해 아마도 누구나 경멸과 혐오를 담아 중얼거리게 될 말, “아 씨발 저런 개새퀴들도 집에 가면 나름 소중한 아들이고 아버지랍시고 대접받겠지?”가 이 영화의 시작이었을 거라고 (근거없이) 확신하고 있는 나로서는, 비록 그 고단한 인생에 연민을 느낄지언정 라면을 입에 한가득 넣고 울면서 “씨발… 내가 뭘 잘못했다고…”라 중얼거리는 강인구에게 “솔직히 당신 잘못 많이 했거든요. 잘못한 거 없다고 생각하면 절대 안 되죠.”라고 말하고 싶었다. 궁궐 같은 집에서 대형 벽걸이 PDP를 걸어놓고 고작 라면으로 끼니를 떼우는 그는 이제 더이상 그 가족의 일원이 아니다. 캐나다에서 너무나 행복한 삶을 보내고 있는 가족들은 그의 피묻은 돈으로 호의호식하며 잘 산다. 하지만 그의 가족들이 그에게 원했던 것이 과연 그런 궁궐같은 집이고, 캐나다에서의 안락한 삶이었을까. 가족들이 모두 캐나다로 날라버린 건, 오히려 강인구가 조폭의 길을 그만두지 못해서 아닌가. 그러나 강인구는 그 모든 게 가족을 위한 거였다며 변명할 터이다. 너희들은 결국 내가 벌어온 돈 갖고 잘먹고 잘 살지 않느냐며 오히려 억울해 하면서 오늘도 누군가의 배때지에 칼을 쑤시러 혹은 누군가를 묵사발 만들어서 억지로 계약서에 지장을 찍게 만들러 나갈 거다.


그런 송강호에게 그토록 ‘감정이입’까지 한다면, 그리고 만약 당신이 자신의 삶의 지리멸렬함을 근거로 그의 삶을 껴안으려 한다면, 난 당신에게 한 마디밖에 할 수가 없다. “인생 참 잘못 사셨군요.” 물론 나의 이 비아냥에는, 번듯한 직업 – 회사원이 됐건 뭐가 됐건 – 마저도 실은 최소한의 원칙과 규범과 공정한 경쟁이 아닌 ‘조폭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대한민국의 전근대적 경제와 사회에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전개하며 고단하게 살 수밖에 없는 당신의 고단한 삶에 대한 연민도 묻어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이해는 하지만 인정은 할 수없는 무수한 일들이 있는 법이다. 그 약육강식과 정글의 법칙 속에서도, 일해주고 떼이고 뒷통수나 맞으며 피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자신은 짓밟히지만 남을 짓밟지는 못하는 무수한 사람들이 있다. 내가 10분 불편한 것 때문에 남들이 어떻게 살거나 말거나 관심없이 파업한다고 욕하고 난리 부르스를 떠는 게 하나도 쪽팔리는 일이 아닌 대한민국에서 그런 사람들은 존중되는 게 아니라 무시될 뿐이지만, 그렇다고 강인구의 삶을 합리화할 수는 없는 거다. 물론 나이들어 직업 바꾸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는 잘 안다. 그러나, 예컨대 돈벌이가 안 돼서라던가 몸이 너무 힘들다던가가 아니라 남 눈에 피눈물 내고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도덕관념에서부터 어긋난다 싶어 정말 아니다 생각했을 때 그만두지 못하고 질질 끌려온 거, 그거 책임은 자신이 져야 되지 않나? 영화의 엔딩, 그거 다 강인구 자신이 자초한 삶이다. 거기다 대고 그 궁상 떨면서 우는 거, 죽어도 지 잘못은 없다며 청승 떠는 거, 그건 정말 비겁한 거 아닌가.


하긴 그게 지금 대한민국 남자들의 찌질함이긴 하다. 다 남탓이라지. 그리고 그거, 정말 그런 삶을 살고 있어서라기보다는, 그런 삶이 될 거라고 지레 겁먹는 것이라고 나는 의심하고 있다. 그들이 그렇게 벌(‘번’이 아니다) 돈으로 호의호식하면서 살(‘사는 / 살고있는’이 아니다) 저 기생충같은 여편네 애새끼들에 대한 상상의 증오를 불태우는 게 그들 찌질이들의 습관이니까. 그렇기에 <우아한 세계>는 현재를 사는 한국 찌질남들의 상상의 공포에 대한 보고서이기도 하다. 씨네21에서 정이현이 (그 엔딩 장면에 대해) “그것이 피상적으로 느껴지는 건 혹시 그 시선의 숨은 주체갸 엄살 부릴 줄도 모른 채 꾸역꾸역 살아가는 이 땅의 진짜 아저씨들이 아니라, 아버지-되기가 지레 두려워 진즉에 머나먼 곳으로 도피해버린 아들이기 때문은 아닐까? 어쩐지 아버지 엿 좀 드시라는 뜻인지 그놈의 홈비디오 하번 독하게도 길게 찍어 보내더라니.”(굵은글씨 강조는 인용자)라고 썼는데, 이거야말로 정확한 지적이다. 왜냐하면, 극중 송강호에게 ‘정말로’ 감정이입할 수 있는 층은 <우아한 세계>의 관객들 중 절대 소수에 불과할 테니까. (그 나이대의 아저씨들이 과연 이 영화를 보러 극장에 왔겠느냔 말이지.) 그러나 그들이 그토록 찌질해지는 것은 역으로 말하자면, 이 사회가 그만큼 찌질이들을 절대적으로 양산하는 무시무시한 사회라는 점일 터이다. 직업윤리와 소명의식, 기본적인 상도덕 따위의, ‘프로테스탄트’적인 자본주의 정신 – 청교도 정신은 근대의 자본주의 정신의 핵심을 이룬다 – 조차 우리는 갖지 못했다.


우아한 세계

이 장면 '쌤통'이라고 하면 나 때릴 거야?

한재림 감독은 데뷔작 <연애의 목적>에서부터 과대평가를 받고있는 듯하다. 대체로 배우들의 연기와 각본의 재치있는 대사들이 빛날지언정 연출, 특히 ‘편집’에선 지지부진한 면이 많이 보이는데, 영화매체들이 한재림 감독을 이토록 띄워주는 건, 개인적으로 짐작하기에 ‘젊은 감독군’에서 차세대 대표주자를 얼른 선정해줘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말하자면 “한국영화 위기” 호들갑 분위기에서 봉준호, 박찬욱, 류승완, 김지운 등등 ‘스타감독들’의 뒤를 잇는 차세대 대표주자의 계보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그 와중에 이제 두 영화를 찍었고 여전히 영화철학이 아리송해 보이는 한재림이 그나마 젊은 감독들 중 나아 보이는 데에서 출발하는 과도한 기대, 나아가 오바의 칭송. 솔직히 이 정도 영화로 포스트-스타감독의 적자로 삼을 수 있다면 한국영화 미래 정말 암울한 거다, 중얼거리며 극장문을 나서는데, 새삼 요즘 한국영화들 왜 이리 찌질한가, 한숨이 나온다. 이건 결국 철학의 부재란 생각이 드는데, 다시 한재림 감독으로 돌아가자면, 나는 도대체 감독이 의도했다는 그 ‘풍자와 조롱’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묻고 싶다. 별 대답 못할 듯싶다. 나는 위에서 특히 남자관객들의 찌질함을 비웃었지만, 결국 이 찌질함은 감독의 철학 부재와 목적의식 없는 풍자와 조롱에 대한 당연한 반응일 수밖에 없지, 싶은 생각도 든다.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16 Comments

  1. 멋져, 좋아….저도 무지 생각해 봤는데요, 심지어 이글에 따라붙을 온라인 댓글들의 온갖 난장판을 하나하나 유추하며 생각해보고, 정말 정치적으로 올바를만한 경구로 반박할 생각도 해보고, 정말 바리님이 좀 과하게 냉정한 것 아닌가도 생각해 봤는데…역시 제가 잘못 살고 있는게 맞습니다. 그때부터 다시 온갖 변명과 궁색이 난장을 다시 깔아대지만, 역시 잘못 살고 있습니다. 마음속 깊숙히 잘 살고 싶은 건 맞지만, 현실적으로 정말 더럽고 치사하고 비겁하게 사는 거 맞습니다. 실컷 반성이라도 하고 싶습니다. 결국 당 영화의 오류는, 실컷 해볼 수 있는 반성의 시간을 만들어주지 못한 것, 도리어 그 더러운 삶을 합리화해버리는, 동조화해버리는 착각을 만들어 낸 것이겠죠….?

    • 참 아이러니예요. 정말 찔려야 할 사람들은 절대 안 찔려하고, 안 찔려해도 될 사람들은 제일 먼저 찔려하고 고백성사하고 반성하는 거…

  2. 씁쓸해요. 떫디 떫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트랙백해갑니다. 제 블로그는 거의 텅텅이고 들어오는 사람도 거의 없지만 트랙백하니 주소는 남기고 갑니다 ^^;

    • 앗, 드디어 블로그를 가르쳐주시는군요… ^^;

  3. 블로그랄 것도 없어서.. –;
    작년 말부터 거의 닫고 지냅니다 ^^;

  4. 올 해 인기 좀 있었던 드라마 하얀 거탑의 주인공 장준혁에게 감정을 이입하는 사람들이 좀 못마땅했었는데, 아마도 그런 식의 성공을 동경 사람들이 강인구 식의 생존도 동정하는 게 아닐까요.

    • 드라마 못 챙기는 성격상 < 얀거탑>을 조금 보다 말았는데,
      아마 거기의 장준혁과 이 영화의 강인구는 완전히 다른 인물일 겁니다. 아마 장준혁은 확신범이지 않나요. 강인구는… 에휴.

  5. 바탕 때깔이 좋네요. 가끔 들리다가 처음 글남깁니다.

    송강호의 연기는 쉬리와 더불어 최악이었던 것 같습니다.

    자기연민에 빠진 맨쇼비니스트라니

    저는 마음껏 조롱하고 왔는데 주변에 그런 사람들 은근히 많더군요.

    애들한테 ‘아빠만 없으면 우리집은 완전’하다는 말 듣는 사람들.

    • 전 송강호의 연기는 별 불만 없었습니다. 배우로서는 심지어 사악한 캐릭터도 관객에겐 어떻게든 설득시킬 수 있어야 할테니까요. 결국은 감독의 철학부재, 연출력 문제라고 봅니다.
      하여간 전 마지막 장면 보면서, ‘저 장면에선 “쌤통”이라고 반응할 수 있어야 하는데…’ 생각했지만, 정말로 그렇게 반응하면 돌맞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더군요. ㅎㅎ

      같은 리플이 두 개가 붙어서, 하나는 지웁니다.

  6. 마지막 패러그래프에 김지운 감독이 두번 언급..
    사소한 것만 보이는…요즘 잘 지내죠?눈팅잘하고 있슴당.ㅎㅎ

    추기.진짜 진중권 아님.ㅋㅋ

    • 앗, 그렇군요! 수정했습니다. ^^
      가라사대님도, 잘 지내고 계시죠?

  7. 이 영화를 보지 않았으며 보지 않을 생각입니다만,
    흔하디 흔한 우리나라 주류(?) 조폭영화가(또는 제작, 감독이)

    조폭의 삶이란,

    실은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하나같이 구질구질하기 짝이 없으며, PDP 걸고 딸내미 유학보내며 사는 것이 행복의 전부인 줄 아는 그런 삶일 뿐이란 것,

    그리고 조폭주인공 스스로는 사실 조폭과 다르게 사는 삶이 훌륭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좀처럼 일깨워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좀 실감나게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재밌게 읽고 갑니다.

    • 실제 조폭들이 어떻게 살고있는지 몰라서 실감나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 아한 세계>가 이루고 있는 일정한 성취점은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제가 아예 감상문을 쓰지 않았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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