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 보일 | 선샤인

‘태양’이라는 존재는 지구상의 생명체들이 생명을 유지해갈 수 있는 원초적인 에너지를 제공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에너지원을 육안으로 볼 수도,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다. 그렇기에 태양은 절대로 우리가 마주할 수도 감히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어떤 본질적이면서도 금기가 되는 대상, 간접적으로만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대상을 은유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곤 한다. 플라톤이 ‘이데아’를 설명하면서 든 비유도 동굴과 태양을 사용한 예였다고 하고, 그리스 신화의 이카루스(이 영화에 등장하는 우주선의 이름이기도 하다)가 결국 죽음을 맞는 것도 태양에 너무 가까이 갔기 때문이다. 고대의 인류 중 일부가 태양을 신으로 숭배한 것도 단순히 미지의 대상에 대한 두려움과 이로 인한 어리석은 숭배 때문만은 아니다. 태양은 충분히 ‘신’으로 상징화될 수 있는 물체이다.

<선샤인>의 주인공들이 당면한 딜레마는 이것이다. 여전히 금기의 대상이고 여전히 인간이 감히 접근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그 힘은 과거와 달리 현저하게 약해졌다는 것. 그리하여 그 대상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서 살고 있는 생명체들에게 에너지를 나눠줄 수 있을 정도는 아니게 됐다는 것. 이카루스 2호에 타고 있는 8명의 대원들은 그들이 수행해야 할 임무가 얼마나 어렵고 얼마나 성공율이 희박한지 잘 알고있고, 더욱이 그들이 임무를 성공하고 무사히 지구로 귀환할 가능성은 더욱 적다는 것을 잘 알고있다. 애초 임무에 실패한 채 돌아오지 않는 선배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기도 하고. 그러나 이들을 그 위험한 임무로 추동한 것은, 설사 죽음을 맞는다 하더라도 그러한 절대적인 존재에 보다 가까이 가고싶고, 할 수만 있다면 그 절대적인 존재를 대면하고 싶다는 ‘욕망’이다. 이것을 형상화하기 위해 <선샤인>의 화면은 영화의 오프닝 타이틀과 우주선의 방열막에서부터 ‘눈동자’의 형상을 노골적으로 반복하고, 카메라는 종종 각 인물들의 눈을 극 클로즈업하며, 등장인물들은 ‘본다’는 행위에 과도하게 집착한다. 가네다 선장이 죽어갈 때 닥터 서릴이 그토록 절박하게 반복한 외침은 ‘뭐가 보입니까?’이다. 아무렴, 이 영화의 화자인 로버트 캐파(킬리언 머피가 맡았다)는, 전쟁을 근거리에서 ‘목격’하고 사진으로 기록한 20세기 포토저널리즘의 선구자인 로버트 카파와 이름이 같기까지 하다.

이성과 합리, 그리고 ‘지식의 축적’을 모토로 삼아온 근대 사회는, ‘보는 것’을 ‘아는 것’으로 믿는 사회이다. 과학의 힘을 통해 자연을 하나하나 ‘정복’해온 서구사회의 가치관은 바로 이 근대의 산업화를 통해 가속화되었다. 영어단어 see라는 동사의 쓰임(‘보다’라는 뜻 외에도 ‘만나다’, 그리고 ‘알다’의 뜻으로 쓰이지 않는가)이 알려주듯, 근대의 사회에서는 보는 것이 아는 것이고,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그런데 이 보고싶다는 욕망, 즉 알고싶다는 욕망은, 기독교 신자들이 흔히 말하는 ‘오만’보다는 신에 대한 경외와 사랑에서 비롯한다. 바벨탑의 건설은 세간에 알려진 바와 달리 ‘신과 같아지고 싶다는’ 저급한 오만이 아니라 ‘신에게 좀더 가까이 가고 싶다’는 보다 ‘경건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이카루스 호가 태양을 향하는 것 역시 한편으로는 인간의 힘으로 신적인 존재, 즉 태양을 되살려내겠다는 오만을 분명 품고 있지만, 보다 본질적으로는, 경외로운 대상에게 한발짝 가까이 갈 수 있다는 보다 소박한 욕망쪽이 더 크다. 그렇기에 태양을 마주하고 태양 앞에서 죽는 이들은 모두 극도의 황홀경 속에서 죽는다. 공포와 경외감이 뒤섞인,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오르가즘을 경험하는 표정들. 당연하다. 깊은 신앙을 가진 이들이 꿈꾸는 가장 아름다운 죽음은 바로 자신의 신을 위한 순교이니까. 그렇기에 느닷없이 나타난 방해꾼의 존재는 한편으로는 중세의 종교적 광신이 근대를 가로막았던 과거 경험의 재현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들의 순교를 더욱 숭고하게 만들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혹은 퇴행적인 신앙의 형태이거나.) 이 방해꾼은 태양과 마주하고서도 살아남았다. 그렇기에 그의 존재는 등장하는 내내 관객들에게 또렷한 형체로 보이지 않고 흐릿한 ‘흔적’으로만 제시된다. 그의 명분은 신에 대한 경건이지만, 임무 수행을 위해 무시무시할 정도로 합리적 선택을 거침없이 해버리는(한 벌뿐인 우주복을 캐파에게 입힌다거나, 유령선에 남는다거나, 우주선을 살리기 위해 희생을 선택하거나) 이카루스 2호의 대원들에 비하면 훨씬 덜 숭고하고, 세속적이다.

대니 보일 감독의 <선샤인>에 대해 ‘철학적 성찰’을 끄집어내는 이들이 많은 것은, 이 영화가 이것을 노골적으로 들이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철학적 성찰을 담지 않은 우주영화가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언제나 우주영화는 미지의 대상을 향한 경외와 두려움, 이를 통해 인간인식의 한계와 인식 저 너머, 그리고 그에 대한 인간의 반응을 다룬다.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나 철학적인 영화예요’를 들이대는 대니 보일식 접근이 철학입문서를 갓 읽은 재주있는 고등학생의 리포트 정도로 보이는 건 그래서일 게다. (아마도 그는 <매트릭스>가 장 보드리야르를 비롯한 현대철학자들을 불러모은 현상을 매우 질투했음에 틀림없다.) 미덕이라면, 킬리언이 이쁘다는 것, 그리고 인종배합이 균형이 있다는 것. 닥터 서릴 역의 클리프 커티스는 뉴질랜드 네이티브 출신이며, 일본인 선장과 중국계 항해사와 식물학자의 조합은, 서양인이 감독이었던 우주영화들 중 이제까지 그 어떤 영화들보다 그 면에서 배려를 하고 있다. 동양계와 네이티브 출신들이 (양자경이 맡은 코리만 제외하고) 하나같이 ‘숭고한 자살'(?!)을 선택하는 건, 소위 ‘동양식 사고방식’에 대한 일종의 스테레오 타입을 따른 것이겠지만.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6 Comments

  1. 볼까 싶은 영화이긴 한데, 네 말대로 너무 들이대는 느낌이 좀 있어. 엠넷이던가 이 영화 메이킹을 보여 줬거든? 아, 근데 어찌나 감독이 자기 영화는 스타워즈랑은 다른 영화라고 강조하는지, 보다가 나도 모르게 ‘스타워즈가 어때서!’라고 대꾸해 버렸다니깐;

    킬리언은 배트맨에서 너무 느끼하게 나왔어. 얼굴이 아주 묘하더라. 어떨 때는 색기 만발인데, 어떨 때는 심하게 이상한 얼굴. 목소리는 마음에 들어. 언뜻 보이는 광기도.

    양자경 나오는 거 맞지? 예고에서 봤을 때, 헉, 자경 누님이다, 했는데 메이킹에서는 안 나오더라구. 눈이 삐었나 고민했잖아. -_-

    • 제가 대니 보일 안 좋아하는 게, 애가 좀 얄팍한 잘난척쟁이예요. 영화 보면 화면마다 그게 보여서리… (근데 이 영화를 극장서 두 번 봤다는.)
      양자경 나와요. 역할 비중도 큰 편이고요. 너무 좋았던 게, 옛날에 본드걸로 나왔을 땐 어딘가 좀 따로 도는 느낌이었는데 여기선 화면에 너무 잘 어울리더라고요. 원래 영국에서 자란 사람처럼 무리없이 스윽 어울려있달까요.
      그나저나 이 영화도 이제 서울에서는 영등포에 있는 극장 하나에서만 상영하더라고요. 그래도 극장에서 스크린으로 봐야 영화 화면이 좀 살 거 같은데.

  2. 킬리언이 이쁘다는 것, 그리고 인종배합이 균형이 있다는 것이 미덕이었다는 데 동의합니다. 그런데 영화 자체는 의욕만 너무 앞선 인디영화나 신인 감독의 출사표스럽더군요;;

    • 별로 깊이있게 아는 것도 자신만의 개성스런 통찰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뭣 조금 줏어들은 거 갖고 굉장히 잘난척하는 사람들…을 볼 때의 난감할이랄지, 사실은 < 샤인>을 볼 때 그게 느껴져서 좀 불쾌했어요. 막판에 갑자기 좀비 공포물이 되는 것도 영 어색했고요. 그러나 제가 대니 보일을 별로 안 좋아함에도 ‘이 영화에서 이걸 봐달란 말이야~~~’를 충실하게 보고 읊어준 ‘착한 관객’ 노릇을 한 것은, 이 영화의 워낙 경악스러운 흥행성적 때문에… 그 정도로까지 엉망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나름 B급 장르영화를 하면서 ‘문법의 파괴’ 같은 걸 해보고 싶었던 모양이구나, 피식~ 뭐 이런 느낌이긴 했지만요.)

      북극찐빵님의 감상문, 무척 즐겁고 재밌게 고개 끄덕이며 읽었어요. 특히 ‘의상’ 부분 언급은 읽다가 이 야밤에 으하하하~ 소리내서 웃으며 뒤로 넘어갈 뻔했답니다;; 센스쟁이셔욧! (반갑습니다.)

  3. 철학이 들러붙게 하고 싶다면, 감독이고 연출이고 배우고 작가고 보는 사람이건 지나가던 사람이건, 아무도 모르게 만들면 쉽지, 철학이 잘 안팔릴 때.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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