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위강, 맥조휘 | 상성

Confession of Pain

Confession of Pain, 혹은 Behind the Sin


<무간도> 시리즈의 두 감독의 또 한 편의 누아르라 일단 기대. 쇼박스에서 개봉날짜를 미루는 것을 보고, 그리고 예고편을 보고 조금 불안한 감을 갖기는 했는데 영화를 보니… <상성>이 그렇게 후진 영화라 하긴 그렇지만, 아무래도 <무간도>의 감독들이 만든 영화라는 점에서는 실망. 사실 영화 보고 나와서 꽤나 냉소적으로 “홍콩, 마카오 관광 유치용 영화죠 뭐”라고 반응했다는.


<상성>에서도 ‘정체성 혼란’은 반복된다. 다만 <무간도>에서 정체성 혼란과 그에 따른 불안과 고민 그 자체가 영화의 큰 줄기였다면, <상성>에서의 인물들은 ‘이미 엉클어진 정체성’과 그로 인한 불안을 마치 체념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운명인 양 당연시 여긴다는 것. 유정희(양조위)는 유정희대로, 아방(금성무)는 아방대로, 형사로서의 정체성은 별로 없어 보이며, 오히려 자신의 다른 욕망들을 그 정체성 위에 두고 있다. 그렇기에 <상성>은 직접적으로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뿌리뽑힘에 대한 불안감을 드러내는 대신, 이 불안감이 아예 체화된 이들이 욕망을 향해 위태롭게 질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딱 이런 면에서 <무간도>의 아주 느슨한 속편처럼 보이기도 하고, 쓸쓸하고 우울한 도시 정서를 그려낸다는 점에서 닮은 점이 있긴 하지만, 이 정서와 ‘부유하는 홍콩인’은 애초에 두 감독이 독특하게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왕가위로부터 온 것이다.


영화의 중심엔 살인사건의 미스터리가 놓여있지만, 이걸 풀어가는 방식은 미스터리를 푸는 아방의 수사가 아니라 왜?의 미스터리이며, 이 ‘왜’들 둘러싼 두 남자의 심리와 감정, 욕망에 더 밀착해 있다. 애초에 범인이 누군지를 밝혀버리고 전형적인 추리 미스터리물의 공식을 따르는 대신 좀더 심리적 갈등에 주안점을 둚으로써, ‘주인공들만 몰랐어염’ 식의 허무 개그는 피해가고 드라마를 좀더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여기에서 최초로 악역을 맡았다는 양조위의 유정희는 안경 하나 걸침으로써 평소보다 날카롭고 냉정한 이미지를 선사하는 대신, 안경 뒤 여전한 그 눈빛 연기를 통해 이 인물이 단순한 악당이 아님을 웅변한다. 아방의 수사가 계속될수록 긴장이 계속되는 것은 유정희가 갖고 있는 그 구구절절한 사연 그 자체가 아니라, 유정희에 대한 (불편한) 감정적 지지이다. 유정희가 설사 잔혹한 살인자라 하더라도, 관객의 입장에선 어떻게든 그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 그에게 아마도 그럴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었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갖게 되니까. 그런데 이 과정에서, 영화는 편집을 좀더 매끄럽게 다듬어야 할 필요성이 있었고, 유정희의 사연을 밝히는 방법으로 아방의 장황한 대사를 통해 주절주절 설명하는 방식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공들여 짠 플롯이 허술하게 느껴지는 데다, 그럼으로 해서 감정적/심리적 파장이 상당 부분 시도에 비해 빛을 잃어버린다.


유정희는 아방에게 ‘모든 것을 잃어보았는가? 너는 결코 나를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말하지만, 아방 역시 매우 큰 것을 잃어버린 사람이다. 그녀의 사랑을, 그녀의 존재를, 나아가 자신의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아방의 상실의 고통이 비록 “어릴 적” 눈앞에서 가족 모두를 잔혹하게 잃은 유정희의 상실의 고통보다 분명 핸들링이 조금은 더 쉬웠을지라도. 결국 상실의 고통 앞에서 어떻게 대처하는가가 문제가 될 것이다. 심지어 그녀가 바라을 피웠던 상대의 거의 간병인 수준까지 가는 아방과, 복수를 유일한 삶의 목적으로 두며 모든 것을 파괴하고자 하는 유정희의 차이. 아방은 조심스럽게 새로운 사랑을 마나지만, 유정희는 결국 자기가 소중히 여기던 존재와 자기자신마저 파괴할 수밖에 없다. 비극이 발생하는 지점은 여기다. 바닥까지 내려가본 사람에게 이제 남은 일은 바닥을 차고 다시 떠오를 일만 남았다, 곤 하지만, 한순간에 모든 것을 완전히 잃어버린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은 위로 떠오르는 길까지 잃어버리곤 한다. 그리고… 바닥엔 끝이 없다.


하지만 복수가 궁극의 목적은 아니다. 복수라는 것은 언제나 상대에 대한 처벌뿐만 아니라, (복수를 받는) 상대가 그 처벌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제3자에게 ‘이야기’로 남는 것(일종의 ‘복수’의 증명)의 과정이 필요하다. 아방은 결국 복수의 목격자이자 증명자로 남는다. 이 단계까지 갔을 때, 유정희를 사랑하면서도 용서할 수는 없는 그녀가 죽는 것은, 그리고 유정희가 그녀의 뒤를 따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 당연한 귀결이, 영화의 무수한 흠에도 불구하고, 보는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무수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결국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성공’, 거기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이가 바로 양조위와 금성무다.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7 Comments

  1. 나는 아방이 그 사건 얘기를 두 번 하는 게 에러라고 봐.
    두 번째로 찾아와서 얘기하는 장면 날리거나, 줄였으면 훨 나았을 듯.

    양조위는, 만 마디 말을 대신하는 표정이란 저런 거구나, 하고
    항상 느끼게 해주는… 근데, 이 아자씨도 늙어가데. ㅡ.ㅠ

  2. 그런가요.. 이 영화, 너무 이것저것 욕심을 많이 부려 정확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놓쳤다 생각했어요. 어쩌면 제가 받아들이는 법을 잘 모르는지도 – 마지막 장면의 귀여움이랄까 애교스러움이랄까, 그것도 어색하게 다가왔습니다. 부분부분 따져보면 잘 된것들이 많겠지만 결국 하나로 조화가 이루어져야 하는 건데 그것이, 안 된것 같더라구요. 힘의 조절이 잘 되지 않은 듯해요. 제게 이 영화는 말씀하신 ‘성공’을 달성하지 못했답니다 아쉽게도.

  3. echobelly / 그러게, 조위 아저씨 많이 늙었더라… 흑.

    sang / 아마도 제가 ‘복수하는 양조위’에게 감정이입을 좀 많이 했죠. sang님의 감상이 객관적으로도 맞다 생각합니다. 여러모로 아쉬움이 참 많은 영화였어요.

  4. 영화는 좀 허무하던데 웃긴게 전 이 영화 보면서야 비로소(!) 양조위가 ‘잘 생긴 남자’라는 걸 느꼈어요. 저게 소득이었다 생각하고 있죠.

    • 젊었을 땐 사실 뭔가 그, 중국인 (중에서도 남방인) 특유의 둥글둥글한 느낌 때문에 그렇게까지 좋아하진 않았는데, 나이 드니까 참 멋지더라고요. 특히나 그 찬 느낌의 은테 안경을 쓰니까 샤프해 보이는 것이…

  5.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가끔 와서 좋은 글 보고 가긴 하지만… :-) 잘 지내고 계시지요?

    < 성>에 대해서는, 노바리님 감상에 몹시 공감합니다. 덧붙이자면 이 영화의 치명적인 에러는 여자들, 특히 서기가 아니었을까 싶지만…그래도 스크린에서 보는 양조위는 늘 심장을 한 박자 멈추게 하죠. 아내의 병실 밖에서 빵을 꾸역꾸역 먹던, 그 모습이 잊혀지질 않더라구요. 그 순간 금성무보다 여러 수, 위에 있는 배우구나 싶었습니다. 감독이 금성무의 미모를 조금 덜 사랑해서 양조위의 플롯에 조금 더 공을 들였더라면 ㅎㅎ 영화가 좀 더 좋아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흑백의 살인장면과 현재의 현장검증이 컬러로 겹쳐지는 시퀀스는 멋졌습니다!!

    • 문유님 ^^;; 잘 지내고 계시죠. 저도 가끔씩 문유님 블로그랑 게시판 자주 가서 읽곤 해요.
      영화가 너무 멋진 부분과 실망스러운 부분이 막 섞여 있어서, 참 기분이 기묘하더라고요. 그래도 양조위 눈 때문에, 얼마나 가슴이 싸하던지… 금성무는 아직 젊으니까, 양조위한테 많이 배우면서 잘 컸으면 좋겠어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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