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슨 웰즈 | 악의 손길 Touch of Evil

Toch of Evil

개봉 당시 포스터. (난감한 센스...)


헐리웃에서 매번 무시 당하고 폄하당하다가 자신을 제대로 평가해준 유럽에서 한동안 활동하던 오슨 웰즈가 잠깐 헐리웃으로 돌아가서 찍은 후반기 걸작 중 하나가 바로 <악의 손길>이다. 로버트 알트먼으로 하여금 “나 오슨 웰즈한테 맞먹는 사람이야~”를 스스로/타인에게 증명하고자 하는 욕망에 <플레이어>의 그 무시무시한 오프닝 롱 테이크를 만들게 한 것이 바로 <악의 손길>의 오프닝의 롱 테이크 씬이다. (폴 토머스 앤더슨이 야심만만한 데뷔작 <부기 나이츠> 오프닝에서 다시 시도하기도 했다.) 과연, <악의 손길>의 오프닝은 아무래도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알트먼이나 앤더슨의 오프닝보다 짧기도 하고, <플레이어>와 <부기나이츠>의 카메라가 워낙 유려하고 눈이 튀어나올 만하기 때문에 (이밖에도 워낙 놀라운 롱테이크 씬이 많이 나오기도 했고) 상대적으로 <악의 손길>의 그 롱테이크는 “명성에 비해선 좀…” 하는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집에 와서 그 장면을 곰곰 다시 떠올려보니, 이건 정말 대단한 장면인 거다. 왜?


<플레이어>와 <부기 나이츠>의 롱테이크 씬이 실외에서 시작해 건물 안으로 들어가 실내를 휘저으며 차례로 인물들을 소개하는 데에 그쳤다면, <악의 손길>의 롱테이크는 야외에서, 카메라가 보다 입체적으로 움직이며 ‘야외’의 공간감을 살려낸다. 무슨 애기냐 하면, <플레이어>와 <부기 나이츠>의 롱테이크 씬에서 카메라는 창문을 넘나들고 복도를 휘저으며 다니긴 하지만 이 높이가 처음에 공중에서 시작한 뒤 실내로 들어가서는 대체로 사람 눈높이를 유지하며 사람이 발로 움직일 만한 동선을 그대로 따라가는 데에 반해 (기억이 오래 돼서 틀릴 수도 있지만…), <악의 손길>에선 ‘야외’에서 (아마도 크레인을 사용하여) 360도로 움직이는 카메라가 사람의 눈높이가 아닌 전지적인 ‘신’의 위치에서 자유자재로 입체적 공간감을 구축한다는 사실, 또한 인물 소개를 비롯해 이 인물들이 동시적으로 벌이는 사건을 보여주는 것뿐 아니라, 동시적 공간/시간뿐 아니라 사건의 연속(즉 시간의 ‘흐름’)까지도 반영해 넣는다는 점이다. 처음 카메라가 시작하는 곳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가 든 시한폭탄의 클로즈업이며, 이 괴한이 어떤 자동차의 뒷트렁크에 시한폭탄을 넣는 장면이 이어진 뒤, 바르가스/수전 부부의 동선(이를 통해 미국 여권을 가진 수전과 멕시코인 관리인 바르가스의 인물 배경 차이 소개)과, 시한폭탄을 실은 자동차의 동선을 교차로 (컷 없이) 보여주면서 이 둘을 다시 만나게 하고, 그리고서야 자동차는 폭발하게 된다. 롱테이크는 오늘날 흔히 ‘작가영화’를 견지하는 감독들이 관객들에게 정서적인 응시를 강제하기 위해 사용되는 측면이 큰 반면, 오슨 웰즈가 사용했던 방식은 짧은 시간 안에 인물의 소개와 영화의 시발이 되는 사건을 매우 빠른 속도로 동시에 소개해 버리는 매우 ‘경제적인’ 방식이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영화가 나온 해가 1958년이라는 점을 상기하자. 물론 영화에는 ‘카메라’가 있고 그 카메라가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그 이전부터 인지되고 있었고 ‘영화적’ 장치들, 예컨대 카메라의 이동과 편집의 기술은 이미 무성영화 시대에 대부분의 것들이 발견/발명되었지만, 저 시기에 그 특성과 장점들을 과연 오슨 웰즈만큼 끌어올리고 활용한 사람이 과연 있었을까 싶다. 아직 저 시기는 일반적으로 연극적 무대에서 배우의 동선을 그저 카메라가 따라가고, 컷하고, 이어 붙이는 정도에 불과한, 카메라가 더욱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는’ 수동적인 카메라의 영화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아마도 이러한 영화적 테크닉, 특히 카메라와 관련한 진정 영화적인 이미지의 구축을 위한 테크닉을 완전히 종합해 내 새로운 경지로 끌어올린 장본인이 바로 오손 웰즈라고 말한다 해도 이건 결코 지나침이 없는 평가일 것이다.


Touch of Evil

압도적으로 큰 덩치의 행크 퀸란(오슨 웰즈)가 내려다보는 구도




이번 서울아트시네마에서의 오손 웰즈 특별전에서는 비록 16mm로 상영되어 오손 웰즈가 의도한 그 시각적 효과를 온전히 만끽하기는 힘들긴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이 낡은 16mm 필름에서 또렷한 명함의 대조와 카메라가 인물을 바라보는 앵글의 위치, 조명을 사용하는 방식(특히 퀸란이 그랑디를 죽이는 장면에서 사용된 on-and-off의 조명)이 주는 표현주의적 효과 등에 대해서는 일부나마 흔적을 보고 말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젊고 정의로우며 이상적인 바르가스와, 늙고 타락했으나 결코 미워할 수 없는 퀸란의 캐릭터 대결이 영화의 큰 기둥을 차지하고 있는데, 카메라가 이들을 바라보는 방식에서 퀸란이 그토록 압도적인 것은 물론 퀸란의 몸집에서도 연유하지만, 카메라가 퀸란을 바라볼 때마다 밑에서 위로 바라보는 방식, 즉 앙각의 앵글을 취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퀸란이 처음 화면에 등장할 때부터 카메라는 자동차에서 내리는 퀸란을 밑에서 위로 비추며, 이후 퀸란을 비추는 카메라는 이 앙각 앵글을 유지하고 있다. 그의 위협적인 면모는 외모가 단순히 뚱뚱하고 덩치가 커서가 아니라, 이것을 카메라가 잡아내는 방식에서 강조된다. 퀸란이 바르가스를 바라볼 때에는 대체로 퀸란의 눈높이에서 바르가스를 올려다 보거나 비슷한 높이에서 비추지만, 퀸란이 그랑디를 죽이는 장면에서만큼은 퀸란의 어깨 위에서 그랑디를 내려다 보는 앵글을 지속적으로 취한다. 마지막, 바르가스가 퀸란을 도청하는 장면에서조차, 퀸랁과 멘지스가 다리 위를 이동하고 바르가스는 다리 아래 강물 속을 이동하게 함으로써 바르가스가 퀸란을 올려다보는 앵글을 유지한다. 바르가스가 비로소 퀸란을 ‘내려다보는’ 앵글이 되는 것은 맨지스에 총에 맞은 퀸란이 쓰러진 이후다.


미국과 인접한 멕시코 국경에서 일어난 자동차 폭발사건을 계기로 사건의 추적하는 게 영화의 외면적 모티브이지만, 영화의 중심은 그래서 범인이 누구냐가 아니라 이 사건에 개입한 인물들, 즉 멕시코측 고위 관리이자 정의파인 바가스와, 수사권을 가진 미국의 관록의 형사 행크 퀸란의 대립을 다루고 있다. 이 와중에 오손 웰즈가 (40대의 나이에) 직접 연기한 행크 퀸란은 빠른 수사 종결을 위해 무슨 짓이든 다 하는 부패하고 위력적인, 그러나 그 자신은 자신이 정의의 집행관이라 철저히 믿고 있는 인물이다. 증거를 조작하고, 자신에게 방해가 되는 인물을 함정에 빠뜨리며, 여차하면 살인도 불사하는 그는 주변사람들에게 더없는 신임을 받고 있기에 더욱 위험한 존재. 찰튼 헤스튼이 아무리 날고 방방 뛰는 정의파 검사를 연기한들, 우리는 이 영화에서 찰튼 헤스튼 따위는 가볍게 제압해 버리는 위력적인 존재감의 행크 퀸란을 연기한 오손 웰즈의 연기에 압도되지 않을 수 없다. 온전히 선하지도 온전히 악하지도 않은 관객의 입장에서, 가슴 속에 감춰둔 은밀한 어두운 본성이 새삼 행크 퀸란에 대한 연민으로, 은밀한 공범의식으로 발전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Touch of Evil

행크 퀸란(오슨 웰즈)와 마이크 바가스(찰튼 헤스튼)의 대결구도




그러나 영화의 줄거리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로저 이버트가 얘기했듯, 이 영화에 대한 접근은 피터 보그나도비치 감독의 그 방식이 가장 올바른 것인지도 모른다. 이버트에 의하면, 오슨 웰즈와 피터 보그다노비치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대화가 오간 적이 있다고 한다.


피터 보그다노비치 : 난 이 영화를 4, 5번 보고 나서야 줄거리를 파악했어.

오슨 웰즈 : (냉소적으로) 그래, 줄거리에 대해 아주 잘 말하는 방식이구만.

피터 보그다노비치 : 아니 내 말은… 그러니까, 내가 계속 연출을 보고 있더란 말이었어.


이 영화 역시 미국에서는 개봉하자마자 외면을 받았고, 유럽에서는 환호 속에서 그해 브뤼셀 만국박랍회에서 ‘최고의 영화’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심사위원 중에 고다르와 트뤼포가 껴 있었다고.) 오슨 웰즈가 헐리웃의 스튜디오 시스템 안에서 일했던 마지막 작품. 웰즈는 결국, 다시는 스튜디오 시스템에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ps1. ‘악의 손길’이라는 한글 제목은 참으로 멋지지 않은가.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6 Comments

  1. 악의 손길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게 참 불가사의해요 – -;; 어떤 보이지 않는 손길이 작용한 건지 ^^;;; 전 플레이어 오프닝은 재미없었고(보다가 ‘그만해!!!!’하고 외칠 뻔 했습니다 – -;;; ) 드 팔마의 스네이크 아이즈 오프닝은 좋아한답니다. ^^;;

    • 사실 오슨웰즈 작품 거의 전체가 그렇지 않아요? ^^ 오죽하면 오슨웰즈의 저주라는 말까지 따라붙을 정도니…
      < 네이크 아이즈>, 전혀 생각이 나질 않아요. 전 아직도 ‘블록버스터 주인공 닉 케이지’가 익숙하지가 않네요. 흐;;

  2. 보그다노비치의 말이 이해가 갑니다. 굉장해!!를 연발하면서 봤는데 정작 영화 내용이 기억나지 않습니다..ㅠ.ㅠ

    • 저도 너무 공감이 가요. 특히나 저처럼 아무리 샷과 앵글 봐야지 하다가도 스토리로 빠져버리는 서사 중독자마저 그러니 저 스스로도 놀랄 정도죠, 로저 이버트 글 읽다가 저 부분 옮겨놓은 것도 그래서입니다;;

  3. 안녕하세요, 친구 소개로 몇 달 전 찾아와 꾸준히 포스트 읽고 있는 독자입니다. 영화동아리 게시판 club.cyworld.com/cinecom1993 의 ‘한마디 남기기’ 메모장으로 이 포스트를 링크해도 될까요? [악의 손길] 롱테이크에 홀딱 반해버린 신임 회장에게 선물로 주고 싶어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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