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라 | 검은 집

검은 집

안경쓴 황정민은 좋은데...

한마디로, 안습.

영화는 개봉 전 마케팅에서부터 “사이코패스”라는 걸 굉장히 부각하고 이슈화하면서 이 영화가 마치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하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명칭이 생소하다 뿐이지, 무수한 사이코패스들을 책과 영화를 통해 봐왔다. CSI 시리즈가 유행하면서 한국에도 범죄학 서적들이 꽤 출판되었고, FBI 프로파일링이란 것도 익숙한 용어가 된지 오래다. 찰스 맨슨과 테드 번디 쯤은 범죄학에 관심없는 사람들조차 익숙한 이름이다. 심지어 우리는 그런 싸이코패스 캐릭터 하나를 무지무지 사랑해서, 그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들이 시리즈로 계속 만들어지고있기까지 하다. 한니발 렉터 말이다.

기존 영화들이 그런 존재들을 저 바깥에 있는 절대적인 타자로서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로 그려졌다면, <검은 집>이 시도하는 것은 그들이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에서 얻을 수 있는 공포감이다. 그러나 <검은 집>이 그 시도에 성공하고 있는가? 글쎄. 싸이코패스라는 용어 자체가 말하자면 도저히 우리의 인식으로 파악할 수 없다는, 어찌 보면 항복과 포기의 선언과도 같은 명칭이 아닐까 싶다. 즉 그들에게 ‘싸이코패스’라는 명칭을 부여함으로써 이것을 구분해내고, 더욱 타자화하는 이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마음이 없는 싸이코패스’라고 하면서, 그 싸이코패스라는 용어를 그토록 부각시키고 마치 새로이 발견된 존재인 양 호들갑을 떨며 떠들어대다가 ‘그들도 인간이다!’를 그렇게 쉽게 외쳐 버리면, 이건 자기 존재 기반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닌가. 만약 싸이코패스라는 존재를 발견하고, ‘그들도 인간이다’가 결과가 되려면, 그 사이 영화가 발견한 영화내적인 논리적 근거가 있어야 할텐데, 이 영화가 내세우는 건 오로지 “아파했다”는 것뿐이다. … 바퀴벌레도 때리면 도망가는걸. 통증의 표현이 과연 인간의 요소란 말인가. 무수하게 흔한 연쇄살인마 호러물과 이 영화의 차이점이란, ‘싸이코패스’라는 것에 대해 ‘전 정말 그런 존재가 있는 줄도 몰랐어요’라는 듯한 매우 (가증스러운) 순진한 얼굴로 싸이코패스가 뭔지 구구절절이 설명하는 씬들 뿐이고, 전통적인 연쇄살인마 호러물로서 장르에 충실하냐면… 아니, 결단코.

검은 집

골동품만 쌓아놓는다고 그 분위기가 되는 건 아니라고!

다 떠나서, 영화 초반부터 중반까진 왜 그리 지루한 건데? 전화기 클로즈업같은 웬 쌍팔년도식 편집이 끼어드는 것도 그렇고, 지루해서 죽는 줄 알았다. “MTV 뮤직비디오와 같은 감각적인 편집” 따윈 기대하지도 않았다. 차분차분히 드라마를 쌓아가는 우직한 화면만으로도 족하다. 이 영화는 그것조차 못 해내고 있다. 버려야 할 컷이 1/3이다. 게다가 영화 제목 자체가 ‘검은 집’이잖아. 준오가 처음 그 집에 당도했을 때 그 집이 주는 음습하고 압도적이면서 숨이 막힐 듯한 기분, 이걸 근사하게 묘사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거 전혀 없다. 그러다가 후반부로 가면 갑자기 슬래셔가 된다. 영화 맥락과 상관없이 그저 신체훼손 사지절단만 나오면 공포가 될 거라는 착각을 이 영화에서도 보는 것 같아 더욱 안습. 영화 후반부, 집 지하실에서 보이는 이미지들이 과연 이 영화에 얼마나 필요한 아트 비주얼이었는지 의문이 간다. 후반부는, 반전을 거듭하려는 건 좋았는데, 끝났나 싶으면 지지부진하게 시퀀스가 따라붙고, 또 끝났나 싶으면 어거지로 다시 지지부진하게 시퀀스가 따라붙고, 하는 식이다. 날렵하고 솜씨좋은 장인이 매만졌다면 매우 멋진 반전들이 됐을 후반부가, 억지로 필요없는 부록 몇 개가 거추장스럽게 계속 따라붙는 듯한 느낌이다.

검은 집

이 언니 정말 근사한데 왜 못 뜨고있나... (저 촉촉한 눈을 보시라!)

황정민은 내가 언제나 그 이름만으로도 신뢰하던 배우였는데, <검은 집>에서의 연기는 매우 실망스럽다. 감독이나 배우나 이 영화가 가야할 방향과 목적지에 대해 확신이 없이 방황하는 듯, 황정민이 연기하는 준오의 캐릭터는 별 일관성 없이 산만하게 이리저리 흔들린다. 오히려 이 영화의 ‘발견’이라 한다면, 지나치게 예쁜 얼굴도 첫눈에 확 튀는 마스크도 아니면서 자기만의 개성을 은근히 가지고 있는 얼굴과, 매우 안정적이고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진 여배우 유선의 발견일 것이다. 굉장히 예쁘지만 처음 얼핏 볼 때는 대단히 평범하게 보이는 얼굴(이게 배우한텐 얼마나 큰 축복인가?! 전도연이 지금의 전도연이 될 수 있었던 데에도 이 장점이 되게 컸다. 캐스팅 담당자들은 제발 이 언니를 주목해 주기 바란다.)을 가진 유선이 영화가 진행될수록 마력을 드러내는 것을 지켜보는 게 그나마 이 영화에서 건진 즐거움이라면 즐거움일까. 난 이 언니가 멜러를 해도 굉장히 잘 할 거 같다. 씩씩하고 활달하고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다가 결정적인 순간 그 눈에다 눈물을 또랑또랑 담그면 아우, 그냥 뻑 넘어갈 것 같아. TV에서도 특히 그 목소리 때문에 인식한 뒤부터 계속 주목은 하고 있었지만, 영화에서 이 언니를 본 건 <검은 집>이 처음인데 <가발>을 챙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뛰어난 연기, 는 아니었지만, 이 언니의 경우는 가능성을 시험하고 확장할 기회조차도 여태것 제대로 얻지 못했던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꽤 ‘서늘한’ 미모인지라, 잔 모로 같은 느낌이 나는데… 이런 배우 좀 잘 좀 키워주지. (사실은 심하게 내 취향이라 – 특히 목소리 – 오바 좀 하고 있다.)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16 Comments

  1. 황정민 아저씨는 계속 찜찜한 표정-놀란 표정-질린 표정 3단코보만 보여줘서 시선이 안 갔는데,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유선 언니가 눈에 쏙 들어오더군요. 그런데 (책을 영상으로 만든 수많은 선례를 생각하며 어느 정도 각오는 했지만;;) 제목만 검은집일 뿐 원작의 찌릿찌릿함이 하나도 안 남아있어서 안타까웠습니다;;

  2. 전 책에서도 살짝 이상한 느낌을 받았어요. 분명 섬뜩하고 오싹하게 잘 쓴 내용인데, 작가가 의도한 대로 진행되서 무서운 게 아니라 오히려 다른 쪽으로 무서움을 느낀 거죠. 싸이코패스 개념은 그닥 와닿지 않았어요.

  3. 예종 출신 유선 이라는 배우 데뷔초부터 너무 좋아했는데, 그래서 이 영화 더 기대했고 아이까지 어디 맡겨놓고 보러갈랬더니만.. 흠.. 재고해봐야겠어요.

  4. 북극찐빵 / 맞아요, 맞아요! 그 3단콤보 표정 ㅠ.ㅠ 황정민 되게 좋아하는데 실망스러워서, 속이 꽤 상했어요. 흑

    kyle / 원작을 아직 안 봤어요. 싸이코패스는 분명 재미있는 용어긴 한데, 저는 그 용어를 만들어내는 사회학적 배경이 더 재밌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뭐랄까, 본문에서도 썼지만 ‘우린 저 사람들을 이해하고자 노력하기를 포기한다!’라는 일종의 선언 같은 느낌이거든요.

    카 / 음, 사람마다 다른 거 같긴 해요. 평론가, 기자들은 대개 후한 점수를 주고 있더라고요. 전 거의 경악에 떨었지만요…

  5. 깜짝이야. 박근혜인줄 알았네…(이것도 선거법 위반인가?)

    • 흐, 정민 옵화가 박공주마마를 닮았단 거야? 그거 정민옵화한테 욕 아닌가~

  6. 영화를 보는 관점은 매우 다를 수 있습니다. 같은 영화를 보러라도 정반대의 의견을 개진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본 영화가 예술영화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감독이 고민한 흔적이 곳곳에 나옵니다.

    영화는 종합예술입니다. 소설이나 원작에서 볼 수 없는 것도 보여질 수 있고 또 원작에 나온 내용을 임의로 생략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모두들 주관적인 생각이 있겠지만 주관적 관점+약간의 객관적 평가가 덧붙여 진다면 좀 더 제대로 된 평가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특히 검은집 류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후회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 영화를 좋게 보신 모양인데, 그랬다면 님께는 다행입니다. 시간과 돈을 들여 그만큼 만족을 하고 나왔다면 그만큼 좋은 게 없겠죠. 하지만 내가 좋아한 영화가 남들에게서도 꼭 좋은 평을 들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전 원작도 안 봤고 별로 볼 생각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가 스토리로도 이미지로도 내러티브 구축에 실패했고 방향을 잃은 채 방황하고 있다는 의견을 접을 생각도 없고, 제 감상문이 님에게 ‘제대로 된 평가’라는 평을 받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7. 사인용 식탁에서 처음보고 ‘참 목소리 멋있다,연기가 차분하네’라고 생각했었지요.그뒤 드라마에서 봤을땐 그닥….

    • 드라마에선 평범하게 묻히는 경향이 있는 거 같아요. 저 배우가 아마 TV드라마판 작은 아씨들에서 터프한 둘째를 연기했었죠?

  8. 유선 사진 얘기한건데 ; 저평가 우량주 유선 ^^

    • 안 닮았어! 안 닮았어! 나으 유선언니는 그러치아나!

  9. 너무 실망한 영화였습니다. 원래부터가 눈꼽만큼도 기대를 하지 않았던 영화였지만, 예상 그대로의 결과물이 나오면 참으로 가슴 아픈 -_-;;

    • 그러게 말입니다. 근사한 배우와 적지 않은 돈이 ‘낭비’되는 걸 보는 건 정말… ㅠ.ㅠ 근데 놀라운 게, 많은 기자/평론가들이 좋은 별점을 주고 있더군요.

    • 그런거보면 정말 화딱질 나던데.. 나와서 하는 얘기는 재미없네 어쩌네 그럼서 기사 쓸때는 항상 호의적 -_-; 흑… 다 망해버려라 ㅠ.ㅠ

    • 언론과 영화사의 사이좋은 공생관계… 의 어쩔 수 없는 이유를 이해한다손 치더라도 큰 영화사가 개입됐을수록 기사들이 어찌나 나긋나긋해지는지 말이죠. 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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