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펜 | 작은 거인 Little Big Man

미국의 6, 70년대는 혁명의 기운이 정말로, 가시적으로 들끓었던 유럽의 6, 70년대와 약간 다른 분위기를 지닌다. 흑인 민권운동과 베트남 파병반대로 들끓었고, 닉슨의 워터게이트를 목격했던 미국 60년대의 청년들은 기성 세대와 시스템에 절망을 느꼈지만 그 시스템이 자신들에게 안겨준 풍요와 안락함을 소외된 이들과 나누려는 용기는 차마 갖지 못한 채 락음악에 열중하고, 히피로 돌아다니면서, LSD와 대마초에 취했다. 이른바 ‘섹스, 마약, 로큰롤’의 시대. 유럽의 68세대 청춘들보다 좀더 나약하고 멍청하며 좀더 도피적이었던 미국 6, 70년대의 청년들이 유럽의 (거창하고 똑똑한) 68세대보다 더 관심이 가는 건 아무래도 내가 고상하거나 지적인 인간이 못 돼서, 혹은 미국의 대중문화를 너무 많이 접하고 좋아해서겠지만, 아무래도 나라는 인간은 똑똑하고 지적이었던 유럽의 대학생들보다는, 여러 번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자신의 길을 찾아갔던, 그리고 자신의 삶의 조건 자체 때문에 “난 베트남 사람과 원수진 적 없어요.”라며 징병을 거부했다가 출전정지를 먹었던 60년대의 무하마드 알리에게 좀더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알츠하이머를 앓게 된 뒤의 알리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내게 미국의 60년대는 무하마드 알리와 마틴 루터 킹, 그리고 말콤 X와 성스러운 3J(재니스 조플린, 짐 모리슨, 지미 헨드릭스)로 수렴되곤 한다. 아메리칸 뉴 시네마 영화들의 필름 상영이 심지어 오슨 웰즈 영화의 상영보다 더 흥분되는 건 이 영호들이 그러한, 미국의 6, 70년대의 영화들이기 때문이리라. 고백하자면 나는 누벨바그보다 아메리칸 뉴시네마를 훨씬 더 좋아한다. 나의 영화 취향이 지적이고 아트한 쪽보다는 엔터테이닝한 쪽에 더 끌리기 때문일 것이다.

Little Big Man

오리지널 포스터인지 아닌지는 확신이...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보니와 클라이드)>로 크나큰 성공을 거둔 아서 펜 감독이 불과 3년 후 연출한 게 <작은 거인>이다.  매우 좋아하는 영화인 <보니와 클라이드>가 연출에 있어 다소 날이 서 있고 신경질적인 면이 있다고 항상 생각했는데, 불과 3년 후 만든 <작은 거인>은 능글맞을 정도로 여유롭다. 비극 속에서 희극적 요소를, 희극에서 비극적 요소를 캐치하고 표현해 내는 솜씨는 인생사의 다층적인 면을 꿰뚫어 보는 노인의 지혜와 노련한 장인의 솜씨가 어우러진 것인데, 아서 펜이 <작은 거인>을 연출했을 때는 48살. 그 어떤 영화들보다 ‘젊은 영화’인 <보니와 클라이드>를 연출하고 불과 3년 뒤라는 사실은 여러 모로 쇼킹하다. IMDB에서 이 영화의 장르에 붙인 태그처럼 이 영화는 분명 ‘코미디’이다. 그것은 이 영화가 애초에 코미디를 의도했다기보다는 아이러니한 파토스를 영화에 입힌 아서 펜의 연출과 그 연출을 똑 알아먹은 더스틴 호프먼의 연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획득한 특징이다. 이러한 코믹한 부분들은 영화에서 엄청난 긴장과 이완의 리듬감을 만들어낸다. 인간의 ‘농담’은 기분좋을 때보다는 극한의 절망 속에서 차라리 웃지라도 않으면 견딜 수 없을 때 더욱 날카로우면서도 물기있는 것들이 나온다. 이 영화가 그렇다. 영화의 말미,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벌어진 학살과, 눈앞에서 자신의 갓난아이를 안고 도망치던 선샤인이 결국 죽는 장면, 그것을 지켜보아야만 하는 잭, 혹은 리틀빅맨(더스틴 호프먼)의 비극성은 더스틴 호프먼의 어정쩡하고 코믹한 엎드려 자세와 치켜올라간 눈에서 배가된다.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그 순간 모든 동작과 말과 숨소리마저 ‘얼어버린’ 그 장면에서.

백인이었으나 인디언 공동체에서 자란 뒤 반 인디언 혹은 반 백인으로, 혹은 인디언도 백인도 아닌 존재로 평생을 살았던 잭 크랩의 삶은 영화의 어느 순간 잭 크랩이 스스로 고백하듯 결코 위대한 전사의 삶도 ‘리틀빅맨’의 삶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모든 비극을 경험하고 목격하며 살아남아 자신이 본 것을 역사로 전달해주는 자, 그가 바로 역사와 (소위!) 문명의 시대에서 진정 ‘리틀빅맨’일 것이다. 때로 살아남는 그 자체가 (아무리 구질구질할지라도) 위대해지는 순간이 있다. 적어도 그는 펜드레이크 부부처럼 위선의 삶을 살지는 않았다.

Little Big Man

아아, 잠깐 출연하신 페이 더너웨이의 코믹 연기는 진짜... ^^ (참으로 아름다우십니다, 누님.)

ps. 서울아트시네마의 아메리칸 뉴 시네마 특별전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영화. 기회가 된다면 언제고 반복 또 반복해서 보고픈 영화, 내가 마음 깊은 곳에서 사랑해마지 않게 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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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살 노인으로 분장한 더스틴 호프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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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소설의 표지

Little Big Man

DVD 표지. 아, 저 또랑또랑한 더스틴 옵화의 눈망울...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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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5 Comments

  1. 이야. 문장 좋구나~!를 연발하면서 읽었습니다. 정말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히, 즐거운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다음 글은 또 언제 올릴거에요? 응? 응?

    • 이야. 느림보님이닷!
      흐;;; 바쁘다고 한동안 팽개쳐뒀는데 이제 좀 써보자, 하고 있습니다. ^^;;

  2. 특히 “그 시스템이 자신들에게 안겨준 풍요와 안락함을 소외된 이들과 나누려는 용기는 차마 갖지 못한 채 락음악에 열중하고, 히피로 돌아다니면서, LSD와 대마초에 취했다.” 이 좋군요. 스크랩 합니다.

  3.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프레시안에서 일하시는걸 알게 되었네요. 사실 조금 궁금했던 터였는데. 인용과 기사에 대해서는 아무런 불쾌감이 없으니 그냥 사용하시면 됩니다.

    다만 한 가지 알려드릴 사실이 있는데, 김지환인지 김태경인지 어떤 감독이 ‘지금 공중제비를 도는 여귀를 찍을 수도 없는 것 아닌가’와 비슷한 뉘앙스의 이야기를 한 글 – 언제 했는지 잘 기억이 안나네요, 제 글에 대한 반박은 물론 아니고 (웃음) – 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기사작성 이후 곤란을 겪게 되실른지도 모르니, 한 번 체크해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찾으려 했더니 잘 안 찾아지는군요.
    더불어 제 포스트에 인용했던 기사는 김태경 감독의 인터뷰 중이었답니다.

    어쨌거나, 건필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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