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렌스 맬릭 | 황무지 Badlands

Badlands

서부시대 같다

테렌스 맬릭의 데뷔작으로 오랫동안 ‘황무지’라는 제목으로 소개돼온 이 영화는 원래대로 하면 그냥 <배드랜즈>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것같다. 주인공들이 도달하게 된 그 황무지, 그리고 이 영화의 제목인 그 황무지는 그냥 황무지가 아니라 미국 사우스다코타 주에 있는 Badlands라는 이름을 가진 지명, 즉 고유명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오랫동안 <배드랜즈>(혹은 <배들랜즈>)가 아닌 <황무지>로 불러온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이 영화에 ‘황무지’라는 제목이 더없이 잘 어울리기 때문에 일부러 그러했을 것이다.

영화는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건, 즉 제임스 딘 흉내내기를 좋아하던 19살의 소년 찰리 스탁웨더(Charlie Starkweather)가 14살의 소녀 카릴 앤 푸게이트(Caril Ann Fugate)와 함께 도주하며 저지른 연쇄살인 행각을 기반으로 한다. 물론 영화에서는 25살의 청년 키트(마틴 쉰)과 16살의 소녀 홀리(시시 스페이섹)의 이야기로 각색이 됐지만. 하지만 이 영화의 장르는 스릴러도 호러영화도 아니고, 굳이 붙이자면 ‘멜로 드라마’다. <씬레드라인>이 그냥 전쟁영화가 아니라 전쟁에 관한 드라마-시였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황무지>가 어떤 영화일지 대충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제임스 딘과 닮은 키트와 16살의 소녀 홀리는 사랑에 빠지고, 키트는 홀리를 만나지 못하게 하는 홀리의 아머지를 죽이고 홀리와 도피여행을 떠난다. 이미 현상수배가 내려진 이들 커플은 살인광이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가는 여정마다 사람을 죽이게 되는데, 테렌스 맬릭은 영화를, 그리고 이 커플을 매우 아름답게 그려내지만 이 살인을 굳이 미화하지도, 그렇다고 비장미를 잔뜩 섞은 동정과 변명의 드라마로 만들지도 않는다. 이들 커플은 말하자면 사회가 요구하는 룰과 시스템의 원리를 별로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처럼 천진난만하게 그려진다. 이들의 숲속 생활은 그래서 십대의 소년소녀들이 어드벤처 소설/영화를 읽고/보고 상상할 법한 야생에서의 캠핑생활처럼 그려지고, 이들의 도주 여정은 그저 짐을 싣고 친구들의 집을 차례로 들르며 대륙을 횡단하는 자동차 여행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처럼 그려진다. (영화 속에서 실제로는 몬타나 주를 횡단한 정도지만.) 물론 문제는 이들이 아는 친구가 그리 많지 않았고, 살인 및 방화(그리고 키트에게는 ‘유괴’의 죄까지)의 범인으로 도주중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들을 맞은 친구들은 당연히 신고를 시도할 수밖에 없고, 이들은 친구들을 죽였으며, 그 외에는 모르는 사람들 집에서 강제로 필수품들을 강탈할 수밖에 없었다.

Badlands

도주 중인 키트와 홀리

아마도 이 영화에서 그리고 있는 천진난만한 키트와 홀리의 모습이, 60년대를 맞은 젊은층의 일반적인 정서였을 것이다. 부모는 부유하지만 자신은 그렇지 않고, 부모가 제공해준 풍요 속에서 자랐지만 정작 자신은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채, 당대의 또래들이 모두 낭만적이라 여겼거나 옳다고 여긴 일들이 기성세대에 의해 ‘범죄’로 지목되었고, 이 과정에서 이들은 정말로 범죄를 저지르거나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도 범죄자가, 심지어는 반체제의 철없는 청년들이 되었고, 미국은 더이상 기회와 풍요와 자유와 평등의 땅이 아니며, 아메리칸 드림은 거짓말이거나 최소한 과거엔 존재했더라도 이제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껴졌을 테니까. 자신들이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 –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행동들이 사회에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 자각하지 못하는 이들의 모습은, 마지막에 붙잡히고 나서도 ‘유쾌하게’ 담배를 권하고 필수품을 나눠주는 키트의 모습이나, 진술만 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는 홀리의 모습에서 드러난다.

이들이 여행의 끝을 맺는 곳, 정확히 말하면 홀리가 도주를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홀리를 잃었다고 생각한 키트가 자포자기하는 곳은 끝없이 펼쳐진 바위투성이의 황량한 모래의 땅, 배드랜즈(황무지)이다. 이건 마치, 6, 70년대에 들고일어났던 청년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한꺼번에 말하고 있는 듯 보인다. 꿈을 잃고 기성세대가 만든 시스템에 결국 죄인이라 낙인 찍힐테지만, 체포당한 그 순간까지도 유쾌함을 잃지 않는. 사실 그 유쾌함이란 희망의 표현이 아니라, 오히려 절망적인 상황에서의 현실을 인식하지 않(으려 하)는 도피의 정서로 보인다.

Badlands

마침내 (스스로) 항복하는 키트

하지만 이 영화가 정말로 은유하는 것이 미국 서부 개척의 역사인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자동차 여행이란 거 자체가 매우 미국적인 방식이기도 하고, 순전하고 천진난만하지만 자신의 생존을 위해 별 죄책감없이 사람들을 죽이며 주 내의 곳곳을 밟는 그들의 여정은,  황량한 서부에서 총으로 무장한 채 원주민들(일명 ‘인디언’)과 소위 ‘악당들’을 죽이고 또 죽이며 약탈을 하면서 자신들의 반경을 넓히고 역사를 만들었던 백인 서부인들의 역사와 상당히 비슷한 이미지를 공유한다. 숲에서 시작해 결국 황량한 배드랜즈에서 끝나는 여정 중 보이는 풍경들은 더욱. 이곳은 동부에 모여살던 이들이 서부로 나아가는 관문이 되는 곳이 아니었던가.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연쇄살인범 커플(비록 그 중 하나는 인질인지 공범인지 불확실했다고는 해도. 이는 ‘소녀’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갈린다. 이에 대한 논의는 밑에서.)을 순전하고 천진난만한 커플로 그리며 미국 서부 개척 시대의 이미지를 겹쳐놓음으로써, 테렌스 맬릭은 그 특유의 시적인 아름다움은 물론 그들에 대한 섣부른 비난도 섣부른 미화도 차단한다. 나야 미국과 정반대편에 사는 사람이지만, 아마도 미국의 관객들은 이 둘을 보며 기분이 굉장히 착잡하지 않았을까.

소년과 소녀에 대한 해석은 위에서 이미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들’로 그려냈다고 말한 바 있지만, 특히 ‘소녀’에 대한 해석은 짚고 넘어가야 할 재미있는 이슈다. 소녀를 인질로 여기는가 공범으로 여기는가는 물론 그녀의 ‘나이’ 때문에 더욱 커진 논쟁일 테지만, 기본적으로 소녀를 사악함이 온몸을 휘감고 멀쩡한 남자마저 타락시키는 악녀로 보느냐 아무것도 모르는 마냥 순진하고 바보같은 존재로 보느냐에 따라 갈린다고 할 수 있다. 전자는 그녀를 충실한 공범으로 보며 후자는 순전한 인질로 보기 쉽다. (지나치게 논의를 단순화시킨 감이 있긴 하지만,) 예컨대, 이브에게 ‘지적이고 모험심 많은’이라는 이미지가 덧붙여진 건 20세기에 들어선 뒤 페미니스트들의 적극적인 재해석 덕분이었으며 중세와 심지어 근대까지만 해도 이브는 ‘멀쩡한 남자를 타락시킨 악녀’였다. <야성녀 아이비>나 <아메리칸 뷰티>에서 반복되는, 중년의 남성을 유혹하는 소녀는 이런 영화들에서만 특별하게 등장한 캐릭터가 아니라 매우 전통적인 캐릭터이다. 한편 인질로 보는 시선에는 단순히 스톡홀름 증후군에 있는 인질이라는 상황 외에도 아무것도 자신의 선택에 따라 할 수 없는 연약하고 무기력한 존재로 보는 시선이 녹아있다. 아무래도 테렌스 맬릭의 해석은 후자인 듯하며, 과연 시시 스페이섹의 가녀린 외모와 연기는 이러한 가녀리고 연약한 소녀를 그리는 데에 매우 효과적이다. (<캐리>에서도 그렇지만 시시 스페이섹은 이런 캐릭터의 연기에 천부적인 듯.) 그러나 테렌스 맬릭의 시선이 여성차별적이라 하기 어려운 것은, 그가 키트를 그리는 방식에도 역시 그런 태도를 일부 내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관객들이 일반적으로 가질 법한, ‘소녀’라는 존재에 대한 에 이러한 극과 극의 두 개의 기준을 매우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듯하다.

Badlands

마침내 연행되는 소년과 소녀

어쨌거나 영화는 이들이 맞는 종말은 결국 비극이지만 이들의 태도는 결코 비장하지 않으며 감독의 카메라 역시 그렇다. “키트, 넌 정말 이상한 녀석(괴짜)이야”라는 대사가 두 번 반복되면서, 영화는 60년대의 아이들을 바라보는 기성 세대 혹은 주류 시스템의 관점을 보여주는 듯도, 자신들의 역사에 대한 어정쩡하고 씁쓸한 평가를 내리는 듯도 하다. 죽는 자나 죽이는 자나, 완전한 악인과 완전한 희생자는 어디에도 없다. 이들은 강도이기도 살인자이기도 노동자이기도, 헤드라이트 불빛을 켜놓고 냇 킹 콜의 노래에 맞춰 아름다운 달빛 아래에서의 춤을 선보이는 사랑에 빠진 커플이기도 하다. ‘구체적인 인간’이란 언제나 그러하지 않는가.

Badlands

실제 Badlands(배드랜즈)의 모습

ps. 이 영화 역시 서울아트시네마의 ‘아메리칸 뉴 시네마 특별전’에서 상영되었습니다.

ps2. 영화 시작되면서 나오는 테마 음악에 놀란 것은, 예전에 즐겨듣던 조일수의 영화음악(정은임 직전에 하던 사람)인지 이선영의 영화음악인지에서 로고송으로 자주 들었던 곡이라서. 냇킹콜의 곡도 멋지지만 이 테마음악, 정말 반갑고 좋았다는.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3 Comments

  1. 이 영화를 멜릭의 ‘아주 뒤늦은 웨스턴’ 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사실 이 영화의 구도는 웨스턴의 그것을 그대로 가져온 부분이 많습니다. 숲속에서의 전투는 갑자기 월남전의 기억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말이죠.

    여하튼, 웨스턴의 영웅들, 총잡이들은 결국 얼마나 많이 죽였는가로 그 서열이 정해지는 ‘serial killer’ 들이 아니었나요. 그렇게 만들어진 미국 건국 초기의 역사는, 살인자들의 역사이기도 하다고 생각됩니다. 지나치게 앞서나간 면이 없지않아 있지만, 여하튼, 그 궤적을 키트가 고스란히 따르는 것은 (말이 이상하지만) 하나도 이상하지가 않지요.

  2. 네, 키트의 행동들은 모두 서부 개척의 역사에서 미국의 민담, 전설들, 그리고 이것들을 자주 소재로 가져오는 영화들이 영웅으로 떠받드는 총잡이들을 닮았지요. 키트 역시 그들 같은 영웅이 되고 싶어하는 듯하고요. 아마도 미국 관객들은 키트의 모습에서 그런 서부의 총잡이 영웅들을 당연하게 떠올렸을 것 같습니다. 그러한 키트의 외모가 제임스 딘을 닮았다는 건 또한 한편으로 비극일 테고요. 제임스 딘은 고뇌하는 젊음의 상징이니까요. 마치, “아버지들은 하면 영웅이 됐는데 왜 우리는 똑같이 하면 죄인이 되지?”라고 묻고 있는 듯합니다. 아마도 그것이 역설적으로 미국의 서부 개척의 역사에 도덕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되겠지요.

    근데 제가 웨스턴 영화들은 본 게 거의 없어서, 맬릭이 그 장르문법을 가져왔는지, 그러면서 어느 정도나 비틀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느림보님의 찬찬한 설명 기대하겠습니다. ^^

  3. 이 영화에서 나오는 몇 가지 흥미로운 대목이 있습니다. 왜 키트는 사람을 뒤에서 쏘고 나서 자책을 했을까요? 또 왜 홀리는 키트와 함께 있는 동안 ‘나의 남편은 어디 있을까? 우연히 그를 만나면 그는 나를 알아볼까?’ 하고 생각했을까요? 이런 생각들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에 대한 답변이 이 영화를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열쇠가 되지 않을까요? 이상, 지나가던 제임스 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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