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 예이츠 |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Harry Potter and the Order of the Phoenix

용케 해리를 애처럼 찍은 사진.


해리 포타 시리즈는 책으로 한번도 보지 않았고, 영화로는 <마법사의 돌>을 빼고 모두 극장에서 보았다. 도대체, 나의 켄이 허풍선이 사기꾼 마법사로 등장하는데 뭔 생각을 하고 안 갔는지 모르겠지만, 하여간에 나중에 비디오로 보면서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아무리 켄에게 반한 계기가 <햄릿>에서 역동적이고 에너제틱한 방황과 불안으로 광폭하게 헤매는 모습이었다곤 해도, 결국 가장 좋아하게 된 켄의 모습은 <헛소동>에서 엠마 톰슨과 만담을 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허풍선이 사기꾼 질데로이를 연기했을 때는, 자신이 직접 연출한 영화가 아닌데도 켄이 빛났던 아주 드문 경우였다.


하여간에, 원작을 한 권도 읽지 않은 상태임에도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를 좋아한다. 감독에 따라 개성이 조금씩 달라지는 걸 보는 것도 재밌고, 아이들이 쑥쑥 커가는 걸 보는 것도 즐겁고, 시리즈마다 새로이 합류하는 (그리고 사라지는) 젊거나 어린 (그리고 무지막지하게 아름다운!) 신인들을 발견하는 것도 기쁘고, 그에 반해 볼 때마다 여전한 대배우들을 보는 것도 즐겁다. 정말이지 <해리 포터> 시리즈는 영국에서 연기 좀 한다 하는 배우들은 모조리 모아놓은 시리즈다. 저 위의 켄도 그렇지만 데이빗 튤리스도 엠마 톰슨도 랄프 피네스도 앨런 릭먼도 브렌단 글리슨도 줄리 월터스도, 매기 스미스도 돌아가신 리처드 해리스(이전 덤블도어 교수)도 마이클 갬본(지금의 덤블도어 교수)도, 워낙 헐리웃에서 활동을 많이 하지만 엄연히 영국 출신인 게리 올드먼도, 또 이번 <불사조 기사단>에서 악당 엄브릿지 교수 역을 맡은 이멜다 스턴튼도 그렇다. <센스, 센서빌리티>에서 주책맞고 수다스러운 아줌마로 보며 이름을 기억해 두었던 이 배우가 <불사조 기사단>에서 온통 핑크빛에 생글생글 웃으며 우아한 말투로 아이들을 고문하고 얄밉게 구는데 정말이지 엄지손가락을 번쩍 치켜들 수밖에.


Harry Potter and the Order of the Phoenix

최고 악당 리스트 상위에 랭크되지 않을까나;;

<불사조 기사단>은 이멜다 스턴튼이라는 배우의 연기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매우 즐겁다. 거기에 한층 강화된 비주얼 효과들은 눈이 탁 튀어나올 정도다. 예컨대 볼드모트와 덤블도어 교수님의 마법 대결 씬이랄지, 예언의 방에서 모든 예언구슬이 떨어지는 장면이랄지, 또한 시리우스 블랙이 이끄는 불사조 기사단의 멤버들과 말포이네 아빠 및 그의 수하들이 벌이는 대결씬도 그렇고, 1편에서만 해도 특히 쿼디치 장면을 보며 역시 어색하다고 느꼈던 CG가 시리즈 다섯번째인 이 영화에 오면 더없이 화려하게 빛난다. ‘영국 사립학교’ 하면 떠올리게 되는 전형적인 분위기들, 즉 ‘엄격하고 고지식한 규율’이 이 영화에서 억압의 구체적인 예로 쓰인다거나, 우리의 유쾌한 위즐리네 쌍둥이가 불꽃놀이 마법으로 소란을 일으키며 그 모든 규율액자를 깨부시는 장면에선 “아아, 혁명이다!”라며 즐거워 했지. 볼드모트와의 싸움을 겪고 난 해리가 고독을 느끼며 친구들에게 까칠하게 대하지만 결국 우정만큼 소중한 게 없음을 깨닫고 수줍게 ‘앉아도 돼?’라고 말하는 것도, 헤르미온느가 언제나 해리를 주시하다가 적절한 도움을 주고 혹은 위태로운 상황에서 기지를 발휘하는 것도 참 좋았다. 영화의 시작 부분과 뒷부분에서 나오는 ‘런던 상공 비행하기’ 장면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멋졌고 그 와중에 보인 템즈강 근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황홀했으며,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마법부의 내부도 근사했다.


Harry Potter and the Order of the Phoenix

녀석, 정말 부쩍 컸구나. 시리우스 블랙님 멋지셔요 >.<


전반적으로 드라마도 잘 짜여져 있고 볼거리도 풍부하고, 배우들의 연기도 <불의 잔>에서처럼 막 나가지 않은 채 잘 조율돼 있지만, 물론 섭섭하고 아쉬운 점도 많다. 무엇보다도 데이빗 예이츠 감독은,



왜 우리 론을 그렇게 미워하는 거야!!!

예전에 론과 헤르미온느에게 적절하게 분배되었던, 해리를 걱정하고 도와주는 역할은 이번 시리즈에서 오로지 헤르미온느에게 집중되었고 론은 그 존재감을 거의 박탈당했다. 고작해야 “여자애들은 어떻게 그런 걸 한꺼번에 다 생각해?”라던가, 많이 먹는다는 타박에 “배가 고프단 말야!”라고 대꾸하는 게 다다. 덤블도어의 군대를 결성하고 아이들에게 연설을 하는 것도 어쩜 헤르미온느가 다 해먹고 론은 한 마디 벙긋도 못 한다. ‘론다운 엉터리 실수’를 하는 장면도 없다. 고작 헤르미온느와 마법 대련을 하다가 지고는 일부러 져줬다고 하는 정도, 그리고 헤르미온느가 규칙을 깬다며 즐거워하자 “너 헤르미온느 맞아?”라는, 이전 편에서도 나왔던 대사를 반복하는 정도인데, 이 장면은 둘 다 론을 위한 장면이 아니라 헤르미온느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면이다. 심지어 실수와 바보짓을 통해서라도 론이 화면을 차지하는 일은 거의 없다는 얘기다. ‘계속 실수하다가 결정적인 샷을 성공시키는’ 론의 특기는 심지어 네빌한테 배정돼 버렸다. 론은 정말 아무것도 하는 게 없다 ㅠ.ㅠ 원래 이 시리즈는 감독이 누구든, 주인공인 해리를 통해 중심 이야기가 흘러가긴 해도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 삼총사가 각각 자기만의 장점을 통해 나름의 활약을 펼치는 데에 균형을 잘 맞춰왔지만, <불사조 기사단>에서 그 균형이 깨져버렸다. 심지어 시리즈를 통해 차근차근 깔렸고 <불의 잔>에서 본격화된 헤르미온느와 론 사이의 러브 전선도 완전히 생략되어 있다. 론 역의 루퍼트 그린트가 연기가 딸린다면 또 몰라, 사실 삼총사 중에서 가장 연기를 인정받는 건 루퍼트 그린트가 아니었던가.


Harry Potter and the Order of the Phoenix

녀석아, 어쩌다 감독님한테 밉보인 거냐 ㅠ.ㅠ


그 엄청난 대배우들을 그런 식으로 써먹은 것도 사실 좀 불편하다. 물론 선생님 모두를 세세히 다룰 순 없겠지만, 루피 교수(데이빗 튤리스)나 트릴로니 교수(엠마 톰슨), 맥고나걸 교수(매기 스미스)도 무디 교수(브렌단 글리슨)를 그런 식으로 슬쩍 낭비하거나 기능적으로만 사용하는 건… 그나마 스네이프 교수(앨런 릭먼)는 조금 낫지만, 이 시리즈에서 스네이프 교수는 이전 시리즈에서 반복했던, 해리를 위협하고 미워하지만 도와주는 그런 ‘악당 같은 우리 편’의 아주 매력적인 면모가 잘 안 드러난다. (오히려 새로운 장면들이, 다음 편을 위해 깔아두는 ‘기능적’인 목적으로 나오긴 하지만.)


Harry Potter and the Order of the Phoenix

가운데에 트릴로니 교수님과 맥고나걸 교수님, 반갑긴 했지만요...


그럼에도, <불사조 기사단>에서 새로 합류한 배우들은 꽤 만족. 헬리나 본햄-카터가 연기한 베아트릭스 레스트랜지도 좋았지만, 특히 이바나 린치의 루나 러브굿은 아주아주 좋다. 공허하고 텅빈 얼굴과 눈으로 대사를 읊는 루나는 호그와트 학교의 외롭지만 꿋꿋이 자기 길 가는 괴짜의 모습을 아주 잘 표현한다. 사실 나는 이 데이빗 예이츠 감독을 좀 의심하고 있는데, 이 감독이 여자 아이들의 장면들은 아주 기가 막히게 잡는데 남자 아이들한텐 거의 관심을 안 둔다. 예컨대 루나 러브굿도 좋았고 헤르미온느도 활약이 대단하며 심지어 지니 위즐리도 아주 예쁘게 잡는데(물론 다음 편에서 해리와 연결된다니까, 이번 편에서 카메라를 좀더 줘야겠지만), 론도 그렇고 다른 남자아이들한테는 어째… 말포이는 딱 한 번 나오고, 네빌도 겨우 구색맞추려고 끼워넣은 듯한 느낌이다. 해리야 주인공이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


Harry Potter and the Order of the Phoenix

아주 매력적이고 신비로운 아가씨, 앞으로 더욱 기대하겠어용.


영국에서 주로 단편영화와 TV 시리즈에서 활약했던 데이빗 예이츠 감독은 이번 <불사조 기사단>뿐 아니라 다음 <혼혈왕자> 편도 연출하게 된다. 드라마 다루고 화면 만지는 솜씨가 괜찮으니 한편으로는 다행이지만, 지나치게 론을 홀대했던 이번 편 때문에 걱정이 살짝 된다. 다음 편에서도 그러면 어떡하지. 론과 헤르미온느 사이의 러브전선은 어떻게 될까.

ps. 위에서도 잠깐 언급한 ‘런던 상공 비행하기’ 장면과 런던 거리에서의 장면을 보면서, 이 시리즈가 드디어 ‘세계적인 시리즈’임을 자각한 듯 보인다고 잠깐 생각했다. 그럴수록 관광을 위한 장면이 들어가야 할텐데. 런던 튜브 장면과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전경은 확실히 관광 유치용이다.


ps2. 시리우스 블랙 죽는 장면에서 너무 슬펐다. 엉엉, 해리가 간신히 찾은 두번째 아버지인데 ㅠ.ㅠ 게다가 난 게리 올드먼의 시리우스 블랙 모습이 너무 좋단 말이야! 게리 올드먼이 그렇게 섹시짱으로 나온 영화는 정말 간만이란 말이야!!


ps3. 전반적으로 삼총사들을 ‘어리게’ 잡으려고 굉장히 노력했고 그게 론과 헤르미온느에선 꽤 통했는데, 아무래도 주인공인 해리는… 너무나 장성한 청년이더라는. 영화 오프닝에서 놀이터 그네에 앉아있는 폼이 심하게 어색하더라고. 정말 아이들은 빨리 크는구나. 너무나 평범했던 초챙과 무슨 번개불에 콩 볶아먹듯 이뤄진 키스씬도 이건 애들 키스가 아니라 완전… ;;;;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13 Comments

  1. 원작에서는 이 에피소드에서 론이 무려 퀴디치 팀에 입단해 팀을 우승으로 이끈다는 얘길 듣고 지금 피를 토하며 절규하는 중입니다. ㅠ.ㅠ 론… 대체 어쩌다가! 어쩌다가!! 흑흑

  2. 저도 론이 좋아서 영화관에 가려고 했는데, 이거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건가요 ^^;

    • 도대체 어쩌다 이번 편에서 론이 이토록이나 비중이 작아졌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 리 포터> 시리즈는 극장에서 미루면 나중에 꼭 후회하게 되더라고요. 어쨌건 아직은 영화로 만들어져야 할 게 2개나 남아있으니까요.

      사실 영화 첫머리에서 불사조 기사단의 본부에 들어서는 해리와 기다리고 있던 헤르미온느 + 론이 마주치자마자 헤르미온느가 달려와 해리를 덥썩 안는 것에서부터 불안감을 느끼긴 했는데 역시;;; 영화 내내 론은 어정쩡합니다. 그러나 헤르미온느와 해리 옆에서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 녀석, 정말 이쁘게 커가고 있습니다. (큰화면! 큰화면!)

  3. 안녕하세요~ 해리포터 검색중에 들렀습니다 영화 좋아하시는분 같네요
    이번 작품은 기대가 크진 않았다만 은근히 실망스럽더군요
    내용 얘기하면 끝도 없을꺼 같고 대신에 트랙백 쏘구 갑니다 ^^

    • 피구님 블로그를 전에 몇 번 가서 본 적이 있습니다;;; 찾아주셔서 감사드려요.

  4. 아 정말요? 오셨으면 흔적이라도 남겨주시지..
    제가 한줄을 남기더라도 꼭 찾아가서 답방 하거든요 ㅎㅎ

    리뷰 정말 많이 적으셨네요 천천히 둘러봐야 할듯
    우선 님 홈피 링크걸었습니다 ^^

    근데 이상하게 트랙백이 안쏴져요 왜이러지 ㅡㅡ;

    • 제가 좀 소심해서요;;; 괜히 멋적기도 하고, 해서 그냥 조용히 눈팅 구경을 다니는 일이 많습니다. 앞으론 종종 리플 남길게요.
      근데 다른 트랙백들은 잘 들어오는데, 이상하네요. ^^;;

  5. Pingback: 박장(호)빵맨
  6. 맞아요. 내 론!!!!ㅜㅜㅜ
    저도 원작은 5권부터 안 봤지만, 그래도 이것저것 스포 얻어듣고 론 관련 씬들 꽤 기대했단 말입니다. 근데 싹 다 빼버리다니! 다음 편에서 헤르미온느와의 애정전선이 대충 다뤄지면 화낼 겁니다. 걔네 귀엽잖아요! 사실 전 해리는 누굴 사귀든 아무 관심도 안생기..
    이멜다 스턴튼 정말 멋있;었어요. 그 분홍색조의 의상들도 너무 예뻐서 갖고 싶을 정도더라고요(감히 입지는 못하겠지만).루나 러브굿도 너무 예뻤고요. 원작에서도 굉장히 인기가 많은 캐릭터인 거 같은데, 정말 매력적인 여자애였어요.

    • “해리가 누굴 사귀든 아무 관심도 안 생기…”는 건 저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상대가 론의 동생 지나라면 얘기가 달라지지요.;;

      아 정말 론이 어쩌다 이렇게 비중이 팍삭 작아졌는지. 혹시 다음편에서 론을 팍 키워주기 위해서였을까요? 감독이 같은 사람이라 영 불안합니다.;;; 아무래도 여자애들만 예쁘게 잡아준다는 의심이 사라지질 않아요. 헤르미온느나 루나는 물론이고 하다못해 대사 한 마디 없는 인도 출신의 쌍둥이마저도 예쁘게 화면 중앙에 잡던걸요, ㅠ.ㅠ

  7. 흐흐흐… 오늘 ‘불의 잔’ DVD를 다시 봤는데… 부록 영상을 보면서 이 포스트 생각이 났어요. ^^;; 4편 ‘불의 잔’ 촬영 이후 인터뷰에서 루퍼트(론)에게 차기작에서 어떤 장면이 가장 기대되느냐는 질문에 론이 퀴디치하는 장면이 있어서 아주 기대하고 있다고 대답하더군요. (….) 론 지못미 지못미 ;ㅁ;

    • 흐… 저 오래 전 글을 기억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래도 이번 편에서 론과 헤르미온느의 러브라인이 완성될 듯한데요. 실은 내일… 아니지 오늘 혼혈왕자의 언론시사인데, 잔뜩 기대하고 있다가 갑자기 잡힌 다른 약속 때문에 못 가게 됐습니다. 속이 무지 쓰려요 -_-;;

    • 하하.. 저런. 저로서는 부러움 반, 안타까움 반이군요;;

      그러고보니 론은 배우 인터뷰 영상에도 거의 안 나오더군요. (뭐 한 게 있어야 나오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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