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마르 베르히만 감독 타계

Ingmar Bergman

잉마르 베르히만 감독님이 가셨습니다. 이미 노환 때문에 오래 전에 은퇴를 하셨고, 향년 89세셨으니 살 만큼 사시고 가신 건데도 막상 가셨다는 소릴 들으니 충격이 좀 크네요.

잉마르 베르히만 감독은 특히 제가 좋아하던 감독이었습니다. 혹자들이 스노브로 생각하지 모른다며 겁이 나도 베르히만은 도저히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었어요. 국내에도 번역된 그의 자서전을 읽으며 그래 이 양반, 성격이 그렇게 꼬장꼬장한 이유가 있었구나!! 외치며 즐거워하곤 했었는데. 또다른, 좀더 나이가 드신 후 쓰신 자서전에서 “전에 썼던 그거 다 거짓말, 쉣이야!”라고 하셨지만, 전 그런 종류의 사람들을 잘 알고 있어요. 제가 베르히만 감독을 그토록 좋아했던 것도, 그 건조하고 바삭거리며 까칠한 표피 안에 그 누구도 상상못했을 정도로 부드럽고 너무나도 연약하며 눈물로 촉촉한 내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상처를 가진 사람은 서로를 알아본다고 하지요. 무엇보다도, 평생 헤어날 수 없었던 기독교가 준 상처와 그 안에서 “신, 도대체 당신 어디 있는 거요?”라고 외치며 신을 부정하는 듯하지만 그럼에도, 누구보다 간절히 신의 존재를 찾아 헤매던 그의 영화들이 저를 울게 만든 가장 큰 이유입니다.


나다에서 혹은 어디에서 베르히만 특별전을 한다면 꼭꼭 가서 <산딸기>나 <제7의 봉인> 같은 건 다시 보곤 했는데, 아마 올해도 나다에서 베르히만 특별전을 준비하고 있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화니와 알렉산더>를 상영해주면 좋겠는데… [마법의 등]을 다시 읽어야겠습니다.


나와 동시대에 살아있었고, 내게 너무나 많은 걸 주고있던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묘합니다. 이전에 커트 보네거트 영감님이 가셨을 때도 그랬지만요. 나이들어 가신 분들은, 그게 당연한 건데도, 오히려 젊은 사람이 죽었을 때보다 더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요. 돌연한 사고사라는 게 제겐 차라리 설득력이 있다는 건, 스스로 생각해도 좀 이상하긴 하지만, 어쨌건 제겐 그렇습니다. 아마도 나와 같은 시공간을 점유하고 있었지만, 저 사람의 시대와 나의 시대는 잠시 공존한 적은 있을지언정 결국은 완전히 다른 세계라는 걸 깨닫게 해주기 때문일까요? 잠시 공존했다 해도 결국 한번도 그의 세계로 가지 못했다는, 혹은 그가 내 세계로 오지 못했다는 절망 때문일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잘 알고 있다고,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어떤 세계가 사실은 한번도 내 것이었던 적이 없다는 생각을 일깨워주기 때문일까요. 기술이 좋아진 탓에 얼마든지 다시 돌려볼 그의 영화들은 영원히 남아있는데도, 전 그가 가면서 자신의 세계를 다시 다 회수하고 간 듯한 느낌입니다. 지금 남아있는 필름과 DVD들은 그저 껍데기처럼 느껴진달까.


어쨌든… 고이 가소서. 당신의 영화가 제겐 많은 치유를 주었답니다. 사랑합니다.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5 Comments

    • 맙소사.
      sang님 리플 보고 뉴스 검색했다가 지금 너무 놀라서 충격에 빠져있습니다. 벌써 < 름 저편에> 찍으실 때부터 거의 못 움직이신 채 빔 벤더스가 손발이 되어 찍었다지만 아아아… 그냥 눈물이…

  1. 올해는 양덕창, 베르히만, 안토니오니… 한꺼번에 너무 많이 가 버리네요 T.T

  2. 베르히만 감독님, 안토니오니 감독님….심지어 같은 날짜에 영면하셨더군요. 정말이지 천수를 누리고 가신 것일진데(특히 안토니오니 감독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거의 운신도 못할 정도로 불편한 몸이었으니 편안한 죽음이 축복일지도 모를텐데도;;), 그래도 많이 섭섭하고 아쉽습니다. 개인의 죽음으로도 안타깝지만 역사의 한 부분이고 별이고 상징이신 분들이 떠나시니 기분이 참 이상해져요;ㅇ;

  3. 정worry / 올해 가신 분들 중에 로버트 알트만 영감님도 계시죠… 한꺼번에 확확 가버시리는…

    북극찐빵 / 사실 안토니오니 가셨단 얘기 듣고 < 름 저편에> 찍을 때부터도 거동 불편하셨던 얘기가 떠오르긴 했는데, 그래도 참 아쉬워요. 이상하죠. 나이 들어서 그토록 오래 천수를 누리시고 생전에 다 업적 인정 받으시고 가셨으면 축하를 하고 기뻐야 하는데, 당연한 건데,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가 않아요. ㅠ.ㅠ 한 시대가 이렇게 저무는구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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