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맥카시 | 스테이션 에이전트

핀 역을 맡은 피터 딩클리지, 굉장히 낯익은 배우라 생각했는데 막상 Imdb.com을 디비질 해보니 필모그래피에 낯선 영화들만 있습니다. 결국 저 역시 이 사람을 그냥 ‘난쟁이 배우’로 봤던 것일까요. 신체상의 특성이 필요한 역에 언제나 조연으로 출연하다가 드디어 주연을 맡는구나! 라면서 축하하는 마음이었는데, 역시 편견이란 놈의 위력은 셉니다. 저 역시 어쩔 수 없는,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나름의 기득권을 가진 사람인 것이죠. 어쨌건 구정 때 서울의 하이퍼텍 나다에서 본 영화에 대한 감상을 이제야 씁니다.


이 영화와, 뒤이어 함께 본 <미 앤 유 앤 에브리원> 둘 다 선댄스 출신인 걸 알기에 딱 그만큼만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조금씩은, 제 기대 이상이었어요.


[#M_잠시 선댄스에 대한 곁다리 감상을 늘어놓자면,|원래 글로 돌아가기.| 

사실 전 그렇게 소소하고 아기자기하며 눈물 빼며 적당히 상업적인 영화들을 꽤 좋아하는 편입니다. 남들이 소위 ‘걸작’을 찾아볼 때, 저는 오히려 이런 영화들을 찾아보고, 이런 작은 영화들에 더 애정을 바쳤습니다. 이런 영화들은, 아직 스타가 되지 않은, 그러나 자신감과 열정이 충만하고 뜻밖의 호연 / 연출을 보여주는 배우와 감독이 자신의 욕심과 열정을 한껏 투영하기에 영화 자체는 삐그덕거려도 날것의 즐거움과 ‘발견’의 재미를 느끼게 해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선댄스에 몰려드는 영화는, 어느 정도 안정적인 연출력으로 실험보다는 ‘어서 상업영화 씬에서 간택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예비감독들의 출세욕망을 지탱하는 ‘너무나 안전한 선’이 지나치게 과시되곤 합니다. 선댄스는 이제 ‘성공으로 가는 가장 안전한 길목’이 되어버렸어요.


결국 이것은 ‘선댄스’의 타락입니다. 애초의 선댄스 정신으로 돌아가자며 만들어진 안티-선댄스 영화제가 슬램댄스에 레인댄스까지, 벌써 두 개나 운영되고 있는 상황이죠. 자신의 첫 영화를 선댄스에서 선을 보이는 감독들도, 그래서 별로 좋아보이진 않습니다. 너무나 노골적인 욕망이 순진할 정도로 전시가 되는데, 이 감독들은 보통 ‘겸손과 소박함’을 ‘나이브함’과 혼동하는 듯 보입니다. 시건방져 보여도 활기와 열정과 패기가 넘치는 감독들이 그리워질 지경입니다. 단단한 반골정신으로 무장한.

_M#]

졸지에 뉴저지의 낡은 역사에 가게 된 핀. 정신없고 산만한 사고뭉치 아줌마 올리비아와, 연일 시끄럽게 말 거는 조와 엮이게 됩니다. 핀은 난쟁이이고, 올리비아는 좀 정신 나간 아줌마고, 조는 이민 2세에 핫도그 파는 청년이죠. ‘성별과 연령과 장애와 상처를 넘어선 우정’이라고 혹자들은 나이브하게 말하겠지만, 그들이 친구가 되는 건, 아니 딱 그들로만 친구가 될 수밖에 없는 건 그들이 난쟁이이고 아들을 잃은 후 정신이 나가버린 아줌마이며 배운 것 없고 할 줄 아는 거 별로 없는 이민2세대이기 때문입니다. 즉, 다들 약점이 있고 주류 사회에 결코 낄 수 없는 ‘헛점투성이’ 인간이기 때문이죠. 다른 사람들과, 소위 자신을 정상이라 생각하는 사람들과는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뭐, 이런 설정과 줄거리, 그리하여 이들이 마침내 마음을 열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아름다운 우정을 갖게 된다는 영화는 세상에 넘쳐나고 흔합니다. 하지만 역시나 이 영화가 제 기대 이상이었고 어필을 했던 건 배우들의 호연 탓이겠죠. 감독이 차분히 연출을 쌓아가는 솜씨도 꽤 안정적이고요.


핀과 올리비아가 서로 상처를 뱉어내며 결국 오열하는 장면에서 같이 울고 말았습니다. 역시나, 그들은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는 데에 익숙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저 어떨 땐, 어떻게 할 바를 몰라서 결국 자신을 걱정해주는 이를 할퀴어대고, 결국 그 앞에 허물어져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는 거죠. 소소한 하나 하나에 상처받기 쉬운 사람들은 오히려 강력한 방어기제를 갖고 더욱 무뚝뚝하게 굽니다. 핀의 도피처는 기차였고, 올리비아의 도피처는 그림이었지요. 남의 친절은 부담스럽고 거추장스럽고 귀찮기만 합니다. 때론 나의 친절은, 다른 이에게 별로 주목받고 싶지 않다는 일종의 가면의 제스처이기도 해요. 남 앞에서 적당히 빵긋빵긋 웃으면, 상대는 더이상 나를 귀찮게 하지 않습니다. 헌데 우리의 주인공들은 그 기술마저도 별로 신통치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상처는 있고 때로 그 상처는 한 잔의 술이나 한 개피의 담배로 겨우 폭발 직전 상태로 진정시키며 삶을 영위해 나갑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그 상처들이 ‘낫지는’ 않아요. 다만 우리는, 누구나 그런 상처를 하나쯤은 가슴 깊이 숨겨둔 채, 그저 혼자 있을 때 혼자서만 분출하다가, 다른 이에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생긋 웃을 뿐입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사실, 상처에 익숙해지는 게 아니라 상처를 가리는 기술이 늘고 방어기제의 기술이 세련되지는 것에 불과한 건지도 모릅니다. 세상에 저 혼자 아프고 저 혼자만 힘들다고 생각하는 철딱써니들이 넘쳐나는 것도 같은 이유인지도 몰라요. 남들의 웃음 속에서 아픔을, 상처를, 절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저 웃는 얼굴 뒤에 나보다 더 큰 상처를 꾹꾹 억누르고 있으려니, 라는 상상은 절대로 해보지 못하는 사람들.


약해빠지고 아무 대책 없고, 이를 악물고 그저 ‘오늘 하루’ 잘 버티는 게 오늘의 희망사항인 사람이 단지 남에게 폐끼치고 싶진 않다는 이유에서 상처를 숨기면, 상처가 없는 줄 알고 상처를 하나둘, 셋, 계속 안겨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이 뻔뻔한 인간들은, ‘당신은 강하니까 잘 버텨낼 거예요’ 같은 말을 덧붙이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위로를 한답시고, 실은 내가 주는 상처 버텨내라고 강요의 주문을 하고 있는 셈이죠. 상대가 얼마나 아플지는 피상적으로밖에 생각하지 못합니다. 자기가 그만큼 아파봐야 알까요? 아니요, 자기가 그만큼 아프면, 이 바보들은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아픈 줄 알고 날뜁니다.


어찌됐건 이들은 그럭저럭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친구가 됩니다. 석양을 바라보며 맥주를 나눠마시는 모습은 진부한 클리셰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핀과 올리비아와 조에게 각자 서로 친구가 생긴 건 정말 다행한 일입니다.

ps. … 저는 별로 강한 사람이 아닌데, 어째서 제 주변, 특히 저를 사랑하거나, 한때 저를 사랑했다고 하는 이들은 제가 이렇게 약하고 극도로 상처받기 쉬운, 대책없이 허약한 인간이라는 걸 모르는 / 모르는 척하는 것일까요. 왜 상처를 덤으로 두셋씩 안겨주는 것일까요. … 라는 역겨운 자기연민을 하다가 눈물을 터뜨린 거랍니다. 헐헐. 스스로도 깨닫지 못했는데, 묵은 상처가 꽤 뿌리가 깊었나봐요. 그리고 그 상처 주위엔 자기혐오가 역시 깊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