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 핀처 | 조디악 (프레시안무비 리뷰)

오늘(8월 23일) 프레시안무비에 올라간 리뷰. 며칠 전 썼던 사적인 감상문과 별 다를 바 없는 내용. 다만 공적인 글답게 조금 더 정제해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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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다단한 현실의 아픔을 고요히 응시하며 추모하는 데이빗 핀처의 시선
  [뷰포인트] 영화 <조디악> 리뷰
  2007-08-23 오후 3:04:55

1968
년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샌프란시스코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연쇄살인범 ‘조디악 킬러’의 이야기를 데이빗 핀처가 영화화한다고
했을 때,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사건이 실제 미결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데이빗 핀처 특유의 현란한 비주얼과 화려한 테크닉으로 무장한
제2의 <세븐>을 기대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막상 데이빗 핀처가 완성한 영화는 연쇄살인범과 형사 간의 숨막히는 대결을
그린 스릴러가 아니라, 조디악에 빠져들며 그의 뒤를 쫓았던 이들의 삶이 점차 파괴되고 황폐화되는 과정을 드린 심리 드라마이다.
2시간 40분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 동안, 데이빗 핀처는 한 편으로는 조디악이 자신의 소행이라 주장한 17건 중 4건(1969년
독립기념일의 사건부터 택시기사 살인까지)을 꼼꼼이 재현하는 한편, 이 사건에 뛰어든 인물들에게 카메라를 최대한 밀착시킨 채
그들이 점차 편집증적으로 집착하며 가정을 잃거나, 알콜중독이 되어 막장 인생으로 추락하고 결국 병을 얻거나, 오명을 뒤집어쓴 채
좌천된 후 무기력해진 모습을 따라간다.
 

조디악 ⓒ프레시안무비

 
영화가 중심에 둔 것은 조디악 사건이 샌프란시크코에 가져온 공포의 어둠이며, 새로운 단서를 발견하면 할수록 진실이 명확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현실의 복잡다단함이다. 조디악의 편지 필체는 물론 나중에야 조디악의 첫 살인으로 밝혀진
대학에서의 살인의 희생자 사진까지, 소소한 소품 하나까지도 실제와 똑같이 꼼꼼하게 준비했던 데이빗 핀처는 자신의 장기인 화려한
카메라 이동과 현란한 색감의 비주얼 대신, 한결 차분하고 오히려 톤다운된 화면으로 인물들을 따라가면서 컷을 자르고 붙이는 ‘보다
덜 보이는 곳’에서 자신의 역량을 한껏 발휘한다. 히피와 꽃의 도시이자 아름다운 햇살로 유명한 샌프란시스코는 영화 속에서
호숫가의 희생자들이 당하는 장면을 빼고는 단 한 번도 그 유명한 햇살을 보여주지 않으며, 거의 비가 오거나 우중충하게 흐린 하늘
아래에서 로버트 그레이스미스의 근심어린 얼굴을 잡는 카메라는 범인을 잡고야 말겠다며 기세등등한 추적자의 자만 대신 한 시대와
사람들의 상처를 가만히 응시한 채 연민과 안타까움을 담는다.
 

조디악 ⓒ프레시안무비

 
특기할 것은 이 영화가 사건과 관련된 이들이 결국 상처투성이 인생으로 고통받으며 파멸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면서도 그것을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강조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셋 중에서도 특히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탁월하게 연기하는 폴 에이버리 기자의 경우
가장 추락의 정도가 심하며 매우 극적인데도, 핀처는 그가 조디악의 표적이 되었다는 공포 때문에 결국 사회와 단절된 채
알콜증독자로 또 폐기종을 앓는 모습을 그저 한두 개의 컷으로만 제시할 뿐이다. 의도적으로 주인공들에게 감정이입을 막는 이러한
연출은 영화의 맨 마지막, 그러니까 사건을 새로이 인계받은 형사가 (여전히 사건수사를 포기하지 않은 채) 사건의 생존자를 찾아내
용의자를 확인받는 장면을 위한 것임에 분명하다. 평생을 정서불안으로 고통받으며 부랑자로 떠돌았음이 분명해 보이는 행색의 남자가
불안한 몸짓으로 직원에게 무언가를 묻는 생존자의 모습을, 카메라는 멀찍이서 오랫동안 잡고 있다. 마침내 그가 방에 들어오고
용의자들의 사진 중 앨런 리 스미스를 지목하며 몇 번이고 거듭 확인해주는 그의 모습은, 그의 앞에서 확실한지 몇 번이고 묻는
형사뿐 아니라 이를 ‘영화’라는 매체로 지켜보고 있는 관객들에게 묵직한 아픔을 준다.
 
  가장 극적인 추락을
겪은 폴 에이버리도, 모두가 좌절하며 결국 사건에서 손을 뗀 뒤에도 우직하게 단서들을 찾아 헤매던 로버트 그레이스미스도,
10년을 넘게 조디악의 뒤를 좇으며 사건을 수사했던 토스키 형사도 아닌, 생존자가 영화의 엔딩 장면을 가져가는 것은,
기능적으로는 로버트 그레이스미스의 추리가 맞았음을 확인해주는 적절한 엔딩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 그리고 진짜
주인은 사건의 뒤를 좇았던 이들이 아닌 사건의 희생자들과 생존자임을 선언하는 매우 윤리적인 엔딩이기도 하다. 아무렴, 범인을
잡고 싶었던 자의 안타까움과 죄책감이, 살인자에게 목숨을 잃거나 기적적으로 생물학적 생명은 구했지만 대신 사회적 생명을 영원히
박탈당한 이들의 고통을 능가할 수는 없는 법이다.
 

조디악 ⓒ프레시안무비

 
오늘날 인터넷에는 조디악 사건은 물론, 미국을 떠들썩하게 한 온갖 악명높은 연쇄살인 사건들이 일목요연하게 공개돼 있고, 우리는
이를 통해 영화 <조디악>에서 사용된 범행과 관련된 온갖 소품들이 얼마나 사실적으로 묘사된 것인지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살인의 추억>이 개봉했을 때 다시 한 번 그러했듯 많은 이들이 저마다 탐정을 자처하며 추리를 해대고
수사에 대한 논평을 가하며 마치 퍼즐놀이 대하듯 흥미와 호기심의 말들을 보탠다. 하지만 가장 악명높은 사건 중 하나였던 조디악
사건을 가장 선정적일 수도 있었던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다루면서 데이빗 핀처는 그 누구보다 엄숙하고 겸허한 추모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영화’라는 매체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존재 목적을, 데이빗 핀처는 그렇게 구현하고 있다.

   
 

  김숙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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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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