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바인더 | 레인 오버 미

Reign Over Me

스산한 뉴욕거리의 두 남자.

아름다운 미녀 환자들로부터 심심찮게 작업 대상이 되는 치과의사 앨런 존슨(돈 치들)은 길거리에서 우연히 대학 동기 찰리 파인먼(애덤 샌들러)을 본 뒤 그를 따라나선다. 소위 ‘정상적인’ 성인의 삶이 아닌, 게임과 취미생활에만 몰두하고, 사람들과 제대로 대화하지 못하며, 툭하면 부엌을 뜯어고치고, 장인 장모 내외를 피하고, 집안에만 은둔하며 사회성을 모두 잃어버린 채 마치 자폐아처럼 행동하는 찰리의 모습은 과거 그가 치대를 멀쩡하게 졸업한 치과의사였다는 사실을 의심하게 만들며, 이런 찰리를 ‘대학시절 룸메이트였으나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던’ 앨런이 심지어 아내에게 그에 대한 동정과 관심을 유도하며 갑자기 살뜰하게 챙기고 참견하는 것 역시 지나치게 오지랖이 넓다 싶을 정도로 부자연스럽다. 영화는 그렇게 개연성이 없고 앞뒤 아귀가 안 맞다 싶게 흘러간다. 그런데 찰리가 9.11 사건의 피해 유가족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 영화 전반부의 당혹스러움과 개연성 부족은 충분히 ‘개연성 있는’ 일로 바뀐다.

9.11 사건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단 한 번도 외부 세력의 테러의 위협 따위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경찰국가에서 나고 자란 부유한 중산층 미국인들의 ‘아메리칸 드림’을 뿌리까지 박살내 버린 사건이었다. 그 사건으로 사랑하는 아내와 세 딸을 잃은 이 남자, 찰리의 충격과 슬픔은 단순히 가족을 잃었다는 상실감뿐만 아니라,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토대 자체를 믿을 수 없게 됐다는 아노미 상태에서 기인한다.

졸업 후 별다른 교류가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대학 시절의 친구와 그 아내마저 찰리에 대해 그토록 걱정을 하고 신경을 쓰고, 찰리의 집주인과 찰리의 회계를 담당하는 회계사, 찰리가 연주하러 가는 바에서 일하는 이들과 함께 연주하는 이들까지, 그리고 찰리의 상담을 맞게 된 정신상담의인 닥터 앤젤라 역시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찰리를 배려하며 걱정과 안쓰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것을 보며 우리는 미국인들이 9.11이라는 사건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이들 뿐만 아니라 찰리가 법정에 서게 되었을 때 재판정의 판사까지도, 그리고 앨런에게 추근댔던 도나마저도 찰리를 이해하고 나름의 방식대로 따뜻한 배려와 위로를 건네기 위해 애쓴다. 미국 사회 전체에 큰 충격을 끼친 사건이 바로 9.11인 만큼, 이 사건의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사회’ 차원에서 그리고 그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개인’ 차원에서 보호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사회 전체적인 암묵적인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은 영화 안 캐릭터들뿐 아니라, 이 영화에 참여한 사람들의 면면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비중이 떨어지는 도나나 닥터 앤젤라, 판사 와 같은 조연 역할에 섀프런 버로우즈, 리브 타일러, 도널드 써덜랜드 같은 배우들이 출연하고 있다. 심지어 2004년 <콜래트럴>에 출연한 이후 <마다가스카르>의 목소리 출연한 것을 빼면 영화일을 당분간 쉬고 있던 제이다 핀켓-스미스도 앨런의 부인 지나 역할로 함께 한다.

Reign Over Me

스스로를 단절시키는 데에 헤드폰만한 게 없다.

세계 최강의 경찰국가로서의 미국이 전세계에서 분쟁을 일으키고 그 분쟁의 해결사 노릇까지 자처하고 있는 사실을 미국 밖에서 보는 우리의 눈에는 극단적으로 표현되는 찰리의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과 그의 상처, 그리고 이를 보듬으려는 등장인물들의 노력이 살짝 비위 거슬리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찰리가 그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상처’를 토로하는 동안, 어떤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차마 전세계적인 영화로도 못 만들어지는 이라크의 아프가니스탄의 사람들이, 혹은 마이클 윈터보텀 감독이 <관타나모로 가는 길>에서 담았던 세 명의 파키스탄 계 영국 청년의 모습이 스치고 지나갈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가 저지르는 범죄와 그 국민은 별개이며, 미국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하여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이들이 당한 상처와 비극의 무게가 줄어드는 것은 아닐 것이다.

Reign Over Me

상담의 앞이 아닌, 병원 대기실, 자신에게 애정을 보여주는 친구 앞에서 고백을 시작하는 찰리.

미국민의 상처를 드러내는 이 영화가 미국의 보복전쟁을 지지하는 입장은 아니라는 사실은, 영화에서 찰리가 보던 TV 화면에서 잠깐 스쳐간 이라크 전쟁에 관한 뉴스 장면,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화의 엔딩 자막과 흐르는 영화의 주제가, “Love, Reign o’er Me”에서 확인된다. 이 영화의 제목을 제공해주기도 한 이 곡은 언제나 귀에 헤드폰을 꽂고 살며 밴드에서 드럼을 치기도 하는 찰리가 즐겨 듣는 곡 중 하나로 설정돼 있는 The Who의 명곡이지만, 영화에서 쓰인 버전은 오리지널 버전이 아닌 Pearl Jam의 리메이크 버전이다. 9.11 테러가 발생한 바로 그 날 밤 희생자 추모 공연 무대에 올라 <데드맨 워킹>에 삽입됐던 곡 ‘Long Road’를 연주했던 Pearl Jam은 9.11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공공연히 부시 반대, 이라크전 반대를 외치며 반전 집회에 참여하고 라이브 공연마다 부시 반대 퍼포먼스를 행하여 심지어 오래된 팬들로부터도 원성과 비난을 듣곤 했다. (얼마 전 롤라팔루자 공연에서는 연주 도중 “부시는 지구를 떠나라”는 가사를 즉흥적으로 불렀다가 공연의 스폰서인 AT&T로부터 검열을 당하기도 했다.) 미국 내의 모두가 아는 전쟁 반대, 부시 반대론자인 Pearl Jam 버전의 곡을 삽입하고 이 곡에서 영화제목을 따온 것 자체가, 이 영화가 희생자들의 아픔과 슬픔을 사회적 차원에서 추모하고 위로하되 이것이 보복전쟁을 합리화하는 근거로 쓰이지는 않기를 원하는 감독의 염원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Reign Over Me

두 남자의 소통. 찰리는 헤드폰을 벗었고, 앨런은 찰리의 게임을 하고 있다.

그렇기에 마음을 조금만 열고 이 영화를 본다면, 지나치게 신파적인 부분이 있기는 해도 이 영화가 전하는 ‘온몸으로 호소하는’ 고통과, 그 고통을 기꺼이 감싸안고 보듬으려는 노력에 감동받지 않을 수 없다. 주제가의 가사대로 “사랑만이 메마른 대지에 비를 가져올 수 있”으며, 결국 찰리의 가장 큰 상처 역시 아내와 세 아이들에게 충분히 사랑을 표현하지 못했다는 자책에서 기인하고, 그러한 찰리를 구원하는 것 역시 주변 사람들의 끝없는 애정과 사랑이다. 결국 사랑하는 사람들을 바로 지금 열심히 사랑해야 한다는, 진부하지만 여전히 감동적일 수밖에 없는 메시지가 찰리가 주는
교훈인 셈이다. 이를 표현하는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나다. 찰리를 보살피면서 스스로도 구원을 받고 아내에게 다시 사랑을 고백하는 앨런 역의 돈 치들의 연기도 좋지만, 스스로를 사회적으로 단절시키고 퇴행해버린 찰리 파인먼을 연기하는 애덤 샌들러의 연기는 위력적이다. 언제나 ‘철딱서니 없는, 몸만 큰 어린애’의 캐릭터를 탁월하게 연기했던 그는 이 영화에서 자신의 장기를 그대로 살리면서도 이를 ‘바닥 끝까지 간’ 절망과 상처로 탁월하게 전화시키고 있다. 코미디 배우이기도 한 감독 마이크 바인더는 이 영화에서 찰리의 회계사 역으로 영화에 가벼운 이완의 분위기를 제공해준다.

ps. 9월 6일 개봉 예정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2 Comments

  1. 국가가 저지른 범죄와 그 국민이 별개라는 말은 선뜻 동의하기 힘듭니다. 물론 그 뒤에 이어지는 문장에 대해서는 공감합니다만, 어쩐지 앞 문장은 1세계에 사는 사람이 3세계에 사는 사람들을 애써 외면하기 위한 면피용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네요.

    • 아무래도 제가 ‘국민’으로서 정체성이 약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개인이 ‘국가’와 동일시되는 것에 대해 대단히 경계를 하는 편입니다. 사실 한국인들 역시 개인들은, 한국이라는 국가가 외국 어딘가에서 어떤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지 잘 모르거나 관심없기 태반입니다. 국가가 저지른 범죄와 그 국민이 별개라는 말은, 국가의 범죄를 국민이라는 개인 하나하나가 책임질 수는 없다는 의미에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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