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워> 관련 단상 (1) – 한국 영화시장은 현재 100억짜리가 최대이다.

여기서 우리를 더 없이 난감하게 만드는 것은 갑자기 튀어나온 헐리우드 영화이다. 왜 한국영화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더 심하게 헐리우드 영화에 대한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는 것일까? 헐리우드 영화가 한국영화의 좌표점이 된 것은 영화는 최대의 이윤을 낳기 위해서 재미있어야 한다는 절대절명의 미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지만, 헐리우드 영화는 단순하게 규모의 문제로 국한되어버리고 이 규모의 문제는 다시 국력의 과시나 민족적 자존심으로 이어진다(자본의 집중과 비합리적인 민족주의의 결합!). 이 역설적인 담론의 진행은 영화는 그 나라의 고유한 문화다라며 스크린쿼터 사수를 외치는 주장과 영화는 돈벌이의 하나라며 헐리우드 영화를 맹목적으로 도용하는 상반된 입장을 결합시킨다. 그리하여 이 화해할 수 없는 두개의 명제는 서로 뒤엉키어 교묘하고 모호한 담론을 만들어간다. 이러한 담론의 기이한 메카니즘 속에서 심형래 감독도 마찬가지로 영화적 재미를 단순하게 헐리우드 영화의 규모라는 부분에 국한시켜버리고 동시에 영화의 결함을 영화 외부에서 마케팅 전략을 통해 쇼비니즘과 보수주의의 이데올로기로 포장한다. 심형래 감독은 <용가리>를 헐리우드 영화를 닮고자 하는 짝사랑의 열병에 시달리면서 동시에 그 모든 단점들을 한국영화에 대한 애정으로 너그럽게 보아줄 것을 당부한다(여기서 세계주의와 민족주의는 기괴하게 교미한다).

1999년 키노에 실린 장훈 기자의 <용가리> 리뷰 중 일부이다. 그때와 지금 변한 것이 있다면, 대기업을 중심으로 수직대통합을 이룬 회사들이 실질적으로 ‘독과점’에 해당하는 시장 점유를 이루고 있으며 이 가운데 더욱 ‘규모!’를 외치는 목소리가 커졌다는 것이다. 투자, 수입, 제작에서부터 배급, 심지어 상영까지 수직대통합을 이룬 CJ-CGV와 쇼박스-메가박스의 양대산맥 뒤를 롯데와 시네마서비스가 바짝 뒤를 쫓고 있는 가운데, 얼마 전엔 극장 체인 중 프리머스가 CGV에 넘어갔고, 한국 영화산업은 유례없는 대기업의 수직대통합을 통한 ‘실질적’ 독과점 양상을 띄고 있다. 그럼에도 공정거래위원회가 개입하지 못하는 이유는 ‘명목상’ 독과점 수치를 넘지 않았기 때문이라 한다. (프리머스는 ‘서류상’ CGV와 별개의 법인이다.) 미국에서조차 이미 1940년대에 파라마운트 판결을 통해 대형 스튜디오들이 극장을 소유하지 못하게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LA 도심에서 이무기가 난동을 부리고 주인공들은 미국인들이며 미국 FBI가 나서며, 언제나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를 자신의 (하수) 경쟁상대로 놓고 피터 잭슨마저 변방에서 노는 영화 못 만드는 꼬마 취급을 하는” 심사장인 만큼 그가 시도하는 것이 ‘절대로 특정 국가색이 드러나지 않는, 헐리웃 영화처럼 보이는 영화’이며 이무기의 전설 역시 한국의 고유한 전설을 알린다기보다(언제부터 이무기가 한국만의 전설이었나) 이제껏 서양애들이 대충 얄팍한 오리엔탈리즘을 끌어들여 동양에서 온 기이한 생명체가 말썽 일으키는 설정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이것이 한국에서 팔릴 때에 ‘코리안 레전드’니 ‘한국 원천기술 100%’ 운운하며 마케팅 키워드가 된다. “국적불명의 짝퉁 헐리웃 영화”를 만들어놓고 자국에선 ‘이거 한국영화예염’이라고 팔고 해외시장에선 ‘이거 한국영화 절대 아니예염”이라고 파는 것. 과연, 세계화 시대의 글로벌 상품을 파는 방식인데, 이것은 이송희일 감독이 매우 정확히 지적한 바, <디워>라는 영화를 그 영화 추종자들 자신이 스스로 “드디어 조립에 성공한 수출용 미국 토스터기 모방품”으로 취급하고 있는 꼴이다.

국내에 어필될 때에는 ‘한국의 원천기술력 100%’를 키워드 삼고 해외시장에서의 경쟁력 운운한다. 그렇다면, 그 CG의 후보정은 상당 부분 헐리웃의 회사가 맡아 해줬다는 소문의 진상과 원천기술 100%가 구라라는 소문의 진상 역시 빨리 밝혀져야 하지 않을까. 백분토론에서 진중권이 하다 만 이야기, 즉 범용화가 안돼 정통부가 투자/지원을 철수했다는 이야기의 진상 역시 하루빨리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작품성을 인정받은 <기담>의 경우 관객들이 나서서 제발 영화를 보게 해달라고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 형편이다. 영화산업에 한해서만큼은 초등학교 수준의 경제학 논리조차 적용시킬 줄 모르는 ‘순진한 영화소비자’들이 <디워>와 <화려한 휴가>의 성공이 곧 한국영화의 성공으로 이어질 것이라 설레발을 떨고 있지만, 바로 쇼박스와 CJ가 배급하는 <디워>와 <화려한 휴가>가 스크린은 독식하는 가운데 다양한 다른 영화들이 일찌감치 나가떨어지고 심지어 관객들에게 제대로 평가받을 기회조차 못 얻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소위 대작 지향의 위험성, 대작이 망했을 때 그것이 그 영화사는 물론 영화산업 전체를 꽁꽁 얼릴 위험성 때문에 등골에 소름이 다 솟는다. BEP를 건지기 위해 이런 소위 ‘대작’ 영화들은 대대적인 마케팅을 통해 대대적인 와이드 릴리즈 방식을 채택할 수밖에 없다. <실미도>, <한반도>, <괴물>이 차근차근 걸어온 길이고, <디워>와 <화려한 휴가> 역시 걸었던 길이다. 영화계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작년부터 쇼박스는 <디워>라는 폭탄을, CJ는 <중천>이라는 폭탄을 껴안고 있다는 얘기와 함께 “내년 한국영화는 정말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을 끼고 살았더랬다. (나는 작년 10월부터 들은 얘기다.) <디워>라는 폭탄 때문에 쇼박스에서 어쨌다더라 하는 루머는 참으로 다양한 버전으로 영화계 안팎을 돌고 있다. 개봉 전 대규모 알바를 풀었다는 얘기부터 CG의 후보정을 헐리웃의 회사에 맡겼다는 둥, 심지어 쇼박스에서 심형래에게 각서를 받았다는 둥. (엔딩 크레딧을 확인해보면 모호한 구석들이 계속 튀어나온다.)

얼마 전 한국영화제작가협회가 중심이 된 ‘영화산업 대타협 선언’에서 마케팅 비용 포함 총제작비가 평균 50억 정도인 ‘중간 규모 영화’들의 제작비를 왜 20% 다운시킨 40억으로 묶어두는 시도를 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지 생각해 보자. 한국은 100억짜리 규모 영화마저도 리스크가 큰 편일 정도로 시장이 작다. 200억-300억 영화들이 나와줘야 한다는 주장은 한국 영화시장을 조금이라도 알면 절대 할 수 없는 ‘조또 모르는 삽질’에 속한다. (소위 ‘문화평론가’ 하재근 씨가 이딴 주장을 했었던 걸로 안다.) 올해 유난히 한국영화 위기론이 계속 회자되는 이유는 작년 한 해 개봉한 영화 중 단 20% 만이 BEP를 맞췄기 때문이다. 영화가 좋으면 관객들이 몰리기 마련이라는 순진한 (척 하는) 거짓말은 그만 두자. 비디오로 뒤늦게 본 어떤 영화를 향해 “아니 이 훌륭한 영화가 왜 그토록 흥행에 참패했을까” 의아해 하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이상 갖고 있다. 영화를 꽤 많이 보는 내 경우는 더욱 많다. <지구를 지켜라>가 영화가 안 좋아서 망했나?

극장체인인 CGV나 메가박스는 잘 돼도 투자/제작 그룹인 CJ나 쇼박스는 코스닥에서 은근슬쩍 상장을 철회한 이유… 바로 영화산업 특유의 성격 때문에 그러한 것인데, 심사장을 비호하는 세력들은 영화산업 특유의 성격을 전혀 모르고 함부로 말을 나댄다.이런 멋모르는 주장들이야말로 가장 경계해야 할 주장들이다. 미국은 영화 한 편이 망해도 회사 하나 말아먹는 수준이지만(단적인 예로 마이클 치미노 감독의 <천국의 문>), 한국은, <디워> 수준 제작비가 투여된 영화가 망하면 영화산업 전체는 물론 한국 경제 전체가 흔들릴지 모른다. 충무로, 당신들의 뻘소리와 달리 의외로 <디워>의 흥행을 바랐으면 바랐지 망하긴 바랐지 않았다. 쇼박스는 충무로의 가장 큰 돈줄 중 하나걸랑? 그거 망하면 지들도 같이 망한단 말이야… (근데 당신들이 언제부터 한국영화라면 껌뻑하고 봐줬어? 한국영화 별로 안 좋아하는 내가 스크린쿼터는 지지하는 이유, 소위 한국영화라고 껌뻑 봐주는 당신이 스크린쿼터 지지 안 하는 이유, 이거 재밌고 막 말해보고 싶지 않아?) 마케터로선 이번 <디워>의 마케팅은 진짜 과정 하나하나를 외워야 할 사례일지도 모르지만, … 조또 씨바다. <디워>는 내게 일년에 무수히 개봉하는 수백 편의 영화 중 하나일 뿐이고, 내게 별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영화 중 하나에 속한다. 그나마 아직 내가 영화 못 본 걸 감사하게 여기시라. 기자시사회 때 연락을 못 받아서 못 봤지, 만약 가서 봤다면 지금 누구보다 열성적인 디까가 돼있을지도 모른다. 영화를 안 봤기에 영화 자체에 대해 뭐라 얘기 안 하는 것뿐…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8 Comments

  1. 현장에 계신 분의 시각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는 글 잘 봤습니다. 이런 사정을 잘 모르고 영화 자체로만 말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군요. 저 역시 그랬기 때문에 좀 반성이 되네요.^^;;

    그런데 왜 이런 시각(어쩌면 가장 중요한 논의인데도)으로 작성된 기사를 볼 수 없는 것일까요? 묘 몇주간 영화주간지들의 디워관련글에서 이같은 글을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모두가 ‘디빠’의 집단애국주의에 대한 성토만 하고 있더군요. 정작 한국의 영화산업을 우려하는 측면에서 얘기하는 글은 못 본 것 같습니다.

    그리고 < "국적불명의 짝퉁 헐리웃 영화"를 만들어놓고 자국에선 ‘이거 한국영화예염’이라고 팔고 해외시장에선 '이거 한국영화 절대 아니예염"이라고 파는 것> <- 이부분 정말 동감합니다. 이것을 있는 그대로 지적하는 행위조차 받아들여지지 않는듯 해요. 정말 좋은 글 잘 봤습니다.

    • 저도 현장에 있는 사람이라고 하기엔 좀 힘든 위치라 정보가 그리 많지는 않고, 씨네21과 필름2.0 기사들을 보거나 영진위의 통계발표를 보는 정도, 그리고 영화현장의 확실한 내부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간혹 전해듣는 정도입니다.
      제가 글에서 쓴 내용들은 이미 작년부터 꾸준히 잡지들에서 제기해온 문제들로, 이 바닥에선 매우 상식적일 뿐 아니라 잡담의 수준에 속하는 얘기들이라 딱히 이 시각으로 < 워 현상>을 비판하기 위해 기사를 쓰는 것도 영화잡지로는 좀 그렇지요. 그리고… 말 잘못했다 엄청난 테러를 당할 게 뻔하니 몸사리는 측면도 있었을 거고요. 예전에 < 가리> 개봉 시절 씨네21에서 지금은 편집장인 남동철 기자가 ‘해외 선판매 얼마’의 영구아트무비 주장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를 썼던 게 기억이 납니다. 아마 그 주 씨네21 사무실이 전화통에 불이 나고 난리가 났었죠.

      산업관련 기사를 꾸준히 읽으신 분들이라면 제가 쓴 내용이 그리 낯선 내용은 아닐 겁니다만, 아무래도 산업관련 기사들은 일반관객들에겐 읽어도 뭔소리인가 싶은 부분이 많긴 하실 겁니다. 다만 제 글을 재미있게 보셨다면, 앞으로 잡지들의 산업관련 기사를 조금은 더 친숙하게 읽으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그리고… 사실 영화산업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야 잘 모를 수밖에 없고 그런 상태에서 나름의 의견을 개진할 수밖에 없습니다만, 제가 어이없어 했던 건 소위 ‘문화비평가’니 뭐니 하는 직함을 달고서 헛소리하는 사람들…입니다. 솔직히 일명 ‘듣보잡’들인데 갑자기 설쳐대면서 영화산업 전반에 대해 무지하기 짝이 없는 소리들을 잔뜩 폼잡으면서 하는 걸 보니 기분이 썩 좋지가 않더군요.

  2. 요즘 메가박스에서 영화를 보려면 영화시작 전에 심형래 홍보영상(디 워 예고편이 아닙니다.)이 상영되더군요. 팬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이런 게 정말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인지 모르겠어요. 심형래 감독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주변상황이 슬슬 걱정될 것 같아요. 돈줄을 쥔 인간들이 마음만 먹으면 자신을 신으로 만들 수도, 바보로 만들 수도 있다는 걸 절감했을 테니.

    • 아디다스 광고 패러디한 심형래 광고가 나온다는 얘기를 듣긴 했습니다. 대 충무로, 대 평론가 전선을 그어버린 것도, 아마도 비즈니스 감각이 비상한 사람이니 다 계산이 있어서일 거라 생각합니다. 전 ‘사업가’ 심형래의 다음 행보가 참 궁금하고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3. 북마크를 잘못해서, 그 동안 엉뚱한 < 인 오버 미> 페이지만 보고 글을 오래 안 쓰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흠… 밀린 글 다 보고 갑니다.

    • 흐… 요즘 이 블로그에 신경을 좀 덜 쓰고 있긴 합니다.
      어쩌다보니 이 블로그는 글을 너무 공들여서 쓰는 곳이 돼서요.

  4. 그렇군요, 앞으론 산업관련 기사도 좀 관심있게 봐야겠어요. 그동안 관심이 크지 않아 많이 생략하면서 봐온것 같습니다. 좋은 글과 답변 감사합니다.

    • ^^ 요즘 영화계가 너무 빠르게 휙휙 변하고 있어서… 확실히 대기업 들어오면서 구조가 갑자기 화악 근대화된 측면이 있죠. 저도 산업쪽 기사들은 좀 어렵습니다. ^^;;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