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신화적 해석을 적용시키는 문제, 김정란의 경우

진중권의 (아직 발표되지 않은) 글에서 김정란이 용녀와 모성성의 귀환이라는 주제로 <디 워>를 옹호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제야 그 글을 직접 읽어보았는데, 글 자체는 매우 흥미롭다. 흔히 남성일 것이라 여겨지는 용이 실은 여성이고, 우리 신화에도 그러한 ‘용녀’가 무수하게 많이 등장한다는 사실, 그리고 후세의 역사가들이 그것을 어떻게 지우고자 했는지, 그럼에도 그 상징 중 일부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수많은 옛 이야기에서 ‘대중의 무의식적 복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설명도 매우 흥미롭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동굴은 여성의 질 – 탄생의 경로 – 을 상징하며, 물은 어머니의 자궁을 채우고 있는 양수를 상징한다. 그렇기에 동굴을 통과하며 고난을 겪는 설정, 혹은 물 속에서 다시 솟구쳐 오르는 이미지는 ‘거듭남’, 혹은 ‘새로 태어남’을 의미한다. 왜 세례요한이 ‘물로 세례를 주’겠는가? 그러한 재생을 상징적으로 현실에서 재현하려는 것이다. 프로도가 동굴 속을 통과하며 거미의 공격을 받고 유사-죽음을 경험하겠는가?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는 물의 이미지 대신 거대한 불의 강이 등장한다.) <디센트>에서 여주인공은 피웅덩이에서 다시 솟구치며 전사로 변화하고, <지옥의 묵시록>에서 마틴 쉰 역시 말론 브랜도를 죽이러 가는 길에 물 속을 통과해 다시 떠오른다. <본 얼티메이텀>의 마지막 장면에서 제이슨 본은 특수연구소가 위치한 뉴욕의 고층빌딩에서 허드슨 강 속으로 빠져들었다가 얼마 후 힘차게 물 표면을 향해 헤엄친다. 제이슨 본은 죽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다시 살아났고, 재생했으며, 부활했다.

하지만 <지옥의 묵시록>이 영웅신화의 구조를 그대로 반복하는 반면, <디센트>나 <본 얼티메이텀>은 신화를 현대적으로 구현했다기보다는 이미 ‘클리셰가 된’ 물의 이미지를 이용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더 맞지 않나 싶다. 동굴과 물은 특히 서양의 영화에서 고루한 클리셰가 된지 오래다. 아무런 신화적 지식도 의도도 없는 감독들 역시 재생/거듭남을 설명하기 위해 물의 이미지를 사용하고, 폐쇄적 공포와 고난을 언급하기 위해 동굴의 설정을 사용한다. 듀나가 정리해 놓고 있듯 우리가 ‘안경잡이 소녀가 안경을 벗으면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가 되는’ 걸로 대충 합의하고 넘어가게 된 것, 말하자면 피그말리온-갈라테이아 얘기를 그냥 그렇게 간단한 하나의 설정으로 압축시켜 버리는 것. 이게 사실 클리셰가 가진 힘이다.

과거의 시대를 다루는 <디 워>는 조금 다르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영화의 시간적 배경과 신화적 해석은 큰 상관이 없다. 과거의 시대, 신화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모두 신화적 원형에 기대는 것도 아니고, 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 대해 신화적 해석이 절대로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상상 속 시대와 배경인 <스타워즈> 시리즈의 경우 신화학에서 지적하는 영웅신화의 패턴을 가지고 역으로 각본을 만든 케이스이기 때문에 우리는 영웅신화의 패턴이 이 영화에서 어떻게 가시화 되었는지 확인하는 것으로 영화의 재미를 높일 수 있다. <지옥의 묵시록>의 경우, 배경이 현대 베트남전, 너무나 명확하고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우리는 일차적으로 이 영화를 베트남전에 대한 영화, 전쟁의 광기에 대한 영화로 해석하지만, 또 한편에서 그냥 클리셰라 하기엔 무시무시할 정도로 영웅신화의 패턴을 충실히 따르고 있기에 신화적 해석을 적용하는 것이 2차적 해석으로 충분히 의미를 갖는다. (심지어 개봉버전에서 잘렸다가 감독판에서야 복원된 프랑스 인 농장에서의 긴 에피소드는 이 영화가 신화적으로 해석되어야 할 필요성을 노골적으로 웅변한다.)

따라서 <지옥의 묵시록>을 영웅신화의 원형을 현대의 어떤 전쟁, 즉 베트남전과 결부시킨 영화로 해석하는 건 매우 유용하지만, <본 얼티메이텀>에서 저 물의 이미지는 어떤 클리셰를 이용한 것인지, 그 클리셰가 왜 그런 의미를 갖는지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디센트>는? 나는 이 영화가 페미니즘의 세례를 받은 현대여성이 드디어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무한 생존 경쟁의 룰에 포섭되었음을 은유하는 보다 신화적인 의미를 갖는 영화로 해석하고 이에 대한 기사도 쓴 바 있지만, 이러한 해석에 나 역시 확신은 갖지 못하고 있으며 다분히 주관적임을 인정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더 나가다 보면, 곧 신화적 해석이 갖고 있는 딜레마에 봉착하게 된다. 사실, 그 무수한 작가들의 그 무수한 이야기들의 원형은 거의 다 신화에 들어있지 않은가? 모든 비극적 사랑 이야기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에 기대고 있고 로미오와 줄리엣은 다시 신화의 시대의 트리스탄과 이졸데(혹은 이주드)의 이야기를 원형으로 삼는다. 그렇기에 모든 텍스트에 신화적 해석을 적용하며 환원하다 보면, 수많은 이야기가 담고 있는 그 섬세한 결의 차이와 감독의 분명한 목적과 의도를 간과한 채 모든 이야기를 그저 단순한 원형으로 환원시키는 데에 그치는 부작용이 있다. 또한 신화적 해석은 종종 무언의 권위를 부여받곤 하기 때문에, 신화적 해석을 통해 텍스트에 대한 평가를 달리 할 것을 강요하기도 한다. 명백하게 작가와 감독의 무능력과 게으름이 빚어낸 스토리의 결점들을 갑자기 의미있는 생략과 해석으로 왜곡시키는 ‘정치적인 행위’를 하는 데에 있어 가장 자주 동원되는 것이 신화적 해석의 틀인 이유는 그래서이다. 그렇기에 평론가는 신화적 해석, 원형적 해석을 하는 데에 있어 보다 신중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신화에 좀더 방점을 두어 영화를 끌어들여 신화를 이야기하는 것과, 영화를 이야기하기 위해 신화를 끌어들이는 건 다른 문제이며, 신화적 원형이 가진 권위를 그 영화에 요구하며 영화의 가치를 격상시키는 건 또다른 문제이다. 또한 클리셰로 사용했다 하더라도, 작가가 게으르고 무능해서 클리셰만 사용할 수밖에 없는 건지, 효과적으로 설명을 단축하기 위해 적절하게 사용하는지, 장르를 비틀고 키치적 즐거움을 주기 위해 클리셰를 의도적으로 사용했는지는 모두 다른 문제이다. 평론가에게 있어 이를 구분하는 건 매우 중요한 문제다.

예컨대 <스타워즈> 에피소드 1-3편을 전형적 영웅신화의 주인공인 ‘성공한 영웅’(<스타워즈> 에피소드 내에서는, 4-6편의 루크 스카이워커)과 정반대에 위치한, 실패한 영웅의 타락의 이야기로 해석하며 교훈을 끌어내는 건 매우 흥미롭고 의미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과, 이러한 해석을 이용해 객관적으로 드러나는 조지 루카스의 각본/연출 능력의 부족, 거기에서 파생한 스토리의 심각한 결점들을 덮거나 이를 심오하고 의미적인 생략인 양 둔갑시키며 영화에 거짓 후광을 주는 건 다른 문제다. 텍스트를 분석하는 한 방법으로서 그 텍스트가 기반하고 있는 전제된/숨겨진 텍스트와 표면으로 드러난 텍스트의 관계를 밝히는 것은, 목적과 방향이 또렷해야 하고, 그것에 걸맞는 방식이어야 한다. 신화적 해석은 그야말로 하나의 해석에 불과하며, 오히려 이 해석은 이 텍스트가 원형의 이야기를 어떻게 변형하고 있는지, 혹은 어떻게 구체화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목적을 가질 때 더 큰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닌가, 라는 게 내 생각이다.

원래부터 신화와 상징에, 특히 역사 시대를 통과하며 지워진 여성 신화에 관심이 많았던 김정란이 <디 워>를 보며 왜 용녀의 상징을 읽어냈는지에 대해 <디 워>를 보지 않았음에도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심형래가 이것을 과연 의식하고 각본을 짠 것인지는 의심스럽다고 여러 번 밝히고 있는 것을 보아 김정란 역시 이를 의식하고 있고 보다 신중하게 접근하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그가 결국 그 영화를 계기로 짚어본 어떤 신화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혹은 어떤 영화들에서 신화적인 원형을 찾아보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화라는 권위를 끌어들여 그 영화를 격상시키려는 ‘정치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상징은 때로 작가의 의식보다 훨씬 더 깊은 곳에서 작가가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거나, “상징의 선택은 무의식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이를 글에 삽입하는 방식은 감독 심형래를 “뛰어난 대중예술가”(?!)로 가치평가하기 위한 시도에 기대 있으며, 고작 “주인공의 사부가 남자 주인공에게 계속해서 사라를 ‘그랜드 케이브(大穴)’로 데리고 가라고 말하는 것”을 근거로 들어 동굴을 클리셰의 사용이 아닌 무려 ‘정확한 상징적 착점’으로 손쉽게 평가하고 있고, 아리랑의 삽입 역시 아리랑을 “한국인의 심상 깊은 곳에 ‘어머니의 흐느낌처럼’ 숨겨져 있는 슬프고 통속적인 멜로디”(주 – 강조는 인용자)라 전제한 뒤 곧장 이를 ‘모성의 복원’을 위한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

심형래가 “뛰어난 대중예술가”인지 아닌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김정란의 해석은 그 영화를 계기로 짚어본 어떤 신화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신화들을 끌어들여 그 영화를 격상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원래 글의 흥미로운 논점에도 불구하고 빛을 잃어버린다. 정치적 행위란 본래 이렇게 원래의 빛나던 빛을 종종 타락시킨다.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10 Comments

  1. 용과 신화에 대한 얘기는 ‘이번 기회에 이런 이야기도 있으니 한 번 들어보세요’ 수준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네. 내용 자체로만 보면 유익하고 쉽고 ‘대중적’이기까지 한데, 논쟁 맥락에서는 거참 ;;;

    • 그게, 봐서 알겠지만 내가 링크한 글도 원글의 뒷부분 반이라오. 앞부분은 http://www.dailyseop.com/section/article_view.aspx?at_id=62208#

      앞부분은 결국 저 용녀 얘기를 하기 위한 긴 서문에 불과한데, 붙여서 생각해보면 더더욱 왜 이 글을 썼는지 이해가 간다오. 다만 역시 맥락이 너무 엄한 데다 고작 중권미워!의 목적이라면 더더욱 엄하지.

      글 자체는 재미있고 쉽고 흥미롭지. 뭐, 일각에선 단군이 여자였단 주장도 있는 만큼 신화에서의 젠더 문제는 더욱 재밌는 소재고…

  2. 마침 김정란씨가 번역한 아발론연대기(그 출판사 편집장님이 미디어몹 블로거라서 감상문 쓰면 책 주는 행사도 했었죠)를 쉬엄쉬엄 읽고 있습니다.
    그냥 본문만 읽으라면 몇 세기 전 얘기에 전혀 공감이 안가서 그냥 덮어버릴 건데 저자주, 역자주가 들어가면 얘기가 재미있어지더라구요. 김정란씨는 툭하면 다 여신이래요. 전에 컴퓨터 AS 농담이 있었잖아요, 답은 무조건 껐다키세요. 그거같아 웃기긴 한데 역자주는 그럴 듯 하고 멋져요. 거기다 ‘~여신인 것 같다.’가 아니라 ‘~여신이다. 그래서~ 란슬롯이랑 ~한 것이다.’ 하는 자신있는 말투.

    • [아발론 연대기]는 1권을 선물꺼정 받아놓고 시작을 못 해서리; 근데 신화에 등장하는 여성 정도면, 원래 여신인데 후세에 의해 강등당했을 가능성도 없진 않지요. 왜 성경, 신약에서도 ‘마리아’가 실은 예수가 가장 아끼는 제자였단 설도 있고, 여러 명의 마리아를 성경 저자들이 의도적으로 창녀 막달라 마리아로 합쳐놓고 비하했단 설도 있지요.

      근데… 원래 신화 같은 거 안 좋아하시나요? 전 특히 아서왕 전설은 어릴 때부터 굉장히 좋아했거든요. 원탁의 기사들, 빛의 기사들, 엑스칼리버,…

    • 다 여신 맞는 거 같습니다. 본문 내용을 들면서 딱딱 맞게 증거를 대거든요.
      옛날 원탁의기사는 어린 맘에 재밌었는데, 이 책은 지금하고는 상식이나 윤리 정의 개념이 다른 세계라서 주인공이 결투라도 한다고 하면 응원할 맘이 안생겨요. 근데 해설은 원래 여신인데 시대가 바뀌고 하면서 강등당해서 이렇게 흔적만 남고 섞이게 됐다는 식으로 본문의 이야기에다 해설의 이야기를 하나 더 만들어줘요. 한권을 다 읽고 나서 줄거리를 생각해 보면 두가지가 겹쳐서 모호하게 떠오르니까 신비감이 생겨서 진짜 전설같은 느낌이 들어요.

    • alls님 덕분에 [아발론 연대기]를 빨리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듭니다. 재밌을 거 같아요. ^^

  3. 잘 읽었습니다.
    글에서 아주 깊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분명히 별다른 생각 없이 차용한 신화적 요소가, 마치 어떤 신화적 프로토타입을 대단하게 계승한 것처럼 들려, 저도 그 평론가의 글이 참 불편했습니다.

    • 신화적 해석은 저도 무척 좋아하는 방향이고, 대부분의 많은 영화들을 신화적인 성장담으로 보곤 합니다. 그래서 그 글이 매우 흥미로움에도 불구하고 많이 불편했었어요. 즐거움을 드렸다니 저도 기쁩니다. ^^

  4. 아, 그런데 혹시 vedder.tistory.com의 주인장님?
    우연히 들어왔다가 보니까 그분이신 것 같은데…

    • 넵, 맞습니다 ^^ 여긴 영화 전용 블로그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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