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만난 클로드 를루슈 감독

이번에 부산 가서 취재를 하면서 느낀 사실인데, 나는 영화에 반하는 횟수보다는 영화를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들의 그 ‘애정’에 반하는 횟수가 더 많다. 마스터클래스에서 열렬하게 ‘삶’과 ‘사랑’을 예찬하고, 삶에 대한 사랑과 영화에 대한 사랑을 열정적으로 드러내는 클로드 를루슈 감독에게 반했다.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위로를 받았고, 그래서 도중에 혼자 눈물을 찔끔거렸다. 내가 눈물을 흘렸던 결정적인 말은, “삶은 잔인하지만 우린 삶에 관대할 필요가, 삶을 용서할 필요가 있다.”라는 말이다.


사랑이나 증오는 쉽게 전염되기 마련이어서, 클선생의 저 열렬한 삶에 대한 사랑은 금방 객석으로 전염됐고, 객석의 인간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예의바르게, 다소 형식적으로 나왔던 질문은 곧 열정적인 질문공세로 바뀌었다. 사랑이 워낙 넘쳐서 이제껏 다섯 여자와 살고 일곱 아이를 낳으셨다는데, 앞으로도 계속 사랑을 하고싶다는 말에 객석 완전 뒤집어지고. 두 시간이 넘게 계속된 저 마스터클래스는, 워낙 그 열기 탓에 완전히 진을 빼놓았지만 참 기분좋은 피로감이었고, 그렇게 진이 빠지고 피로한데도 시간이 다 되어 끝내게 되었을 때 아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노감독을 붙잡고 밤새 술을 마시며 삶과 영화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었다. 이것은 분명 나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아쉬웠던 관객들은 당연히 를루슈 감독 주변에 몰려들어 싸인을 받았고, 누군가는 사진을 찍었다. 굉장히 피로하실 텐데도 그 사람들 하나하나에게 웃어주며 싸인을 해주는 노감독님을 보며 또 눈물 찔끔하고. 사실 사람들 모두, 싸인을 받고 싶어 몰려들었다기보다는, 헤어지는 게 너무 아쉬워서 그 양반 곁에 좀더 머물기 위해 몰려들어 싸인을 받았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클로드 를루슈 감독의 싸인

물론 나도 받았다.


반면 피터 그리너웨이의 마스터클래스에선 영화에 대한 극단적인 선언들과 논란이 될 만한 이야기가 오고간 모양이다. 버라이어티 데일리에서 자세한 기사가 실렸는데, 읽는 내내 나는 저 피터 그리너웨이라는 깐깐한 – 그리고 결코 좋아할 수 없는 – 인간의 ‘천재성’을 감지하고 피식, 웃곤 했다. (그에 의하면,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 시리즈는 영화가 아니라 그림책이란다.) 아무렴, 피터 그리너웨이는 분명 천재일 것이다. 다만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천재 아버지보다는 삶에 대해 푸근한 위로를 줄 수 있는 아버지인 것이다. 그래도 버라이어티의 기사가 너무 재미있어서, 가봤으면 좋았을걸, 후회했다는.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의 영화는 본 게 별로 없고 그나마도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건 아니어서 가지 않은 것이었는데… 그렇다고 클로드 를루슈 감독의 영화를 많이 봤냐면, 그건 또 아니다. <남과 여> 딱 한 편, 게다가 마스터클래스 전날, <역의 로망>을 상영했건만 이것도 여차저차 하다가 놓쳤다. 마스터 클래스 들으며 엄청 후회했다는.


어쨌건, 그날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는 프레시안에 올린 이 기사를 보면 아시리라. 문자로 접하면 별 인상 없을 수도 있는데 그 날 그 분위기는 분명 온몸이 달아오를 정도로 뜨겁고 황홀했다. 웹에서 절대 하면 안 되는 게 ‘기사 길게쓰기’인데, 저 날의 저 황홀함이 너무나 커서 그냥 올려버렸다는. 기사 밑에 달린 리플 보고, 무리해서 다 올리길 잘했다고 생각했고, 기자노릇 하는 것에 대한 보람을 느꼈다.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사람이 가장 행복할 때가, 관객을 영화에 대한 연애에 빠뜨리는 중매쟁이 노릇에 감사를 받았을 때가 아니겠는가.


Claude Lelouch

프레시안무비에 올라간 이 사진은 내가 직접 찍은 것이다.


[#M_ 보관용 – 그날 오간 대화들 | 닫기 | 

– 오래 전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를 보았는데 거기에 등장한 인물들이 실제 인물들을 바탕으로 했다고 들었다. 이것이 사실인가? 그토록 다양한 인물들을 등장시킨 이유는 무엇인가?
 
 
먼저 그 영화의 모든 인물들은 실제 존재했고 실제 그 시대를 살아갔던 인물들이며, 이 모든 것은 내 기억에 바탕하여 만들어졌다. 나는 언제나 여러 다양한 인물들을 섞는 것을 좋아한다. 내 영화의 특징 자체가 여러 장르가 혼성되는 것인데, 우리의 삶 자체가 다양한 장르의 혼성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예컨대 아침에 일어나 지갑을 소매치기 당하면 그건 경찰영화가 될 것이고, 그러다 낮에 카페에서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고 웃는다면 사랑영화가 될 것이며, 저녁이 되어 그가 노래를 부르며 거리를 거닌다면 뮤지컬이 되지 않겠는가. 장르의 혼성이 내 영화의 특징이다. 또한 나는 그것이 우리의 인생의 스타일이라 생각한다.
 
  – 당신의 영화는 이야기와 장면도 오래 남지만 특히 ‘음악’이 오랫동안 여운을 남긴다. 영화음악에 대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는가? 음악감독과 소통은 어떻게 하며, 이를 위한 당신의 노하우는 무엇인가?
 
 
어제 <역의 로망>의 GV에서도 말했지만(주 – 그 전날인 9일 저녁 클로드 를루슈 감독의 2006년작 <역의 로망>이 상영되었고 이후 GV에 를루슈 감독이 참석했다.), 나는 음악이 인물만큼이나 영화의 중요한 캐릭터라 생각한다. 음악은 말없이 연기하는 또다른 배우이다. 음악은 인간의 비합리적인 면을 드러내주고 마음을 드러내는 것으로서,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전달해 준다.
 
  인간은 뇌와 심장, 두 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데, 뇌가 지성을 나타낸다면 심장은 마음과 감정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뇌는 물질적이고 계산적이지만, 마음은 우리의 가장 근본적인 면을 드러낸다. 사랑 역시 뇌가 아니라 심장으로 하는 것 아닌가. 음악은 이러한 마음과 무의식의 가장 좋은 동반자이다. 예컨대 뇌는 인간을 유한한 존재로 여기고, 인간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심장은 인간의 존재의 영원성을 믿고, 인간의 근원과 방향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그러한 심장 때문에 우리가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기도 하다. 뇌는 효율적이고 아끼는 습성이 있지만, 심장은 폭발적이다.
 
  이 둘은 평생 대립하는 싸움을 벌이고, 이 둘의 대립이 바로 내 영화의 주제이기도 하다. 우리는 과연 뇌를 믿을 것인가, 심장을 믿을 것인가? 이 둘을 조화시켜야 한다고 배우지만, 나는 심장에게 우선권을 주겠다. 예술은 바로 심장을 움직이는 존재이다. 내가 배우를 좋아하는 이유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영화 음악에 대하여, 나는 촬영 전에 음악을 미리 끝낸다. 그래서 배우들에게 연기지도를 할 때 그 음악을 듣게 한다. 지성보다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성은 한계가 있다. 세상의 모든 학교는 지성을 발전시키기 위해 지어지지만 마음이나 무의식을 위한 학교는 없는 듯하다. 이런 학교야말로 정말 필요하다고 믿는다.
 
  – 어제 열린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의 마스터 클래스를 들었는데 그와 당신은 사운드, 음악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비슷한데, 목적은 같지만 과정은 굉장히 다른 것 같다. 그리너웨이 감독은 “리얼리즘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지 않나.”라고 말했는데, 당신은 리얼리즘을 더 중시하는 것 같다. 이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당신이 생각하는 ‘영화’라는 것은 무엇인가?
 
 
여러 형태의 다양한 영화가 있어야 관객들도 자신이 원하는 영화들을 고를 수 있겠지. 장-뤽 고다르나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감독의 존재도 나와 다르다 해도 매우 중요하다. 나는 그들과 내가 다르다는 건 인정하지만 그들의 작업은 그들의 작업대로 존중한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 삶을 더욱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힘든 인생에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영화’이고, 그렇기에 영화는 비타민이자 ‘약’과 같은 존재이다.
 
  내가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것도 남이 만든 영화들에서 더 이상 약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를 만들기 전 2만 편의 영화를 보았고, 그렇게 보고 나니 한계점을 맞게 됐고, 그래서 영화감독이 되었다. 아마도 다른 많은 영화감독들 역시 다른 감독의 영화에서 더 이상 힘을 얻을 수 없었기에 자신이 직접 감독으로 나서게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영화 속 이야기를 믿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영화에서 삶의 해결책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그리너웨이에게는 그런 식의 ‘믿음’이 꼭 필요하진 않은 영화를 만들 것이다. 그것은 그의 영화고 나는 그것대로 존중한다. 다만 나는 사람들이 영화를 보며 삶을 사랑하고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이란 것의 사용법을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내 자신이 이제껏 배운 모든 것은 영화를 통해서였으니까. 내게는 영화가 진정한 ‘부모’인 셈이4다.
 
  – 아누크 매메라는 배우와 많은 작업을 같이 했다. 그녀와 작업을 한 이유는? (주 – 아누크 애메는 를루슈의 <남과 여>, <두번째 기회>, <비바! 인생>, <남과 여 20년 후> 등에 출연했으며 90년대 이후로는 그의 영화에 카메오로 많이 출연했지만 를루슈가 그녀와만 유난히 많은 작업을 한 것은 아니다.)
 
 
일단 40년 전 그녀가 나의 이상형이었고, 지금도 몽마르트르의 같은 동네에 살고 있다. 그래서 그녀와 작업할 때마다 그녀와 러브스토리를 만들게 될 수 있기를 바랐다. 남자의 인생은 길고, 여러 개의 러브 스토리를 만들게 되길 바라는 법인데, 매번 이상형은 바뀔 수밖에 없다. 스무 살 때, 서른 살 때, 마흔 살 때의 이상형은 다 다를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리고 그렇게 매번 바뀐 이상형에 따라 캐스팅을 한다. 내 영화에는 그때그때의 여성에 대한 나의 시각이 반영돼 있다. 최근작인 <역의 로망>에서의 오드레 다나(Audrey dana)(주 – <역의 로망>에서 위게트 역을 맡은 배우)가 거의 현재의 내 이상형이라 할 수 있겠다.
 
  나이 때마다 이상형이 바뀌었지만 그들의 공통점이 있긴 하다. 그들과 사랑에 빠졌을 때, 보면 그들은 언제나 인생을, 진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 당신에게는 영화가 곧 당신의 삶이라는 느낌이다. 만약 41편의 영화와 당신의 삶 중 하나만 선택하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내 영화는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극단으로 갈린다. 나는 내가 잘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한다. 호기심이 강해서 남자고 여자고, 노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궁금해하고 좋아하며, 그림도 음악도 좋아하고, 먹는 것도 좋아하고, 아, 사랑을 하는 것도 좋아한다. 내 영화에서는 말하자면 내 자신이 주인공이며, 그렇기에 나는 영화의 희생양이 되는 셈이다. 내면으로 겪은 모든 것이 영화에 드러나게 되니까. 나는 이제껏 다섯 여자와 살며 일곱 명의 자식을 두었는데, 사랑을 하면 할수록 영화도 많이 만들게 된다. 사랑과 증오는 같은 뿌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곧 70세가 되는 마당에 이제 와서 인생을 바꾸기는 좀 어렵지 않을까. 다만 앞으로도 더 많이 사랑을 하고 싶고, 그래서 더 많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 (관객들 폭소, 박수)
 
  – 어제 피터 그리너웨이의 영화를 보고 마스터클래스에 왔다가 엄청나게 상처를 받았는데, 밤에 당신의 영화 <역의 로망>을 보고 오늘 마스터클래스에 와서 완전히 치유를 받았다. <역의 로망>을 보며 당신이 비로소 ‘청년 감독’으로 다시 돌아왔다고 느꼈는데, 앞으로 어떤 영화를 찍을 예정인가? 그리고 당신이 아까 말한 ‘삶의 사용법’에 대해 자세히 말해달라.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유머’라고 생각한다. 또한 남의 잘못을 비웃기 전에 먼저 자신의 단점에 대해서도 웃을 줄 아는 것도 필요하다. 그런데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위험’을 감수하는 태도이며, ‘도전’할 줄 아는 것이다. 이러한 도전에서 결실과 살아갈 힘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사랑에서도 일에서도 이러한 도전은 매우 중요하다. 도전하지 않은 삶은 불행한 삶이다.
 
  가장 큰 행복을 느낄 때가 불행에서 막 벗어난 다음이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위험을, 도전을 감수할 필요가 있다. 또한 아까도 말했듯 뇌보다는 심장, 마음이다. 이를 위해서 사랑도 많이 하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으러 다니며 여행도 많이 하고, 많은 것을 100% 즐기기 바란다. 또 하나,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생각한다. 죽음은 삶에 대한 또 하나의 보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음 작품은 뮤지컬이고, 1920년대에서부터 현대까지를 배경으로 한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음악을 집어넣을 참이고, 삶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는 작품이 될 것이다. 물론 내 아이들에게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삶에 대한 일종의 금기도 집어넣을 생각이다.
 
  – 이제껏 많은 작품들을 만들었는데 투자자와 제작자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노하우를 소개해 달라.
 
 
이것 참 어려운 질문이다. 나 역시 처음 영화를 시작할 때 제작자를 못 구했고, 그래서 내 자신이 직접 제작자가 되었다. 19살 때였는데, 내 영화를 제작해줄 제작자를 찾았지만 하나같이 퇴짜를 맞았다. 이런 바보같은 제작자들에게 내 영화를 맡기느니 차라리 내가 직접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제작자들은 대부분 독재적이고 영화를 심하게 오염시키기 마련이다. 물론 안 그런 제작자들도 있지만 소수에 불과하다. 이제껏 내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었던 것도 내가 제작자가 됐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제작자로서보다는 감독으로서 일하는 게 훨씬 즐겁긴 하지만.
 
  영화를 기대하고 영화에 무언가를 바라는 것은 제작자들이 아니라 바로 ‘관객’이다. 결국 내가 이제껏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것도 관객의 덕인 셈이다. 어찌어찌 첫 작품을 했다 해도 성공을 하지 못하면 다음 영화를 만들기가 어렵다. 나 역시 많은 실패 역시 겪었다. 그러나 실패작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더 앞으로 전진할 수 있었다. 모든 일에 성공이 있으면 실패도 있어야 인생이 지루하지 않은 법이다.
  
  – 당신의 경험으로 영화를 만든다면, 한국에 와서 당신이 본 장면들 역시 영화의 한 장면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과연 부산영화제에서 당신이 본 장면들은 어떤 영화적 장면이 될까? 또한 재미있게 본 한국영화가 있다면 말해달라.
 
 
부산에 와서 놀란 것은 남자와 여자, 노인과 젊은이를 다 떠나서 내 작품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사는 곳에서 부산은 만 킬로미터가 떨어진 곳인데, 이렇게 먼 곳에서도 프랑스인들 특유의 강박관념 같은 것이 이해된다는 것이 놀랍다. 결국 보편적인 것은 통한다는 얘기겠지. 이곳에서 본 것을 영화로 한다면 결국 보편적인 소재를 택할 거고, 결국 러브 스토리가 되지 않겠는가. 이것이야말로 보편적이니까. 이 자리에서도 ‘산이 좋은가, 바다가 좋은가’라고 물어보면 대답이 갈리겠지만, ‘사랑을 좋아하는가’라는 질문엔 모두가 ‘예’라고 대답할 것이다. 사랑에 성공해야 다른 일도 성공할 수 있는 s법이다. 사랑은 우리 인생에서 마법의 약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니 여러분도 열심히 자신의 반쪽을 찾으시기 바란다.
 
  한국영화는 여러 영화제를 다니면서 거기에 출품된 영화들을 보긴 했는데 미안하지만 제목이나 감독 등은 기억을 잘 못하겠고, 충분히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못 하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곤란할 것 같다. 다만, 아시아의 요즘 영화들은 매우 훌륭하고 잠재성도 크다. 영화의 미래는 이제 국가별로 논의될 것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논해져야 할 것이다. 이제는 누구나 손쉽게 휴대하기 편한 도구들, 예컨대 HD 카메라 등으로 많은 도전을 감수하면서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시대가 되기도 했고. 여기 여러분들도 많이들 영화를 찍어보시기 바란다.
 
  – 당신의 뇌와 심장에 대한 얘기에 매우 공감했다. 당신은 배우들에게 연기지도를 어떻게 하는가? 특히 <여정>에서 리샤르 앙코니나가 보인 연기가 내겐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촬영 전단계에서는 시나리오 쓰는 일을 빼면 연기 지도가 가장 재미있고도 어렵다. 배우는 매우 연약한 사람들이고 대배우일수록 굉장히 소심하고 연약하며 여러 가지 것들을 조화시키기 힘들어하는 사람ㄷ믈이다. 그렇기에 텍스트 뒤로 숨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며, 자신의 일생에서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물론 안 그런 배우들도 있겠지만, 그 사람들은 대배우가 아닌 것 같다. (웃음) 신경이 매우 곤두서있고 불안한 이 사람들에게 감독은 일종의 약을 처방해주는 사람과 같다. 지성보다 무의식과 인간적인 측면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죽음에 대해 예측하기도, 알기도 어려운데, 시나리오를 다 보고 나면 그저 그런 배우가 돼버린다. 그래서 나는 배우들에게 절대로 시나리오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내 영화의 배우들은 배우로서 ‘연기’를 한다기보다는, 그 ‘인간’이 되어 모든 것을 직접 경험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고, 촬영을 하면서 그들은 그 사람을 직접 살아야 하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한결 생동감 있고 활기있는 연기를 보여주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서 바로 ‘신뢰’가 만들엉진다.
 
  이 때문에 영화 중간에 주연과 조연이 바뀌기도 한다. 아무래도 감독에게는 더 좋아하는 배우와 덜 좋아하는 배우, 더 재능있는 배우와 그렇지 않은 배우가 갈리기 마련이고, 감독이 더 좋아하고 재능이 더 많은 배우가 점점 더 역할이 많아지는 게 사실이다. 나는 배우들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그들의 소심함과 연약함을 사랑한다. 감독과 캐릭터는 이렇게 상보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절대로 아무나 캐스팅해선 안 된다. 배우들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매우 복잡하고 배우마다 맞춤형의 연기 지도를 해야 할 필요성이 생긴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가장 좋은 연기지도는 아무 지도를 하지 않는 것이라는 얘기가 됐는데, 감독으로서는 배우를 최대한 이야기 속으로 몰입시키다 보면 배우가 바로 그 인물이 되어 ‘그 순간’을 경험하는 때가 온다. 그것은 단 하나밖에 없는 순간이다. 창작은 바로 이러한 순간을 계속 만들어가는 작업이다. 나는 배우와 함께 작업을 하는 것을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라 여긴다.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며 열심히 일하다 보면 서로가 서로를 놀라게 해주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데 이게 최고의 연기 지도인 것 같다.
 
  – 당신에게도 슬럼프나 권태기가 있었는가?
 
 
사실 항상 어렵다고 느낀다. <남과 여>가 성공하기 전 6편의 작은 작품에서 실패를 겪었고, 그 뒤로도 성공한 작품들이 있지만 실패한 작품들도 많아서, 결과적은 반은 성공, 반은 실패한 셈이 되는데, 실패했을 때에는 마치 사막을 걷듯 우울증을 앓기도 했다. 그러나 죽고싶다 느끼고 자살하고 싶은 순간이야말로 가장 왕성하게 창작할 수 있는 기간이기도 하다. 행복엔 쉽게 길들여지기 마련이지만, 실패를 겪고 힘든 순간이야말로 가장 빛나는 창작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영화를 계속 만드려면 역시 미친 듯이 영화를 좋아해야 한다. 잔인한 이 세계에서는 ‘실패의 학교’에서 가장 많은 걸 배우는 법이다. 단, 여기에는 한 가지 전제가 있다. 아까도 말 했지만 절대 남 탓을 하지 말고 모든 것을 내 잘못으로 여겨야 한다. 이를 위해서 바로 유머 감각과 내 단점에도 웃을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아닌 관객에게는 인생과 영화가 동의어가 될 수 없다. 일상에서 현실적인 삶을 영위하다 보면 영화를 보는 두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오히려 힘을 얻기 보다 더 우울해지곤 하기 때문에, 예전엔 영화를 많이 봤지만 최근 들어서는 영화를 좀 멀리하고 있고, 그럼에도 지금 이 자리에 또 앉아있다. 영화를 그저 수용하는 입장에선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영화에서뿐 아니라 이것은 다른 삶에서도 통하는 얘기이다. 삶은 언제나 복잡하고 어렵기 마련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사랑에 성공을 해야 다른 일에서도 성공할 수 있기에 열심히 동반자를 찾아야 한다. 다만, 어떤 동반자는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반면 어떤 동반자는 삶을 자꾸 저지하고 가로막는다.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동반자를 찾아야 하고 그러려면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이 사랑해 봐야 한다.
 
  인생 자체는 매우 불공평하고 부당한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인생에 관대하고, 인생을 용서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행복과 불행의 책임은 자기자신이 온전히 질 수박에 없다. 내 아이들도 언제나 내게 이런 질문을 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아무리 힘들고 설사 누가 괴롭힌다 해도 자신의 자리에서 맡은 일을 아름답게 잘 해나면 반드시 보상이 따를 것이라 말해주곤 한다. 물론 누가 어떤 식으로 보상해 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렇게 애야 내 운명을 내 자신이 만들어 나갈 수 있다. 극장엔 계속 가시라. 대신 좋은 영화들을 보시라. 좋은 영화들은 인생에 약이 되고 힘이 된다. 주어진 위치에서 주어진 일을 아름답게 제대로 하시라. 물러서는 게 바로 불행의 시작이다. 이 문제는 매우 어렵기 때문에 내 대답이 물론 정답도 아니고 그 누구도 정확한 대답을 줄 수는 없을 것이긴 하지만.
 
  – 당신의 화면 구성(앵글과 사이즈 등)에 어떤 철학과 미학을 갖고 있는가? 시나리오가 도중에 많이 바뀌기도 한다면, 처음 시나리오와 다른 영화가 나왔을 때 그에 대한 당신의 감정은 어떤가?
 
 
내게 있어 촬영은 말하자면 인생의 여러 경험에서 예를 추출하는 것과 같다. 삶은 내 영화의 나침반과 같은 것이다. 이번 달 말에 내가 일흔 살이 되는데, 인생이라는 영화는 매번, 매 순간 시나리오가 바뀌는 것이지 않나. 내 영화의 시나리오오도 그렇게 계속 바뀌고 처음 시나리오와 만들어놓은 겨로가물이 다른 경우도 많다. 결과물이 더욱 힘있는 경우들이 많지만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들도 많다. 촬영을 만든다는 것은 추상을 구체적인 현실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인생이 이야기이고, 이야기가 추상과 상상의 것이라면 촬영은 구체적인 경험인 셈이다.
 
  나는 매일 낮에는 촬영하고 밤에 집에 돌아와 시나리오를 다시 쓴다. 이제까지 매일 그래왔다. 인생도 그렇다. 매일, 언제나 앞일을 모른 채 즉흥적일 반응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데 실제 인생은 내 상상보다 더 강하더라. 아마도 피터 그리너웨이는 처음 쓴 시나리오 그대로 영화를 찍을 것 같다. 그 방식은 그 방식대로 존중한다. 다만 내 영화는 인생의 변수에 대한 ‘적응’의 과정을 담고 있는 셈이다.
 
  나는 촬영할 때 절대 일기예보를 미리 보지 않는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그날 그날의 상황에 따라 찍는다. <남과 여>에서 비가 내리는 것도 어떤 상징적인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비오는 날 찍은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분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어 나도 무척 즐거웠다. 이 시간은 나 역시 여러분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 시간이다. 삶은 전쟁이고, 우리는 이 전쟁에서 싸울 힘을 얻어야 한다. 영화에서 그 힘을 얻기 바란다. 내가 영화를 만드는 역시 그 이유 때문이다. 책을, 음악을, 그림을, 그밖에 많은 예술들을 많이 접하고 많이 즐기며, 많은 예술가들을 만나기 바란다. 정치가보다 예술가를 만나는 게 여러분들의 인생에 훨씬 더 도움이 되고 더 즐거움이 된다.

_M#]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