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페킨파 | 와일드 번치

자유, 존재 그 자체를 갈구하는 남성들에게 여성은 문명, 곧 사회적 압박의 상징이다. 한편 사회적 안정을 추구하는 남성에게 여성은 언제건 그것의 이탈을 부추키고 위험을 주는 치명적 존재다. 모든 인간은 남성이고, 여성은 언제나 그들의 대상체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여성은 모순적인 이 존재와 저 존재를 오간다. 그리고 많은 여성들이, ‘대상체로서의 이러한 인식’을 스스로에게 투영시킨다. 라캉이 지적했듯 여성은 여성에게도 타인이다.


갱 영화와 서부 영화는 내게 혐오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모든 혐오는 저변에 두려움을 깔고 있다. 사회적인 최소한의 안전망이 거세된 서부의 공간은, 사회적 억압을 증오하면서도 그 억압이 만들어내는 보호장치에 몸을 기댈 수밖에 없는 약자에게 공포 그 자체의 공간이다. 갱은 그 보호장치를 해체하는 사람들이다. 남성 주인공에게 도저히 감정이입을 할 수 없었던 때, 나는 <대부> 시리즈를 극단적인 호러영화로 받아들였고 서부영화를 불쾌해했으며 갱영화를 두려워했다. 이제 나이를 먹고보니, 나는 오히려 여성보다 남성 캐릭터에 더 감정이입한다. 그것은 영화들이, 여전히 여성을 대상-객체로서, 남성을 모든 인간이자 주체로서 그리고 있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미국의 서부는, 지금처럼 조직화된 국가권력이 개인을 감시하고 통제하기 직전, 거대한 세계사의 소용돌이에서 ‘어쩌다 맞게 된’ 권력부재의 해방구이다. 미국의 서부는, 근대적 인간들이 ‘국가’를 다시 시작하는 공간, 혹은 그 직전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활짝 전개된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남자들은 저마다 총을 갖고 자신을 보호하거나 자신이 살기 위해 남을 쏘고,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몸을 의탁하고 치장을 하며 헤픈 웃음을 날린다. 위험하기 짝이 없고 약육강식의 논리가 법칙처럼 통하는 곳이지만, 근대적 의미의 국가, 그리하여 개인을 통제하는 절대권력은 없다. 이곳은 그리하여, 자신이 주체이자 개체임을 확고히 한 개인들이 낭만과 향수를 갖는 공간이 된다. 우리의 미국인 백인 갱들이 연방미군의 무기를 훔쳐 라틴계 반군에게 팔아먹는 것에서 전혀 도덕적 딜레마를 느끼지 않는 너무나 당연하다. 그리고 이것이, 현대의 평범한 미국 관객들에겐 불편한 – 혹은 해방감 가득한 – 감정을 부추키는 요인일지도 모른다. NC-17 등급은 폭력묘사 때문이 아니라 이러한 애너키한 에너지 때문일 것이다.


오래 전부터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이기에 그곳을 지켜야 한다는 앤젤의 가치는, 우리의 파이크 일당에겐 낯선 것이다. 그러나 앤젤의 가치는, 도저히 이해 못할 이유로 남의 땅을 배앗고 아울러 땅따먹기에 전념하는 미국이라는 국가나 멕시코라는 국가를 위주로 사고하는 방식보다는 훨씬 윤리적이다. 돌아갈 곳도 복무해야 할 가치도 없는 이들이 앤젤을 구하기 위해 죽음의 길을 선택하는 것은, 그리하여 한편으로는 자신은 결코 가질 수 없는 남의 가치를 제것으로 모방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국가와 사회가 강요하는 윤리가 아닌 개인이 실존 앞에서 선택한 윤리에 의한 행동이기도 하다. 그리고, 결코 국가나 철도회사(초기 자본) 등에 포섭될 수 없는, 우리의 ‘살아남은 자’인 딕 쏜튼은, 마을을 떠나 유랑하는 인디오들과, 또다른 살아남은 자인 사익스 영감과 함께 길을 떠난다. 물론 쏜튼이나 사익스는 알고 있다. 자신들의 방식이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오래 가지 못할 마지막 자유인의 길을 그렇게 선택한 것이겠지.


서울까지 올라가서 스크린으로 보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 요란한 총소리와 기관총소리를, 방음도 되지 않는 방에서 고작 TV에 딸린 스피커에 의지해 초라하게 들었다면 영화의 감흥이 이토록이나 강렬하진 않았을 것이다. 비록 요즘의 영화들이 그러하듯 채널을 분리한 사운드가 아닌 그저 모노 사운드라 할지라도, 볼륨이 한껏 올라간 채 극장 안을 꽉 채운 총소리 속에서 그들의 쓸쓸한 낭만과 고독한 실존을 마주하는 것은, 아직 현대인이 되지 못한 근대의 마지막 인간들의 마지막 뒷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오랫동안 잊고 있던 ‘진정한 영화보기의 즐거움’을 다시 일깨워주었다.

ps. 오래 전, 이 영화를 비디오로 보았을 때, 도대체 왜 이 영화가 걸작의 반열에 올라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땐 나도 어렸고, 국가니 사회니 하는 것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하지 못하였고, 스스로에게 주체가 되지도 못하였다. 그리고 그 비디오는 참 많이도 잘린 버전이었다. 이전에 봤던 영화에서 나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어제 본 <와일드 번치>가, 내 생애 최초로 본 <와일드 번치>이다.


ps2. 오프닝, 정말 멋지다. 언젠가 근사하게 베껴먹고 싶다.


ps3. “If anyone move, kill him.” 전율.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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