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와이즈 | 사운드 오브 뮤직

The Sound of Music

아아아 ㅠ.ㅠ

고전 헐리웃 시스템에서 그 시스템 특유의 방식으로 제작된 대작영화로는 거의 마지막 시기에 속하는 <사운드 오브 뮤직>에는 고전적이고 보수적인 영화가 갖추어야 할 모든 것들이 들어있다. 춤과 노래, 오해와 해소, 삼각관계와 마침내 행복한 결혼, 스릴 넘치는 위기와 탈출. 사랑과 음악과 종교와 애국심까지. 수녀가 되겠다는 못말리는 말괄량이 소녀가 맨날 사고만 치다가 사고만 치는 일곱 명의 아이가 있는 대저택의 가정교사가 되어 자유와 음악의 공기를 실어주고, 주인인 트랩대령과 사랑에 빠지고, 나치의 눈을 피해 스위스로 탈출하는 이 대작은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았고 한국에서도 예외가 아니었으며, 80년대까지도 명절마다 TV에서 방영해주던 단골 영화였다. 내가 국민학교 다닐 적 음악교과서엔 ‘도레미송’이 우리말로 적당히 번안되어 실려있었는데 요즘도 그런가? 뮤지컬 영화의 음악이 당시 버젓이 교과서에 실리는 예도 생각해보면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다. 하긴, <사운드 오브 뮤직>은 보수적인 군사독재 정부도 무척 좋아할 만한 매우 보수적인 영화이긴 하다. 보수적이거나 말거나 이 영화가 주는 영화적 쾌감, 특히 어릴 적, 혹은 나이가 좀 들었다 해도 영화란 매체를 처음 접하던 시기에 전해준 그 거대한 쾌감과 놀라움과 재미는 40년이 흘렀어도 결코 변하지 않는다. 충무로영화제에서 상영 당시 극장에 아이들이 그렇게 많았는데도 다들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영화를 봤던 걸 보면, 이 영화가 가진 엄청난 힘을 새삼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사운드 오브 뮤직>은 90년대 중반즈음엔가 우리나라에서 한번 극장개봉을 한 적이 있다. 아마도 필름이 디지털 보정된 버전이었을텐데, 향주에 젖은 충무로의 옛 영화 수입업자가 마침 필름이 보정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문화회관 등에서 개봉했다가 어느 정도 주목을 받은 것에 고무돼서였을 것이다. 혹은 <사운드 오브 뮤직> 때문에 <바람과 함게 사라지다>가 개봉했었나? 어쨌건 이 두 영화는 90년대 중반에 다시 깜짝 개봉을 했었고 나는 포스터를 보며 입맛만 다셨던 걸로 기억한다. … (올해도 느닷없이 <벤허>가 개봉했던 걸 보면 이런 일이 아주 가끔씩 있다.) 하여간에.

<사운드 오브 뮤직>은 내가 영화적 쾌감이라는 걸 처음 알게 된 영화이고, 처음으로 반한 영화 캐릭터가 있는 영화고, 처음으로 OST란 물건을 샀던 영화이기도 하고, 처음으로, 말하자면 ‘스탕달 신드롬’ 비스무리한 것을 경험해본 영화이기도 하다. 고1 때 음악선생님이 TV에서 하는 걸 녹화해다가 음악시간마다 잘라서 보여주었는데, TV에서 그렇게 자주 했어도 한번 보지 못했다가 그렇게 토막쳐서, 그것도 앞에 시작 30분은 날려먹고 보면서 그만 폰 트랩 대령에게 반해 가슴을 두근두근했고, OST를 사다가 테입이 늘어지도록 들으면서 노래 가사를 외웠고, 어이없게도 ‘Lonely gotherd’를 듣던 어느 순간 나도 이유를 알 수 없이 그치지 않는 눈물과 울음을 쏟아내며 환희에 젖었던 것이다. 아아, 폰 트랩 대령, 아마 내 가슴이 덜컹했던 순간은 무도회 밤, 키작은 프레데릭과 낑낑대고 춤을  추며 아이들에게 춤을 가르쳐주는 모습을 본 폰 트랩 대령이 장갑을 끼던 순간이었다. 민요대회 무대에서 에델바이스를 부르다가, 북받치는 감정 탓에 노래를 잇지 못하던 그 장면은 또 얼마나 가슴에 불을 질렀던가. (철의 남자가 ‘그런 식’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건 원래 섹시한 법이다.)

약 15년만에 영화 전체를, 그것도 필름으로, 커다란 화면의 극장에서 본다고 했을 때 내 가슴이 얼마나 뛰었을지 충분히 아시리라. 전날 미리 표를 발권할 때도 떨렸고, 연일 밤을 새우며 일하다가 딱 두 시간 자고 토요일날 나가서 영화들을 보고 돌아와 완전히 뻗어있었던 주제에, 일요일 아침 잠 속에서 갑자기 “사운드 오브 뮤직 보러 가야 돼!”라고 외치자마자 잠이 번쩍 깨었던… (이러고서 한달간 밤새우며 찌든 피로를, 그 다음 월, 화 이틀 동안 완전히 뻗어있는 것으로 보충했다지.) 극장 안에 앉아서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데, 정말 어찌나 심장이 뛰던지 심장이 터져버리는 줄 알았다. 그러다 마침내 시작. 타이틀 자막과, 배우와 스탭들의 이름 자막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노래의 주제곡들이 편집된 메들리가 나오고,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고요한 알프스 산맥. 사운드 없이 광활한 산들을 카메라가 주욱 훑고 있고, 마치 새소리인 듯 시작하는 목관악기 소리는 점차 ‘음악소리’를 갖추어가다가, 어느 순간 저 멀리 작은 점만한 마리아를 비추고, 카메라는 점차 마리아에게 가까이 간다… 그리고 마리아가 부르는 첫 노래는, 바로 ‘Sound of Music’이다. 그리고 이쯤 되면 나는 저절로 두손을 모은 기도 자세를 한 채 눈물을 펑펑 흘리며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는 거지. 물론 다른 사람한테 방해가 되니까, 소리는 안 내고 입만 벙긋벙긋.

The Sound of Music

민요대회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폰트랩 대령 가족

영화를 보다가, 나의 지금의 영화 취향마저도 이 영화가 얼마나 지배하고 있는지 깨닫고 살짝 놀랐다. 물론 나는 어둡고 격렬한 영화들도, 지적인 영화들도 정치스릴러도 사회파 감독들의 영화들도 좋아하지만, 이런 편안하고 보수적인 내용에 극도의, 그러나 소박한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해주는 영화에 한없이 약하다. 내가 고전 헐리웃 영화들에 그토록 애착과 천착을 가지는 건, 결국 내가 처음 영화적 쾌감을 경험한 영화가 <사운드 오브 뮤직>이었기 때문이다.

ps. 영화를 다시 보다가, 폰트랩 대령과 첫째 딸 리즐 사이의 특별한 애착관계를 느낀 건 나뿐만일까? 영화 촬영 후 혹시 둘 사이 연애소문이 나진 않았을까 궁금해졌다는. 리즐은 항상 막내 그레틀을 챙기면서 폰트랩 대령 옆에 꼭 붙어있고(위 사진에서도 그러하다), 리즐이 대령 옆을 지나가다 눈이 마주치자 대령이 리즐의 뺨을 살짝 두드리는 장면도 있다. 리즐과 좋아했던 롤프가 수도원 뒷쪽에서 폰트랩 대령과 그런 식의 1 : 1 대면을 한 것 역시 이유가 있는 것 아닐까 싶다.

ps2. 이 영화엔 나치를 빼고 악당이 없다. 남작부인마저도 좀 얄밉긴 해도 가족용 대작영화답게 지독한 꼼수를 부리거나 하진 않는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는 이런 영화였던 것이야… 흑.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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