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정 | 궁녀

(스포일러가 아주 많습니다. 특히 네번째 문단부터는 스포일러 지뢰밭.)

궁녀

매혹적인 소재, '장르 혼성'에 대한 착각과 오해

조선시대에 왕궁을 떠받드는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했음에도 이름 없이 사라져버릴 존재로 묶여 있었던 ‘궁녀’를 정면에 내세운 영화 <궁녀>는, 영화 내적으로는 탄탄하게 잘 만든 스릴러를 지향하며, 영화 외적으로는 그간 단 한 번도 주인공이 될 수 없었던 존재들을 피와 살과 감정과 이성을 가진 존재로 그려내는 정치적 올바름을 견지하려는 이중의 목적을 실현하려는 매우 야심만만한 영화다. 아마도 <궁녀>가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앞서 <다모>나 <대장금> 같은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그간 잊혀진 존재들이 적극적으로 복원되고 그들의 관점으로 역사가 서술되는 방식이 유행을 탔기 때문이겠지만, 사실 ‘궁녀’야말로, 기생을 제외하면 조선시대에 여성이 자신의 경제성을 유지하며 전문 직업인이 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면서도, 궁을 차지했던 왕에 가려 철저하게 ‘허드렛일을 하다가 어쩌다 왕의 성은을 입으면 출세하는’ 존재 정도로나 인식됐던 게 다다.

과연, 영화 <궁녀>는  내의녀 천령(박진희)을 내세워 궁에서 발생한 불경한 사건 – 자살 – 을 여러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방식으로 자살이 아닌 타살임을 밝혀내고 이에 대한 진실을 파내려가는 방식을 취한다. 사실 이 영화는 첫 시작부터 충격적이다. 궁녀는 모두 왕의 여자이며 왕만이 그녀들의 순결을 취할 수 있는 데다 그들이 갈 수 있는 곳과 갈 수 없는 곳, 일상이 매우 세세하게 통제되는 걸로 알고 있는 게 우리네 상식인데, 우리의 주인공 천령이 궁내의 뒷산에서 몰래 혼자 애를 낳고 그 갓난애를 유기하는 끔찍한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첫 시작부터 우리의 상식을 깨는 이 영화는 곧장 5년 후로 넘어가, 이번에는 궁궐 내에서 자살을 한 궁녀를 보여주고, CSI 뺨치는 과학적/합리적 의학지식과 수사력을 갖춘 내의녀 천령이 타살임을 작감하고 사건을 파내려가는 활약이 이어진다. 물론 여기엔 우리의 전통적인 상식(편견?)을 그대로 충족시켜 주는 인물들도 등장한다. 정렬(전혜진)은 희빈(윤세아)처럼 궁녀 신분에서 임금에게 성은을 입고 신분이 상승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인물이다. 죽은 월령(서영희)와 같은 방을 쓴 옥진(임정은)은 ‘입이 있으나 말할 수 없는’ 궁녀의 삶을 외형적으로 구현한다.

물론 이 영화는 저 끔찍한 시작에서부터 궁궐 안의 정경을 매우 폐쇄적으로 다루는 데다 그 궁궐 전체를 감싸고 있는 이상하고 불안한 어둠의 기운을 CG로 처리된 매우 음습한 검은 안개를 통해 종종 보여줌으로써, 공간의 폐쇄성과 공포스러움이 단순히 살인과 추적이라는, 과학고 합리의 세계에서만 머물지 않을 것임을 미리 예고해주고 있긴 하다. 수백 년 동안 여성에 대한 억압을 온몸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견뎌내며 살다가 죽어서도 억압을 받는 존재(타살된 것도 억울할 텐데 그 죽음도 숨겨지고 무마되는 것이 단적인 예일 터이다.)이며, 생존을 위해 스스로 그 억압을 확대재생산하기를 강요받는 궁녀가 갇혀있는 곳이라면, 귀신이 활개를 치고 초자연적인 힘이 과학과 합리를 압도해 버리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긴 하다. 실제로 수많은 스릴러들이 호러로 방향을 전환하며, 이 방향 전환이 언제나 잘못되거나 실패하는 것도 아니다.

궁녀

시작은 훌륭한 '스릴러'였으나...

그러나 잘 짜여진 스릴러로 시작한 이 영화에 과연 귀신의 존재가 필요했나? 도대체 그토록 바동거리며 궁 내에 파란을 일으키면서도 ‘진실’을 추구했던 천령, 여성의 억압과 강간으로 태어난 아이를 제 손으로 죽이고 묻어야 했던 천령이 그토록 쉽게 그들의 ‘억압의 확대재생산’ 시스템에 투항해 버린 이유란 무엇이란 말인가? 귀신이 활개를 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그 공간의 억압과 한, 그리고 과학과 합리의 무기력이 이 영화에서 제대로 표현됐단 말인가? 일개 내의녀가 희빈의 처소에 아무 제약없이 그토록 쉽게 드나들고, 아무리 희빈을 최측근에서 모시는 상궁이라 하나 그 상궁이 원자 책봉 이야기까지 도는 왕자를 안고 뒷산으로 도망치는 것이 과연 가능하단 말인가? 희빈이 방 밑으로 끌려들어가는 걸 아무도 본 자가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 많던 궁녀들은 다들 어디로 박혀버렸단 말인가?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감독의 착각대로 ‘플롯이 너무 탄탄해서’가 절대 아니다. 논리적인 설득도 빈틈이 많은데 정서적인 설득은 “전혀”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정서적인 설득이나 감정이입에는 전혀 관심을 두고 있지 않으면서 주인공의 행동이 변화하는 계기를 ‘정서적인 공감’ – 억압받는 여성들 사이의 동병상련 및  ‘아기’에 대한 모성애? – 에 두려 하다니, 이 아이러니를 성공적으로 설득하려는 시도가 이 영화 어디에 존재한단 말인가?

귀신을 전혀 등장시키지 않고도, 혹은 그저 초자연적인 힘의 존재에 대한 암시 정도만으로도 이 영화는 매우 훌륭한 스릴러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귀신의 농간에 의해 희빈도 아니고 일개 궁녀의 몸에서 난 아이가 결국 원자가 된다는 설정이 과연 그런 억압적인 질서에 대한 제대로 된 ‘복수’가 된단 말인가? 그 억압적 체계가 또다른 여성들을 계속해서 억압하고 있는데? 그 억압의 확대재생산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참여하며 ‘피의 결속’을 맺는데? 대단히 전복적인 척 제스추어를 취하지만 이 영화는 가장 악랄한 방식으로 여성 스스로 여성에 대한 억압을 승인해 버린다. ‘여자들이 더 무섭다’는 이 영화의 교훈이 과연 여성 억압적인 그 질서에 과연 얼마나 균열을 내는가? 귀신이 희빈의 몸을 차지해 버린들, 그게 저 견고한 시스템과 질서에 과연 얼마나 문제제기를 하는가? 이 영화에서 결국 죽는 이들은 모두 여성들이 아닌가? 이 영화의 결말은, 이 영화가 애초에 의도했다는 ‘지워진 자들의 존재를 보여준다’는 목적을 대단히 모욕한다. 이로써 우리들은 하나의 교훈을 분명하게 얻을 수 있다. 여성이 여성의 적이라는 건 남자들의 질서가 만들어낸 음험한 명제지만, 이 명제를 충실히 증명하려는 여성들은 언제 어느 때나 존재한다는 사실 말이다.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6 Comments

  1. 김남진도 죽었는데 ^^;
    박진희가 연기를 못하고, 지나친 폭력에다 어리버리한 결말…;;
    그래도 연출이 훌륭해서, 두번째 작품은 기대되오.

    • 김남진 얘기 나올 줄 알았다. 사고사였지. 그나마도 지가 재촉한 죽음이고. 김남진과 다른 사람들간의 죽음의 차이를 정말 몰라서 댓글을 단 건 아닐테고…

      시사회 후 감독의 지나치게 자신만만한 태도에서, 작품의 단점을 보완하는 겸손함을 못 보았다. 잘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 보수화돼서 그런지 모르겠다만, 영화가 너무 단숨에 엔딩으로 막 치닫는 것도 그렇고, 중요한 건 ‘긴 호흡’이란 생각이 드는데 김미정 감독의 연출에서 대단한 센스를 발견하기도, 긴 호흡의 잠재력을 발견하기도 그렇고. 아직은 첫 작품 하나 연출한 상태이니 이걸 깨끗이 씻어주는 두 번째 작품을 내놓으면 좋겠다고, 나도 생각한다.

  2. 김남진이 죽은 건 사고사로 보기 어려운데. 극중에서 박진희가 눈에 약물을 뿌렸고, 그로 인해 시력을 잃고 발을 헛디뎌 죽은 게 아닌가? 결과적으로 박진희가 김남진을 죽인 셈이 되는데…여기저기 궁녀들 건드리고 책임 안 지는 전형적인 가부장 바람둥이를 처벌하는 의미에서 일종의 여성관객 ‘서비스’가 아닌가 싶었네…

    • 나한테 방해되는 사람들은 다 죽인다, 라거나 작정하고 찾아가서 죽인 게 아니잖아. 그 상황은 분명히 박진희가 김남진한테 쫓기는 상황이었다고. 난 그런 의미에서 사고사라고 한 건데. 물론 김남진이 죽는 건 그런 ‘처벌’의 의미가 강하긴 한데 그건 감독의 의도이지 천령의 의도는 아니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반면 천령이 자신의 아이를 유기하는 것도 그렇지만 월령이나 대왕대비, 상궁의 죽음 등은 분명 극 속 인물의 ‘의도’가 들어가 있지. 옥진은 자살에 가깝고…

      원문장을 명확히 안 써놔서 그런 듯하긴 한데, 나는 타살로 죽는 이들이 모두 여자들이라는 얘길 하고 싶었어. 그리고 그 타살을 만들어내는 것도 여자들이지. 철저하게 궁녀들의 세계에 집중하기 때문에 죽이는 이나 죽는 이나 모두 여성이 될 수밖에 없는 면이 있긴 하겠지만, 사실 이들이 움직이는 것은 궁녀들 내부의 규율이라곤 해도 그 규율이 누구를 위하는가… 이게 비극인 건데, 마지막에 ‘무언의 피의 결연’은 결국 그 가부장 질서를 승인해 버리지 않느냔 말이야. 여성들의 얘기를 하는 것같지만 결국은 지독하게 남성화한 질서를 다시 한번 강조하는 영화밖에 되지 않는 것 같아서, ‘장르가 갑자기 변모한’ 것과 함께 내가 무지하게 화가 났던 부분이야.

  3. 천령이 마지막에 풀려난 뒤 희빈이 왕자를 안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모습은 가부장적 질서를 돌파하려고 했던 노력이 무산당하고 강제로 편입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는데. 되게 중요한 장면이지. 궁궐 내의 가부장적 질서를 돌파하기 위해 죽을 고비를 몇 번이고 넘겼지만 결국 같은 여자의 손으로 통합당하는…그 중요한 장면을 박진희가 ‘발연기’를 해서 말이지 ;;

    이 영화가 그닥 전복적이거나 여성주의적이라는 건 아냐. 그렇다고 가부장적 질서를 특별히 승인하는 것 같진 않아. 그 마지막 장면은 일종의 느와르적 관습으로 보이거든. ‘발버둥쳐봤자 별수 없다…’ ‘또 차이나타운이냐???’ 뭐 그런. 감독은 그런 의도를 가졌던 것 같은데, 느와르적 세계관이란 게 제스처로 흉내낼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거지…

    • 난 여성감독이 만들었다고 해서 무조건 페미니즘적 영화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여성이 됐건 누가 됐건, 이 영화는 ‘사료에는 단 한 줄로 기록되고 마는’ ‘거의 기록이 지워져버린’ 사람들을 불러내어 그들을 ‘존재했던 사람들’로 그려내고 있고, 감독 역시 그게 목적이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지. 그런데 지워진 이들을 불러내 화면에 그리는 그 ‘방식’이 자신의 목적에 스스로 먹칠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거지.

      마지막에 희빈을 바라보는 천령의 모습을 과연 그렇게 해석할 수 있을까? 천령이 갇혀있던 곳에서 나와 그 순간 희빈의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 자체가 궁녀의 규율이라는 걸 받아들이고 ‘피의 결연’의 일원으로서 인정받은 결과가 아니던가. 과연 정식 왕비도 아니고 희빈도 아닌 일개 궁녀가 생모이고 그런 생모의 몸에서 난 아들이 원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남성들의 질서를 비웃는 상징적 복수가 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정반대로, 그 질서에 그대로 편입하고 그 질서를 오히려 강고하게 확대재생산하는 것일 수도 있지.

      천령을 움직인 동력은 궁궐 내에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번번이 무마되어 궁녀 개인의 책임과 희생으로 끝이 나버리는 성폭력, 그리고 제손으로 죽일 수밖에 없었던 아이에 대한 회한이 아니던가. 김성령 상궁의 대사 그대로, “처음엔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더니 정작 말을 하라니까 입을 꼭 다물고 있는” 천령의 행동. 그러한 급격한 변화는, 사건의 중심에 ‘아기'(희빈이 낳았든 월령이 낳았든)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아기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결국 천령은 그 누구못지 않게 아기의 원자책봉이라는 거대한 음모를 가장 적극적으로 도운 셈이 되었어. 천령의 이러한 변화가 시나리오 상으론 설명이 되는데, 영화상에서 과연 설득이 되냔 말이지. 원문에서도 말했지만, 관객의 정서, 감정이입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그냥 마구 달리던 영화가 이 부분에서 관객의 정서적 설득을 요구하는데(여성 특유의 모성성, 피해자들의 연대, 기타 등등), 별로 설득적이지도 않고 관객을 배려하지도 않아. 그냥 여긴 모성성 코드니까 관객인 너희들이 이해해라! 수준이라고. 게다가 별로 논리적이지도 않았지. 어디 일개 내의녀가 희빈 방에 그토록 자유롭게 뛰어들어오나. 방이 그 난리통이 돼 있는데 궁녀 하나 보이지 않는 희빈방이라니.

      결국 아기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 스스로 그 질서의 수호자가 된 거고, 그 가부장적 질서를 승인했고, 이에 그녀를 ‘우리 편’으로 받아들인 궁녀들의 승인의식이 바로 ‘피의 결연’이 아닌가. 그것이 바로, 궁녀들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유일한 생존방식이라고 역설하는 건데,… 궁녀들이 그렇게 ‘입 닫고, 귀 막고, 눈 감고’ 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란 걸 천령이 몸으로 체득하는 과정이 바로 이 영화의 줄거리이기도 하지. 이거 어차피 실제 임금 제위 시기를 지시하지도 않고,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한 것도 아닌데, 그런 식으로 갈 필요가 과연 있는가… 그 와중에 결국 이 영화는 남성적 가부장제를 그 누구보다 공고히 하고 높이 받드는 시어머니, 그것도 아주 세게 나오는 시어머니와 같은 영화가 돼버렸어. 그러니 더욱 재수없는 거지, 나한텐.

      그리고… 이 영화에서 내가 가장 분노한 지점이 장르문법의 코드를 그냥 이어붙이면 그게 바로 ‘혼성장르’가 된다고 믿고 있는 그 어리석음이야! 난 그걸 누아르 코드라고 별로 생각하진 않지만, 정말 누아르 코드라 해도 거기서 누아르 코드가 나와선 안 되는 거라고. 스릴러에서 호러로 변신한 뒤 누아르식 패배주의를 덧붙인다? 과연 장르영화들의 그 장르코드들을 이것저것 끌어오는 것은, 당신이 말한대로 그냥 ‘제스처’만 갖고는 안 되지. 그 모든 걸 섞어 새로운 걸 보여주던가, 하다못해 매끄럽게 이어서 재미라도 줘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고. 전체 이야기는 분명 개연성 있고 흥미로운데 그걸 보여주는 방식, 연 출과 편집에 있어서 부실공사야. 그러면서 마치 이 영화가 대단히 잘 만든 걸작인 양 사람을 확 몰아가는 구석이 있지. 영화가 워낙 숨도 안 쉬고 마냥 달려나가니까. 천령이 그렇게 힘이 센 이유도 그렇게 마냥 달려가며 관객들을 천천히 음미할 시간 없이 몰아부치기 위해서가 아닐까, 란 생각이 드는군. 이것 때문에 영화가 마치 대단히 잘 만들어진 것마냥 착시현상을 주고, 심지어 강요하고 있는 것도 보여. 이건 많이 불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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