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레드포드 | 로스트 라이언즈

Lions for Lambs

레드포드가 정색을 하고 만든 정치영화. 강추!!!

<배가 번스의 전설> 이후로 무려 7년만이다. <보통 사람들>, <퀴즈쇼> 같은 걸작과 <호스 위스퍼러>나 <배가 번스의 전설>과 같은 평작을 내놓은 ‘감독’ 로버트 레드포드는 한국에서 ‘감독’으로서는커녕 ‘배우’로서도 잊혀질 뻔한 상태였다. <배가 번스의 전설> 이후 무려 7년만에 그가 감독과 주연을 겸하여 내놓은 영화 <로스트 라이언즈>는 이전 작품들과 달리 정색을 하고 우리에게 직접적인 질문을 던진다. “무엇을 할 것인가?”

영화는 크게 세 개의 축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야심만만한 공화당의 상원의원 재스퍼 어빙(톰 크루즈)이 40년 베테랑 ‘타임’지 기자 재닌 로스(메릴 스트립)를 불러 단독으로 인터뷰를 한다. 캘리포니아의 한 대학에서는 똑똑하지만 최근 수업에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하며 수업을 빼먹고 있는 정치학과 학생 토드 헤이즈(앤드류 가필드)를 스티븐 멀리 교수(로버트 레드포드)가 아침 일찍부터 불러내 교수 면담을 진행한다. 그리고 저 멀리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잇는 이란의 어느 산 정상에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작전이 진행되고 있다. 이 작전은 재스퍼 어빙이 창안한 전략으로, 알 카에다에게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잇는 지름길을 제공해주고 있다는 혐의를 물어 이란을 새로운 악의 축으로 선언하고 ‘소수정예’의 특수부대를 이란에 파견하는, 이른바 ‘이란 침략’의 성격이 강한 작전이다.

재스퍼 어빙과 재닌 로스의 씬, 그리고 스티븐 멀리와 토드 헤이스의 씬은 각각 두 배우가 서로 대립하며 설전을 벌인다. 만면에 웃음을 띄우며 탐색전의 질문으로 시작한 대화는 찌르고 빠지고 떠보며 때로는 첨예하고 신랄하게 때로는 솔직하게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고 공격하며 방어하는 말 그대로 ‘언쟁’이 되어간다. 메릴 스트립 대 톰 크루즈, 로버트 레드포드와 앤드류 가필드의 캐릭터 대결은 팽팽한 긴장감으로 숨쉴 틈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한편 이 두 장면 사이사이에 끼어드는 아프가니스탄 씬에서는, ‘언쟁’이 아닌 진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재스퍼 어빙이 주도한 전략이 이미 실행중인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은 영화 속 시간으로 딱 한 시간 동안 이루어진다. 이 동안 폭로되는 것은, 결국 어린 청년들을 사지에 방패막이로 내보내어 침략전쟁을 ‘인권’과 ‘평화’로 포장하면서 권력을 추구하는 정치인과,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면서도 시청율과 상업성의 노예가 된 채 정치인의 나팔수 노릇을 할 수밖에 없는언론과, 세상은 썩었으니 관심두어 무엇하냐며 일상의 쾌락과 즐거움에 탐닉하며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관심한 젊은이들과, 학생들의 학점을 상담해주며 고작 ‘출석하면 학점주마’는 달콤한 제안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는, 이상주의자이지만 무능한 선생이다.

Lions for Lambs

서로 물어뜯으면서도 공생관계인 정치인과 언론. 특종과 홍보/선전전의 사이.

그러나 비록 타지에서 개죽음을 당할 것을 예감하면서도, 국가로부터 아무것도 혜택받은 것이 없기에, 오히려 그러한 현실을 바꾸고자 아프간 파병군인, 즉 침략군인의 길이라는 아이러니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두 가난한 빈민촌 출신의 유색인종 학생인 어니스트와 아리안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자신의 제자들이기도 한 이들의 이 선택을 베트남 반전 시위에도 참여한 전력이 있는 스티븐 멀리가 말리지 못했던 것은, 그들이 자신의 신념에 따라 ‘적극적’인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이 선택한 길이 영예로운 평화군인이 아니라 침략군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러한 군인들은 가장 가난한 빈민층 출신의 유색인종 어린 청년들일 수밖에 없음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그 길을 선택한 것은, 자신들이 ‘민주주의에 참여’하는 길로 먼저 실천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로버트 레드포드 감독이 영화를 통해 던지는 질문도 이 두명의 선택을 통해서다. 세상이 썩었기에, 혹은 어차피 우리는 정치인들에게 ‘표’로 동원되기만 하는 존재이기에, 팔짱을 낀 채 무관심하게 방관을 하고 말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신념과 소신을 찾고 그것을 위해 가장 단순한 일이라도 실천에 옮길 것인가? 저기에 있는 저 악한 기득권이 아니라, 무관심하게 현실을 방관하는 우리가 바로 현실을 더욱 썩고 악한 자들이 마음대로 활개를 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아닌가?

헐리웃에서도 특히 진보적인 색채를 갖고 있다고 알려진 로버트 레드포드가 정색을 하고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것은 현재 미국이 국내에서는 예비경선을 치르며 특히 떠들썩한 상황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가 던지는 질문이 미국에서만 유효한 것은 아니다. 역시 연말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한국에서, 우리는 손쉽게 “그놈이 그놈”이라 외치며 선거에 입후보한 후보의 공약이 무엇인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들여다볼 생각은 하지 않은 채 ‘공휴일’이 될 그 날을 중심으로 한 여행계획을 짜곤 한다. 나아가, 어차피 현실은 썩었고 세상은 부조리하며 우리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응니 그저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한 토플과 고시 공부에 매진하고 연애 사업에 골몰하는 게 현명한 처세술로 각광받는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한 사회의 구성원들 각자의 적극적인 참여와 선택, 그리고 그에 따르는 책임을 지는 것으로 완성되는 시스템이다. 레드포드 감독은 굳이 어떤 선택이 옳고 어떤 사상이 더 올바르다 말하지 않는다. 그저 당신은 지금 어떤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선택을 할 것인가, 질문을 던지며, 당신의 결단을 기다릴 뿐이다. 비록 침략군인으로 먼 타지땅에서 권력에 의한 개죽음을 당할지라도 똑바로 일어서서 죽음을 맞는 것이, 어차피 실패하고 지더라도 도전해 보고 지는 것이 더 아름답지 않겠느냐고, 아리안과 어니스트의 선택을 통해 웅변한다.

Lions for Lambs

중앙에 어니스트와 라이언. <더블타겟>에서 귀여운 신참 FBI 요원으로 나왔던 마이클 페냐의 연기가 돋보인다.

권력을 가진 정치인과 힘을 가진 언론뿐 아니라, 평범한 각 개인들의 선택과 책임을 묻는 이 영화는 따라서 많은 이들에게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레드포드 감독이 던진 이 질문이야말로, 민주주의를 통치이념으로 내세운 사회에서 모든 개인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인 것은 사실이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ps1. 두 청년의 선택은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다.

ps2. 톰 크루즈는 블럭버스터에 출연하는 ‘스타배우’라 종종 무시되는 경향이 있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굉장히 좋은 배우이다.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성실하고 ‘정확한’ 연기를 선보인다. 그의 ‘정확한’ 발음을 듣는 쾌감도 꽤 즐겁다. 그가 맡은 재스퍼 어빙은 야심만만하면서도 거짓을 숨기고 있고, 일견 야비하면서도 정말로 자신의 조국을 위하는 세련된 정치가의 역할을 매우 훌륭하게 소화해낸다.

ps3. 프레시안무비에 이미 올라간 기사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One Comment

  1. 아항, 그러니까 우파 정치인들이 아니라 우파 쪽에 동조하면서 전쟁 지지, 참여했던 사람들의
    행동까지 전부 비판하는게 아니라 적당히 인정해줄 건 인정해주고 있다는 말씀이로군요.

    트랙백 보내려고 했는데 보낼 수가 없다네요. 또 휴지통으로 직행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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