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 | 색, 계

색, 계

Caution보다는...

전쟁 시에 적국의 장교에게 미인계로 접근하는 여자 스파이의 이야기는 그다지 새로울 게 없습니다. 우리는 나치 치하에서 가족을 잃거나 레지스탕스에 투신한 여성이 조직에서 하달한 임무를 띄고 악랄한, 혹은 권세 있는 나치 장교에게 접근하는 여자 스파이의 영화를 무척이나 많이 봐왔죠. 최근에만 해도 폴 버호벤 감독의 <블랙북>이 개봉한 바 있고요. 한국의 드라마에서도 해방 직후 남북의 적대상황을 배경으로 한 여자 스파이 이야기가 등장하곤 했는데, 경우가 약간 다르긴 하지만 김수임의 이야기는 드라마로도 연극으로도 이미 만들어진 적이 있죠? 이안의 영화 <색, 계>는, 얼핏 보면 서양에서 흔한 이야기를 그저 중국으로 바꾸어 만든 것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서양에서 이 영화에 대해 평이 그렇게까지 좋지 않았던 건 이런 이유였을 가능성이 크지 싶습니다.

한편, 미인계를 쓰는 여자 스파이의 이야기는 여자 관객의 입장에선 그리 맘 편하게 볼 수 있는 소재가 아닙니다. 물론 전쟁이란 공간 자체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인간의 신체가 철저하게, 그리고 폭력적으로 물화되는 곳이긴 합니다. 그러나 여성의 신체가 물화되는 방식은 좀 더 복잡합니다. 전쟁 시 적국의 영토를 점령하면 제일 먼저 하는 게 그곳 여자들에 대한 강간이죠. 특히 2차대전은 성범죄가 조직적으로 ‘관리’되었던 공간이기도 합니다. 적국의 여성들을 강간하는 거나 피식민지 여성들에게 소위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성노동을 강제하는 거나, 나아가 자신의 동족 여성들을 미인계를 위한 여성 스파이로 투입하는 것, 모두 여성의 성을 대단히 폭력적으로 착취하는 행위이며, 여성의 신체를 대리 전장터로 삼는 행위입니다. 여자 스파이의 경우 당사자의 동의가 있다는 게 다른 점(이건 매우 작고도 큰 차이이긴 합니다만)이긴 해도, 이건 더 큰 그림으로 보자면 결국 폭력의 희생물이 되는 데에 대한 동의이고, 그것이 여성의 성에 대한 착취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자스파이를 다루는 수많은 영화들에서 이 점은 매우 쉽게 간과됩니다. 그렇다면 이안의 <색, 계>는 과연 전통적인 다른 여자 스파이 이야기와 얼마나 다를까요?

<색, 계>가 독특한 점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화제가 되었다시피 남녀 배우의 파격적인 정사씬이고, 또 하나는 여자 스파이인 왕치아즈(탕웨이)가 연극배우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애초에 여자 스파이 이야기가 여성의 성을 폭력적으로 착취하는 행위이고 더욱이 이와 막부인의 섹스는 매우 사도-마조히즘적으로 이루어짐에도 불구하고 영화 제목에 ‘색’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영화에 쓰인 ‘계’라는 단어를 경계(boundary)의 그 ‘계’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사실 영어에서의 caution과 boundary는 모두 한자가 다를지라도 음은 같은 ‘경계’라는 말로 바꾸어 쓸 수 있습니다.

먼저 이안 감독은 전작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여성에게 배타적인 두 남자의 애정을 다루면서도 거기에서 소외되는 여성의 고통과 감정을 놓치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습니다. <색, 계>에서, 감독은 제목에 비록 보다 폭넓은 뜻을 가진(즉 남녀간 동의 하의 교접을 포함하는) ‘색’이라는 단어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이 행위가 자국민, 혹은 같은 편에 의한 성 착취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놓치지 않습니다. 왕치아즈가 우영감과 왕리홍 앞에서 자신의 고통을 폭로하고 두 사람은 매우 듣기 거북해하는 씬을 단적인 예로 들 수 있겠죠. 우영감과 왕리홍은 보다 프로페셔널하고 조직적이든 지극히 어설프고 아마추어적이든 간에 왕치아즈가 갖고있는 여성성을 물화시켜 이용하는 남성들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들은 매우 쉽고 ‘논리적’으로 막부인의 활약을 기대하고 또 치하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하달한 임무의 본질이 드러나는 순간 당황합니다. 왕리홍이 비로소 왕치아즈에게 애정을 드러내는 장면이 이 뒤로 붙는 것은, 왕리홍이 얼마나 ‘젊고 어리숙한’ 남자인가, 동시에 얼마나 ‘어설프고 치기어른’ 혁명 놀이를 하는 사람인가를 드러내는 것과 동시에, 왕치아즈가 겪고 있는 지옥이 그저 조직의 나사 하나가 감당하는 임무가 아니라 ‘인간의 고통’임을 깨달았다는 것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색, 계

처음 접근했을 당시

또 한 가지, 아마 여성관객들은 보다 잘 알겠지만, 왕치아즈가 막부인으로 변신한다는 것은 단순히 비싼 옷 한 벌을 걸치고 분 몇 번 찍어 바른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인간은 외모의 매우 소소한 부분들 하나하나까지, 그리고 작은 표정과 눈짓과 제스쳐 하나만으로 그가 어떤 사회적 상징을 몸에 두르고 있고 사회적 기호와 정체성과 철학을 갖고 있는지 드러내는 한 폭의 거대한 그림과 같습니다. 말하자면 눈 화장 한 번, 하다못해 손톱을 다듬은 모양과 솜씨까지도 그 사람의 계급과 이제껏 살아온 모습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죠. 여자 경험이 많은 이(양조위)가 과연 처음에 순순히 막부인을 믿었을까요? 기억하시겠지만 막부인이 맨 처음 이와 이의 부인에게 접근할 때에 입은 옷은 베이직 줄무늬의 펑퍼짐한 치파오를 입고 같은 천으로 된 모자를 씁니다. 그런데 뒤로 갈수록 그녀가 입은 옷은 몸의 곡선을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살을 비출 듯 말 듯한, 레이스 처리가 된 보다 화려한 치파오가 됩니다. 영화 중간엔 그녀가 공들여 눈썹을 그리는 장면도 삽입이 되죠. 한편 이와 막부인의 관계가 최고조에 이르른 카페씬(다이아몬드 반지를 찾으러 가기 직전)에서 그녀가 향수를 꺼내 바르는 장면도 삽입이 돼 있습니다. 저는 이가 처음에 막부인을 굉장히 많이 경계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갑자기 나타난 낯선 얼굴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돈 많은 마나님’으로 보기에 석연찮은 미세한 상징들과 기호들이 그녀에게서 많이 드러났을 것이라 생각해요. 상해에서 다시 만났을 때 두 사람이 비로소 연결되는 것도, 물론 이가 망설이던 와중 전근 때문에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서이기도 하겠지만, ‘남편의 사업이 망해서 고생을 했’다고 설정된 막부인의 설정과 그녀의 외면의 기호들이 그제서야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었다는 거죠.

나아가 이 두 사람은,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서로 목숨을 위협하는 적 대 적으로 만납니다. 두 사람이 속한 세상은 결코 조금도 겹쳐질 수 없는, ‘경계’가 뚜렷한 극단의 두 세계입니다. 이 두 사람이 그토록 섹스에 집착하는 이유, 그리고 이안의 카메라가 그토록 집요하게 두 사람의 섹스를 보여주는 이유는 그것입니다. 이 두 사람에게는 섹스의 순간만이, 자신에게 드리어진 각종 사회적 상징과 경계를 거둬내고 두 사람의 세계가 만나는 접경지역, 즉 바운더리이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의 섹스는 바로 두 세계가 만나는 ‘경계지역’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들의 첫 섹스는 엄밀히 말해 섹스가 아니라 강간이며, 옷을 미처 벗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됩니다. 두 사람이 완전히 옷을 벗고 섹스에 몰입하는 것은(그럼에도 이후의 관계 역시 섹스라기보단, 강간에 가깝다고 여겨집니다만) 그 다음부터죠. 그러나 아시다시피 인간은 옷을 벗고 있는 시간보다 입고 있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정체성과 갖가지 ‘계’를 벗어나기 위해 그토록 ‘색’에 몰입하지만, 그럼에도 결국 ‘색’이 주는 해방의 시간이 짧기 그지없으며, 색의 그러한 폭발적인 분출 역시 그토록 계가 강하기에 더욱 강렬해지는 것이고, 다시 색이 강하게 분출될수록 이들을 얽매고 있는 계의 구속력 역시 더욱 강해집니다. 두 사람은 각자가 자신의 몸에 두르고 있는 ‘계’를 결코 넘어설 수 없습니다.

색, 계

조심하세요, 사람 잡는 눈입니다. (현실에선 절대 만나선 안 될 남자.)

아내에게도 선물하지 않았던(“노는 데에 방해만 된다”) 다이아몬드 반지를 그녀에게 선물할 때, 그녀는 이 계를 뛰어넘기로 결심합니다. 그들의 섹스가 그토록 격렬했던 것처럼, 색이 계를 이기는 듯 보이지만, 위에서 말했듯, 색이 그토록 강렬했던 것은 계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결국 국가를 기준으로 한 ‘계’에 더욱 강하게 귀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애초에 막부인에게 이것은 ‘연극’ – 거대한 즉흥극이기 때문입니다. 배우와 캐릭터는 무대 위에서만, 그것도 매우 짧은 순간에만 혼연일체가 될 뿐, 애초에 서로 다른 존재입니다. 왕치아즈가 아무리 막부인의 역할에 몰두한다 해도, 막부인은 애초에 처음부터 가공의 인물이며, 왕치아즈가 맡은 거대한 즉흥극의 캐릭터일 뿐이죠. 이와 막부인 사의의 계는 왕치아즈의 육체와 정신에 아로새겨진 왕치아즈와 막부인의 경계 위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색의 경험이 아무리 강렬한다 한들, 온몸을 찢는 고통이라 한들, 인간의 관념과 상징의 세계가 주는 계를 지워버릴 순 없다는 것이 결국 이 영화의 결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그렇죠.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 자체가, 아무리 열렬한 사랑 끝의 결혼이라 한들 그 사랑은 우리가 인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계급과 출신의 기반, 그 테두리 안에서 작동하고 있기 마련입니다. 인간이 ‘사회’ 안에서 잘 살아내는 방법은, 자신이 속한 세상의 경계를 잘 파악하고 통제하며 이용할 때입니다. 왕치아즈는 결국 캐릭터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연극에 삶을 잠식당한 비련의 여배우가 된 셈입니다. 그리고 탕웨이는 왕치아즈와 달리 자신의 캐릭터를 매우 적절하게 잘 통제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안 감독은 우리가 접근하기 매우 쉬운 영화들을 만들곤 하기 때문에 종종 과소평가됩니다. 이안이 가장 잘 만드는 분야도 멜러드라마죠. 물론 그는 매우 아름다운 무협 장면이나 전쟁씬을 찍기도 했습니다만, 그 무협 장면 역시도 캐릭터들의 성격과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하는 장면들이고, 그렇기에 더욱 아름답고 절절한 장면들이 되곤 합니다. 그리고 그 영화들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두 사람이 비로소 서로에게 마음을 여는 순간이 되곤 했죠. 하지만 전 이안 감독이, 말하자면 ‘카메라를 든 인류학자’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것도 매우 솜씨가 뛰어난. 그는 인간이란 존재를, 그 인간이란 존재가 사회를 이루고 그 안에서 각종 관습과 문화에 둘러싸여 보이는 특정한 행동과 말의 패턴들을 매우 흥미롭게 파고들고, 그 안에서 인간의 심리들을 훌륭하게 분석해내고 이것을 기막히게 재현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가장 외적으로 – 직설법으로 – 드러난 것이 <헐크>였죠. (전 그 영화가 미국의 코믹북 슈퍼히어로와 그에게 열광하는 특유의 미국 문화에 대한 인류학 보고서라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그는 그저 ‘재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독특한 이안식 서정과 아름다움을 불어넣을 줄 압니다. 진짜 예술가죠. <색, 계>는 <헐크>보다 훨씬 내면적인 시선으로, ‘국가’를 기준으로 나뉜 극과 극의 상징과 관념의 기호를 몸에 두른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마주침과 겹칩을 묘사해내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파격적인 섹스씬에서 “제기랄, 국가와 신념 따위!”라는 생각을 했던 제가 너무 불경하거나 반민족/반국가적인 인간인 건진 모르겠지만, 아마도 두 사람이 전혀 다른 시공간에서 만났다면, 전혀 다른 관계를 발전시켰거나, 혹은 전혀 만나지 않아도 되는 사이가 됐을 거라 생각합니다. 둘 중 어느 쪽이든 이 영화 안에서의 만남보다는 덜 괴롭고 덜 고통스러웠을 겁니다. 다른 배우가 맡았다면 결코 우리에게 관대함과 이해를 끌어낼 수 없었을 무서운 캐릭터인 이를 연기한 양조위의 연기와, 신인이라 도저히 믿기지 않는 탕웨이의 매우 뛰어난 연기가 너무나 잘 어우러진 가운데, 이안은 이제껏 그가 만든 그 어떤 영화들보다도 가장 보편적인 슬픔과 애잔함을 이토록 파격적인 화면 속에 담아내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이 영화가 이렇게 관객을 끄는 건 단순히 섹스씬 때문만은 아닙니다.

ps1.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영화음악 CD, 가격이 두 배라 해도 전혀 돈이 아깝지 않다.

ps2. 양조위야 원래 멋진 배우이지만 탕웨이, 신인이라면서 어찌 저런… 연출 전공이라지. 인터뷰 보니 똑똑하기까지. 노래도 잘 하고 춤도 좀 췄을 것 같은데, 예쁘고 재주많고 똑똑하기까지 하다니 세상 너무 불공평해.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9 Comments

  1. 이안 영화를 과소평가하는 자들에게 뭐라 톡 쏴주고 싶기도 하지만
    뭐 그냥 그러고 살라 해야지 어쩌겠나 싶네요. 카메라를 든 인류학자,
    참 멋진 표현입니다.

    • 워낙 거대담론에 익숙한 사람들은, 개인과 개인 사이 지극히 사적인 멜러를 연출하는 것을 일단 폄하하고 보는 습성이 있습니다. 국가, 사회, 인간의 본성, 이런 걸 얘기해야 뭔가 대단한 예술가이고, 개인과 개인 사이의 미시적이고 섬세한 무언가를 묘사하면 좀 그릇이 작은 걸로 본달까요. 하지만 ‘서사’라는 것 자체가, 그 거대한 이야기들이 구체적인 개개인에게 어떤 식으로 구체성을 띄고 작용하는가를 보여주는 중첩적인 얘기 아니겠어요? 사실 이안만큼, 대중적이고 상업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해주면서도 얘기의 핵심을 놓치지 않는, 이런 사람도 드물죠. 언젠가 이안의 전체 작품세계가 완전히 새롭게 다시 조망되는 날이 있을 겁니다.

  2. “현실에선 절대 만나선 안 될 남자” ..정말입니다 -.-
    그 반지장면에선 정말이지, 저라도 목숨 내어 주겠더라고요;;;

    이 영화 조조로 보고 나서 하루종일 암것도 못했답니다. 그리고 며칠간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

    • 전 영화를 두 번 봤는데, 첫번 째는, 심상하게 본 뒤 엔딩자막 올라갈 때 갑자기 울음이 터지더라고요. 그 뒤로 계속 < , 계> ost를 틀어놓고 멍하니 지냈어요. 몇 번 울 뻔도 하고, 정말 울기도 하고요. 두번째로 다시 보니까 좀 나아지더군요.

  3. 탕웨이는…
    현실에서 꼭 만나보고 싶은 여자더군요^^

  4. “사실 영어에서의 caution과 boundary는 모두 한자가 다를지라도 음은 같은 ‘경계’라는 말로 바꾸어 쓸 수 있”다는 표현 정말 멋지네요. 저도 영화보고 한동안은 왕치아즈 테마를 반복해서 들었답니다.

  5. tango / 저도요… 탕웨이… 모처럼 정말 근사한 배우를, 여자를, 발견했습니다.

    delius / 아무래도 전 그 ‘계’를 caution보다는 boundary로 보는 게 영화가 제게 더 잘 다가왔습니다. 어쩌면 이안이 애초에 의도한 ‘계’는 그 둘 다를 가리키는 중의적인 표현인데 영어로 옮겨지는 와중에 의미가 대폭 축소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알렉상드르 데스쁠라, 오랜만에 영화음악계에 젊은 거장이 나타난 것 같습니다. ^^

  6. 안녕하세요 N.님
    저는 연세대학교에서 HCI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연구원으로 현재 팀블로그에 대해서 연구중입니다. 해서 팀블로그 사용중이신 분들에게 팀블로그 사용경험을 바탕으로 설문을 좀 부탁드리고 싶은데, 가능할런지요? 제 이메일 (sunseed@yonsei.ac.kr)으로 연락부탁드리겠습니다.
    팀블로그 사용자 분들이 아직 많지 않으신데다, 영진공 팀 블로그가 훌륭히 운영되고 있고 개인적으로도 흥미로워서 N.님의 설문이 아주 소중하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p.s. 이런 연구를 하다 보니 좋은 블로그를 알게 되어 참 좋네요 저도 영화 참 좋아하는데.. 색계 뭔가 가볍지 않게 마음에 묵직하게 여운이 남았었는데 N.님의 포스트 보니 또 새롭네요. “카메라를 든 인류학자”라는 표현은 정말 감칠맛 나는데요.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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