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라르티고 | 결혼하고도 싱글로 남는 법

Prete-moi ta main

로맨틱 코미디의 외피는 썼으나...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있어 ‘위장결혼’은 매우 빈번하게 쓰이는 단골 소재였습니다.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가족이, 사회가, 나아가 국가가 비혼을 일종의 (도덕적) ‘범죄’로 여기고 결혼을 종용하던 시대나 문화권일수록 위장결혼은 갈등과 긴장감, 혹은 코믹한 해프닝을 유발하는 매우 강력한 도구가 되죠. 바꿔 말하자면, 위장결혼이라는 건 인간이 가족을 이루는 형태, 그 중에서도 가장 전통적인 방식인 일남일녀의 결합이 얼마나 억압적인가, 혹은 나아가 이 결합을 둘러싼 갖가지 부수적인 것들이 얼마나 억압적인 조건들을 전제하는가를 폭로하면서 영화에 긴장과 스릴감과 코미디까지 제공해 줄 수 있는 퍽 유용한 도구입니다.


물론 위장결혼이라는 소재가 꼭 억압적인 결혼에 대해서만 쓰이는 건 아닙니다. 시대가 변하고 사람들이 소위 인류 존속의 신성한 의무에서 해방되자, 위장결혼은 또다른 곳에서 강력한 효과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제라르 드파르듀와 앤디 맥도웰이 주연을 맡았던 <그린카드>나 최민식, 장백지 주연의 <파이란>에서처럼, 보통 소위 미등록 이주노동자와 본토인간의 위장결혼을 다루고 있습니다. 국가 단위가 인간 개인에게 제기하는 어떤 억압과 제약을 피해 결혼한 사람에게 주는 특혜를 받기 위한 속임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혼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했든, 그리하여 가족의 가부장에게 억압을 받아 억지로 결혼을 해야 하든 아니면 사회적 제도 안에서 결혼으로 인해 얻는 이익을 노리고 편법/불법을 자행하는 것이든(위장결혼이 ‘불법’이라고 하는군요.), 두 형태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인간사회가 비혼보다 결혼에 더욱 특혜를 주고 있으며, 강력한 억압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최근 국내에서도 소리소문 없이 개봉한 <척 앤 래리>의 경우 논쟁적인 지점들을 건드리는 부분들이 꽤 있기에(동성간 결혼, 호모포비아 등) 영화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흥미로운 지점이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산 로맨틱 코미디인 <결혼하고도 싱글로 남는 법>은 어떨까요. 이 영화는 2006년 프랑스 개봉영화 중 헐리웃 블록버스터들을 모두 제치고 흥행 1위에 올랐다고 합니다. 프랑스는 미국에 비하면 훨씬 관대한 정책을 펴는 나라입니다. 최근 들어와 보수화됐다고는 하지만, 이민자에 대해서도 사실혼이나 동성혼에 대해서도 적어도 미국보다는 진보적이지요. 그런 곳에서 위장결혼이라는 소재가 힘을 발하려면, 주인공들이 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보다 절박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이를 관객에게 적절히 설득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결혼하고도 싱글로 남는 법>은 위장결혼이란 소재와 이로 인해 발생하는 해프닝과 갈등을 그저 클리셰로 사용하고 있고, 그 어떤 흥미로운 진전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꽤나 성차별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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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철딱서니없는 이기적인 목적으로 위장결혼 소동을 일으키는 루이스


루이스(알랭 샤바)가 위장결혼를 하려는 건 여자들로만 이루어진 가족들의 등쌀에 못 이겨서입니다. 엠마(샬롯 갱스부르)는 돈 때문이지요. 아이를 입양하는 데에 더 도움이 되리란 걸 기대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랬다면 처음부터 루이스에게 그걸 요구조건으로 내세웠겠지요. 척 보기에도 그렇지만 루이스의 이유는 매우 철딱서니없고 이기적입니다. 사실 엄마와 여자형제들이 루이스에게 결혼을 강권하는 것도 한편 이해가 됩니다. 루이스는 고고한 싱글남의 삶을 살고 있지만 갖가지 가사일을 엄마와 여자형제들에게 미루고 있는 형편입니다. 심지어 따로 사는 주제에 지 빨래를 결혼한 여동생에게 미루고 있는 형편이에요. 처음 결혼 얘기가 나오는 것도 당연하게 세탁을 요구하는 루이스에게 여동생이 짜증을 내면서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한편’으로만 이해가 되는 것은, 이 여자형제들 역시 여자가 남자의 음식을 챙겨주고 세탁을 해주는 걸 너무 당연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자형제들이 루이스의 결혼을 서두르는 것은, 루이스 뒤치다꺼리를 루이스가 얻을 새 여자에게 미루기 위해서니까요. (왜 루이스에게 직접 하라고 하지 않는 거죠?) 게다가 이런 루이스의 모습을 묘사하는 코미디 장면에서는 ‘여자들에게 쩔쩔매는 한심한 남자’라는 시선이 보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루이스가 갈등을 해결하고 난 후인 영화의 말미에 ‘여자들이 주도권을 가진’ 집안 대소사 의결기구인 G7회의는 이 집안 남자들의 회의 의결기구인 M4로 대체되는군요.


반면 엠마는 너무나 순종적이고 자기주장이라곤 없는 게, 사람 냄새가 안 나요. 엠마가 정말 사람으로 보였던 장면은 물감냄새 난다고 방방 뜨는 루이스에게 화를 내는 장면과, 루이스와 위장결혼에 대해 계약서를 쓰면서 가격 협상을 하는 장면뿐입니다. 아무리 피고용인이라곤 해도, 사랑스러운 여자와 밥맛 여자를 그저 요구받은 대로 완벽하게 해내고, 아이 입양 문제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도 그저 수동적으로만 대처하다가 루이스가 개입하면서 루이스한테 고대로 끌려갑니다. 엠마는 그저 여자를 남자들이 자기 머릿속 판타지에나 등장시킬 법한 그런 생기 없는 존재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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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딩, 그러나 꽤 불쾌한 뒷맛이 남는.


물론 저 철딱써니 없는 루이스가 변모하는 것은 엠마가 입양하고자 하는 아이의 모습이 담긴 비디오를 엠마 몰래 보고나서입니다. 하지만 그래서 변한 게 결국 뭔가요. 가족들에게 당신들이 좋아하든 말든 엠마와 결혼하겠다는 선언입니다. 그리고선 남자들의 회의를 정착시켜 여자들에게 빼앗긴 가부장의 권위를 회복하는 거로군요. 과연 그런 게 성숙인가요? 저밖에 모르던 놈이 애와 여자한테 선심 한번 베풀어준 것 말이에요. 영화의 엔딩에서 보면 양육에 있어 루이스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나오는 게 없어요. (역시 이 집안에선 양육이 여자들 책임?) 그래서 루이스가 희생한 게 뭔데요? 엠마가 가족들에게 그토록 미움받는 존재가 된 것도 실은 루이스의 요구조건 때문이었는데 말예요.


대부분의 로맨틱 코미디는 당대 남녀의 욕망의 충돌을 다루고 있고, 그럼에도 가부장적 결론이 나기 마련이지만, 적어도 그런 가부장적 로맨틱 코미디라도 양심상 여자에게 어느 정도의 판타지는 제공해주는 법이에요. 하지만 이 영화는 별로 그렇지도 못합니다. 철저하게 이기적인 남성의 욕망에만 신경쓸 뿐이죠. 이렇게까지 뻔뻔하면 안 되는 거죠. 한국보다 아무리 여권이 신장된 프랑스라고 해도, 역시 전세계 남자들은 똑같은가 봅니다. 이제 현대사회의 여성들은 예쁘고 몸매도 훌륭하고 똑똑하고 취향과 문화소양도 고급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집안일도 잘해야 하고 밖에서 돈도 벌어와야 합니다. 내참. 제가 그런 조건 가졌으면 차라리 혼자 살지 결혼 안 해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라오지만, 그저 한 마디만 내뱉을 뿐입니다. 그놈의 사랑이 뭔지.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2 Comments

  1. 네.. 프랑스도 별반 다를 것 없지요. 물론 한국보단 낫겠습니다만 -_-
    유럽의 다른 나라들은 모르겠어요. 헌데 프랑스는 여자는 여자답게~ 그런 거 강하다고 들었어요.

    • 헛, 그렇군요. 어쩐지 샬롯 갱스부르가 연기하는 엠마, 참 다소곳하고 여성스럽고, 그렇더라고요. 그에 반해 루이스의 여자 가족들은 뭐라 해야 하나, 다소 우악스럽게 묘사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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