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누도 잇신 | 메종 드 히미코

일본영화들(뿐 아니라 일본 문화 전반)은 여전히 내게 낯설고 두렵다. 내가 본 일본영화들이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꿈>을 제외하곤 너무나 평범하고도 빈약하게도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몇 편과 <춤추는 대수사선> 정도고, 일본영화에 대한 대단히 얄팍한 편견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대체로 선이 얇고 밋밋하다는. (물론 결코 그렇지 않은 감독들이 많다는 걸 머리론 알고 있지만, 그놈의 한번 박힌 편견은 왜 그리 깨기 어려운지.) 때문에 내가 방문하는 블로그마다 “오다기리 죠”의 색기(흐~)를 칭찬하는 글이 올라있지 않았다면, 나는 굳이 저 멀리 서면 CGV까지 이 영화를 보러가는 모험은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게 아무리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하 <조제>)의 감독 이누도 잇신의 영화라 해도. (참고로 나는 <조제>를 ‘업무상’ 꽤 여러 번 봤으며, 참 좋아한다. 하지만 ‘일본영화’에 대한 불신은 <조제> 감독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를 쌓기엔 너무나 강했다.)


여러 사람들이 말한 대로, 나 역시 이 영화가 <조제>보단 좀 그렇더라는 데에 동의한다. <조제>는, 내가 일본영화에 적용시키는 그 편견(밋밋 잔잔 담백)이 오히려 더없이 잘 어울리는 영화였다. 하지만 <메종 드 히미코>로 오면, 뭔가 좀더 생동감 넘치는 연출이 필요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그 생동감을 이누도 잇신 감독은 ‘귀여운’ 장면들로 돌파해 보려 한 것같지만, 글쎄, 내겐 한 5% 쯤 부족으로 느껴졌다. 반면 같이 본 J.가 무지하게 좋아하는 걸로 봐선, 결국 이건 작품의 완성도보다는 스타일에 대한 선호도 차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J.는 나와 달리 일본영화에 별 거부감이 없다.)

역시 듣던대로 오다기리 죠는 사람 거품 물기에 충분할 정도로 매력 만빵이고, 시바사키 쿄우에게 ‘못생기고 돈 문제 복잡하단’ 딱지는 얼토당토않게 보인다. 아도니스님의 “결국 미소년에 환호하는 야오이 문화일 뿐 동성애 영화 아니다”라는 지적도 일부 충분히 수긍이 간다. 하지만 이 영화가 <조제>보다는 덜하다 해도 여전히 매력적인 것은, “메종 드 히미코”라는 그 공간의 매력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품고 있는 이상 중의 하나가 아닐까. 비슷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모여 평화롭게 사는 공동체. 그런 공동체에도 엄연히 싸움과 갈등이 있고, 도저히 친해질 수 없는 인간, 나아가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인간이 하나둘은 꼭 존재하고, 결국 애’증’과 상처를 안게 될 것이라는 것, 그 공간은 궁극의 이상향이라기보다 비슷비슷한 루저들의 ‘도피처’, 그리하여 ‘퇴행의 공간’이 되기 쉽다는 것, … 등등을 너무나도 잘 알지만. 이 영화에서 보이는 그 따뜻함, 그 벅참, 이란 결국 ‘영화 속’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은 잘 알지만… 그럼에도, 영화를 통해 그런 백일몽을 꾸는 시간을 잠깐 갖는 것도, 나쁘진 않지 않은가.

ps. 서면 CGV는 서면역보다 범내골역에서 더 가깝다는 정보를 오늘 입수했다. 다음 인디영화관 방문은 조금 더 수월해질 듯하다.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