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시스 로렌스 | 나는 전설이다

I Am Legend

원작소설 강추!

워낙에 전설이 돼버린 원작소설을 영화화하는 건, 감독의 입장에선 잘해봤자 본전인 프로젝트일 수 있습니다. 그 어떤 작품이든지 소설이 더 낫다는 소리를 듣기 마련이며 영화라는 매체 자체의 특징에 의거애 어쩔 수 없이 각색이라도 하면 원작을 훼손했다며 난리 난리가 나는 게 일반적인 풍경이기도 하죠. <대부>처럼 원작을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프레스티지>도 일각에선 소설이 낫다고 하고, 또 일각에선 그따위 소설을 이만한 영화로 만든 게 그나마 놀란이 붙어서라고도 하더군요.) 아마 이 영화가 기자시사를 개봉 전날, 그것도 오전 10시에 잡은 것도 그런 이유가 클 겁니다. (전 결국 못 갔습니다.) 기자들이야 워낙 스노브들이 많아서 무조건 원작보다 못하다고 떠들어댈 것이 분명하니까요. 전 솔직히 이제 <콘스탄틴> 하나 만든 프랜시스 로렌스가 대체 뭘 믿고 저 프로젝트를 냉큼 맡았을까, 좀 어이없어 하기도 했고, 예고편이 마침내 공개됐을 땐 “나의 <나는 전설이다>는 이렇지 않아!”라며 울부짖었습니다만, 막상 영화를 보고나니 영화 버전이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두고두고 다시 보거나 하진 않겠지만, 일단 본 2시간만큼은 즐거웠습니다. 물론 원작소설이 2백만 배쯤은 더 훌륭합니다만, 그 원작은 사실 그 어떤 감독이 연출을 해도 제대로 옮기기 힘듭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 영화는 [나는 전설이다]를 영화화한 것이 아니라, [나는 전설이다]의 설정을 빌어 그냥 다른 영화를 만든 것에 불과합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이 소설의 그 엄청난 혁명성과 파괴적 힘은 그것이 문학이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이 큽니다. 원작소설 그대로 영화화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물론 솜씨가 좋은 감독이 맡는다면, 중반 이후까지도 엄청난 시각적 쾌감과 이야기적 즐거움을 전달할 수 있을 겁니다만, 전 이 소설이 위대한 것은 그 엔딩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문자로 맨 마지막에 ‘나는 전설이다’라고 외치는 게 적혀있는 것과, 영화에서 주인공이 ‘나는 전설이다!’라고 외치는 건 다르기 마련입니다. 당연히, 좋은 감독이라면 영화라는 매체 자체의 특징 때문에 소설의 상당 부분을 각색할 수밖에 없는데, 원작 전체 기둥을 살리겠답시고 부분부분 손을 댔다간 오히려 그 안에서 길을 잃기가 쉬워요. 차라리 원작에서 아주 인상적인 어떤 한 요소를 끄집어내어 그걸 극대화하고, 이걸 위해 다른 부분들은 과감하게 포기하는 게 더 나은 길일 수도 있습니다. 큐브릭이 종종 이런 방식을 취했었죠. 그리고 프랜시스 로렌스가 취한 방식도 바로 이것입니다.

로렌스가 끄집어낸 것은 ‘인간이 사라진 곳에서 홀로 남은 생존자의 절대 고독’이라는 요소입니다. 이를 좀더 ‘고독한 현대인’의 정서에 맞추기 위해 원작에선 LA였던 공간배경을 뉴욕으로 옮겨왔고요. 아주 뛰어난 감독이라면 따사로운 햇살과 야자수 아래에서 하와이언 셔츠를 입은 남자의 고독이 더 절절하단 것을 잘 보여줄 수도 있겠지만, 이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경지는 아니죠. LA의 빌딩숲과 뉴욕의 빌딩숲은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고, 그 빌딩숲이 폐허가 돼버린 장관은 뉴욕이 더 잘 어울리는 게 사실이에요. 기본적으로 차가운 도시니까요. (워싱턴 같은 도시도 나쁘진 않습니다만. 아마 <다이 하드 2>의 배경이 워싱턴DC였죠?) 그리고 이 절대고독은, 꽤 으스스하게 잘 표현된 편입니다. 윌 스미스가 혼자 황폐화된 뉴욕 거리를 혼잣말을 하며 돌아다니는 게 영화의 반 이상인 만큼 많은 이들이 지루하다고 아우성을 치던데, 애초에 이 영화가 노린 것 자체가 절대 고독인데 그의 모험이 그렇게까지 지루한가요?

I Am Legend

절대 고독, 과연 상상이나 할 수 있나요?

기존의 생존영화라면 기본 의식주도 없는 상태에서 인간이 진화의 단계에서 어느 순간 버렸던 동물의 지혜를 다시 찾아 옷과 음식을 해결하는 것에 상당한 러닝타임을 소비하겠지만, 솔직히 지금은 워낙 풍요로운 대량생산 사회고 워낙 기술이 발달한 현대 도시사회입니다. 만약 삽시간에 인간이 다 사라져버렸다 해도, 통조림 음식만으로도 영양실조에는 걸릴지언정 생존에는 별 문제가 없을 겁니다. 결국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저런 현대 문명이 아니라, 다른 인간과 소통하고 교감하는 것이라는 상투적인 진리를 이 영화가 보여주는 셈인데, 원래 진리는 상투적인 법이죠. 게다가 프랜시스 로렌스는 꽤 휴머니즘 신봉자 같아요. 다소 뜬금없음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밥 말리를 강조하고 인용하는 건(영화에 쓰인 음악의 반 이상이 밥 말리 음악이죠) 솔직히 낯간지럽긴 하지만, 괜히 쿨한 척하지 않고 너무 솔직하고 열정적으로 말을 하기에 오히려 호감을 갖게 되기도 하고요. 앤과 이선을 만났을 때 ‘갈등’을 공들여 보여주는 것도 좋았어요. <슈렉>을 이용해 아이에게 말을 거는 건 쉬운 방법이었지만 먹히기도 했고요. 그가 그간 얼마나 고독했는가, 그리고 다른 이에게 말을 거는 것에 얼마나 서투르게 됐는가를 보여주기도 하고, 그럼에도 이선의 호감을 사는 데에도 성공했지요.

기본적으로 윌 스미스는 워낙 ‘저 곱게 자랐어요’가 얼굴에 써있는 사람이라 이런 캐릭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선지 오히려 처연한 맛이 사는군요. 곱게 살아온 남자가 한순간에 홀로 남은 채 아직 어쩔 줄 몰라 하는 상태니까요. 물론 로버트 네빌은 정해진 일과표에 따라 자기 생활을 매우 효율적으로 통제하고 있습니다. 체력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매일 다른 생존자를 위한 AM 라디오 방송을 내보내고, 주변 경계를 삼엄히 하면서 비상대비책도 세워두었고, 백신을 만들기 위해 매일 체계적으로 연구와 실험을 하고 이를 꼼꼼히 기록해나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가 군인이었기 때문에 가능했겠지만 그게 얼마나 허약한 기반 위에서 극한의 의지력으로 간신히 지탱되고 있는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샘이 죽었을 때 그가 그 통제력을 잃는 건 당연하고요. 좀비들이 쳐들어오는 그 실험실에서, 갑자기 모든 사운드를 죽이고 음악을 깔면서 윌 스미스의 표정을 클로즈업하는 것 역시, 나쁘지 않은 신파를 제공합니다. 아마도 그 좀비들을 보며 로버트 네빌이 느낀 건 절망감이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인간에 대한 절망감. 저토록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는가, 하는 절망감. 그럼에도 백신을 보호해야겠다 생각했을 때, 밥 말리를 신봉하는 이 휴머니스트의 선택은 외롭고 고독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사실 제가 로버트 네빌의 저 바닥없는 고독감을 ‘함께’ 느낀 건, 역설적으로 그 장면이었습니다. 혼자 거리를 활보하며 혼잣말을 하던 때가 아니라요. 다른 사람이 아예 없는 절대 고독의 순간에도 인간은 고독하지만, 아무리 옆에 다른 인간이 있고 그가 나를 염려해주더라도, 결국 중대한 나의 결정은 내 몫이고, 이건 고독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 네빌이 그 순간 깨달은 것도, 그런 ‘고독’에 대한 진리일 거예요.

전통적인 좀비영화광들, 특히 로메로의 헌신적인 추종자들은 근래의 ‘너무 빨라진’ 좀비들을 보며 한탄과 분노를 내뱉곤 하지만, 전 좀비들이 빨라진 게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나도 모르게 드러내게 되는 타인에 대한 공격성과 배타성, 그리고 속도에 대한 집착(컴퓨터 부팅 시간도, 햄버거 가게에서 줄 서는 시간도 못 견디는)을 생각해 본다면 더욱 그래요. 제가 기억하기로 <28일 후>가 시기적으로는 먼저이긴 했지만, 저는 지금의 이 빠른 좀비들의 영화, 그리하여 현대인의 그 무자비한 공격성과 속도에 대한 집착을 드러내며 인간성을 잃어버린 인간에 대한 비유로 좀비들을 등장시키는 일군의 영화들의 대표격이자 선두격으로서 오히려 잭 스나이더의 <새벽의 저주>가 더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네, <300>의 그 감독이 만든 그 영화. 그리고 기억하시겠지만 전 <300>도 아주 좋아합니다. 지금 제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감독 중 하나가 잭 스나이더거든요.) 현재 미국에서 이토록 좀비영화가 많이 만들어지는 건, 단순히 <새벽의 저주>가 성공했기 때문에 그걸 벤치마킹하는 의미만은 아닐 겁니다. 한편으로는 조지 로메로를 위시한 수많은 좀비영화들을 보고 자란 세대들이 영화판에서 비로소 활동하게 된 시기가 됐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부시 대통령 치하 하에서, 지금 마치 ‘도대체 누가 이명박을 뽑은 거야? 다들 미쳤고 나 혼자 제정신인가 봐’ 싶은 그 심리를 미국인들이 깊게 느끼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요. 그렇게 따지면 한국에서도 좀비영화가 나올 때가 된 거다, 란 결론이 내려질 수도 있는데, 아마 박찬욱 감독이 <박쥐>를 찍고 있다니 기대해 볼 만하겠지요.

ps1. 소설에 대한 저의 감상문은 여기에 있습니다.

ps2. 극 중 로버트 네빌의 딸 말리로 나온 윌로우 스미스는 성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윌 스미스의 실제 딸입니다.

ps3. 영화 초반 아주 잠깐 나오는 엠마 톰슨은 정말 그걸로 끝이란 말인가요. 아아 엠마 언니… ㅠ.ㅠ

ps4. <버피와 뱀파이어>의 스핀오프인 <앤젤> 시리즈의 한 에피소드에서, 엔젤이 동네 심야극장에서 <오메가 맨>을 상영한다고 좋아라 난리치며 영화보러 가는 장면이 기억나는군요. <지상 최후의 사나이>도 <오메가 맨>도 언젠가 꼭 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ps5. 리처드 매드슨의 소설 한 권이 더 번역됐습니다. [줄어드는 남자]인데, 이 뒤에 스필버그의 출세작이었던 <듀얼>의 원작이 실려있기도 합니다.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12 Comments

  1. 늘 좋은 마음으로 지켜봐주시는 N. 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조금 더 생각하며 살 수 있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 어랏, 엠마 톰슨이 나오나보군요.
    이 영화, imax버전에서 틀어주는 다크 나이트 때문에라도 보려가려고 벼르는 중입니다.

    • 영화 맨 처음 시작에서 나오는데 그걸로 끝납니다. 완전 카메오 출연이었어요;;;

  3. 영화의 결말을 알고나서 그닥 보고싶지 않아요. 소설과는 머나먼~~~~ 결말이라서리

    • 소설보다는 한참 격도 수준도 떨어지는 결말이긴 하죠. ^^
      수하이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4. 300 좋다는게 정의의 승리 얘긴가 했는데 찾아보니까 아니네요.

  5. 윌 스미스의 부티(?)가 오히려 처연한 맛을 낸다라… 왠지 공감이 가는데요. 저도 갑자기 종교의 영역으로 점프해버린 결말에 비해 도시에서 외로움에 발버둥치는(마네킨과의 대화라니요) 네빌의 인상이 훨씬 컸습니다. 그래서인지 보는 내내 그리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었어요.
    근데 이런 건 어땠을까요? 마지막에 만난 여자, 아이와 함께 가족을 구성하고 뉴욕에서 종족(?)을 번식시켜보는 방법은? 어차피 백신도 개발되기 직전이었던 데다가 이것이야말로 가문의 시조(?)가 되어 ‘전설’로 남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음, 결말이 조금 ‘아차’스럽다보니 별 생각이 다 드는군요. 아, 그 전까지는 참 좋았는데 말이죠…

    • 저도 그 여자와 아이가 등장했을 때 그렇게 새로 가족을 이룬 뒤 씨를 뿌리려나보다, 했습니다만, 제 예상을 벗어나더군요.
      그 결말은, 어느 정도는 당연한 결말이라는 생각이 드는 게… 근래의 헐리웃 영화들에서 ‘주인공 남자가 책임을 지고 희생을 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는 듯해서입니다. 좀비영화가 계속 만들어지는 원인과 연결지어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 씨바 미안하다, 이놈의 세상 만든 책임 나한테 있다”와 같은…

  6. 혹시..영화진흥공화국에 리뷰 올리시는 노바리라는분과 같은 분인가요? 리뷰가 똑같아서요

    • 맞습니다. N.은 노바리의 N.이에요. :) 이곳에 올린 리뷰 중 일부가 영화진흥공화국으로 가는 시스템이죠.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