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테크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문예진흥원에서 발행하는 계간 [문화예술] 여름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우연히 원고청탁을 받고 쓴 뒤, 편집자가 툭툭 다 문장을 끊어먹었는데 제가 제대로 피드백을 못 해줬더니 문장들이 이리 어색합니다. (제 문장이 아무리 만연체였다고 해도 그렇지, 저렇게 문장들을 어색하게 만들 거면 대체 왜 끊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봐도 제 글 같지 않고, 읽기가 너무 어색해서 살짝 화가 날 지경입니다. 어쨌건 제 이름 달고 나간 글임에는 분명하고 결국 피드백 못 해준 건 제 불찰이니까, 내 글 아니라고 잡아뗄 수도 없고 그래봤자 저 부끄러운 일만 될 뿐. 잡지가 나오면 여기에 올려야지, 생각하고 있다가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네요. (그러고 보니 저 잡지도 못 받았습니다.;;) 올해 아트시네마는 영진위에서 예산을 어느 정도 확보하면서본격적인 전용관 건립(다양성 복합관이라던가… 아트시네마 외에 다른 단체들과 함께 합니다) 사업을 펼쳐나갈 계획이라고 합니다. , ‘시네마테크 영년’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친구들 영화제도 이미 시작했죠?  아트시네마의 건투를 빕니다. 나아가 서울 말고도 전국 각지에 있는 시네마테크들을 응원하고 싶습니다.

Seoul Art Cinema


시네마테크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낡아서‘ 비가 내리는’ 화면과의 조우

누군가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영화 감독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마틴 스콜세지, 클린트 이스트우드, 프랑수아 트뤼포, 잉그마르 베르이만, 우디 앨런, 봉준호, 최동훈 등의 이름을 주욱 열거한 뒤, 맨 마지막에 수줍은 목소리로 버스터 키튼의 이름을 덧붙일 것이다. 만약 그중에서도 딱 한 명만 대라고 한다면, 망설임 없이 단호한 목소리로 버스터 키튼의 이름을 댈 것이다.

버스터 키튼은 오로지 ‘어떻게 하면 관객을 더욱 웃길까’를 고심했던 배우이자 감독이다. 끝없이 넘어지고 깨지고 다치는 등의 봉변을 당하면서도 특유의 딱딱한 무표정(일명 Great Stone Face)으로 우직하게 상황을 돌파해나가는 슬랩스틱 연기와, 온갖 영화적 실험을 하고 광대한 스펙터클을 펼치는 연출을 보여줬다. 나는 그의 영화들을 볼 때마다 미치도록 짜릿한 흥분을 느끼며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고 웃음을 터뜨린다. 또한 그런 슬랩스틱 연기 속에서도 우직하고 성실한 소시민의 일상적인 비애가 때로는 짙게, 때로는 옅게 나타나 남몰래 눈물을 훔치게 된다. 영화사 100여 년 동안 무수히 많은 훌륭한 감독들이 무수히 많은 훌륭한 영화들을 찍어왔고 지금도 찍고 있다. 또한 눈부신 외모뿐 아니라 황홀한 연기력을 선보여 평생 기억에 남을 배우들도 많다. 하지만 키 작고 딱딱한 얼굴에 관객을 향해 한 번 웃어주지도 않고, 잔머리를 쓰지도 않는 이 남자, 실수도 수줍음도 많지만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우직하게 내달리는 1920년대 무성영화 시대의 이 남자를 나는 도저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내가 그의 영화들을 비디오나 DVD로 만났더라면 이렇게까지 반하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나는 그의 대표작으로 종종 언급되는 <제너럴>을 아주 오래 전 비디오로 봤고, 그리 큰 감흥을 받지는 못했다. ‘역시 나는 엄숙하고 유머도 없는 딱딱한 인간이라, 이런 식의 슬랩스틱 코미디에선 별 재미를 못 느낀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하지만 2004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 <아크로바틱 액션 개그:버스터 키튼 회고전>에서 생각이 바뀌었다. 사실 버스터 키튼이 찰리 채플린과 함께 무성영화 시대의 쌍벽을 이룬다고 해서 그날도 그저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별 기대 없이 보러 간 것이었는데, 거기서 만난 그의 영화는 너무나도 눈이부셨다. 장편과 단편을 망라하여 현재 남아 있는 그의 거의 모든 작품들이 소개됐던 그 특별전에서 상영된 영화들은, 낡아서 ‘비가 내리는’ 화면에서조차 시대의 차이 같은 건 훌쩍 뛰어넘어버리는 보편성이 있었다.

필름의 매력, 걸작의 매력

그 이후다. 서울아트시네마라는 공간에 보다 특별한 애정을 갖고, 마음 절절히 고마움을 느끼며, 좀 더 주의 깊게 프로그램들을 살피게 된 것은. 옛날 영화들을 보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이라고 이렇게 호들갑인지, 지금의 20대들은 별로 실감 못할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90년대 중후반만 해도 영화사 책에서 이름만 본 감독들의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당시 성행했던 PC통신의 영화 동호회나 대학교 영화 동아리 등 이곳저곳에 퍼져 있는 ‘인맥’을 동원해서 몇 번을 복사하고 또 복사해 형체조차 희미한 그런 비디오테이프들을 어렵게 공수해야 했고, 그렇게 구한 비디오를 카페 같은 곳에 둘러앉아 함께 보았다. 21세기에 들어서서 DVD가 보급됐고, 소위 ‘고전 걸작’이지만 쉽게 볼 수 없었던 무수한 영화들이 DVD로 출시되면서 상황은 조금 나아졌다. 하지만 비디오나 DVD로 영화를 보는 것과, 극장에 앉아 영사기를 통해 스크린에 영사된 필름으로 영화를 보는 것은 매우 다른 경험이다. DVD와 비디오 나름의 편리함을 모르는 바도 아니고 또한 나부터도 무척 즐기는 것이 사실이지만, 영화는 역시 필름으로 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리고 이제 지척에 그런 공간이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다.

서울아트시네마의 매력은 단순히 예전부터 보고 싶던 영화를 필름으로 볼 수 있다는 그 한 가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올해 3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버스터 키튼의 영화 몇 편이 포함된 ‘특별전-미국 무성영화의 위대한 배우들’이 열렸는데, 나는 거기서 색다른 경험을 했다. 나처럼 버스터 키튼에 푹 빠져 있는 사람뿐 아니라 그가 누군지조차 모르고 온 사람들까지 모두 한마음이 되었던 것이다. 다함께 감탄사를 내뱉고 박수를 치며 웃음을 터뜨리고, 긴장과 스릴과 안타까움의 한숨과 비명을 내지르는 경험, 그리하여 우리끼리 아름다운 보석을 함께 즐기고 있다는 은밀한 공감이 극장 안을 꽉 채울 때 느껴지는 행복과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서울아트시네마의 친구들

2005년 봄부터 나는 서울아트시네마의 번역후원회원이 되어 상영작 중 일부를 번역하고 있다. 첫 영화는 자크 드미 특별전에서 상영된 다큐멘터리인 <자크 드미의 세계>였다. 자크 드미의 아내이면서 영화감독이기도 한 아네스 바르다가 찍은 이 영화에는 남편에 대한 애정과 동료 영화감독으로서의 존경이 절절히 묻어 있으면서 자크 드미의 영화세계를 일별할 수 있는, 정말 멋진 영화였다. 자크 드미 하면 얼핏 생소하게 느낄지도 모르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그의 영화를 봤을 것이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쉘부르의 우산>이니까. 이외에도 <쉘부르의 우산>에 출연했던 카트린 드뇌브와 그의 친언니이자 역시 당시 스타였던 프랑수아즈 도를레악이 함께 출연한 <로슈포르의 숙녀들>, 일본 자본에 의해 영화화된 <베르사이유의 장미>, 프랑스의 대표 여배우 아누크 에메를 스타로 만든 <롤라> 등의 감독을 맡았다. 이런 영화들 을 극장에서, 우리말로 된 자막과 함께 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황홀한 경험인지. 비록 당시의 이런저런 상황 때문에 마감을 못 맞춰서 첫 상영 때는 자막이 엉망으로 나갔지만…(이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다).

본격적으로 서울아트시네마에 자주 가게 된 건 올해 초부터다. 재작년 여름부터 작년 가을까지 일 년 남짓을 부산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서울에 올라와서 체코영화제 상영작인 <밀란 쿤데라의 농담>을 번역했는데, 덕분에 밀란 쿤데라의 원작소설을 처음으로 읽었고, 체코영화들의 매력을 아주 살짝 엿보기도 했다.

전용관 건립과 안정적인 예산 확보를 위해 연초에 열리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2007년 프로그램에서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여행자>를 번역했다. 2006년에 이어 두번째로 개최된 이번 영화제에서는 박찬욱, 홍상수, 봉준호, 류승완 등 영화감독과 정성일, 김영진 등의 영화평론가, 엄지원, 유지태 등의 배우가 ‘시네마테크의 친구들’로 참여하여, 각각 영화제에 상영될 영화 한 편씩을 선정했다. 이 중 <여행자>는 박찬욱 감독이 추천한 영화였다. 그렇지 않아도 재작년 광주영화제에서 안토니오니 감독의 연출과 공간 표현력에 새삼 반했던 터였는데, 안토니오니와 잭 니콜슨과 마리아 슈나이더의 조합이라니! 이런 영화를 영어자막이 찍힌 DVD가 아니라 필름으로 볼 수 있다니! 그뿐인가? 이번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상영작은 그 리스트가 발표된 순간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일출과 일몰 때 태양빛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의미하는 ‘매직 아워’로 유명한 테렌스 맬릭 감독의 <황무지>나, 장피에르 멜빌 감독의 복원판으로 미국에서도 작년에야 선을 보인 <그림자 군단>이라니. 내 생전에 극장에서 필름으로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김기영 감독의 전설적인 영화들과 빌리 와일더 감독의 영화들, 그리고 루이스 부뉴엘과 이마무라 쇼헤이와 사무엘 풀러와 마이클 커티즈의 영화들…. 20대 초에 본 낡은 해적판 비디오의 기억이 뼛속 깊이 박혀서인지, 이미 버스터 키튼의 영화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필름으로 만났음에도 나는 여전히 이런 종류의 상상에는 서툴다.

이후에 이어진 <영국프리시네마 특별전-‘브리티쉬 뉴웨이브’의 흐름을 따라서>는 또 어떤가? ‘성난 젊은이들(Angry Young Men)’ 세대의 문학과 함께 태동한 영국 프리시네마와 영국 뉴웨이브의 그 무수한 걸작들이 극장에서 상영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 4월, 서울아트시네마는 이탈리아의 거장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 감독의 영화들을 상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흥분과 행복을 느끼면서도, 나는 언제나 서울아트시네마를 보며 안타까움과 불안을 느끼고 있다. 과연 이런 흥분과 행복이 언제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꿈꾸며

90년대부터 전국 각지에서 벌어진 일련의 영화운동은 시네마테크와 영상센터 건립 등을 중심으로 한다. 영상센터는 말하자면 누구나 쉽
게 영화를 접하고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곳이고, 시네마테크는 영화를 상영하고 학습하며 영화에 대한 감상과 해석을 나눔으로써 제2의 문화를 창출하는 공간이다. 그렇기에 시네마테크는 비영리 목적으로 운영되며, 일반 극장에서 보기 힘든 비상업적 영화들과 고전영화들, 그리고 독립영화들을 상영한다. 바로 서울아트시네마가 이런 시네마테크다. 하지만 현재 서울아트시네마는 엄밀히 말하면 시네마테크라 할 수가 없다. 진정한 시네마테크라면 상영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필름을 수집하고 보존하며 복원하는 역할도 함께 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럽은 조그마한 동네들에도 시네클럽과 시네마테크가 퍼져 있는데, 시네마테크냐 아니냐의 구분은 ‘상영만 하는가, 아
니면 필름 수집 및 보관도 함께 하는가’를 기준으로 한다. 즉, 시네마테크는 영화 상영의 공간일 뿐 아니라 필름 아카이브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 런데 현재의 서울아트시네마는 필름 아카이브는커녕 안정적으로 영화 상영을 할 전용관도 없다. 이전의 서울아트시네마는 아트선재센터 지하를 임대했고, 지금은 옛 허리우드 극장을 임대해서 운영해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상황에서, 필름을 보관할 수 있는 대규모의 아카이브 및 자료실은 그저 그림의 떡으로만 느껴진다. 현재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서울아트시네마를 비롯한 전국 각처의 시네마테크를 지원하고, 독립영화 전용관과 서울아트시네마 전용관 건립을 위해 예산을 모으고는 있지만 그리 쉽지 않은 상황이다. 또한 서울아트시네마는 예산의 상당 비율을 임대료로 내야 하기 때문에 더 좋은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한다. 단적으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내가 활동하고 있는 ‘번역후원회원’ 제도를 운영하는 것도, 너무나 부족한 예산 때문에 번역자들에게 적정한 번역료를 지급할 수 없어서가 아닌가.

좋 은 영화를 쉽게 접할 수 있고 이에 대한 이야기와 해석과 비평을 나눌 수 있는 안정적인 공간의 필요성은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당연하고 필수적인 것일 게다. 프랑스가 현재 그토록 훌륭한 영화 유산을 가지고 있는 것은 바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Cinematheque Francaise)’ 때문이 아닌가.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몽상가들>에 나오는 바로 그곳 말이다. 칸영화제에서 베를린영화제에서, 한국의 어떤 영화가 무슨무슨 상을 타왔다며 ‘영화강국 한국’이라는 호들갑을 떠는 기사들을 볼 때마다, 전용 상영관조차 없어서 재계약 기간이 되면 한숨부터 내쉬는 서울아트시네마 스태프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리고 내가 누리는 이 즐거움과 기쁨과 행복이 앞으로도 쭉 계속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언제고 중단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끼곤 한다.

부디 서울아트시네마에도 규모는 작을지라도 카페와 자료실과 작은 세미나 공간과 필름 아카이브 공간이 있는 전용 상영관이 하루빨리 꼭 생기기를, 그리고 안정적인 예산이 확보되기를 기도한다. 더불어, 부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근간에 루치노 비스콘티 감독 특별전을 꼬옥 해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7 Comments

  1. 링크 걸어주신 계간 < 문화예술>, 2007년 겨울호로 연결됩니다.
    글은 잘 읽어보겠습니다. 가능하다면 편집이 되기 전의 원문을 보고 싶네요.

    • 에고 이런, 고맙습니다. 덕분에 수정했습니다.
      원래 썼던 버전은 제 메일계정 어딘가에 있는데… 원하신다면 보내드리겠습니다.

    • 황무지-> 천국의 나날들.
      허거덩, 내가 왜 그랬지??? 싶지? ㅋ

  2. 잘 읽었습니다. ^^
    저도 아트선재센터 시절부터 다녔고, 참 많은 기억들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 게임의 규칙>이 매진되어 계단에 목욕탕 의자 놓고 봤던 기억도 있고,
    <7인의 사무라이>를 스크린으로 보았던 귀중한 경험도 있고,
    여러모로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원문도 읽고 싶어졌습니다. 보내주신다면, 외부에 일절 공개하지 않고, 소중히 잘 읽겠습니다.
    mmscman@gmail.com

  3. 서울아트시네마는 그래도 번화가?(종로 쪽이면 그리 외진 곳은 아니죠?)에 있는 것 같아요.
    물론 한적한 곳에 있어 영화를 본 후의 느낌을 혼자서 이리저리 굴려볼 수 있어서 좋았지만,
    시네마테크부산은 사실 너무 멀었어요ㅠㅠ
    영화제도 그렇고 중심이 해운대로 많이 이동하고는 있지만, 시네마테크부산은 역시 부산시민들이 가까이 하기에는 좀 멀다 싶죠…역시, 임대료나 지가가 너무 높아서 그런거겠지요?

    • 옛 허리우드 극장이 좀 오래돼서 서울아트시네마가 극장설비 같은 건 조금 후지긴 하지만, 교통편으론 굉장히 좋죠. 종로에서 걸어와도 되고 5호선 종로3가역 바로 앞이고, 안국동에서도 가깝고요. 시네마테크부산은 확실히 가기가 좀 힘들긴 했어요. 전 가까이서 살았는데도, 갈 때마다 택시를 탈 수밖에 없었죠. 그래도 시네마테크 부산은 부산시에서 아주 빵빵하게 자금을 지원해 준답니다. 거기 건물도 딱 시네마테크부산 전용관이잖아요. 아카이브 역할은 아직 못한다고 해도, 대단히 빵빵한 프로그램들을 기획하곤 하지요.

  4. 비밀글 1 / 카페 서울아트시네마에 퍼놓을 때도 어느 분이 그거 지적해 주셨는데, 정말 어머니나 싶더라. 그때만 해도 < 황무지>과 < 천국의 나날들>이 마구 헷갈렸었음.

    비밀글 2 / 메일계정에 남아있질 않아서 (집, 회사) 컴퓨터들을 차례로 뒤지고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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