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크백 마운틴>에서 뻗어나간 단상

<브로크백 마운틴>이 혹자들에게 영 혹평을 받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연출이 후졌다, 라고 한다면, 전 동의 못해요.


사람들은 모두 두 남자의 절절한 사랑을 기대하며 극장엘 가지요. 브로크백에서 보낸 특별한 기간, 그리고 20년간 유지된, ‘가지지 못했던’ 사랑… 동성애에 쿨하게 반응하는 것이 쿨하고 멋진 거라는 식의 가치관이 은근히 퍼져있는 지금, 두 사람이 ‘남자’인 건 문제가 안 됩니다. 두 사람이 너무나 절절하고 아름답고 예쁘게 사랑하는 것, 그것에 감동받고 울고 절절하게 마음아파 할 준비를 하고 모두들 극장엘 갑니다. 하지만 결과는? 사실 그런 기대는 철저히 무시당합니다. 도대체 “난 게이 아냐”라고 말하는 두 사람이 보낸 브로크백 산에서의 한때라는 것이 뭐 그렇게 낭만적이지도 절절하지도 않잖아요. 두 사람의 생활은 그저 피상적이고 대단히 ‘일상적’으로만 그려질 뿐입니다. 별로 무슨 대단한 교감이 보이는 것같지도 않고, 특별한 시간을 특별히 공유하는 것같지도 않아요. 어느 춥고 술에 취한 날 느닷없이 섹스하고, 그 섹스도 곧바로 마치 강간이라도 하듯 바로 후배위 삽입으로 이루어지지요.


하지만 이 영화의 감독은 이안입니다. 제인 오스틴의 로맨스 소설을 영화로 찍을 때조차 “내 영화가 쓸데없이 로맨틱해지잖아!”라고 화를 내면서 매리앤(케이트 윈슬렛)과 윌리엄(배우 이름 모르겠음, 하여간 그 파렴치한)의 러브러브 씬에 우연히 끼어든 호수의 백조를 훠이훠이 내쫓았던 사람입니다. “궁극적으론 사랑 영화”라면서 <헐크>에선 키스씬조차 단 한 장면도 넣지 않아요. 낭만적인 걸 기대하는 게 어리석은 거지요.


대신 이안이 보여주는 건, 소위 ‘사랑’이라는 그 불가해한 감정 때문에 두 사람이 열심히 자기 자신을 기만하고, 주변 사람들을 미친 듯이 상처주고, 상대방을 이기적으로 욕망하는 모습입니다.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람들은 ‘사랑한다’고 하면서 얼마나 상처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던가요. 우리에게 때로 ‘사랑’은, 내가 마음놓고 상처줄 수 있는 사람의 확보를 뜻하기도 합니다. 우린 그렇게 어리석어요.


다른 감독이었다면 잭의 아내 로린과 에니스의 아내 앨마, 그리고 에니스가 데이트하던 그 웨이트리스가 그토록 성의있게 다루어지지 못했을 겁니다. 남편과 섹스하던 때 자신의 몸을 확 뒤집는 남편에게 당황해하며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앨마의 아주 짧은 얼굴 클로즈업도, 앨마에게 “애를 안 낳을 거면 섹스할 이유가 없지”라고 말하는 에니스의 치사스럽고 지독하게 뻔뻔하고 이기적인 모습도, 에니스가 멕시코로 바람을 피우러 가거나 바에서 다른 남자들을 향해 그윽한 눈초리를 던지고 술을 사는 장면도, 로린이 냉정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면서 실은 괴로워하며 상처를 어떻게든 받지 않으려 하며 전화하는 장면도, 다른 감독이었다면, 우린 보지 못했을 거예요. 아니, 오히려 우리는 지고지순한 아름다운 사랑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고 바보같은 여자들이나 심지어는 그걸 방해하는 악녀들만 만나게 됐을 겁니다. “도대체 사랑이라는 게 뭔가?” 다시 되새기게 만드는 이 영화는, 그저 ‘불행해서 더 아름다웠던 사랑’에 머물지 않고 앞으로 더 나아갑니다.


그래요, 우린 사랑할 때 상대방과 나 둘만 생각하고, 그 사랑이란 게 둘만의 내밀하고 비밀스러운 관계, 그리하여 이 세계와 뚝 떨어진 독립적인 세계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디 그런가요. 우린 사회 안에서 살고 있고,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고, 이 사회에 순응하건 도전하건 반항하건 기본적으로 이 사회가 내게 주입한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애인과 섹스하는 그 때, 우린 세상에 애인과 나 단 둘뿐이라고 생각하지만 천만에요. 두 사람의 머릿속으로, 두 사람의 관계 속으로, 심지어 그 시간의 작은 행위 하나까지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비집고 들어옵니다. 왜 너와 내가 같이 농장을 운영하며 따로 살 수 없는 건데요? 우린 사회에 살고 있으니까요. 이 사회가 내게 아무리 폭력적이더라도 말이죠. 그래서 더 괴로운 거잖아요?


미셸 윌리엄즈와 앤 헤써웨이는 사실 앙리 영화의 캐스팅으론 그닥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게다가 미셸 윌리엄즈는 너무 어려보여요. 하지만 왜 그녀들을 캐스팅했는지, 영화를 보고나니 알겠더군요. 앙리 감독은 그 두 사람이 그저 잭과 에니스의 관계에 묻혀 보조 기능만 수행하는 걸 원치 않았던 겁니다. 앙리 감독은 관객인 우리가 그 두 사람의 아픔과 상처 역시 봐주길 원했어요. 어차피 잭과 에니스의 관계에 집중할 수밖에 없지만, 많지 않는 그녀들의 출연분에서 감독은 그녀들의 아픔과 슬픔과 상처와 분노, 그에 대한 나름의 대처방식을 너무나 명확하고 섬세하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것이, 제가 앙리 감독에게 고마워하는 이유죠.


그런가 하면 잭과 에니스의 사랑은 꽤나 냉정하게 잡아내지요. 그럼에도 우리는 잭과 에니스에게 어느 정도 설득될 수밖에 없고, 그들을 미워할 수도 없어요. 에니스가 그토록 치졸한 인간인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사실 전 영화를 보면서 두 사람의 사랑이, 사람들이 말하는 ‘가장 높은 단계의 사랑’인가… 라며 살짝 절망했더랍니다. 남-남의 관계와 남-녀의 관계는 확실히 달라요. 그건 마치 고대 그리스의 동성애와도 비슷하며, (분명 없지는 않은) 여성 혐오증 혹은 여성비하적 사고를 가진 게이들의 사랑과도 비슷하지요. 여성은 주체가 아닙니다. 그러니 그런 관점에서라면,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설파한대로 진정한 사랑이란 남자와 남자 사이에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 내가 주체가 되지 않는한요. 그러나 이 가부장 사회에서 나고 자란 나는, 주체적 인간이 되기보다 그에게 의지하고, 애교를 피우며, 전통적인 여성상을 구현하기에 바쁩니다. … 도대체 왜? 이토록이나 근대화되었고, 현대화되고, 페미니즘으로 무장한 내가… 이게 소위 먹물들이 말하는 ‘분열적 주체’인 건가요?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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