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력 | 아스라이

아스라이

영화쟁이들이라면 눈물 적실 수밖에 없는...

어릴 적 부모 손에 이끌려 극장에서 본 영화일 수도, 골방에 틀어박혀 있던 어느 날 우연히 비디오로 접한 영화일 수도 있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 나아가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있을 첫 경험의 순간을 충분히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는 말은 없지만, 김삼력 감독의 장편 데뷔작 <아스라이>에 나오는 주인공 상호(김상석) 의 표현은 비교적 적절하고 공감할 수 있는 정도의 말은 될 것이다. “아, 이런 게 영화구나” 싶은 그 순간. “배부르고 여유있는 사람들이나 보는 건 줄 알았던” 영화와 그렇게 첫 경험의 순간을 맞은 뒤, 이후 10여 년을 서울도 아닌 대구에서 영화를 만들면서 살아가는 청춘의 이야기가 바로 영화 <아스라이>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모든 것이 서울보다 열악하기 짝이 없는 지방도시 대구에서 독립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여러 모로 혹독하고 고달프다. 하지만 <아스라이>는 이러한 고난을 웅변하고 전시하는 영화는 아니다. 그저 영화가 좋아서 묵묵히 영화를 만들고, 영화를 만들기 위해 돈을 벌고, 시네마테크에서 일을 하는 상호의 모습은, 실제로 대구에서 나고 자라 10년간 영화를 만들며 대구시네마테크에서 일을 해온 김삼력 감독 자신의 모습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겠지만, 또한 전국 각지에서 모든 악조건에도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영화를 만들고 있는 모든 영화청년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젊은 영화감독들의 고군분투를 담아내는 김삼력 감독의 어조는 매우 담담하고 절제돼 있지만, 그가 만들어내는 화면들은 장면 하나하나가 모두 매우 공들여 짠 치열한 앵글과 컷을 자랑한다. 고난과 절망, 그리고 청춘이라면 응당 가질 수 밖에 없는 불안함과 두려움뿐 아니라, 그 속에서 빛나는 아름다운 빛과 환희도 용케 잡아낸다.

아스라이

재능이 없다해도, 사랑하기에 묵묵히 길을 가는 수많은 청춘들에게...

당신도 옛날에 영화에 도저히 재능이 없다는 말을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들어본 적이 있는지. 혹은 스스로 그것을 인정하면서 좌절한 적은 없었는지. 아마도 단편영화를 만들고 있는 독립영화 감독, 혹은 감독을 지망하는 지망생들이 지금의 박찬욱 감독이나 봉준호 감독과 같은 스타 감독들에게 너무나 묻고 싶지만 결코 입 밖에 낼 수 없는 질문일 것이다. 시종일관 담담하게 상호를 따라가는 이 영화에서 클래이막스라 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상호가 영화를 함께 만들어온 후배로부터 ‘당신은 재능없다’는 소리를 듣는 장면이다. 그 말을 부정하기는커녕 선선히 인정하며, 심지어 병을 깨고 덤벼드는 후배의 아픈 말에 아무런 변명도 못한 채 그예 고개를 숙여버리는 상호의 모습을 카메라는 여전히 담담하게 잡지만, 그러나 우리는 화면에는 잡히지 않는 상호의 눈물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그는 다시 오늘도, 내일도 영화를 찍는다. 그저 영화가 좋아서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그에게 영화는 바로 삶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간, 관객들 중 비슷한 좌절과 고민 속에서 청춘의 열병을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누군가는 수줍고 투박하지만 따뜻하게 건네는 감독의 무언의 격려와 응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며, 또한 누군가는 분명 “어떤 어려움에도 좌절하지 않고 계속해서 할 수 있는 열정이 바로 가장 큰 재능”이라는 말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이 영화는 지금 이 순간 청춘을 통과하며 자신의 자리가 어디인지 찾고 있는, 혹은 그 자리가 진정 자신의 자리가 맞는지 불안해하는 청춘들에게 듣기좋고 화사한 거짓말 대신 우직한 진심으로 연대의 인사와 진심어린 응원을 건넨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이 영화가 그토록 소중한 이유이다.

ps. 프레시안무비에 올라간 기사.

ps2. 이번 주 토요일(19일) 6:30 상영 후에 감독과의 대화가 있습니다. 세 번의 대화시간 중 마지막 시간이네요.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5 Comments

  1. 영화가 별로였던 저 같은 사람은 별로였던 대로 별로라고 얘기해주는게 맞다고 생각해요.
    떡볶이 먹는 장면에서는 솔직히 속이 다 울렁거리더군요. 대본에 “게걸스럽게 먹는다”고
    씌여져 있었다면 배우는 그 연기를 정말 잘한 것이지만 그 모습을 담은 카메라는 정말 저를
    힘들게 했어요. 제 블로그에서도 못한 얘기를 여기에서 처음 털어놓습니다. 으헝.

    • 별로였다면 별로라고 말하는 게 물론 맞죠. 어차피 각 영화에 대한 판단과 평가는, 개인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고, 저 역시 철저히 제 주관적 판단에 의거한 감상문을 쓸 뿐입니다.

      다만, 전 영화가 다양하고 다르다면, 그에 필요한 기준 역시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인감독만이 보여줄 수 있는 패기, 젊은 감독만이 할 수 있는 치기와 이야기, 노장이 보여줄 수 있는 여유로움, 그리고 독립영화 감독이 보여줄 수 있는 절실함… 모두 다르다고 생각하고, 그 다른 것들을 다각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고도 생각하고요. 그래서 신어지님이 이 영화를 별로라고 보신 이유가 궁금하긴 합니다. 조만간 리뷰 기대할게요.

    • 모든 영화를 똑같은 기준으로 보기 보다는 영화에 맞게 다양한 각도로 보고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좋죠. 저도 그랬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그게 쉽지가 않네요. 트랙백 보냅니다. ^^ (트랙백 불발. 휴지통으로 직행한 것 같습니다)

    • 에공. 휴지통이라니.
      이상하네요, 웹호스팅을 옮긴 게 작년 가을쯤인데, 그 후부터 트랙백이 잘 안 들어옵니다. 어떤 건 들어오고 어떤 건 안 들어오고. 왜 그런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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