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트뤼포 | 이웃집 여인

La Femme d'a Cote

이웃집 여인의 치명적인 상처

사이렌을 울리며 마을길을 달려가는 앰뷸런스를 멀찌감치 헬기숏으로 잡으면서 막을 여는 이 영화는 오딜 쥬브 부인(베로니크 실베)의 직접적인 설명으로 영화를 시작하고 닫습니다. 특히 오프닝이 대단히 인상적인 것은, 오딜 쥬브 부인이 그냥 내레이션도 아니고 화면을 정면으로 똑바로 보면서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걸 뿐만 아니라, 카메라의 클로즈업과 풀숏이 하나의 진실을 어떻게 다르게 보여줄 수 있는가, 명백히 지시하면서 영화를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테니스장을 배경으로 그녀의 얼굴을 커다랗게 클로즈업을 잡고 있던 카메라는, 그녀가 “나 테니스 선수 아니에요. 카메라, 뒤로 더 물러서 봐요.”라는 직접적인 명령과 함께 풀샷이 되면서 그녀가 불편한 왼쪽 다리에 보형기를 끼운 채 지팡이를 짚고 걷는 장애인이라는 사실, 당연히 테니스 선수가 아닌 테니스장 관리인이라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피사체와 카메라와의 거리는 이토록이나 중요합니다. 너무 가까이에서는 보이지 않는 사실들과 맥락들이, 한 걸음 물러서야 제대로 보입니다.

이 씬이 드러내주는 것은 명백합니다. 흔히들 남녀 간 사연은 ‘당사자들만이 아는 이야기’라고들 하는데, 이런 이야기들은 남의 눈과 귀를 통해 전해지는 모호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고, 대체로 사람들은 그네들의 감정에 동화되지 않기 위해 일부러 거리를 두고 냉정하게 윤리 심판을 해대는 경향이 있습니다. 치정극은 당사자들에겐 세상이 꺼질 듯한 로맨스이지만 대체로 간단하게 한 마디로 손가락질 당하기 십상인 이야기들입니다. 이 씬은 하나의 진실에 우리가 거리를 어떻게 취하느냐에 따라 사건이 달리 보일 수 있음을, 오히려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들의 사랑 이야기를 봐줄 것을 선언하는 셈입니다. 어차피 치정극이란 어떤 것이든지 흔하디 흔한 패턴을 갖기 마련입니다다. 바람을 피우고, 주변을 파괴하고 자신들 역시 파멸하는 거죠. 하지만 쥬브 부인은 단순히 이 영화의 화자 역할, 그리고 우리의 시선의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그녀의 사랑은 우리의 두 주인공들의 사랑을 살펴볼 수 있는 일종의 ‘준거’를 제시합니다.

베르나르 쿠드레(제라르 드파르듀)는 한적인 시골마을에서 아내 아를렛과 어린 아들 토마와 함께 살고있는 매우 금슬좋은  중산층 가족의 가장입니다. 이들의 평온한 교외 생활은 비어있던 옆집에 새로운 이웃이 이사 오면서 격랑에 휘말립니다. 제목에서 이미 예고되었던 대로 이웃집에 새로 이사온 여인, 즉 마틸드(화니 아르당)가 이러한 분란을 일으키는 주범이지요. 마틸드는 오래 전 베르나르와 2년간 사귀었고, 8년 전 사이가 끝난 옛 애인이었습니다. 2년 전 결혼한 남편과 한적한 시골로 이사를 왔는데 그게 하필 베르나르의 옆집이었던 거지요.

영화의 초반에선 침착하고 자신의 생활을 균형있게 잘 영위해 나가기 위해 옛 관계는 그저 과거로 접어두고 싶은, 별로 흔들림 없는 베르나르를 마틸드가 적극적으로 유혹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베르나르의 가족들에게 친절하고 싹싹하게 접근할 뿐 아니라 베르나르에게 끈적한 시선을 보내고 말을 걸며, 심지어 굳이 피하는 베르나르에게 몰래 전화를 걸고, 슈퍼에서 우연을 가장한 마주침을 시도하지요. 하지만 영화가 곧 진행되면서, 우리는 다른 장르영화에서라면 응당 팜므 파탈이자 악녀로 다뤄져야 할 그녀가 실은 베르나르와의 관계에서 오히려 피해자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를 마틸드 혼자 놓지 못한 채 집착하는 것 같던 이 관계는 오히려 베르나르가 지독하게 집착을 하는 관계로 변하고 말죠. 사실 마틸드가 시달렸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은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마틸드에게 덤벼드는 베르나르의 모습 때문에 가능합니다. 젊은 시절의 마틸드 역시 만만치 않았을 게 분명하긴 하지만, 베르나르의 행동은 단순하고 이기적이기 짝이 없거든요. 그는 마틸드의 고통과 사랑의 깊이를 이해하기에는 지나치게 즉물적이고 자기멋대로입니다.

La Femme d'a Cote

화니 아르당의 연기는 경이롭습니다. 아름답기도. (우아하면서도 야하게 생기셨어요.)

“우리가 첫사랑은 반드시 깨진다” 따위의 말을 무슨 금언처럼 떠받드는 것은, 실은 젊은 연인들이 어리석음과 실수가 너무나 흔하고 일반적이며 심지어 당연하기까지 하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건 젊은 시절엔 불안정하고 변덕스러울 수밖에 없으며, 경험과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에 눈앞의 상처와 기쁨에 연연하며 상대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고 있는지 아닌지 그 상처가 금방 회복이 가능한지 도저히 돌이킬 수 없는 종류의 것인지 살필 겨를도 능력도 없습니다. 관계라는 것이 어떠한 무게를 갖는지, 내가 타인과 갖는 관계란 것이 어떤 결과를 나을지, 또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젊은 시절엔 큰 그림으로 보기가 힘듭니다. 그저 가슴떨리는 환희와 섹스가 주는 황홀감이 연애의 즐거움의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이마저도 관계가 지속되다 보면 어느 순간 시들해지고, 많은 이들은 관계가 ‘안정적인’ 단계로 접어드는 것을 ‘사랑이 식었다’고 오해하기도 합니다. 게다가 얼마나 많은 상처들을 주고받는지.

누구나 이런 상처를 겪는다고 해서 누구나 다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평생 그 상처를 지고가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개중엔 도저히 그것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는 법이죠. 우리의 마틸드가 그런 사람입니다. 연애 한 번 깨지는 게 대수냐… 대수인 사람들도 있다는 거죠. 때론 연애가 깨지면서 인생 전체가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깨져버리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합니다. 그네들이 미성숙하고 사랑에만 목숨을 건 바보들이기 때문일까요? 물론 자기 확신과 자기 존중이 부족한 사람들이 그런 경향을 많이 보이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뭐 성숙하고 강한 사람들인 것도 아니잖아요? 마틸드와 베르나르의 관계에선, 오히려 베르나르가 미성숙하기 때문에 마틸드 혼자 상처를 다 짊어지고 베르나르는 상대적으로 강해 보이는 면도 없잖아 있습니다.

반 농담을 섞자면, 결국 이 영화의 교훈은 ‘바람 잘못 피우면 머리에 총구멍 난다’입니다. 남자들의 입장에선 ‘바람 잘못 피우면’을 ‘여자 잘못 만나면’으로 바꿀 수 있겠죠. 하긴, 모든 걸 상대방의 잘못으로 돌려버리고 문제가 생기면 피하며 상대를 미친년/놈 만드는 게 가장 편한 방법이긴 합니다. 남이사 어떤 상처를 입고 어떤 고통을 겪든, 그런 사람들은 적어도 자기는 상처는 덜 받더라고요. 상당히 마틸드 입장에서 영화를 본 저로서는(물론 화니 아르당이라는 배우에 대한 제 절대적인 호감 때문이긴 합니다만), 이 영화의 교훈을 이렇게 고쳐보겠습니다. ‘무책임하게 구는 남자에겐 머리에 총구멍이라는 처벌이 찾아올 수 있다.’

ps1. 트뤼포는 정말로 여자를 좋아하고 신성화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긴 원래 이 사람 여자들을 너무나 예쁘게 찍곤 합니다.) 단순하고 미성숙한 베르나르에 비해, 마틸드와 아를렛, 쥬브 부인은 너무나 성숙하고 어른스럽습니다. 아를렛과 쥬브 부인은 현명한 데다 이해심이 많기도 하지요. 여성을 신성화하고 ‘성녀 마리아’를 요구하는 방식에 대해, 다른 감독들의 경우 이상하게 불쾌한 지점들이 꼭 생기는 데에 반해 트뤼포의 방식은 충분히 이해가 되고 살짝 웃음이 나기까지 합니다. 이것은 트뤼포라는 사람 자체가 기본적으로 ‘우리 엄마는 완벽한 사람이야’와 같은 순진한 믿음을 가진 어린아이처럼 여겨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ps2. 트뤼포는 남녀의 사랑 얘기마저 범죄물처럼 찍고 싶은 성향이 있는 듯합니다. 단순히 엔딩이 그래서만은 아니에요. 전 이 영화를 보면서 <피아니스트를 쏴라>를 떠올렸는데, 뭐랄까, 본격 범죄물을 만드는 건 아니지만 모든 영화에 범죄물이라는 장르영화의 공식을 슬쩍슬쩍 가져온다는 느낌이랄까요.

ps3. 제가 마틸드 캐릭터한테 완전히 반해버린 건, 파티장인 정원에서 옷이 찢어져 훌렁 벗겨졌을 때, 그녀가 당황하기는커녕 오히려 포즈를 취하면서 분위기를 순식간에 역전시킬 때였습니다. 그런 여자를 어찌 사랑하지 않고 배길 수 있을까요.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2 Comments

  1. 저렇게 탱탱한 제라드 드 빠르디유라니 놀랍습니다.
    지금까지 본 모습 중에 가장 젊은 시절인 듯.
    화니 아르당은 오히려 지금의 모습과 별 차이가
    없어보이고요.

    • 1981년작이니까, 제르라 드파르듀가 33살일 때네요. 이 양반도 젊은 시절의 영화 보면 잘 생긴 건 아니어도 나름 매력적인 게 아무래도 저 선량해 뵈는 눈 때문 같아요. 화니 아르당은… 이 영화 첫 등장 씬에서 좀 놀랐던 게, 저 큰 입이 대단히 야하게 보이더라고요. 요즘 모습들에선 그런 식의 야한 느낌은 못 받았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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