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벨 페라라 | 악질경찰

Bad Lieutenant

남성성의 상징처럼 총을 마구 휘두른다.

딜레마 : 어마어마하게 큰 죄를 지은 사람은 과연 타인(특히 그 잘못으로 해를 입은 사람)으로부터, 그리고 신으로부터 용서를 받을 수 있는가? 만약 그런 죄인마저 용서를 받을 수 있다면, 다른 죄인들 역시 용서를 받을 수 있을까? 혹은 그보다 더 가벼운 죄를 지은 사람들이 결국 용서를 받지 못하는 상황은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말하면, 악행의 교본이라 할 수 있는 어떤 범죄자가 죄를 용서받는다면, ‘정의’의 실현은 어떻게 되는 걸까? 법을 집행해야 할 ‘경찰’로서 오히려 무시무시한 악행을 거리낌 없이 저질러 온 주인공 형사(하비 키틀, 극 중 이름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가 처한 딜레마는 이것이다. 그는 무시무시한 악질 경찰인데, 자신만큼이나 악한 다른 어떤 이가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면, 그 역시 과연 용서와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용서를 받을 수 있다면, 아무리 그가 팽개쳐 두었다고는 해도 어쨌건 경찰로서 그가 수호해야 할 ‘정의’는 과연 어떻게 이룰 수 있단 말인가? 정의와 용서는 과연 이토록 양립 불가능한 ‘모순’의 관계인가?

<악질경찰>은 영화의 2/3 가량을 주인공이 얼마나 나쁜 놈인지 에피소드를 나열하는 데에 사용하고 있다. 그는 상시적으로 마약을 복용하는 중독자이며, 정부를 여럿 거느리고 있고, 마약을 조달하기 위해 마약상들한테서 삥을 뜯거나 사건 현장에서 나온 마약을 몰래 슬쩍하며, 총을 함부로 쏴대고, 동료들의 내기 돈을 거둬서는 동료들에게 사기를 친 채 판돈을 위험한 수준까지 올리며 내기 도박에 열중한다. (그는 번번이 메츠 팀에 지는 다저스 쪽에 돈을 건다.) 심지어 아빠 차를 몰래 끌고 나온 소녀들을 발견하자 약점을 잡았다는 듯, 아이들에게 오럴섹스 입모양을 흉내내게 하며 자위를 한다. 이쯤 되면 정말 막 가도 한참 막 가는 인간쓰레기인 셈인데, 더욱 나쁜 것은 그가 ‘경찰’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그의 사건 관할 지구에서 성당에 침입한 두 괴한(소년)에 의해 수녀가 잔혹하게 강간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성당 바깥도 아니고, 무려 성당 안에 들어와 성물을 훔치고 수녀를 윤간하면서, 심지어 자궁에 거대한 십자가를 쑤셔넣는 폭행까지 가해진 강간사건이다. 처음엔 그 사건에 별 관심이 없던 그는, 피해자인 수녀를 찾아갔다가 수녀가 신부에게 하는 고백을 듣고 완전히 맛이 간다. 수녀는 자신을 강간한 그 아이들을 알고 있지만 그 아이들을 사랑하며, 이미 용서했고, 그렇기에 그 아이들이 누군지 밝힐 수 없다고 말한다. 다시 한 번 찾아가 법 바깥에서 자신이 심판하겠다는 제의를 하지만 수녀의 의지는 완고하다. 그녀는 자신이 이미 그들을 용서했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다. 아무 거리낌 없이 악행을 저질러 온 이 최고의 ‘악질’ 경찰이 혼란과 공포를 느끼는 건 바로 이 지점이다.

Bad Lieutenant

왼쪽이 조이 태머리스 혹은 조이 린드. 마약을 하는 새로운 방법을 몇 개 알았다... 별 쓰잘 데 없는 걸.

이미 앞의 영화의 2/3 부분을 그의 어마어마하고 기가 막히는 악행들 – 차라리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을 정도의 – 을 보았기 때문에 그를 이해하고픈 마음이 없던 상태인데, 혼란과 공포 끝에 환상 속에서 피흘리는 예수의 모습(너무나 모델 같은 포즈로 서 있는 예수 – 엉덩이를 왼쪽으로 살짝 뺀 채 서 있는 데다 몸매도 장난이 아니다.)을 보고 절규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인간적인 연민과 함께 안타까움이 조금씩 느껴지게 된다. 그에게 함부로 돌을 던지기가 힘든 것은 이 장면이 너무나 처절해서인데, 신에게 구원의 가능성을 물으며 몸부림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장면을 도저히 웃으면서 지나치지 못 한다. 그토록 극단의 혐오감을 주었으면서도 이 장면에 이르러 제대로 연민과 안쓰러움을 불러일으키는 걸 보면 하비 키틀이 정말 대단한 배우구나 싶다.

그런데 이후, 그가 가해자들을 찾아내서 그들에게 돈을 쥐어준 후(무려 3만불, 게다가 이 돈은 그가 내기도박에 진 빚을 갚기 위해 마련했던 돈이다) 보내는 장면에 이르면, 그가 이제껏 그냥 쾌락에 몸을 맡기며 죄를 지었다기보다는, 뭐라 해야 할까, 이제껏 응징과 처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대체로 인간은 한번 삐끗하면 여기에서 돌이키려 노력하기보다는 ‘어차피 버린 몸’이라고 자포자기하며 더 막나가기 쉽다. 우리는 악행을 거듭하는 사람들을 보며 ‘저런 뻔뻔한!’이라고 욕을 하기 쉽지만, 그네들은 그네들 나름대로 최초의 악행의 행위가 주는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방식, 혹은 자신을 합리화하는 방식이 오히려 더 큰 죄를 짓는 쪽으로 가기도 한다는 말이다. 악행을 거듭하는 이들은 이렇게 죄를 거듭하면서, 언젠가 찾아올 처벌을 두려워하면서도 한편으로 그 처벌이 얼른 다가오기를 기대하는 이중적인 상태가 되곤 한다. (다 죄짓고 종교적 가책을 느껴본 사람이라 하는 단정적인 말.) 심드렁하게, 아무 거리낌 없이 악행을 일삼는 것 같았던 그가, 아이들을 보내는 이 장면에서, 사실 처벌을 기다려왔던 게 아닐까, 언제까지 자신이 용서받고 그 악행을 계속할 수 있는지 일종의 신에 대한 실험을 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은 표정을 보여준다. (마치, 메츠가 이길 것을 알면서도 판돈을 계속 키워 다저스에 걸며 헛된 희망 – 기적 – 을 기대하는 것처럼.)

Bad Lieutenant

예수와 맞대면하면서 비로소 자신의 악행을 직시하며 무너져내린다.

<복수의 립스틱> 때는 잘 이해를 못 했는데, <악질경찰>까지 보고 나니 아벨 페라라에 있어 ‘죽음’은 의외로 처벌의 극단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구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전재산을 쥐어주며 그놈들을 도망치게 했던 그는 정작 내기도박단 두목에게 암살을 당하는 것으로 영화가 끝나는데, 이 장면은 물론 아이러니한 비극의 장면이기도 하지만, 그에게 있어 비로소 평온과 구원이 찾아오는 순간처럼도 여겨진다. 죄짓고 사는 것도 엄청나게 에너지를 소모하는 피곤한 일이다. 길에서 총을 맞고 즉사하는 방식이, 삶을 마감하는 것으로는 그에게 굉장히 잘 어울리는 방식. 그는 아마 이것을 그간 애타게 기다리고, 고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은, 그가 수녀의 뜻을 받아들여 그들에게 새 삶을 줄 수 있는 기회를 주었을 때 비로소 찾아와줬다. 그에겐 고마운 일일 터이다.

ps1. <복수의 립스틱>의 주인공 조이 태머리스가 ‘조이 런드’라는 이름으로 공동각본과 출연에 참여했다. 그와 마약을 함께 먹는 늘씬한 몸매의 얼굴 윤곽 또렷한 예쁜 언니가 조이 태머리스다. <복수의 립스틱> 때의 앳된 소녀의 테가 완전히 사라지고, 성숙한 여인의 모습이다.

ps2. 영화에 쓰인 랩송의 반주가 아무래도 레드 제플린 곡과 너무 똑같다고 여겼는데, imdb 찾아보니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그 곡 자체가 레드 제플린의 Kashmir에 랩을 입힌 거라고 하고, 허가 없이 쓰는 바람에 극장 버전에만 있고 비디오 버전에선 곡이 빠졌다고 한다.

ps3. 2009년 개봉 예정으로 리메이크 작업이 진행중인 듯, 그러나 알려진 것은 제목 외엔 아무것도 없다. “Bad Lieutenant ’08″이 제목인 듯.

ps4. 아무래도 ‘구원’을 다루어선지, 마틴 스코시지 감독의 영화들이 생각나며 간절히 보고 싶어지더라는.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6 Comments

  1. 역시 영화에 레드 제플린의 음악을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단도용 밖에 없군요..

    • 음, 레드 제플린이 원래 영화에 음악을 안 빌려주나요?

  2. 저는 다저스에게 돈을 건 하비케이틀의 행태야말로 지극히 인간적인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의 배팅패턴은 3승 뒤 4패한 팀은 없었다라는 철저한 경험 법칙 하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죠. 그러니까 점점 커지는 베팅액수처럼 이 남자는 인간의 법 아래에 살아가는, 너무나도 유혹에 약한 한 인간이 타락해가는 모습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때문에 악질경찰은 생각보다 악질스럽지 않았고(눈에는 참 악질스럽게 보였습니다만), 그의 악행은 어느 정도 일반화가 되었달까. 아벨 페라라가 그리는 죽음과 구원에 대해서는 N.님과 거의 비슷하게 느끼고 있는 것 같네요.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난 후 머리속에 재미있는 질문이 떠올랐어요. 그것은 과연 그가 시간 내에 12만불을 다 마련했다면 그 청년들을 보내줬을까라는 것입니다. 하비케이틀이 수중에 가진 돈은 3만불, 청년들의 몸값 5만불, 그러니까 합이 8만불이잖아요? 그걸로는 빚을 다 갚을 수가 없죠. 그 때문에 그의 선행이 일종의 자포자기처럼 느껴지기도 했답니다. 그래서 뭐랄까 영화 끝맛이 좀 애매했답니다. 선행도 선행같지 않고, 악행도 악행같지 않은 느낌이랄까.

    • 하비 키틀이 동료들에게 메츠에게 돈을 걸게 하면서 내세우는 근거나, 자신이 다저스에게 돈을 걸면서 내거는 근거나 다 일리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전 다저스에 계속 돈을 걸었던 건, 정말 그렇게 하면 내기에 이길 것이라는 기대나 확신보다는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라는 ‘믿음’에 근거한, 일종의 ‘기도’인 것으로 봤어요.

      흑인 청년들에게 돈을 주며 보낸 행위에 일련의 ‘자포자기’의 정서가 있다는 것 역시 저도 동의합니다. 그러니까, 파멸을 향해 차근차근 길을 밟는 행동 중 하나라는 거죠. 다저스에게 돈을 거는 것도 사실은, 그렇게 파멸을 향해 차근차근 길을 밟는 행동… 그의 의식 수준에선 부정하더라도, 실은 그의 무의식 수준에서는 강렬하게 죽음을 맞기를, 자신의 행동에 ‘처벌’이 내려지기를 원했던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에게 죽음을 당함으로써 처벌과 구원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 극단의 파멸이 바로 구원이라는 것이, 아벨 페라라의 세계의 특이점, 이라고 생각해요.

      그나저나 비슷한 시간에 서로 상대의 블로그 글을 읽으며 댓글을 달고 있었군요. 하하;;

  3. 아, 예. 깐깐한 횽들이라 자신의 곡들을 남들이 써먹는 걸 못 견뎌하시더라고요.
    카메론 크로우가 “올머스트 페이머스”때 사정사정해서 허락을 얻어낸 사례가 있긴 한데 이때도 딱 몇초만 써야한다는 전제 하에 마지못해 허락하셨다는..^^

    • 아아, 그렇군요. 제가 음악 쪽은 잘 몰라서요. 설명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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