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인호 | 더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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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는 좋았지만...

사금융계 최고의 큰손으로 재력과 권력을 가지고 있으나 몸은 이제 병이 든 강노식(변희봉)이 가난하고 젊은 거리의 화가 민희도(신하균)에게 막대한 보상이 달린 내기를 제안합니다. 자신이 지면 희도에게 30억을 주겠지만, 자신이 이기면 희도의 젊은 몸을 갖겠노라고. 거래에 응한 희도는 결국 내기에 지고, 노식에게 자신의 젊은 몸을 빼앗기고 맙니다. 깨어나보니 뇌와 척추를 서로 바꾸는 수술 끝에 자신은 노식의 늙고 병든 몸을 하고 있었던 거죠. 윤인호 감독이 이 영화에서 하고 싶었던 건 크게 두 가지로 보입니다. 하나는 저 거래 자체를 매우 정교하게 짜며 의미를 부여하는 것. 또 하나는 변희봉과 신하균이라는 두 배우의 1인 2역 연기를 화면 가득 펼쳐놓는 것이죠. 전자는 의외로 얘기할 것이 굉장히 많은 주제입니다. 특히 한국처럼 연령을 기준으로 부여되는 권위가 매우 강한 나라에서는 더욱. 영화도 그것을 위해 “나이도 어린 새끼가…” 와 같은 대사를 많이 사용합니다.

<더 게임>이 제게 주었던 정서적 반향 중 큰 줄기는 분명 우석훈, 박권일의 [88만원 세대]를 읽은 경험과 긴밀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사금융계 최고의 큰손이라는 정체성으로 우리가 짐작해볼 수 있는, 강노식이 가진 것은 무엇일까요. 권력, 재산, 명성, 그리고 그 나이와 자리에 걸맞는, 그 사람이 가진 ‘연륜’과 영악한 생존의 지혜입니다. 이 사람이 자기 주변인들 대하는 걸 보면, 사람 두셋 쯤은 우습게 손바닥에 가지고 놀 만한 무서운 사람입니다. 게다가 이 사람은, 거의 악마가 보장해주는 것과 같은 특별한 운을 가지고 있습니다. (살면서 한번도 내기에 진 적이 없었다는 말을 하고, 과연 이것은 이 영화에서 행해지는 두 번의 내기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하지만 이 사람의 최대의, 그리고 유일한 약점은 바로 몸이 늙고 병들었다는 것. 이런 사람이 가진 거라곤 젊은 몸과 여자친구, 그리고 그림에 대한 재능밖에 없는 사람에게서 젊음을 빼앗습니다. 어른, 특히 성공한 어른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에 대한 대가로 지불한 것을, 엄한 제3자한테 빼앗으려는 거죠. 영화는 외면상으로는 민희도의 돈에 대한 욕심을 다루는 것 같지만, 정말로 집중하는 것은 바로 강노식의 탐욕입니다. 이 사람은 민희도의 젊은 몸을 탐내고, 나아가서는 민희도의 여자친구, 즉 젊은 친구들 특유의 연애방식과 기억까지 탐을 냅니다.

이 영화를 이렇게 이해하는 건 아마도 제가 아직 ‘가진 것 없는 젊은 사람’이어서일 겁니다. 분명 이 영화 역시 강노식보다는 민희도의 편에 서 있고, 그에게 막대한 그 돈이 필요한 명분까지 제시해 줍니다. 그는 그 돈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민희도가 그런 어리석은 내기에 응했던 것은 돈에 대한 탐욕이 아니라, 젊은 사람 특유의 미숙함과 어리석음 때문이었습니다. 이 밑에는 청춘이 가질 수밖에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주어진 환경에 대해 어찌해볼 수 없다는 절망감이 깔려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그토록이나 처절한 결과를 받을 만큼 큰 죄일까요? 원래 청춘 자체가 미숙하고 어리석을 수밖에 없습니다. 완숙함과 지혜를 얻기 위해 우리는 청춘을 지불하고, 대신 늙은 몸을 얻게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 아무리 내기 자체는 공정한 룰에 의해 공정하게 진행되었다 해도, 이 게임은 처음부터 불공평 거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권력을 탐하는 나이든 보수층 – 사실 그들은 진짜 보수도 아니고 수구에 불과합니다만 – 의 탐욕과 노추를 혐오스럽게 묘사하는 한편, 이들에게 ‘당할 수밖에 없는’ 젊은 층 – 영화에선 신하균이 연기하지만 아마도 정말 감독이 그리고 싶었던 건 지금의 386, 정확히 노무현과 그 또래들, 그리고 그를 지지하는 지지자들일 겁니다만 – 의 비애와 피해의식을 은유한 거라 봐도 별 무리 없을 것 같아요. (전 386에게 ‘동원’되는 X세대의 구도라는 게 무척 싫습니다만. 민희도는 아무리 나이를 먹었어도 30대 초반. 386으로 분류되기엔 너무 어립니다. 신하균이란 실제 배우 역시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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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했던 한때. 여자친구 역에는 (너무 예쁜) 이은성 양이 출연을.

그러나 나이 권위주의가 좀더 강한 한국에서 이들의 거래는 재미있는 뉘앙스를 갖게 됩니다. 적어도 한국은 무조건 ‘젊음이 권력’인 사회만은 아닙니다. 즉 이들의 실제 정신연령이 어떻게 되건, 신체가 가진 나이로 인해 젊은 몸의 강노식은 나이보다 과소평가를 받거나 억울한 폄하를 당하고, 강노식의 몸을 한 민희도는 깍듯한 예의에 의거한 대우를 받게 되기도 하는 거죠. 그렇기에 민희도의 몸을 갖게 된 – 즉 신하균이 연기하는 – 강노식은, 거칠 것 없는 악마가 젊고 어린 몸 안에 갇혔다는 느낌을 줍니다. 반면 강노식의 몸을 입은 – 즉 변희봉이 연기하는 – 민희도는 늙고 병들어 거추장스러운 몸 안에 펄펄 뛰는 청춘이 갇힌 느낌. 둘 다 몸의 구속 안에 대단히 갑갑하게 갇힌 상태입니다. 그러나 물론 보여줄 것은 신하균 쪽이 변희봉보다 더 많습니다. 과연, 두 배우는 매우 재미있는 연기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저는 별로 만족스럽지가 않군요. 일단 신하균이 더 잘 하는 건 순수한 악 그 자체이지 노회한 탐욕가의 악이 아니거든요. 기가막히게 변희봉의 강노식을 흉내내는 건 사실이지만, 어쩐지 몸이 바뀐 뒤의 신하균의 연기는 캐릭터의 불편함이 아닌 배우의 불편함이 더 많이 묻어나옵니다. 변희봉은 계속 웃음을 유발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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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바뀐 두 사람. 결국 이 영화가 강조하는 건 강노식의 탐욕이다.

이것은, 애초의 설정의 흥미로움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실제로 두 사람의 거래 뒤에 보여주는 게 별로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거래 내용 자체는 매우 흥미롭게 묘사되는데, 정작 몸이 바뀐 뒤 영화는 두 사람이 각자 새로운 몸을 탐닉하거나 적응하지 못해 지내는 얼마간의 에피소드를 지루하도록 길게 묘사합니다. (그런데 전에도 밝혔지만, 모든 것에 심지어 젊은 몸까지 갖게 된 강노식이 고작 하는 게 나이트에서 돈 뿌리면서 여자 끼고 술 먹는 거라니, 웃기지도 않습니다.) 몸을 빼앗긴 민희도의 그 기막히고 억울한 심정은 노름꾼 삼촌인 손현주와의 대화씬을 통해 드러나는데, 이 씬은 별 의미도 없이 지루하고 길게 반복될 뿐만 아니라 민희도의 응당 그 감정이 제대로 드러나지도 않고, 오히려 관객들을 계속 웃게 만듭니다. 이들이 마침내 처음 민희도를 데리러 왔던 강노식의 부인(이혜영)을 찾아가서 비로소 강노식 대 민희도의 진영이 완성되는 게, 무려 영화 러닝타임이 한 시간이 지나서입니다. (이 순간에 일부러 시계를 봤다죠.) 그러니 뭐 할 게 있겠습니까. 어수룩하게 뭔가 시도하는가 싶더니 하는 둥 마는 둥… 뭐 막판에 반전 하나가 주어지긴 하지만, 그래서 어쩌라고요. 이 영화는 제목에서 제시한, 제대로 된 ‘게임’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그저 몸을 빼앗긴 민희도의 신세한탄을 하다가 별 반격도 못한 채 그냥 주저앉고 맙니다. 이러면 안 되죠. 적어도 ‘게임’이라 하면 앙편이 대등한 힘을 갖고 공격을 하면 반격도 하고 해야 하는 거죠. 아니면 그 강렬한 정서를 묘사하며 차라리 포커스를 민희도에게 맞추던가요.

결국 이 영화는 애초에 흥미로운 설정과 아이디어 하나만 갖고, 이것만 보여준 채 이야기는 발전시키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리고 맙니다. 신하균과 변희봉같은 좋은 배우들을 데려다 고작 재주넘기나 보여주는 건 배우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봐요. 신하균의 연기가 기술적으로는 흥미로우면서도 별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건 결국 이야기의 부재, 플롯의 부재 때문입니다. 아이디어의 신선함만으로는 최소 한 시간 반의 장편영화를 채울 수가 없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사실. ‘스릴러’라는 장르가 이런 식으로 낭비되는 것은 제가 아무리 스릴러 장르의 열혈팬이 아니라 해도 씁쓸함이 가시지 않는군요.

ps1. 이혜영의 출연씬이 팍 줄었습니다. 아니 이런 폭풍간지의 멋진 언니를 데려다가 고작… ㅠ.ㅠ

ps2. 안비서 역의 배우는 장항선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외람되오나 아버님 쪽이 훨씬 멋지십니다.

+ 2시, Jan.18, 2008, CGV용산, 기자시사회.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6 Comments

  1. Pingback: Movie rewind
  2. 좀더 나가보면, 강노식의 몸을 갖게 된 민희도가 별다른 저항도 반격도 하지 못한 채 주저앉고 마는 것은 우리 시대 젊은 세대의 무기력에 대한 은유일지도 모릅니다. 하긴, 민희도를 386이 투영하고자 하는 세대가 아니라, 386이 바라보는 지금의 젊은 세대, 로 해석하는 것도 말이 됩니다. 어른들에게 인질로 잡힌 채 죽어가는 젊은 세대에 대한 은유라면, 말이 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장르영화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이야기가 일단 재미있어야 한단 말씀. 객관적으로, 사실 영화를 못 찍었습니다. 윤인호 감독은 처음부터(특히 데뷔작 < 리케이드>의 소재 때문에) 지나치게 과대평가를 받아온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있는데, 이 감독의 영화를 처음 본 거라 단언하기가 힘들군요.

  3. 88만원세대의 구조, 그리고 나이가 ‘권위’를 만드는 한국사회의 미묘함을 지적하신 것. 100% 동감합니다.+_+

    이 영화는 N.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게임이라 해놓고, 정작 대결이 무색해졌고.(한순간에 대결룰이 무너지더군요.-_-;)
    신하균 씨는 노회한 ‘강노식’의 모습을 판박이처럼 보여줬더라면,(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변희봉 씨는 젋은 ‘희도’의 모습이라기 보단, 아이의 모습 혹은 ‘치매 걸린 노인'(결국 아이의 모습이겠죠..)에 가까운 연기를 펼쳐서 ‘웃음’을 계속 터뜨렸지요.;_;

    결말 부분에서(스포일러-_-;) 결국 ‘강노식’의 친자식이 ‘민희도’라는 암시같은게 있었는데 [386이 바라보는 지금의 젊은 세대]=민희도 라는 등식을 붙이면 재미있게 맞는 것 같기도 하네요.ㅋ

    이 영화 전에 보았던 ‘원스 어폰 어 타임’은 잘 짜여진 영화라는 느낌이 드는 반면, 더 게임은 ‘미묘하게 어긋나게 짜여진’ 영화라는 느낌이 들어요. 심지어 의도적으로 그랬나? 싶을 정도로..-_-;

    • 영화 보는데 지지부진함에 짜증을 내면서도, 그 주제 때문에 머릿속이 참 복잡했어요. 아울러서 [88만원 세대]를 읽은 후부터는 모든 영화를 자꾸 세대 관점으로 보게 되더군요. …

  4. (스포있음)
    세대간 갈등으로써 민희도와 강노식의 관계가 흥미롭네요. ^-^
    그 갈등의 표출지점이라고 해야 할까? 그 지점이 핸드폰 내기인데, 너무 어처구니 없는 설정이라 생각되요. 물론 핸드폰 내기도 강노식이 미리 만들어놓은 함정이라는 점이라지만…. 더 생각해보면 어처구니 없는 함정에서 탈출하게끔 도와주는 사람도 강노식의 세대였던 이혜영(캐릭터 이름이 생각이 안나네요…)이 아닐까하구요, 이혜영도 강노식에게 당한 캐릭터지만 이건 세대내 갈등이라 할 수 있다고 볼 수있고, 이혜영도 권위와 명성, 부를 축적한 민희도와 대척점에 있는 캐릭터였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어디선가 얼핏 봤는데, 누가 가장 슬픈 캐릭터일까? 하고 감독이 물어봤다고 하네요. 강노식, 이혜영, 이은성, 몸을 빼앗긴 젊은 청년 민희도냐, 핏줄을 죽인 강노식이냐, 도움을 주려다 죽은 이혜영이냐, 아무것도 모르고 사랑하는 이은성이냐, 재밌는 점이라서 댓글을 남겨요 ^-^

    이혜영 아주머니가 대사 칠 때마다 1980년대 생각나지 않나요? 그 때 영화 더빙되있잖아요~ 그 목소리라 똑같아요~헤헤^^

    • 네, 이혜영의 캐릭터는 전형적으로, 여성의 위치란 게 권력자의 아내나 딸일지언정 권력자 그 자체가 되기는 힘들다는 걸 보여주는 거지요. 권력자의 아내나 딸은 유사시에 얼마든지 버려지거나 맨 밑바닥으로 추락할 수 있는 존재. ‘부르주아 여성’이란 말이 실로 얼마나 모순적인가, 보여주는 캐릭터라 할 수도 있죠.

      이혜영 언니는 아무래도, 자연스러움을 넘어서 너무 발음이 똑 떨어져서 어색한 경향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포스는 역시 후덜덜이랄까요. 사실 시대를 너무 앞서 나오신 언니라고 생각해요. 80년대에, 이혜영 언니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하셨던 어떤 얘기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저로서는 이 언니를 볼 때마다 걍 얼어붙습니다. ^^ (당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결혼 같은 건 개인의 선택일 뿐이고 여성도 얼마든지 자신의 자유를 만끽하며 살 수 있고 자신도 그렇게 산다, 라고 해서 그 라디오 디제이가 얼어붙었던… 방송을, 엄마 손 붙잡고 시장통 다니던 어렸을 적에 들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당시만 해도 이건 쇼킹한 정도가 아니라, 그렇게 살고 있는 여자들이 손가락질을 받을 때였는데, 그걸 라디오에서 자신만만하게 말로 뱉는 언니라니 그저 놀라울 뿐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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