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버튼 | 스위니 토드 :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

Sweeny Todd : The Demon Barber of Fleet Street

간지 폭풍 포스터. 아아 뎁 오롸버니. ㅠ.

그림이 그려진다. 요즘 원래 영화였던 작품이 뮤지컬로 번안되는 것도 워낙 유행이 돼서 심지어 <이블 데드>도 뮤지컬로 옮겨졌다는데 유명 뮤지컬이 영화화되는 건 별로 뉴스거리도 아닐 테다. 게다가 어둡고 잔혹하기로 유명한 <스위니 토드>라면, 애초에 영화화 판권을 사러간 사람이건 회사건 처음부터 “이건 무조건 팀 버튼과 조니 뎁!”을 외쳤을 것 같고, 팀 버튼과 조니 뎁 역시 이건 무조건 내 거, 라고 생각했을 듯하다. 게다가 면도용 칼을 든 살인 이발사라, 이건 당연히 가위손을 든 정원사 에드워드의 얼터-에고의 버전이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양손에 칼을 들고 몸을 세우거나 칼을 번쩍 든 조니 뎁의 스위니 토드는 분명 가위손 에드워드의 모습을 똑 닮았다. 다만 너무나 어두워서 심지어 윤곽조차 분명히 보이지 않는 음산한 암흑의 배경(심지어 러빗 부인의 상상씬에서도 컬러가 심하게 탈색되어 창백한 느낌을 주도록 구성되었다.)과 분장이 둘을 구분해줄 뿐이다.

인기 뮤지컬을 그대로 뮤지컬 영화로 옮기는 데에는 여러 가지 난점이 따른다. 무대 공연물과 영화는 완전히 다른 매체이기 때문에, 적당한 편집은 물론 일부는 장면 구성까지 완전히 새로 해야 한다. <스위니 토드>는 이만하면 꽤 성공적으로 영화로 옮겨진 편이지만, 역시 매체의 종류가 달라지면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어색함과 이에 대한 아쉬움이 분명 존재한다. 중반에 살짝 늘어지는 데다, 조안나의 이야기는 아무래도 영화를 산만하게 했음을 우려한 탓인지 대폭 삭제된 듯. (원래 뮤지컬을 보지 않아서 영화를 본 것으로만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게다가 스위니 토드가 살인을 하면서, 그리고 안소니가 거리를 헤매면서 조안나를 그리워하는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원래 무대예술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난점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씬이기도 하다. 아마도 무대에서는 공간을 분할하여 동시에 이중창이 되도록 연출됐을 이 씬이 영화에서는 교차편집으로 들어간다. 다른 대안이 있었을 것 같진 않지만, 이때의 곡이 안소니와 스위니의 이중창으로 화음이 맞아야 하는 장면이라 그런지 저 교차편집이 뜬금없고 어색해 보인다. 반면 스위니 토드의 살인의자에서 시체가 처리되는 일련의 장치와 시체실의 모습은 영화이기에 더욱 생생하고 인상적으로 구성할 수 있었던 장면일 터이다.

Sweeny Todd : The Demon Barber of Fleet Street

에드워드 시저핸드와 닮은꼴.

조니 뎁은 분명 스위니 토드를 생각했을 때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배우 중 하나고, 그는 과연 섬뜩한 광기와 괴상한 유머로 스위니 토드를 연기해내지만, 위에서 언급했듯 끝없이 에드워드 가위손을 연상시키기에 이는 굉장히 재미있는 주석이 되기도 하지만 종종 영화에의 몰입을 방해한다. 전문 뮤지컬 배우들에게도 난해한 곡들로 알려진 뮤지컬 넘버들인지라, 조니 뎁의 가창력은 역시 모든 걸 잘 하는 완벽한 배우는 없구나, 중얼거리게 만든다. (그러나 잠깐, 바로 그 옆에는 전문 뮤지컬 배우가 아님에도 곡을 매우 능숙하게 소화해낸 데다 러빗 부인 캐릭터도 매력적으로 그려낸 헬레나 본햄-카터가 있지 않은가.) 앨런 릭맨, 티모시 스폴의 악당 연기도 매우 전형적인 스테레오 타입의 캐릭터를 보여주면서도 그 안에 생생한 감정을 담고 있는 데에 성공하고 있다. 나는 <센스, 센서빌리티>에서 처음으로 앨런 릭맨을 인지한지라 그의 그 달콤하면서도 진중한 모습을 너무나 좋아했지만, 역시 이 배우는 악당 연기를 해야 더욱 빛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다이 하드>의 한스는 얼마나 매력적인 악당이었단 말인가.) 티모시 스폴은 <비밀과 거짓말>과 같은 영화에서 착하고 속깊은 평범한 중산층 남자의 빛나는 감성 연기를 훌륭하게 보여준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건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건 비열하고 비굴한 캐릭터를 너무 기막히게 소화해낸다. (그렇게 분장만 해놓으면 ‘정말 쥐새끼 같다’는 느낌이 들어버리니 원.)

Sweeny Todd : The Demon Barber of Fleet Street

저 사악한 미소를 보라. 그러나 앨런 릭맨 옵화도 멋지셨다.

그러나 문제는 다시, 팀 버튼이다. 나는 그가 과거 암울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화면 가득하게 채워넣었던 유쾌한 생기와 유머 감각을 잊을 수가 없다. <스위니 토드>에서도 분명 그로테스크한 유머가 안 깔려있는 건 아니지만(차례로 신사들의 목을 따는 스위니 토드의 경쾌한 손놀림!), 팀 버튼 특유의 빛나던 유머감각과 생기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팀 버튼의 세계가 그토록 매혹적이었던 건 어른으로서 유지하기 힘든 동심들 사이로 어른의 환경과 캐릭터들의 동심 사이에서 팽팽한 긴장감과 균형을 주던 그 유머감각이었으며, 그 사이에서 표현이 불가능할 정도로 빛을 내던 인물의 생생함이었다고 믿는다. 아무리 복수에만 정신이 팔린 성인남자를 그리는 데다 원작이 있기에 함부로 자기 색을 집어넣기 힘들었다 하더라도, 그럼에도 팀 버튼이 만들었던 <배트맨>과 <배트맨 2>늕 얼마나 에너지와 생기와 유머가 넘쳐흘렀는가. 마치 ‘배트맨은 원래 그랬다’고 깜빡 믿어버릴 만큼 말이다. 이제 팀 버튼은 자신의 가장 큰 장점이었던 그것을 완전히 잃어버린 듯하다. 러빗 부인의 상상씬에서 시도된 팀 버튼식 유머는 마치 팀 버튼식 유머가 아니라 ‘팀 버튼식 유머를 흉내낸’ 것으로 보일 지경이다. 기술적으로는 매끄럽게 잘 만들어진 영화임에도, <스위니 토드>는 더 이상 팀 버튼의 영화가 아니라 과거 팀 버튼이었던 사나이가 만든 영화, 혹은 조니 뎁이 무시무시하면서도 애처로운(그의 모습을 보며 ‘애처롭다’는 형용사를 쓸 만한 사람이 몇 명 안 될 걸 뻔히 알지만) 연쇄살인범의 이미지를 보여준 영화로만 기억될 것 같다. 한 마디로, ‘변절한 팀 버튼’의 이미지는 고대로라는 얘기.

ps1. 친구와 했던 얘기 : 헬레나 본햄-카터는 역시 망가지고 나니 멋지시다.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도 근사했는데. (시작은 아마도 <파이트 클럽>이었나?)

ps2. 한동안 <캐리비안 해적> 시리즈에서만 본지라 “이 인간이 애 아빠 되더니 너무 밝아졌어!”라고 투덜댔는데 과연 제대로 암흑의 중년미남을 연기해 주시는구려. 과연 뎁 오빠시다.

ps3. 연쇄살인을 하고 시체를 음식에 넣어 처리한다는 얘기는 동서고금 어디에나 있는 일종의 ‘도시괴담’. 이 도시괴담이 19세기 런던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건 그만큼 부랑자와 노숙자가 넘쳐났기 때문이고 대체로 이런 도시괴담의 범인들도 부랑자와 노숙자를 대상으로 범행을 저지르는 게 일반적인데, 정작 스위니 토드가 살해하는 건 신사들이다. 죽여도 찾을 사람이 없는 사람들을 죽인다면서(바로 이것이 노숙자, 부랑자, 창녀가 연쇄살인의 표적이 되는 이유.) 하나같이 신사들을 죽이는 건  뭔가…?

+2시, Jan. 3, 2008, CGV용산, 기자시사회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5 Comments

  1. 영화는 별로 재미없게 봤지만 스위니 토드가 에드워드 시서핸즈의 얼터 에고라는 해석은 매력 만점이네요.

    • 시사회 때 친구를 데려가 봤는데, 둘 다 나와서 제일 먼저 한 말이 그거였습니다. 에드워드 사악버전이다! 흐흐
      영화 자체는 재미있게 봤는데, 여러모로 아쉬운 점들은 역시 영화 외적인 부분들이더라고요. 누군가는 그걸 ‘어른이 되었다’고 표현하던데, 정색하고 진지해지면 어른스러운 거라는 건 그야말로 훗! 해주고 싶은 얘기라… ^^

  2. 음, 전 팀버튼의 영화 중에서 가장 좋게 본 영화였습니다. 제가 좀 어른틱해서…^^ (전 배트맨 별로 안 좋아해요.) 흠잡기가 매우 어려운 솜씨였다고 봅니다.

    • < 위니 토드> 자체는 기술적으로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 틀쥬스> 같은 저예산 초기작들을 훨씬 더 좋아해서요. 사실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이렇게 ‘대작’을 만드는 건 일찍이 < 트맨> 시절부터 그랬고, 그래도 이땐 팀 버튼 고유의 색이 묻어 있었는데, 팀 버튼이 본격적으로 ‘다른’ 길을 보여주기 시작한 건 < 성탈출>부터죠. 전통적인 팀 버튼 팬들은 < 성탈출>도 < 리피 할로우>도 안 좋아하는 경향이 많은데, 저는 < 리피 할로우>까지는 그래도 좋았지만 < 위니 토드>는, 확실히 옛날 팀 버튼의 그 길에서 너무 멀리 왔구나, 새삼 확인시켜 준 좀 낯선 영화로 받아들여지더군요. :)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