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히크너, 사이먼 J. 스미스 | 꿀벌대소동 Bee Movie

Bee Movie

어째 표정도 좀 유재석과 닮은 듯...

보는 와중 무한공포를 느끼면서 나한테 애가 있다면 절대로 보여주고 싶지 않을 애니메이션이라 생각했다. 애에게 보여주기 위해 그로테스크하고 어두운 화면의 폭력과 섹스가 난무하는 영화와 <꿀벌대소동> 중 고르라고 해도 차라리 전자를 골랐을 것이다. 영화에서의 노골적인 폭력은, 차라리 현실에서 억압된 것들이 예술에서 일종의 판타지로서 허용되는 것으로 아이에게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의 은폐된 폭력을 영화가 왜곡하고 있을 때, 그리하여 영화가 이데올로기의 폭력을 뻔뻔한 수준으로 저지르고 있을 때, 나는 과연 아이에게 뭐라 설명을 해야 하나? 이 순간 내가 애엄마가 아닌 것이 그저 감사할 뿐이다. 아마도 내가 애엄마였다면, 이 영화를 보여주지 않는 것에 대해 또다시 ‘이건 부모로서 애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게 아닐까’ 따위의 고민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나의 이런 반응은 매우 과민한 것이며, 지나친 상상 혹은 오버 해석에 기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 영화가 제국의 제3세계 노동착취에 대해 뻔뻔한 변명과 합리화를 늘어놓는 영화라 생각한다. 이걸 의심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배리가 인간들의 양봉장을 발견하는 장면(제3세계에서의 비인간적인 노동 착취를 너무나 노골적으로 연상시키는) 때문이고, 바로 그 순간 배리가 ‘꿀벌’, 즉 ‘검은 줄무늬와 노란 줄무늬를 가진’ (아프리카인과 동양인?) 존재라는 사실이 새삼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배리(제리 사인필드 / 유재석)가 바깥세상에 구경을 나갔다가 ‘인간’인 바네사(르네 젤위거 / ?)와 친구가 되고 대화를 나눈다는 설정까지는, ‘이거 얘기가 이상하게 풀려나가고 있는데, 억지로 쥐어짜는 느낌인데’ 싶었지만 그래도 그런가보다 했다. 그가 양봉장을 발견하는 장면까지도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배리는 전체 꿀벌을 대표하여 인간의 꿀 착취를 하필 ‘미국의 연방대법원’에 가져가고(미국의 연방대법원이 인류를 대표하는가? 그래, 이건 미국영화니까 이해해줄 수 있다 치자.), 인간 vs. 꿀벌의 재판을 일으키며, 여기에서 승소하여 인간에게서 모든 꿀을 빼앗는다. 그 결과 전례 없는 풍요를 만끽하게 된 꿀벌들은 노동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되고, 꿀벌이 게을러진 바람에 생태계 전체가 망가진단다.

이런 우라질, 그러니까, 착취당하던 꿀벌들이 그 사실을 고발하는 것에서 갑자기 노동의 산물을 독차지하며 자원을 무기화하는 결과로 나가버리는 건 대체 무슨 심보야? 노동자가 부유하게 되면 당연히 게을러지는 거야? 그래서 노동자는 노동해야 한다고? (자본가는 그냥 착취하고?) 이런 억지와 왜곡과 모함이 어디 있어? 필요 이상으로 자연을 학대하고 낭비하면서 그렇게 산출한 산물을 제대로 분배하지 않은 채 지구 반대편에서는 사람이 굶어죽어 가는데 지들은 남은 음식 열심히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에 대해선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지? 이건 자본주의가 애초에 시작됐던 지점의 가장 기본적인 정신조차 왜곡하잖아? 이런 애니메이션을 애들한테 과연 보여줘야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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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의 아이디어는 꽤 신선했고 이 시퀀스에서 벌 시점의 화면도 꽤 박진감을 주긴 하지만...

기술적인 측면에선, 몇 가지 흥미로운 점들이 보이긴 한다. 예컨대 벌들이 빠르게 비행을 하는 장면에서 카메라가 벌의 시점으로 주변의 환경이 휙휙 변하는 걸 보여주는 장면들 같은 것. 실사영화였다면 헬리콥터 씬이 될 그 장면들을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해 내는 건 분명 기술적인 완성도와 어마어마한 작화 인력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과연 이 장면들은 실사영화에서도 종종 실패하는 박진감을 놀랍도록 성공적으로 제공하고는 있다. 더빙판에서 유재석은 그래도 꽤 안정적인 목소리 연기를 선보이고 있기도 하고. (나는 이 목소리가 정말 유재석 맞나? 싶은 순간들을 많이 맞이했다.) 하지만 그것 외에는? 이 애니메이션, 정말로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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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바네사와 벌 배리와의 우정... 여기서부터 엇박자.

내가 너무 정치 과잉이 아닌가, 혹은 전혀 다른 패러다임을 들이대며 억지 해석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많이 생각해 봤다. 그런데 그런 정치적인 해석을 빼고 나면, 도대체 왜 법정소송까지 벌이면서 배리가 그런 식의 모험을 하는지, 그 이후 스토리가 왜 그 따위로 전개가 되는지, 마지막에 왜 동물들을 대신하는 변호사가 되는 건지, 거기에 도대체 무슨 재미가 있는 건지, 나로서는 이 애니메이션의 스토리 전개가 도무지 이해가 가지도 않고 수긍이 가지도 않는다. 전체적으로 스토리가 너무 억지 춘향이잖아, 억지로 쥐어짜고 있잖아.

나도 미국 법정물들 꽤 좋아하고, 법 공부하는 남자친구를 둔 덕택에 사법제도에 대해 관심도 많고, 한국의 사법제도와 미국의 사법제도의 차이점 같은 것들에 대해 남자친구가 해주는 얘기를 굉장히 좋아한다. 하지만 이 애니메이션이 미국의 사법제도에 대한 교육용 목적을 갖고 있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결국 ‘배리가 법을 남용했다’로 가고 있고, 사실 본격적인 법정물도 아니고, 생태계가 망가진 것이 모두 꿀벌의 게으름 탓이라는 그 이야기 전개에 정말 기가 질려서, 끝까지 영화를 참고 보는 게 무척 힘이 들었다. 영화의 사카스틱한 농담을 내가 놓치고 있나, 내가 바보인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니까. 근데 그건 아닌 거 같고,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본 분들에게 진심으로 진지하게, 왜 재미있는지 묻고싶을 정도. 하지만 이 영화는 국내에서도 그리 나쁘지 않은 흥행성적을 거두었고, 이 영화를 좋아한 사람들은 정말 재미있다’고 말한다. 이럴 때마다 나는 나의 안목이 매우 의심스러워질 뿐만 아니라 나의 정치적 성향이 영화를 심각하게 왜곡시킬 정도로 강한가 자책감을 갖게 된다. 어쩌자고 나는 남들은 마음 편하고 재미있게 본 영화에서 제3세계 노동착취 같은 민감한 사안을 떠올려버린 것일까? 내가 잘못된 걸까, 영화가 이상한 걸까?

ps. 유재석의 목소리 연기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고 느끼긴 했지만, 르네 젤위거, 캐시 베이츠, 매튜 브로데릭, 크리스 록 등의 배우들과 심지어 배리 레빈슨 감독까지 참여한 목소리 연기를 듣고 싶었다. <엘라의 모험> 때도 그랬지만, 별로 검증 안 된 사람들을 캐스팅해 더빙을 하고선 기자시사회 때에도 더빙판을 틀어버리는 건 쫌…

ps2. 다 써놓고 보니 이 영화 무려 작년 12월에 본 거였…

+ Dec. 14, 2007, 2시, 대한극장, 기자시사회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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