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개봉작 – 2008년 2월 셋째 주

설연휴는 지난 주였는데, 어째 이번 주에 개봉하는 영화들이 숫자도 많고 면면도 더 화려합니다. 이번 주에 개봉하는 영화는 총 10편, 그런데 이번 주에는, 추천작 / 난감작 / 나머지로 구분하는 게 좀 힘들군요. 10편이나 되는데도 별로 쳐지는 영화 없이 골고루 수준작들이에요. 1년에 이런 신기한 날이 몇 번이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기냥저냥 나머지’로 분류된 영화들도 영화가 별로라기보다는 아무에게나 선뜻 추천하기가 힘든 영화들이어서 그렇지 완성도들은 꽤 괜찮은 편입니다. 이주의 난감작도 평소라면 그냥 ‘나머지’로 분류됐을 만한 영화고요.

어쨌건 그 중에서 ‘추천작 중 추천작’을 고르라면 역시 <추격자>. 물론 신인감독의 영화인 만큼 살짝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뭐랄까 한국 영화계에서 그간 계속돼온 ‘스릴러 장르에서의 삽질’을 한 방에 재우는, 그간의 삽질이 결국 이런 영화가 나오기 위해서였구나 싶은 그런 기특한 영화라 그렇습니다.

이주의 추천작

추격자추격자
감독 : 나홍진 | 주연 : 김윤석, 하정우, 서영희
스토리는 명쾌하고, 배우들의 연기는 소름 끼치도록 훌륭합니다. 전체적으로 조율이 잘 됐고 연출리듬도 좋은 편, 심지어 타악기를 잘 살린 사운드도 좋습니다. 특히 제가 마음에 들었던 것은 하정우가 연쇄살인범을 묘사하는 방식, 그리고 서울 강북의 그 특유의 골목길 표정을 잘 살렸다는 것. 과한 부분들도 없잖아 있고 중간에 호흡이 아주 살짝 산만해지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이 정도면 스릴러 장르의 영화로서 훌륭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보는 사람도 같이 발바닥에 땀이 날 것만 같은 영화. 사실 제 취향에는 좀 과하고 센 영화라서 마구 열광은 못 하겠습니다만, 그런 거죠, 취향과 어긋나는 데도 감탄해서 기특해할 수밖에 없는 영화의 케이스예요. 영화개봉 직후 좀 긴 감상문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하여간 윤석 아저씨 만세! 하정우 화이팅!

화성아이, 지구아빠
감독 : 메노 메이어스 | 주연 : 바비 콜먼, 존 큐잭
일단 애가 너무 귀엽습니다. 어린애답지 않게 약간 쉰 듯한 목소리와 무심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애어른같은 연기를 합니다. 자신이 화성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동안엔요. 맨마지막에 비로소 마음을 열었을 때 아이다운 얼굴과 표정이 나오는데 이 장면 정말 눈물 펑펑. 기본적으로 아주 착하고 사랑이 많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 보면서 같이 막 웃으면서도 눈물 줄줄입니다. 게다가 존 큐잭과 조운 큐잭 남매의 찰떡 궁합 코믹 연기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반드시 보셔야 할 영화입니다. <추격자>와 저 색깔박스 자리를 놓고 가장 각축을 벌였던 영화. 다만, 영화의 느낌이 약간 80년대 같다는 느낌은 쪼금 감수하셔야 할 듯. 스토리 자체가 그 느낌의 설정이니 어쩔 수 없잖겠습니까. 사용된 음악들도 다 그런 음악들이니, 이건 애초에 의도된 것이라 봐야 할 거 같아요.

오퍼나지 – 비밀의 계단
감독 :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 감독 : 벨렌 루에다
기본적으로 벨렌 루에다의 원맨쇼. 남편, 아이와 함께 어릴 적 자신이 있었던 고아원 건물을 구입해 이사왔는데 애는 실종되고 이에 대한 비밀을 풀어나가는 엄마의 얘기로, 결국 심리호러극입니다. 일단, 아이들이란 존재가 철이 없고 악의가 없기때문에 오히려 아주 무서운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걸 잘 보여주고 있고, 그럼에도 그 아이들을 아주 안쓰럽고 아끼는 애정의 눈으로 보는 게 참 좋았고요. 주인공이 계속 가지고 있었던 어떤 결핍과 상처, 그리고 모종의 죄책감(결코 그녀의 잘못도 아니었음에도), 그리고 나아가 상실과 아픔과 슬픔 같은 심리들이 아주 아름답게 표현되었어요. 이 사람도 기본적으로 가슴에 사랑이 참 많은 사람입니다. 이를 연기하는 벨렌 루에다의 연기도 아주 호연. 요즘은 이런 주인공들을 보는 게 좋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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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종과 나비
감독 : 줄리앙 슈나벨 | 주연 : 마티유 아말릭

시다시피 전 엘르 편집장이었던 장-도미니크 보비가 뇌졸중으로 전신마비가 된 후 왼쪽 눈 깜박임만으로 쓴 자서전으로 만든 영화.
왼쪽 눈으로만 세상과 연결돼 있는 보비의 그 고독감과 답답함을 되도록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노력이 카메라 곳곳에 보입니다. 한
인간의 위대한 의지의 승리와 그 상화에서 잃지 않는 유머감각도 감동적이지만, 한 사람을 깊이 탐구하고 진심으로 이해하고자 했던
카메라의 노력이 더욱 감동적이었습니다. 마티유 아말릭의 연기도 참 좋고요.

매뉴얼 오브 러브
감독 : 지오바니 베로네시 |  주연 : 카를로 베르도네, 모니카 벨루치
이탈리아판 <러브 액츄얼리>라 할 만하네요. 매뉴얼 오브 러브라는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에 접수된 사연 네 개를 묶는 형식의 옴니버스 구성이에요. 에피소드 네 개가 다 기본적으로 로맨틱 코미디이지만 사연의 종류도 표현의 방식도 다르네요. 어떤 건 에로틱한 판타지가 강조되고, 어떤 건 두 명의 버디 콤비 만담이 강조되고, 기타 등등. 모니카 벨루치는 점점 더 여신이 돼 가는 듯합니다. 더욱 아름답고 숭배할 수밖에 없지만 정작 당사자는 점점 더 인간세상과 멀어지는… 그래 특정 상징과 아이콘으로만 소비될 수밖에 없는. 각 에피소드가 다 재미있지만, 셋째 에피소드는 마음이 아주 짠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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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난감작

점퍼
감독 : 덕 라이먼 | 주연 : 헤이든 크리스텐센, 제이미 벨, 새뮤얼 L. 잭슨
평소라면 ‘나머지들’로 분류될 영화고, 이주의 난감작으로 결코 선정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만, 이번 주는 워낙 영화들이 다들 쟁쟁해서 말입니다. 주연배우들에 대한 무한한 빠심
심이 있다면 얼마든지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이고, 순간이동을 묘사하는 카메라도 매력적이고, 배우들도 예쁘고요. 하지만 듀나의 말을 빌자면 또렷하게 완결성을 가진 얘기가 전개되기보다는 ‘떡밥만 그득한’ 영화, 게다가 그 무한한 팬심에도 불구하고 한 마디 하자면 우리 아가 이든이는 아직 원톱 주연은 안 되는구나 싶습니다. 이든이보단 제이미가 훨씬 매력적입니다. 캐릭터도, 연기도요. 이 녀석은 또 언제 이렇게 컸담. 그러나… 아가 이든이가 까불며 살다가 열라 쳐맞고 고생하고 가까스로 사람 되는 얘기니까, 팬들이라면 결코 놓쳐서는 안될 거예요. 우훗.

기냥저냥 나머지들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감독 : 줄리 테이머 | 주연 : 짐 스터져스, 에반 레이첼 우드
<클로버필드> 다음 날 시사회로 봤는데, <클로버필드>로 오염된(?!) 눈과 시신경과 뇌를 정화시켜 주는 느낌이더군요. 무척 아름답습니다. 다만 중반 이후부터는 많이 늘어지는 편이고, 이미지 과잉이다 싶은 부분들도 많은 게 사실. 게다가 비틀즈의 광팬으로 리메이크들을 좋아하지 분들껜 고역일 거예요. 그러나 저는 비틀즈는 원곡보다 리메이크를 더 좋아한다는, 그래서 이 영화도 개인적으론 꽤 좋아한다는.

스파이더위크 가의 비밀
감독 : 마이크 워터스 | 주연 : 프레디 하이모어, 사라 볼저
영화 자체는 아주 재미있고 짜임새도 좋고 아름답게 촬영된 데다 연기들도 발군이에요. 다만 아무래도 저연령층 아동에게 좀더 어필하는 영화다 보니 성인 입장에서 볼 때 마구 빠져들기는 아무래도 힘들다는. 연기신동이란 말이 무색하지 않게 1인 2역을 맡은 프레디 하이모어의 연기도 좋고, 메리-루이스 파커, 닉 놀테, 마틴 쇼트, 크리스 록, 데이빗 스트래턴처럼 연기 잘 하는 성인배우들이 든든하게 조연으로 받쳐주고 있습니다. 사실은 추천작으로 넣고 싶은데 ㅠ.ㅠ

미확인 개봉작

아름답다
감독 : 전재홍 | 주연 : 차수연, 이천희
전재홍 감독은 김기덕 감독 2라고 하네요. 애초 영화의 시작도 김기덕 감독의 짧은 시놉에서 출발했고 제작도 김기덕 감독이 해줬다는. 아름다운 여자를 착취하는 내용의 영화는 사실 별로 보고 싶지 않지만, 시사회를 놓친 건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스폰지는 다른 영화 시사 스케줄 따윈 별로 고려하지 않고 시사회 일정을 잡곤 하더군요.)

대한이, 민국씨
감독 : 최진원 | 주연 : 최성국, 공형진
한국판 덤앤더머? 이미 본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 다소 사악한 장난기를 가지고 있었던 덤앤더머가 아니라그냥 발달장애를 앓는 순수한 두 사람, 이라는군요.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3 Comments

  1. 허걱, 글을 완성하지 않은 채 올려버렸네요. 요즘 제가 나사 하나가 풀린 듯… 에공.

  2. 저도 비틀즈 곡은 리메이크 버전을 더 좋아하는데다 배우들이며 배경이며 의상이며 다 뽀샤시해서 기분좋게 봤답니다. 비틀즈(와 제니스 조플린) 팬인 일행은 기대 이하라고 투덜거리더군요^^; 점퍼를 본 이든이 팬들의 안타까움 절절한 감상문을 몇 편 읽고 나니 영화를 아직 보지도 못했는데 벌써 안쓰러운 느낌입니다. 영화 고르는 안목을 키워줄 비밀교사라도 필요할 것 같아요;ㅇ;

    • 주연배우들이 남녀 할 것 없이 다들 예쁘더라고요 ^^ 전 정말 눈이 정화되는 느낌이었는 데다, 주옥같은 비틀즈 곡들 덕분에 귀가 사치하는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비틀즈 오리지널을 많이 아끼시는 분들한텐 거슬릴 듯도 합니다.

      이든이는… 사실 전 < 퍼>를 그럭저럭 재미있게 봤어요. 덕 라이먼이 시리즈로 이어가고 싶었는지, 뭐랄까, TV 시리즈물의 파일럿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미국에서도 지난 주말에 개봉해 박스오피스 1위를 했더군요. 그런 식으로 적당히 박스오피스 1위할 블럭버스터들… 하는 걸로 경력 관리를 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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