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회 풍경, 2월 15일 ~ 27일

2월 15일.


<보딩게이트>, 필름포럼 – <바보>를 건너뛰고 <보딩게이트>를 보러가는데, 집에서 넉넉히 출발했음에도 택시를 탔다가 길이 왕창 밀려 10분을 놓쳤다. 아, 정말 주 내내 이상했다. 이게 뭐야. 올리비야 아싸이야 감독 영화는 처음이었는데, 이 감독 의외로 애증과 집착과 배신과 기타 등등의 그 끈적하고 징글한 감정을 제대로 뽑아내는 분이구나 싶다. 난 또 장만옥의 <이마 베프>나 <클린> 같은 영화들, 스틸 한 장씩만 보고 엄청 우아한 감독인 줄 알았다는. 근데 거참 극장 안 분위기는 난삽하더라는.



2월 22일.


<데어 윌 비 블러드>, 용산CGV –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6편을 모두 제끼고 금요일 딱 이거 보러 갔다. 간만에 J.가 동행. 꽤 보고싶어했던 <27번의 결혼리허설>은 <데어 윌 비 블러드>와 딱 겹치는 바람에 통과. 그나저나 이거 제목 꼬라지 봐라. 전날 잠을 제대로 안 자고 갔다가 죽을 뻔했다. 몸의 진을 다 빼놓는 영화, 난 나오면서 ‘이러다 죽을지도 몰라’라고 잠깐 생각했다니깐.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나보다 겨우 4살 많은 주제에 무슨 도인이 돼버렸다냐. 이거 완전 호러영화라는. 영화란 매체의 시적 구현, 근데 서사시다. 아웅, 이거 다시 보러 가려면 각오 단단히 해야 할 듯.



2월 25일.


<잘 나가는 그녀에게 왜 애인이 없을까>, 신촌 메가박스 – 그놈의 졸업식 때문에 이대 앞에서 차가 꽉 막혀서 무려 15분 지각, 그러나 놓친 건 5분 정도인듯. 아놔 헤더 그레이엄 너무 귀여우셔. 진작 좀 귀여운 로맨틱 코미디들 하시지, <부기나이트>부터 야한 역할들만 맡으셔서리. 전반적으로 라이트한 연기를 하면서도 꽝 뱃속 깊게까지 때려주는 연기, 이 언니 그냥 귀엽기만 한 게 아니라 확실히 연기를 잘 하시는구나. 근데 난 아무리 봐도 브리짓 모이나한은 영 안 끌리던데(몸매는 좋더라만), 미국애들은 이 아가씨가 엄청 섹시하다고 생각하나 봐? 흥, 나도 위 아래 짝 맞춘 비싼 속옷 사모을 거야! 함박눈이랑 묘하게 잘 어울리는 영화였어.


<마이 뉴 파트너>, 서울극장 – 눈길에 늦겠다 싶어 지하철 타고 급하게 날아왔는데 다행히 시간 딱 맞게 도착. 조한선 군을 비롯해 안성기와 기타 등등 배우들이 무대인사를 했는데, 기자간담회는 가볍게 생까고 걍 집으로 왔다. 와, 조한선 키 크더라. 까무잡잡한 피부에, 다리도 길고, 의외로 어깨 넓고 상체가 우람한 몸매고, 그럼 당연히 내 가슴도 조금은 벌렁여야 하는데, 그것도 참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어쩜 아무 매력이 없을 수가 있니. 안성기 아저씬 여전하심. 근데  언제나 멋지신 최일화 아저씨가 안 오셨어 어째. 영화는…  착각을 좀 많이 하셨더라.



2월 26일.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신촌 메가박스 – 이틀 연짱 신촌메박. 배우님들 짱이셔요. 주드 로도 좋지만 레이첼 와이즈 언니 너무 멋지셔요. 나 울 뻔했자나. (데이빗 스트래턴도 무지 좋았다는.) 사실 한번도 왕가위한테 열광하면서 좋아한 적은 없으니 ‘지나간 내 청춘’ 운운하기도 좀 그렇지만, 그래도 왕가위 영화는 <2046> 빼고 다 봤을걸. 근데 왕가위는 그러니까, 결국 (서)유럽인으로 태어나지 못해 좌절한 아시아인이었던 거야? <중경삼림>까지 기분나빠질려고 그래. 필름2.0에 Bad 쪽으로 단평을 보냈다.



2월 27일.


<허밍>, 롯데시네마 홍대입구점 – 걍 두 마디만. 이게 영화면 내가 심은하다. 한지혜가 영화배우면 난 철인3종경기 세계챔피온이다. 


<과거는 낯선 나라다>, 시네마 상상마당 – 가뜩이나 참석한 기자 수도 적었지만 영화 끝나고 기자간담회 때 남은 기자가 겨우 3명. 평소에 창피하다고 절대 하지 않는 질문을 그래서 기자노릇 시작한지 1년만에 처음으로 해봤는데, 나 혼자 질문을 네 개인가 하면서 1:1 토론 분위기가… 끝나고 나와서 감독님과 인사하고, 마케팅팀 이목 제대로 끌고. (아우 창피해.) 김세진, 이재호 열사 기념사업회에서 의뢰하여 만들어진, 인터뷰로만 구성되어 기존 다큠벤터리 공식을 다 깨버리는 다큐멘터리다. 이건 제대로 기사를 쓰고 싶다. 여력이 된다면 인터뷰도 제대로 하고 싶다.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10 Comments

  1. 《데어 윌 비 블러드》라니… 어머, 무슨 뜻이야, 이거. 요즘은 다들 영어를 잘해서 이 정도는 알아 먹을 텐데, 난 정말 영어 못해서 이럴 때마다 좌절 먹어. 울고 싶다. 잉. 영어 못하는 게 죄냐? 죄겠지?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는 예고 보면서 왕자웨이의 영화를 그냥 서양판으로 뽑은 거겠거니 싶어 그다지 끌리지 않았는데(끌렸다면 캐스팅;), 네 저 평가를 내 블로그 네 블로그에서 보고 났더니 한 번 봐 줘야 하나 싶긴 하구나. 아이 씨.
    그나저나 대체 《허밍》이란 영화는 어떻길래 네가 저런 표현을 다 쓰냐. 푸하하하하하핫. 어이, 심은하. ^^

    • 피가 여러 상징으로 쓰이고 있으니 수입사에서도 고민이 많았을 거예요.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문장 하나를 통째로 음차해 붙여놓는 제목은 진짜. 듣자하니 그 밥 딜런에 관한 영화도 < 아임 낫 데어>라고 제목 박고 개봉할 모양이더만요. 요즘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가, 그림은 예뻐요. (배우도 좋아요 ㅠ.ㅠ 제가 좋아하는 배우들이 막…) 보다보니 왕가위는 그냥 서양인으로 태어나고 싶었구나, 실은 서양배우들 데리고 이런 영화를 찍고 싶었던 거구나, 그게 안 되니까 < 중경삼림>, < 타락천사>를 그렇게 찍어놨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얼마 전에 < 중경삼림> 극장에서 다시 보니 좀 낯뜨겁긴 하더이다만, 그래도 즐거웠던 추억 하나가 모욕당하는 기분이 살짝 들었어요.

      < 허밍>은 뭐… 연애에 대한 판타지를 어떻게든 극단화시키기 위해 사랑을 박제시키는 바보같은 영화죠. 연기도 바보같고 연출도 바보같고 스토리도 바보같고, 무슨 10대 초반 여자애가 친구들이랑 모여서 찍은 아마추어 비디오 조각같은. 정말 10대 감독의 영화면 차라리 칭찬해주겠는데, 이건 뭐…

    • 엄머나 페니웨이님 섭섭해요 ㅠ.ㅠ 영진공에서 댓글도 달았었는데…

    • 제가 요즘 이렇게 정신이 오락가락합니다 ㅡㅡ;; 저번에 우연히 (영진공이 아니라 다른 블로그 링크타고 들어왔음 ㅡㅡ;;) 들렸더니, 범상치않는 글들이 보이길래, 당장 제 블로그에 즐겨찾기해 놨었죠.

      오늘 영진공 윙즈에 등록되어 있는 글을 보고 들어와 봤더니, 얼래? 이거 어디서 많이 본 블로그인데.. ㅡㅡ?

      정말 죄송합니다. ㅡㅡ;;

    • 요즘 제가 시사회 가는 것만으로도 살짝 피로감이 있다보니.
      영화가 좀 부족한 면이 많이 보인다 싶으면 말이 세게 나오더라고요. 써놓고 살짝 후회했습니다;;

  2. “그건 피였을거야” 를 보고 싶어합니다. 물론 석유는 검정피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

    소식들도 좋긴한데, 감상문과 평론… 기대합니다.

    조용히 피드를 구독하는 독자 올림.

    • 끈적한 점성에서도 비슷한 면이 있죠. 석유와 피…
      저도 사실 소식보다 긴 감상문에 더 주력하고 싶습니다… 힘이 나네요. 고맙습니다.

  3. Pingback: blogr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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