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개건 | 시리아나

야심도 사명감도 컸으나… (영화는 영화다)


Syriana

눈가리고 입막고, 국가님께 충성!


베트남전의 진짜 원인이 고무, 주석, 석유라는 사실은 여전히 완전히 수긍되지 않고 있지만(역사는 때로 진실을 눈앞에 두고 그 진실을 외면한다), 조지 부시 주니어가 일으킨 이라크 전쟁의 진짜 원인이 석유 때문이라는 것은 어린아이들도 안다. 석유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 소위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서방세계는 이 석유에 군침을 흘리며 “민주화”를 핑계대며 이곳에 저마다 손을 뻗는다. ‘노동당’씩이나 하는 영국의 토니 블레어가 충실히 조지 부시의 시다바리가 된 것도, ‘좌파 성향 강하다는’ 프랑스에서 (좌파와는 별 관련없다곤 해도) 시라크 대통령이 새로운 시다바리를 자청하고 있는 것도 그놈의 석유 때문이다.

<시리아나>는 석유를 둘러싼 소리없는 국제 전쟁을 다룬다. 워터게이트를 다룬 수 편의 영화들 이후로 정치 스릴러란 장르는 이제 미국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춘 줄 알았는데(<맨츄리안 캔디디트>는 리메이크라 제외), <시리아나>는 너무나 고전적인 정치 스릴러다. 이런, 2006년에 이런 영화를 보게 될 줄이야. 조지 클루니가 자기 인맥 적극 활용하여 스티븐 소더버그와 함께 Executive Producer로 나선 이 영화는, 물론 영화라는 게 누구 한 명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건 아니지만서도, 거의 헐리웃과 백악관을 향해 직설법으로 날리는 조지 클루니의 공개도전장 같다. 제프리 라이트(<바스키아>에서 그의 빛나던 연기를 기억한다), 맷 데이먼에 자기 정도면 그럭저럭 훌륭한 스타 캐스팅인데다 윌리엄 허트, 팀 블레이크 넬슨, 아만다 피트, 크리스토퍼 플러머…

무의식적으로는 모두가 알고 있는, 그러나 자세히 알기는 거부하는(혹은 자신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어하는), 국제 석유 전쟁. 어차피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우리들이야 정부가 유가 올리면 그런가보다 하고, 내리면 또 그런가보다 한다. 그저 길거리에 차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유가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고, 그 이상 신경쓰기 싫어하는 문제. 어차피 전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미국의 그늘 하에 너무 단단히 속박된 경제체제라서일까. 안 되면 전면전으로 군대 투입하고, 막후에선 끝없이 외교와 정치를 압박하고, 비민주화를 트집잡으며 미사일을 떨어뜨리지만 실제로 그 나라의 개혁 의지를 가진 인물이 미국에 비협조적이면 간단하게 암살하고 독재나 쿠데타를 막후에서 지원하며, 그 와중에 그곳의 가장 최하층 민중은 이래저래 죽어나가고, 중동이든 팔레스타인이든 심지어 ‘자살테러’와 같은 극단적인 방법을 취하는 것도 사실은 생존이 걸린 절박한 동기를 가진 힘없는 사람들이고… 이것이 실상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문제는 모두가 알고 있으나 모두가 쉬쉬하고 있다는 사실이고, 그걸 누군가는 이렇게 직설법으로, 공개적으로 말을 한다는 사실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걸 할 수 있는 건, 이 영화의 막후 실력자인 헐리웃 최전방에서 최고의 스타로 군림하며 어마어마한 문화권력을 지닌 배우라는 사실일 것이다. 레바논과 이란, 미국, 스위스를 바쁘게 오가는 가운데 조지 클루니는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캐릭터 중 하나인 ‘자기 분야에서 일로서는 최고, 도덕적으로는 적당히 타락한 속물’을 연기한다. 또한 이 캐릭터는 역시 조지 클루니가 가장 잘 연기하는 캐릭터, 즉 ‘(은근히) 정에 이끌려 다 알면서도 당해주는 헛똑똑이’의 특징 역시 가지고 있다. 정말 진지하더라. (친구인 E양은 그걸 “머리도 안 흔들 정도로 진지하다”고 표현한 바 있다.) <쓰리 킹즈>에서 마크 월버그가 그랬던 것처럼 심지어 고문도 당한다.

조금 더 단단하게 영화를 만들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정치적으로 공정하고 미국인의 입장에선 최대한 양심적이지만, 결정적으로 영화가 좀 지루하다. 각본 상태에선 매우 탄탄하고 단단하게 얽혔을 사건들이 조금씩 조금씩, 이곳저곳을 오가면서 진행되는 속도가 너무 더뎌서 갑갑하고, 편집도 지지부진하고. 조금더 속도감이 있었으면, 완급의 조절을 잘 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사실 이런 영화는, 연출하는 사람도 연기하는 사람도 대단히 피로했을 거다. (허수의 세계라면 몰라도) 실수, 그 중에서도 자연수의 세계에서 1+1=2 라는 사실을 굳이 설명하고 논증해야 할 때의 피로감, 게다가 상대는 철학자도 수학자도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대중이다. 때로는 가장 멍청한 선택도 서슴없이 해버리는. 그 피로감이 영화 전반에 걸쳐 녹아있는지라, 보는 사람도 같이 피곤하게 만드는 감이 있다.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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