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슨 라이트먼 | 주노

Juno

발랄한 청춘들, 일생일대의 사건을 맞다

미국에서도 다소 민감한 소재로 받아들여지는 청소년 임신의 이야기를 다루는 <주노>는 청소년의 성이 금기시되고 있는 한국에서는 더욱 쇼킹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쿨한 소녀의 아기낳기 프로젝트는 남녀노소를 막론한 한국의 모든 관객들에게 훌륭하고도 재미있는 성교육 영화가 될 수 있다. 친구와 아이 아빠인 블리커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고 가족에게 도움을 구하며 열 달 동안 가족들의 지지에 힘입어 무사히 아이를 낳는 주노의 모습, 그리고 아이를 낳는 날 병원까지 뛰어와 주노를 꼬옥 안아주는 블리커의 모습이야말로 어른들의 백 마디 잔소리보다 훨씬 효과적인 매뉴얼을 제공해줄 터이다. 부모의 입장에선 어떤가? 임신한 딸의 비타민부터 챙기고, 세상의 편견에 든든한 방패막이가 돼주며, 딸의 선택을 지지해주고 전적인 도움을 주는 주노의 부모의 모습은 이상적인 부모의 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 어린 딸을 키우고 있거나 이제 막 부모가 되려는 이들에게, 주노 부모의 모습은 본받아야 할 귀감의 대상이다.

일부 관객들에게 이런 점들 때문에 이 영화가 현실과 전혀 상관없이 그저 판타지일 뿐이라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심지어 다큐멘터리도 감독이 선택한 앵글과 화면에 의해 이야기로 구성되는 법이며, 그것이 바로 ‘영화’가 아니던가. 영화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기도 하지만, 현실에서 실현되어야 할 이상을 제시하고 현실을 견인하기도 한다. 물론 임신을 한 상황에서 무조건 낳는 것만이 가장 좋은 선택이라는 뜻은 아니다. 화장실에서 혼자 출산한 채 아기를 유기한 십대 출산모에 관한 뉴스가 종종 보도되는 한국에서라면, 차라리 친구들에게 돈을 꿔서 낙태하러 병원으로 향하는 십대가 더 현명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원이 이십대 초반의 대학생인 은효로 출연했던 <색즉시공>에서의 상황은 다소 도식화돼있긴 하지만 한국에서 가장 흔하게 목격할 수 있는 풍경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주노>의 유쾌한 질주는 오히려 더 빛을 발하게 된다. 어떤 상황에 처했던 당당하고 자신을 믿는 주노의 태도가 오히려 주변 사람들과 심지어 관객들까지 자신의 편으로 설득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이것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기 때문이다.

<주노>가 미국에서 그토록 어필한 데에는 시종일관 유쾌하면서도 듬직하게 주노의 성장과 아픔을 묘사해가는 연출,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연을 맡은 엘렌 페이지의 호연과 매력 덕분이지만, <주노>가 제시해준 일종의 ‘모범 가이드라인’에 대한 지지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더없이 쿨한 주노의 태도는 원치 않은 임신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는 젊은 여성들에겐 열광적인 역할모델의 대상일 것이며, 그 어떤 부모라도 당황하고 충격적일 ‘미성년자 딸의 임신’이라는 상황에서 부모로서 가장 바람직한 반응이 어떤 것인지 친절히 알려주고 있지 않은가.

Juno

친구들과 가족들의 지지를 먼저 확보하라.

거기에, 주노의 캐릭터와 이를 연기하는 엘렌 페이지의 매력은 성인 남성 관객들에게 한국식으로 하자면 ‘국민 여동생’과 비슷한 어필을 한다. 마크와 주노의 교감만 하더라도, 외면적으로는 무성적이고 순수해 보이지만 둘 사이에서 좀더 ‘은밀한 방식으로 억압된’ 성적 긴장감과 함께 묘사된다. 이것은 이 영화를 보는 2, 30대, 나아가 그 이상 나이의 성인 남성관객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어필하는 매력일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 성격, 아이의 친아빠에게 매달리는 대신 자신의 몸과 아이에 대한 완벽한 선택권을 행사하는 주체성과 당당함,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스스럼없이 대하는 친근감, 쉽사리 성적인 분위기로 전화될 수 있는 순간에 오히려 무심하게 반응함으로써 유지되는 순결함, 그리고 호러영화와 하드코어 펑크를 좋아하고 일렉트릭 기타를 연주하는 취향까지, 주노는 한편으로 롤리타적 매력을 강하게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새로운 버전의 롤리타는 남성들을 타락시키며 여성 간 관계를 교란하는 대신 다른 여성과의 연대를 성사시킨다.

제이슨 라이트먼 감독은 주노의 캐릭터를 이처럼 매력적이고도 복합적으로 그려냄과 동시에, 어른들은 절대로 접근할 수 없었던 소녀들만의 세계에서 점차 삶과 세계에 대해 눈을 떠가며 성숙해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러나 매우 설득력있게 묘사해낸다. ‘완벽한 가정’에 대한 주노의 이상은 결국 깨졌지만 그녀는 그 누구보다 아이를 사랑해줄 수 있는 바네사에게 아이를 주고, 블리커와 제대로 다시 사랑을 시작한다. 다시 평화를 되찾은 주노의 일상은 이제 블리커와 함께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블리커와 함께 기타를 연주하는 주노의 모습에서 새삼 봄볕이 얼마나 따사롭고 봄날의 바람냄새가 얼마나 달콤한지, 그리고 청춘이 얼마나 아름다운 빛을 내는지, 우리는 흐뭇한 마음으로 확인할 수 있다.

ps. 프레시안무비에 기사로 올라간 글.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5 Comments

  1. 여자는 임신을 하면 어머니가 되고, 남자는 아이를 봐야 아버지가 된다는 말에 꽤 뜨끔했어요. 늘 배려하고자 하는 마음은 가지고 있지만, 자기 몸이 아닌 이상 고통을 함께 하는건 정말 어려운 일이거든요. 남자와 여자의 차이란 것도 있는게 사실이고.
    영화를 보면서 부모의 역할에 감동했답니다. 말씀처럼 전연령을 대상으로 한 성교육영화인지도 모르겠어요. 시사회장에도 좋은가족위원회, 성폭력상담소 등등의 단체가 영화기자보다 더 많았었다면서요?

    판타지라는 말을 듣기는 하는데, 현실성이니 어쩌니를 떠나서 – 저는 비교적 현실적 결론을 내렸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만 – 상당히 올바른 결론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지하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 임신과 함께 몸으로 절절하게 반응을 겪는 게 여자인 만큼, 여자와 남자가 다를 수밖에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경험이 달라지니까요.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Arborday님처럼 늘 배려하는 마음, 그리고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내가 잘 모를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인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남녀의 문제, 그리고 임신이라는 사건을 떠나 세상의 모든 일들에 일반적으로 적용시킬 수 있는 원칙이겠지요.

      세상이 좀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고, 그에 대한 어떤 대안과 가이드라인을 현실에 발딛고 서서 제시해주는 영화들에 특히 감동하게 됩니다. 말씀하신 대로 주노의 선택은 비교적 현실적 결론이기도 하고요. 아마도 많은 이들이 이 영화에 지지하는 것도 저나 Arborday님처럼 생각하기 때문일 겁니다. :)

  2. 저는 이 영화를 좋아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간단한 이유는 이 영화가 (아이를 낳다에 대한) ‘편들어 주기’이기 때문입니다.
    위기에 처하면, 누구든 ‘편들어 주기’가 필요합니다. 현실은 간단치 않지만, 위기에 봉착한 자신에게는 가까운 이들의 그것이 필요하지요.

    아이를 “지우는” 것에는 일반 대중 대부분은 편들어 주지 않습니다. 실상은 대부분 그 선택을 하는데 말입니다.

    오히려 이 영화가 (아이를 포기하는 것에 대한) ‘편들어 주기’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미쿡 크리스천 어머니회에서 들고 일어나겠죠? ^^;

    • Jayhawk님 말씀 와 닿네요. 전 이 영화 보지 않았지만, 주노의 엄마가 새엄마로 설정된 건 친엄마라면 자신의 딸이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한 편들어 주기’를 할 수 없을 것 같아서가 아닐까 싶어요. 딸 가진 엄마로써, 만약 저런 일이 일어난다면 저는 당연히 토닥토닥 두드려 주고 ‘포기하는 것에 대한 편들어 주기’를 했을 것 같아요.

    • Jayhawk / 아기를 지우는 것으로는 상업영화를 만들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물론 저 역시 아기를 지우는 것보다 낳아서 기르는 것에 대한 일방적 옹호가 조금 걸리긴 했습니다만, < 노>에서 더 중요한 것은, 그 선택을 오로지 주노가 자신의 힘과 판단으로 했다는 것이지요. 아마도 주노의 부모라면, 주노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그 선택 역시 지지해줬을 거라 생각합니다.

      라이 / 나 역시… 하지만 그전에 아들이건 딸이건 피임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겠음. 첫 생리 시작할 나이 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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