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도 홍길동> (프리미어 드라마리뷰)

24부작으로 기획되어 현재 14회분까지 방영된 KBS의 <쾌도 홍길동>은 ‘퓨전사극’을 표방하는 드라마답게 파격적일 정도로 현대적인 감각을 많이 집어넣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허균의 원작소설을 토대로 알고 있는 일반적인 홍길동의 이미지에도 상당 부분 변형을 시도한다. 역사적 고증과는 거리가 먼 머리모양과 선글래스까지는 그렇다 쳐도, 비보잉과 테크노댄스까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아무리 그래도 지나치다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인물과 갈등의 기본 세팅이 끝난 3회부터는 빠른 속도로 스토리가 전개돼 나가는 한편, 배꼽춤과 춤추는 코브라, 중국 무협영화식 의상, 격구(골프) 등마저도 ‘원래 저 시대엔 저렇지 않았을까’ 싶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자연스럽게 화면에 녹아들어간다. 그런데 <쾌도 홍길동>이 눈길을 끄는 건 이러한 비주얼적 측면보다는 오히려 기존의 홍길동의 이야기를 현대에 맞게 새로운 감각으로 재해석했다는 사실이다. 특히 영웅신화의 모티브를 느슨하게 변용하여, 기성세대의 질서를 강요받고 있던 젊은이들이 각성하게 되면서 기존의 ‘아버지들의 질서’에 정면으로 맞대결하고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는 일종의 성장물로 볼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쾌도 홍길동

현대적인 감각으로 새로이 옷을 입은 홍길동과 활빈당.

본래 영웅신화에서 영웅은 동굴 혹은 고래 뱃속 등 좁고 어두운 곳(자궁)에 갇혔다가 물(양수)을 통해 세상으로 다시 나오는 과정을 겪게 되고, 이는 ‘죽음과 부활’ 혹은 거듭남의 과정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자신의 소명을 받아들인 영웅은 모험을 떠나고, 강력한 힘을 가진 왕이나 괴물로 형상화되는 ‘권위를 가진 아버지’를 죽이는 살부(殺父) 의식을 치름으로써 새로운 시대의 왕이 된다. <쾌도 홍길동>에서도 이 모티브는 홍길동의 궤적을 통해 그대로 나타난다. 세상사와 담을 쌓고 살았던 길동은 억울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기로 한 뒤 8회에서 관군의 화살을 맞아 강으로 떨어졌다가 도적패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지게 된다. 이렇게 상징적인 죽음과 부활의 과정을 거친 홍길동은 당대 가장 큰 권력을 쥐고 있던 자신의 아버지 이조판서 홍서영 대감(이하 ‘이판’)에게 정면으로 도전하게 되며, 이 가운데 자신의 운명의 주인 혹은 영웅이 된다. 원작소설에서는 길동이 아버지보다 형인 홍인형과 대결하는 것과 큰 차이를 보이는 지점이기도 하다.

길동과 대립각을 형성하고 있는 창휘에게서도 이런 영웅신화 모티브의 흔적이 발견된다. “나는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그의 대사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듯, 그는 과거 화재사건에서 살아남긴 했지만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죽어있는’ 상태이다. 자신이 왕이 되어야 한다는 기성세대의 요구를 당연하게 내면화하고 전혀 의문을 품지 않았던 그는 ‘배를 타고’ 돌아온 조선에서 여러 인물들을 만나고, 특히 길동의 직접적인 질문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왕이 되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던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창휘는 길동과는 약간 다른 처지에 속해있다. 길동이 철저하게 아버지의 세계 안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면, 창휘는 아버지의 질서를 체화한 강력한 (유사)-어머니, 즉 노객주의 세계에 갇혀있다는 것이다. 창휘가 앞으로 싸워야 할 상대에는 아버지의 세계뿐 아니라 그 앞을 지키고 있는 강력한 문지기, 즉 가부장제의 어머니도 추가돼 있다. 영웅으로서의 거듭남에 있어 창휘가 실패하거나 타락할 가능성이 많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데 <쾌도 홍길동>에서 정말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드라마가 영웅신화의 모티브를 차용하고 있으면서도, 1인 영웅 혹은 개인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영웅신화의 한계를 돌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쾌도 홍길동>은 ‘거듭남’의 경험을 홍길동이라는 영웅 한 사람뿐 아니라 불특정 다수에게까지 확산시켜 민중의 집단적 각성의 과정까지도 묘사하고 있다. 단적으로 9회부터 12회에 걸쳐 삽입된 심청전의 변주를 살펴보자. 여기에서 길동은 고리대금 빚 때문에 딸을 넘긴 무수한 힘없는 약자들을 일련의 작전에 직접 참여하게 만드는데, 이들이 취한 방법은 바로 ‘물에 뛰어들어’ 배에 구멍을 냄으로써 배의 출발을 연기시키는 것이었다. 딸들을 구하는 일에 스스로의 힘을 보탬으로써, 이들은 주어진 비극적 운명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행동하는 주체로서 거듭나게 된다. <쾌도 홍길동>의 민중은 단순히 홍길동의 영웅적인 활약에 도움을 받거나 은혜를 입는 수동적인 존재들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자신의 뜻을 표출하는 매우 적극적인 존재이다. 그들은 홍길동이 각성하기 전 그저 자신의 누명을 벗기 위해 했던 일들을 ‘의협의 활약’으로 각색하는 동시에, 이름 없던 홍길동 무리에게 비로소 ‘활빈당’이라는 이름을 선사하며, 공개처형 위기에 처한 활빈당에게 시위를 통해 지지와 위로를 표현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쾌도 홍길동>이 기존 영웅신화의 모티브를 느슨하게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 ‘픽션화’라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영웅신화를 해체하고 있는 재미있는 현상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9회는 아주 흥미로운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우리는 허이녹을 키워준 허노인이 ‘신화화한’ 길동의 이야기를 하며 약을 파는 장면에서 사실이 픽션화되면서 허구가 진실을 대체하는 과정, 혹은 영웅이 신격화를 거치며 영웅신화가 탄생화는 과정을 압축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허노인의 이야기 속 길동은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적인 홍길동의 외모, 즉 패랭이를 쓰고 파란 답호를 걸친 차림이며, 허균의 소설의 설정 그대로 용꿈으로 잉태됐고 축지법과 분신술 등을 쓸 줄 아는 비범한 영웅으로 표현된다. 이는 드라마 자체가 홍길동을 해명스님으로부터 무술을 전수받긴 했으나 주로 저자거리에서 싸움질을 통해 단련된 능력을 가지고 있는 평범한 인물, 게다가 게으르고 놀기 좋아하며 다소 철이 없는 한량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홍길동이 실제 인물이었다는 설도 계속 제기되고 있는 만큼, 이는 말하자면 허균의 소설이 일반인을 신격화시켰으며, 드라마가 다시 신격화 해체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장면만이 아니다. 앞서 지적했듯 홍길동은 의협이 되고자 해서 의협이 된 게 아니라 그저 자신의 누명을 벗기 위해 했던 행동들이 민중에 의해 ‘각색’되는 경험을 겪는데, 이것이야말로 진실이 픽션화되며 민중전설이 탄생하는 과정에 대한 단적인 묘사이다. 이들이 ‘활빈당’이 되는 과정도 마찬가지. 활빈당은 스스로 활빈당을 조직한 뒤에 본격적이고 조직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이 아니다. 그저 느슨한 도적패였던 이들은 우연히 엮인 사건을 해결하고 민중들에게서 ‘활빈당’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음으로써 비로소 하나의 조직으로 구성되는 것이며, 바꿔 말하면 활빈당이 조직된 것은 이들을 민중이 ‘호명’했기에 가능해진 것이었다. 활빈당으로 불리는 이들은 각각 구체적인 정체성을 확신하지 못한 상태에서 여러 가지 활동들을 하게 되는데, 이 역시 민중에 의해 민간전설이 먼저 만들어진 뒤에 그 전설의 내용이 실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허구가 실재를 창조하는(혹은 신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는’) 신비가 구체적으로 재현되는 순간인 것이다.

원작소설과 다른 새로운 이야기와 뉘앙스가 많이 가미되어 있는 만큼, 이제 반을 넘긴 <쾌도 홍길동>이 앞으로 과연 어떤 이야기로 전개될지는 알 수 없다. 과연 창휘는 반정에 성공하여 새로운 왕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길동은 원작소설대로 율도국을 건설할까? 길동과 이녹, 이녹과 창휘, 은혜와 길동의 연애라인은 과연 어떤 식으로 정리될 것인가? 이녹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진다면 과연 얼마나 영향을 미칠 것인가? 자신의 서자는 방치하면서도 서자 출신의 왕에게는 끔찍하게 충성을 바치는 모순적인 행동을 보여주고 있는 이판은 과연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우리는 세 주인공이 자신들의 현실과 상황을 외면하고 도피하거나 아무 문제점을 느끼지 못한 채 순응하며 살고 있던 과거에서 벗어나 자신의 길을 스스로 모색하고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선 상태라는 것을 이미 목격한 상태다. 스스로 선택하고 이것에 대한 통제권을 쟁취하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바로 어른으로서 세상을 사는 방법이라는 것을 우리의 주인공들이 깨달은 이상, 시청자인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선택의 갈림길에서 그들이 제발 옳은 선택을 하며 앞으로 힘차게 나아가기를 기원하며 지켜보는 것뿐이다.

ps. 영화잡지 [프리미어] 167호.

ps2. 영화잡지 [프리미어]의 2008년 3/1일자(통권 167호)부터 드라마 리뷰를 싣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잡지가 나간 후 일주일쯤 후에 원고를 이곳에다 (기록 및 보존 차원에서) 올려놓겠습니다. ‘The Pillowman Comes’ 카테고리에 올릴 예정이며, 프리미어 원고가 아니더라도 지나간 드라마들에 대한 리뷰도 가끔씩 올릴 예정입니다.

ps3. 이 리뷰는 14회까지 본 뒤 작성되었습니다.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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