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홀로웨이 바로크 바이올린 리사이틀

3월 21일 오후 8시 호암아트홀에서 1회에 한해 열린 존 홀로웨이 바로크 바이올린 리사이틀은 클래식 음악, 그 중에서도 특히 고음악 연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굉장히 반가운 소식이었을 듯도 싶다. 솔직히 클래식 잘 모르고, 바로크 바이올린이 현대 바이올린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는 나같은 문외한들은 그저 좋은 공연을 싼값에 볼 수 있다는 소리에 존 홀로웨이가 누군지도 모르고 그냥 달려갔지만. 독주회인 만큼 존 홀로웨이 씨는 캐주얼한 차림으로 무대에 나와 편안하게 공연을 했는데, 인상 좋고 푸근해 보이는 저 아저씨의 이력을 집에 돌아와 찾아보니 허걱, 맘 푸근하고 그냥 편하게 영감님, 부를 수 있는 옆집 할아버지가 결코 아니었어… 1948년생에 8살 때 첫 콘서트 무대에 올랐고 1970년대부터 바로크 바이올린을 잡았으며 최근엔 지휘자로도 명성이 높은 한 마디로 대단한 양반이더라는.

오늘의 프로그램은 텔레만의 바이올린을 위한 환상곡 1번 B플랫 장조(TWV 40:14), 바흐의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 1번 G장조(BWV 1001), 비버의 파사칼리아 ‘미스터리 소나타’, 그리고 인터미션 후 다시 텔레만의 바이올린을 위한 환상곡 10번 D장조(TWV 40:23)과 바흐의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 2번 D단조(BWV 1004), 이렇게다. 마지막에 연주된 저 파르티타가 그 유명한 사라방드와 샤콘느가 있는 바로 그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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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상당히 섬세하고 고우면서 부드럽고, 마치 유리공예품을 만지듯 아주 수줍은 듯하면서도 매우 여유있는 소릴 들려주더라. 푸근하고 안정되고 마음까지 편안해지는, 달콤하지만 지나치게 달달하지는 않은 꿈을 꾸는 듯한 소박한 연주였다, 전반적으로. 비록 후반으로 갈수록 소리에 약간 노이즈가 끼었고 심지어 마지막 샤콘느 연주 때는 삑싸리까지 났지만(!), 그래도 좋았다. 특히 비버를 연주할 땐 정말 너무나 섬세하고 곱고 마음까지 차분해지고 행복감까지 느껴지는 것이, 듣다가 눈물이 다 나더라. 비버 연주할 때가 가장 좋았고, 탈레만 연주도 너무 좋았던 반면, 상대적으로 바흐 쪽은 약간 불만족스러웠다. 그게 내가 이제껏 들었던 바흐가 지나치게 명암을 대조하며 형식미를 강조하는 연주여서였는지, 이 사람이 원래 바흐보다 탈레만 해석에 훨씬 더 뛰어나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인터미션 직후 연주한 탈레만의 바이올린 환상곡 10번은 아융… 어찌나 경쾌하고 가벼우면서도 예쁘던지. 마지막 마무리를 하는데 숨이 다 멎었다가 연주가 완전히 끝나고 나서야 숨을 내쉬었다는.

하지만 연주들이 마냥 곱기만 했다는 건 아니다. 아마도 이것이 이 양반의 내공에 해당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은데, 상당히 라이트하고 산뜻하며 고우면서도 ‘곱기만 한’ 연주와는 상당히 달랐다. 가볍지만 촐싹대거나 얄팍하지 않고, 고난과 고통이 다 지난 후 관조와 여유가 깃들여 있는 연주라 해야 하나. 대체로 나는 불같은 열정과 폭풍치는 고뇌를 담은 연주를 좋아해 왔지만, 이 사람의 연주는 원래 내 취향이 아님에도 ‘이렇게 연주할 수도 있구나’ ‘이런 것도 꽤 좋구나’ 싶은 생각을 들게 해줬달까. 아마 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바이올린이란 악기 자체가 원래 상당히 신경질적이고, 그래서 사람 신경을 참 곤두서게 하는 악기라고 생각했는데, 이토록 곱고 부드러운 바이올린 연주라니 상당히 놀랐다. 이것이 J언니 말대로 원래 바로크 바이올린의 특성인지, 아니면 이 연주자의 연주 스타일 때문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ps. 객석에서 박찬욱 감독을 봤다능.

ps2. 20대 초반에 영화나 보러 갔던 호암아트홀, 정말 오랜만에 간 셈인데 ‘어머나, 호암아트홀이 이렇게 작았었나’ 싶더라. 하지만 소규모 공연장으로는 딱 좋더라는.

ps3. 자리가 예술이었다. 그야말로 정중앙. 가운뎃줄 정 가운데자리. 좋은 공연을 좋은 자리에서 싸게 볼 수 있게 해준 J언니에게 감사.

ps4. 어쩐지… 이 아저씨 비버 연주로 대박 성공하고 명성을 휘날린 사람이었어! 역시 좋더라니. 이 아저씨의 홈페이지 : http://johnholloway.com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7 Comments

  1. 아. 무척이나 가고 싶었던 음악회였는데 다녀오셨군요. ㅠ_ㅠ
    정말 부럽습니다.
    바흐는 꼭 그렇지만은 않은데, 텔레만은 대체로 원전연주로 듣는 것이 훨씬 낫더라구요.

    • 연말에 이 공연과 다른 공연 두 개를 묶어 패키지 티켓을 구했던 터였어요. 표 살 땐 누군지도 몰랐는데 연주 듣고 와서 알아보니 대단하신 분이라 우왕@.@ 이러고 있습니다. 운이 좋았던 거 같아요;; 반갑습니다, 달크로즈님.

  2. 다음 공연 자리는 이번만큼 좋지 않을지도 몰라; 공연마다 자리 여유가 다르더라고. 어떤 공연은 일찌감치 좋은 자리가 사라졌어.
    바로크바이올린의 소리인지 아저씨 소리인지 헷갈리는 이유 중 하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다른 바로크바이올린 연주는 소박하긴 했으나 어제만큼 부드럽지 않았거든. 몇 가지 연주 좀 더 들어보고 판단해야 할 듯.
    나도 감상문 쓰려고 했는데 열라 노가다 중. 흑.

  3. 와 정말 좋은 공연 다녀오셨군요. 부럽습니다. *_* 존 홀로웨이 연주음반 중 예전에 Dacapo에서 나왔던 북스테후데 소나타 연주음반을 Naxos에서 재발매한 음반이 무척 좋은데(유명하기도해요 ^^) 올해는 3집까지 나왔어요~ 앞의 두 음반은 Seven Sonata랑 Seven Trio Sonata고 올해 나온 것은 Six Sonata인데 모두 다 좋습니다. 가격까지 착하니 적극 추천해드려요~

  4. JIYO / 좋은 자리가 걸릴 때가 있으면 안 좋은 자리가 걸릴 때도 있겠죠. 소규모 극장에서라면 사실 자리가 정중앙은 아니어도 그렇게까지 나쁜 자리는 아닐 것 같긴 해요. 그나저나 그 패키지, 다음 공연은 무려 10월이던데… 맞죠?

    delius / 고맙습니다. 안그래도 알라딘 뒤져보니까 북스테후데 소나타 연주 앨범이 좌락 뜨길래 어떤가 했었는데, delius님이 적극 추천하시니 막 기대되는걸요. 이번 기회에 들어봐야겠어요. Naxos는 가격 착하면서도 좋은 음반들 줄줄이 내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그나저나 비버 연주는 국내에 라이선스 발매된 게 안 보이더라고요. 전 비버 연주가 가장 궁금하거든요. 이 날 연주에서도 워낙 비버 연주가 좋았었고요. :)

  5. 흑 ㅠ.ㅠ 이런 거 있는 줄 몰랐어요.
    3만원에 이런 공연이면 좋은데. 친구가 가고싶어하는 콘서트는 7만원짜리고 막;
    아트홀 홈피도 부지런히 봐야겠어요~

    • 대체로 해외초청공연들은 티켓값이 비싸기 마련인데, 이 공연은 어떻게 그래도 괜찮은 가격으로 나왔더군요. 전 클럽발코니의 평생회원인 동행 언니 덕에 S석 티켓을 A석과 별 차이나지 않는 가격으로 구했습니다. 그런 기획사들 공연들 찬찬히 훑어보는 것도 좋은 거 같아요. 호암아트홀이나 LG아트홀 같은, 공연장소 위주로 찾아보는 것도 좋은 거 같고요.

      저도 올해부턴 영화만 보지 말고 다른 문화생활 좀 하자고, 긴축재정 하에서도 이러고 있답니다. 지금 제가 노리고 있는 건 뮤지컬 < 이블데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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