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파파는 연애중> (프리미어 드라마리뷰)

<싱글파파는 열애중>은 제목만 보면 혼자 아이를 키우는 싱글대디의 연애담을 다루는 로맨틱 코미디 같다. 물론 드라마의 시작도 그러하다. 너무 일찍 철이 든 아이를 키우는 철없는 아빠 강풍호(오지호)가 한국 드라마들 특유의 ‘우연에 우연이 겹친’ 사건들 덕에 지나치게 명랑하고 씩씩한 24살짜리 의대생 아가씨 전하리(허이재)와 엮인다. 둘은 애 딸린 홀아비와 아직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 아가씨라는 점에서만 대립을 이루는 게 아니라 계급과 신분에서도 격차를 이루고 있고, 이들의 세계는 곧 이종격투기 vs. 피아노라는 세계의 대립으로 극명하게 드러난다. 언제나 그렇듯 처음에는 티격태격하던 두 남녀는 곧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상대의 사정을 알고 인품을 좀 더 겪으면서 호감은 애정으로 발전한다. 그런데 잠깐, 여느 드라마와 달리 두 사람이 애정을 느끼게 되는 과정이 무척 빠르다. 총 16부작인데 벌써 4부에서 둘은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들여다보고 알콩달콩 연애모드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들의 연애는 시련도 보통 큰 시련 앞에 놓인 게 아니다. 하리의 예비 새엄마 윤소이(강성연)가 실은 풍도의 아들 산이의 친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목과 달리 둘 사이의 연애 전선은 뜨뜻미지근하기 그지없다. 윤소이가 하리의 새엄마가 될 예정이라는 사실을 강풍호가 알게 되는 시점은 드라마에서도 꽤 이른 5회이다. 하리의 부친인 전기석 박사가 풍호가 애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시점도 6회에서다. 풍호는 윤소이와 전기석의 사이를 알게 된 직후부터 하리에게 거리를 둔다. 하리에 비하면 나이도 많은 데다 애아버지이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에 너무나 솔직한 하리와 달리 풍호는 여러 모로 신중하고 어른스러울 수밖에 없다. 풍호가 거리를 둘수록 애가 타서 더욱 직접적이고 저돌적으로 풍호에게 구애하고, 풍호는 그럴수록 더욱 냉정하고 의연하게 하리를 피한다.

싱글파파는 연애중

30대 애아빠와 20대 발랄처녀를 어떻게든 엮어주기 위한 몸부림.

그런데 이 드라마는 7회에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방향을 틀면서 드라마의 진짜 정체가 드러난다. 풍호의 아이 산이가 뇌종양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 드라마는 한편으로는 가난한 싱글대디가 아이를 키운다는 것의 의미를, 또 한편으로는 낳는 것만으로 무조건 성립되지는 않는 모정의 의미를 탐구한다. 어릴 적 양친을 모두 잃고 고아원에서 자라 혼자서 세상의 풍파를 헤쳐온 풍호에겐 어려울 때 손 벌릴 수 있는 가족이나 친척도 없다. 안 그래도 혼자 애를 키우는 게 시련일 수밖에 없는데 거기에 아이가 아프기까지 하니, 사회안전망이 별로 갖춰지지 않은 데다 복지제도의 지원에 있어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남성 한부모 가정의 가장인 풍도의 시련은 이중삼중일 수밖에 없다. 한편 어릴 적 아이를 버리고 떠난 소이는 아이의 친모임에도 자신의 친권을 행사할 수 없는 반면, 엄마 노릇을 하기엔 너무 어린 하리는 아이에 대한 애정 하나로 아이의 병간호를 하면서 산이의 엄마의 빈자리를 조금씩 채워나가기 시작한다. 가부장제 사회 어디에서나 그토록 신성시되고 신화화된 모정이라는 것에 대해, 어머니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모든 여성에게 얼마간은 선천적으로 잠재돼 있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발현되는 것은 아이를 낳는 시점이 아니라 아이에게 애정을 갖고 아이와 시간을 함께하면서라는 사실을 이 드라마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알콩달콩 연애담을 기대하고 이 드라마를 보기 시작한 시청자들에게 드라마의 이런 방향은 일종의 ‘배신’으로 여겨질 수 있는 게 사실이다. 결혼이 당사자의 의사만큼이나 그 부모의 허락이 결정적인 영향을 행사하는 데다 한부모 가정이나 이혼 가정을 ‘결손가정’이라며 삐딱하게 보는 게 여전히 일반적인 한국사회에서, 애 딸린 홀아비 내지 이혼남이 미혼여성과 결혼을 하는 것은 처음부터 큰 시련을 예고할 수밖에 없다. 애초 이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대 역시 그런 시련과 편견을 헤치고 결국 해피엔딩에 도달하는 과정에 대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의 문제는 그러한 배신이 아니다. 드라마를 통해서건 어떤 형태를 통해서건 대중매체에서 한번쯤은 반드시 다뤄져야 할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오히려 높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었다. 문제는 역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다. 등장인물들의 행동 반경이 아이의 뇌종양 투병을 중심으로 재편성되면서 이야기가 다소 느슨해지고 지지부진해지는 바람에 드라마의 재미가 심각하게 떨어진다는 점이 바로 문제가 되는 것이다.

모정에 대해서 진일보한 시각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소이의 캐릭터를 묘사하는 과정에서 여전히 신비화된 모정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다는 한계가 보인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출세와 성공을 위해 자신이 낳은 아이를 버린 잔인한 모정에 대한 성토는 풍호와 그의 주변인물뿐만 아니라 심지어  풍호와 전혀 연관돼 있지 않은 조연들에 의해서도 계속 반복되지만, 정작 너무 어린 나이에 원치 않은 임신과 출산을 한 뒤 자신의 꿈과 재능을 아이 때문에 접어야 한다는 상황에서 패닉에 빠졌다가 잘못된 선택을 한 소이의 입장은 별로 성실히 다뤄지지 않는다. 그녀는 아이를 부담스러워하며 애를 팽개쳐놓고 피아노 앞에만 앉아 아이와 아이아빠에게 히스테리를 부리다가 결국 혼자 우는 애를 방안에 내팽개쳐놓은 채 도망쳐버린 나쁜 엄마다. 그리고는 돈 많고 사회적인 지위가 높은 나이든 남자를 만나 세계로 뻗어나가는 피아니스트가 되어 화려하게 돌아온 뒤 기석을 속이고 풍호와 하리의 사랑을 방해하며 아이를 위해 돈이나 내놓을 수밖에 없는 파렴치한 악역을 맡는다. 물론 뇌종양에 걸려 대수술을 받고 고통스럽게 항암치료를 받는 아이를 멀찍이서 지켜보며 눈물지을 수밖에 없고 엄마의 자리를 번번이 하리가 대신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목격하면서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그녀의 모습은 꽤 비극적이고 연민이 가도록 묘사되지만, 그녀의 고통은 드라마에서 그저 기능적으로만 묘사되는 측면이 크다.

10회 마지막에서 소이와 풍호 사이의 심상치 않은 관계를 하리가 눈치챈 만큼, 그리고 기석이 순수한 애정과 호의에서 소이의 아이(소이는 자신이 버림을 받고 애까지 뺏겼다고 기석을 속인 상태다)를 찾고 있는 만큼, 소이의 정체와 비밀이 드러나는 게 머지않았다. 문제는 그 이후다. 과연 사실의 전말을 알고도 하리가 풍호와 산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 아니면 해피엔딩을 위해 소이의 비밀이 영원히 비밀로 봉인될지, 비밀로 봉인된다 하더라도 과연 풍호가 하리와 커플을 이룰 수 있게 될지, 어느 쪽이든 시청자 입장에서는 꺼림칙한 찝찝함이 남을 수밖에 없다.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기막힌 해결책을 과연 이 드라마가 제시해줄 수 있을까? 그 누구보다 드라마에서 실질적으로 가장 중심인물이라 할 수 있는 산이의 행복을 위해서, 드라마의 작가가 반드시 그런 해결책을 찾아주었으면 좋겠다.

프리미어 169호.

ps. 바로 뒷 회에서 풍도와 소이의 관계가 폭로되고, 이 드라마는 뻔한 신파의 멜러를 향해 그대로 달려나간다. 프리미어에 줬던 별점의 5점 만점 중 2점도 아까워지는 게, 이거 연출과 편집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ps2. 난 도저히, 허이재가 이쁘게 봐지지가 않아. 싫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리고 허이재뿐만 아니라 요즘 ‘귀여움’을 무기로 내걸고 나오는 배우/탤런트들 거의 대부분 그 억지 맑은 척을 도저히 못 견디겠다. 원래 이 과는 그저 보는 사람 그 누구든 저 맑음을 지켜주고 싶다, 는 마음을 불러일으켜야 하는 건데… 연기 테크니컬한 면에서 그런 맑음과 대치되는 면이 분명 있긴 있고, 그래서 오히려 이런 과들이 연기를 정말 잘 하면 경이로운 대상이 되기도 하고, 그런 건가? 그렇게 보면 <리틀빅맨>의 더스틴 호프먼이나, 오드리 헵번 같은 배우는 정말 경지의 배우인 거구나 싶기도 하고, 그런 배우들에게 지금 탤런트를 견주는 것 자체가 양쪽은 물론 영화관객/시청자에게 실례인 것 같기도 하고.

ps3. 오지호 처음 <미인>으로 데뷔했을 때부터 고놈 참 잘생겼네, 했다. 한동안 참 방향 못 잡더니 <환상의 커플>에서나 여기에서나, 드디어 자기한테 딱 맞는 이미지를 찾은 듯. 얘는 그저 막노동계급의 좀 우악스럽지만 내심 착한 그런 마초가 딱이다. 정말로 내가 느끼과를 좋아하긴 하나 봐.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2 Comments

  1. 막노동 계급의 좀 우악스럽지만 내심 착한 마초? 인텔리 커리어 우먼의 로망이잖아. ㅎㅎㅎ. 엘리맥빌에서 완벽한 인격의 배관공으로 출연했던 존 본 조비. 아… 피곤하니까 잠이 안와.

    • 초섹시 로망스를 이루는 일종의 ‘공식’이지. 여자에겐 금지된 육체적 쾌락과 여성에게 유난히 강하게 가해지는 각종 억압에서 일탈할 출구를, 남자에겐 감히 상위계급의 여성(=상위계급 남성의 최고재산)을 감히 탐할 수 있다는 정복의 쾌감을 주는. 여성의 육체적 쾌락 추구면이 다시 남성의 시선으로 재단화되는 과정이 뒤따르는 때가 많아서, 여성들에게 굉장히 기분나쁜 뒷맛을 주는 공식이기도 하고… 그러나 여성 작가에서 대충 저 ‘일탈’ 선으로만 마무리된다면 탐해볼 만한 유혹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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