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에어 (1회 ~8회)

MBC의 <뉴하트>가 시청율 30%를 찍으며 종방했을 때, 고전을 면치 못하던 SBS의 <불한당>도 함께 종방했다. 그 틈을 타고 KBS의 <쾌도 홍길동>가 수목 드라마 1위를 했지만, <쾌도 홍길동>의 영광은 고작 한 주에 머무르고 말았다. <불한당>의 후속으로 편성된 <온에어>가 무섭게 치고 올라왔기 때문이다.

온에어

아무래도 진짜 주인공은 송윤아의 서영은.

작년 연기대상 화면을 활용했는지 다 새로 찍었는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매끄럽게 편집된 연말 연기대상 장면으로 시작한 <온에어>는 드라마 속에서 싸가지 없고 제멋대로이나 연기를 못 하는 최고 스타인 오승아(김하늘)가 대상 수상을 거부하며 벌어지는 소동으로 확실하게 시선을 끈다. 드라마의 다른 주인공들, 즉 오승아의 에스코트를 맡은 까칠한 이경민 PD(박용하), 공주병 9단에 싸가지 없기로는 오승아 서럽지 않을 드라마 작가 서영은(송윤아), ‘못 나가는’ 매니지먼트사 사장 장기준(이범수)도 이 연기대상 장면에서 모두 자신의 기본 성격을 확실히 드러내며 포지셔닝을 마친다. 근래 한국 드라마에서 이토록 인상적인 1회를 보여주는 드라마도 참 드물었지 싶다. 보통 16부작으로 구성되는 월화 혹은 수목 미니시리즈는 인물과 플롯 세팅에 2회 가량을 안배하기 마련인데, 원래 20부작으로 구성됐다는 <온에어>에서는 이미 인물 소개는 물론 기본 갈등구조의 세팅을 1회에서 끝낸다. 그리고 <온에어>에서 가장 큰 재미를 주는 오승아와 서영은의 살벌한 대결이 곧바로 2회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후 과정은 이경민 PD와 서영은 작가, 오승아가 팀을 이뤄 드라마 한 편 찍기 위해 겪게 되는 온갖 고초와 장애물들을 묘사한다.

애초 국내 드라마 제작환경에 대한 고찰과 반성을 담으며 드라마 제작의 뒷얘기를 해보겠다는 거창한 기획의도로 시작한 <온에어>는 초기에 정말로 속시원한 강대사들을 날려줬다. ‘재벌2세, 신데렐라, 불치병’ 나아가 ‘출생의 비밀’이 빠지지 않으면 드라마가 되지 않는다는 한국 드라마들의 상투적인 설정을 대놓고 ‘씹어’버리는가 하면, 일반 사람들 입장에선 그저 추앙과 동경의 대상인 ‘스타’가 개차반으로 구는 모습도 생생하게 보여준다. 드라마의 질과 주제와 상관없이 오로지 ‘시청율’ 하나만이 드라마를 가르는 유일한 기준이 된 현실조차 솔직하게 언급하고, 연예인 성상납, 정체불명의 돈봉투 같은 어두운 뒷얘기도 삽입된다. 이 와중에 ‘얼음 싸가지’ 오승아와 ‘공주 싸가지’ 서영은의 대결은 <온에어>에서 가장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볼거리다. 머리채를 잡거나 하는 일 없이 서로 우아하게 앉아 ‘말’로만 싸우는데도, 서로 한 마디도 지지 않고 잔뜩 벼린 칼 같은 말을 주고받는 그 완벽한 타이밍과 리듬감은 칼과 주먹을 주고받는 남자들의 싸움보다 훨씬 서슬퍼렇다. 김수현의 드라마가 아닌 드라마에서 이런 장면을 보게 되는 것도 참 드문 경험이다.

그런데 초기에 그렇게 흥미와 기대를 모았던 것들이 회가 거듭될수록 미심쩍고 수상스러운 방향으로 나간다. 가장 실망스러운 것은 이 드라마에서 나오는 한국 드라마 일반에 대한 비판이 제작현장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종종 입에 올리는 그 상투적인 수준에서 결코 나아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얼핏 보면 방송계를 둘러싼 뒷얘기를 속시원하게 ‘까발리는’ 것 같지만, 실상 이 드라마는 시청자들이 방송계에 대해 ‘그렇게 믿고 있는’ 이야기를 할 뿐 지금의 드라마 제작현장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한 반성적이고 통찰력 있는 분석을 보여주고 있지 않다. 게다가 이들이 생각하는 대안 혹은 ‘좋은 드라마’라는 것의 정체도 애매하다. 이들은 과연 ‘좋은 드라마’란 어떤 드라마냐는 질문에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도 못 한다. 이들이 제작하려고 하는 ‘7살 지능을 가진 25살의 여자가 등장하는’ 드라마에서 대단히 신선하고 야심찬 의도가 과연 보이는가? 게다가 이 와중에 ‘재벌 2세, 불치병, 신데렐라’ 이야기를 찾는 시청자들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기어이 오승아의 입을 통해 날리지만, 시청자들이 왜 그런 이야기에 그토록 천착하는가에 대한 성찰은 없다. 게다가 빠른 속도로 이야기를 전개해오던 드라마는 지난 주 8회에서 다른 여느 드라마와 별 다를 바 없이 멜로 전선을 삽입했다. 이쯤 되고 나면 이 드라마가 정말로 방송계에 관한 애환과 함께 드라마 한 편을 성공적으로 만들기까지 다양한 인물들의 고군분투를 그리는 드라마인지, 아니면 기존 드라마들에 대한 비판적 의자마저 시청율을 위해 팔아먹으려는 드라마인지 애매모호해진다.

그나마 기대를 거는 것은 오승아와 서영은이 보여주는 대립구도이다. 이들의 ‘싸가지 없음’이 더없이 척박하고 무시무시한 환경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그것도 최고가 되어 살아남기 위해 쓴 가면이라는 사실이 회를 거듭하며 밝혀졌고, 그렇기에 지금은 저토록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 두 사람이 실은 세상 그 누구보다 상대를 가장 잘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 가장 기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시청자들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이 사실을 ‘노래방 씬’을 통해 일차적으로 보여준 바 있다. 오승아는 이미 서영은의 가면 뒷모습을 꿰뚫어본 것 같고, 이제 남은 것은 콧대를 세워도 결과적으로는 상대방의 요구를 다 들어주고야 마는, 그리고 정작 가장 중요한 순간에 둔감하기 짝이 없는 서영은이 언제 오승아의 진심과 본래 모습을 보는가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두 사람이 서로의 본 모습을 보고 연민과 동병상련을 느낀다 해도 겉으로는 여전히 고양이와 개처럼 물고 뜯을 것이라 예상된다는 점이다. 여성 캐릭터들의 이런 갈등구도는 확실히 참신할 뿐만 아니라, 기존 드라마에서 언제나 불만스럽게 여겨졌던 지점들을 통쾌하게 부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그들을 둘러싼 두 남자, 즉 이경민과 장기준은 별다른 발전이 보이지 않는다. 특히 서영은과 오승아의 대립에 드라마가 너무 집중한 탓인지, 이경민은 드라마가 8회가 되도록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1회에 제시됐던 그 까칠하고 자존심 센 성격조차 희미해져 버렸다. 이들이 만들려는 드라마가 기어코 중단되고 만다면, 매회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돌발상황들보다는 이경민의 저 우유부단함 때문이지 않을까?

ps. 프리미어 드라마리뷰 기고가 중단됐습니다. 이 글은 역시 프리미어에 팔아먹은 글이긴 하지만 책에는 실리지 않을 예정이므로 일찌감치 공개합니다.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One Comment

  1. [온에어] 무척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거창한 무언가를 바란다기 보다는, 그냥 편하게 보고 있는 중이에요. 극중 김하늘과 이범수의 관계도 상당히 매력적이구요. 결국은 방송국에서 연애하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게 조금 짜증스러운 것이 작가의 자기변호가 굉장히 많이 들어가는 느낌이랄까. 뭐, 그랬습니다. 내 드라마가 끝심 달리는건 이래서 그래, 내가 드라마를 그렇게 썼던건 이래서 그래 등등등. 자기 경험에서 나오는걸테니 그게 짜증스러울 이유는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미세하게 거슬리네요.

    처음에는 드라마 나오면 dvd나 사볼까 생각했었는데, 한 번 보고 말자라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아직 좀 남기는 했지만서도. 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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