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격자>는 좋은 영화인가

스포일러가 있어요. 아울러 아직 정리되지 않은 느낌들이라 좀 횡설수설입니다.

<추격자>가 잘 만들어진 영화라는 사실에는 많이들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전 서울의 강북, 그 중에서도 소위 ‘서민동네’라 할 수 있는 주택가들(아파트촌 말고요)의 그
특유의 미로같은 골목길들의 표정을 제대로 드러내는 영화를 이제서야 처음 본다며 감격했고, 김윤석의 연기에 감탄했으며, 하정우의
연기에 그저 놀라움을 느낄 뿐이었지만, 이 영화가 과연 좋은 영화인가, 그리고 이 감독에게 어떤 반응을 해야 하는가에는 계속
멈칫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 영화의 폭력수위에 거부감을 느껴서는 아니에요. 전 사실 피가 튀거나 폭력 그 자체를 다루는
영화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잘 보지도 못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공포를 느끼거나 구역질을 할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오히려
퍽 담담하게 보고 나온 편이에요. 기자시사회 때 영화를 보고 왔으니 영화 관계자들을 제외하면 꽤 일찌감치 영화를 본 셈인데,
영화 어떻더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살인의 추억>만큼 좋더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아주 잠시 멈칫거리다가 “영화 잘
나왔던데요”라고 대답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이 멈칫거림의 정체가, 그리고 “영화 좋던데요”라고는 말을 하지 못한 이유가 과연
무얼까 생각했더랬지요.

솔직히 저는 이 감독이 이 영화를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잘 빠진 장르영화를 하고
싶었던 걸까요? 보도자료에 맨 처음 써 있던 감독의 말, 그리고 이후 잡지 인터뷰에서 가장 먼저 본 감독의 말은 “시스템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고 싶었다”는 말이었는데, 전 그걸 보고 더 갸웃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이 영화에서 경찰들, 우왕좌왕하면서
범인을 못 잡죠. 하지만 솔직히 김윤석이 수사를 가장 크게 방해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고, 영화에서 과연 시스템의
무능이, 그에 대한 분노가 적절하게 드러났는가… 결코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결국 저 대답은 감독이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던 의도라기보다는 ‘만들어진’, 그리고 ‘급조된’ 답이 아닐까란 의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서영희가
결국 죽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표현합니다. 저는… 뭐 글쎄요. 마지막에 김윤석과 하정우의 격투를 더욱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그 장면의 살인은 상당히 ‘양식적’으로 표현돼 있죠. 전 그녀가 죽는 게 크게 문제되진 않는다고 생각하고
그렇게까지 불쾌감을 느끼지도 않았지만, 이 장면에 대한 문제제기는, 실은 “대체 이 영화는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서 만들어진
영화일까”라는 저의 질문과 그리 다르지 않은 질문이라 생각합니다. 두 질문 모두, 실은 이 영화의 윤리성에 대한 질문을 하고
싶었던 거지요. 그러니까 쾌락을 위해서 이 영화가 살인의 스펙터클을 이런 방식으로 보여주는 게 과연 괜찮은 것일까, 그리고
그것을 감독이 보여주는 대로 우리가 이렇게 소비를 해도 괜찮을 것일까, 에 대한.

꼭 유영철이 아니더라도,
한국에서도 이제 연쇄살인이 분명 사회적 이슈가 돼가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하정우에게 특히 공포를 느꼈던 여성관객들의 경우,
사실 이 영화가 (벽화 그리는 내용만 뺀다면) 프로파일러들이 말하는 연쇄살인범의 특징들을 고스란히 그대로 묘사했고, 그걸 또
하정우가 고스란히 재현해냈기 때문일 겁니다. 저는 바로 이 면에서 하정우에게 상당히 놀랐던 거거든요. 대다수에게 그저
‘대상’으로만 비춰질 뿐인 대상을 정말로 ‘대상’으로 그려버리는 예가 이제껏 한국영화에선 그리 흔치 않았고(어떤 식으로든 관객의
‘이해’를 요구하죠), 그런 걸 연기하는 배우는 더더욱 흔치 않았으니까요. 이제껏 영화 속에서 그려진 연쇄살인범들이 이 영화의
하정우처럼 그런 식으로 그려진 예는 의외로 그리 많지 않아요. 우리가 연쇄살인범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는 대체로
화이트칼라의 인텔리 지능범들이죠. 이건 프로파일러들의 실제 분석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화이트칼라의 인텔리 지능범이라는
설정은, 영화가 실은 연쇄살인이 아닌 도시사회의 계급을 그리는 비유이며, 그 장르의 영화가 성립시켜 놓은 일종의 공식인
셈입니다. 그리고 이런 식의 공식과 ‘장르문법의 활용’은, 영화를 일정정도 실제 현실과 거리가 있게 만듭니다. 그런데 이
거리감은, 예술, 특히 ‘픽션’에선 상당히 중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말하자면 저는 이 영화에서 소위 ‘리얼리티’라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오히려 더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냐, 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대체 왜?

창작자들이 어떤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언제나 겉의 이야기 안에 속의 이야기와 주제를 감추고 있죠. (이 ‘주제’라는 걸 꼭 ‘교훈’과 등치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아니, 나아가 사실 주제라는 거 없어도 좋을 거라 생각해요. 하나의 장르가 가지고 있는 어떤 형식을 실험해보고, 그
형식에 대항하기도 하고, 그 형식을 갖고 장난을 치는 것 역시 분명 예술의 범위일 테니까요. 그런데 <추격자>의 경우
대체 무얼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겉의 번드르르한 이야기 속에 정작 주제라 할 만한 것, 속의 이야기는 없는 텅빈
공갈빵처럼 느껴져요. 그렇다면 이 영화가 형식에 대한 실험을 하고 있는가? 다시 이어진 어떤 인터뷰에선 ‘탈장르 영화’ 운운하고
있더군요. 전 그 탈장르 운운하는 얘기 역시 감독 자신도 대답 못 하는 어떤 의문에 또다시 끌어댄 임시방편격 대답이라는 의심이
들더군요.

한 친구와 이런 얘기를 하다가, 분명 현실에 존재하고 있는 사건들이 아닌가? 그렇다면 영화화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라고 반론을 하더군요. 하지만… 이건 감독의 대답이 아닙니다. 만약 감독이 이렇게 대답했다면 전 곧바로
수긍해버렸을 거예요. 이건 현실에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외면당하고 있는 어떤 것들에 대한 재현의 의지, 라는 너무나
명확한 작품의 주제와 이유를 포함하고 있는 답변이니 말이에요. 하지만 감독은 그런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영화라는
건 굳이 촬영 시 앵글과 컷과 편집뿐 아니라, 과연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 에서부터 ‘선택’의 예술이지 않던가요. 그리고
그건 영화뿐만이 아니고요. 우리 현실엔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이 거대한 덩어리처럼 서로 얽히고 또 얽혀 있는데, 그 중 어떤 한
부분을 꺼내서 어떤 식으로 보여줄 것인가는 무수한 선택으로 이뤄져 있고요. 영화뿐 아니라 현실을 반영한다는 그 모든 창작은
현실의 재구성이기도 합니다. 그 현실이 우리의 실제 리얼라이프이건 환상이건 꿈이건 이상이건 공포건요.

창작자는
그저 ‘그냥 그 얘기가 하고싶어서’라고 대답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대답 안에는 사실 그저 감독의 순수한 욕망 외에 상당히
많은 것들이 들어있기 마련이죠. 감독 자신이 언어로 세련되게 설명하지는 못할지라도, 분명 어떤 필요성과 이유를 가지고 있기에
욕망을 느낀 것이고, 이것은 창작자 그 자신은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그가 속해있는 시대와 사회의 영향을 받은 것이기 마련이며,
이는 곧 작품을 통해 드러나기 마련이고, 때때로 비평가들은 감독 자신조차 의식의 차원에서 인식하지 못했던 어떤 일관성있는
필요성과 이유를 끄집어 내기도 하죠. (사실 그게 비평가들의 존재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추격자>는?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 감독이 ‘그냥 이 얘기가 하고 싶었다’라던가, ‘굉장히 센, 사실적인 연쇄살인범 얘길 해보고 싶었다’라고
대답했다면 차라리 너무 쉽게 수긍해 버렸을지 몰라요. 하지만 감독은 그런 식의 대답은 하고있지는 않지요. 어떻게든 사회적인, 좀
나쁘게 말하면 ‘있어보이는’ 대답을 하고 있는데 그 대답들은 제게는 하나같이 상당히 공허하고, 아전인수격으로 끌어온 답변들처럼
여겨집니다. 제가 이 영화에 과연 윤리성이 있는가, 라고 느꼈던 것은, 영화가 현실과 허구 사이의 경계를 마구 허물면서, 그
사실과 그가 유래할 파장 같은 것에 대한 고려는 전혀 하고 있지 않는 듯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폭력을 스펙터클화해서
소비하는 방식에는 분명 ‘공식화’와 ‘장르화’라는 일련의 과정을 거칩니다. 이것은 폭력을 소비함에 있어 현실세계에 엄연히
존재하는 폭력을 소비하는 것이 아닌, 그 폭력을 ‘허구화한’ 즉 ‘허구화된 폭력’을 즐기겠다는 의지이기도 하고, 이것은 다시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짓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도 하지 않나, 싶은데요. 영화 속에서 어마어마한 폭력을 구현해놨던
무수한 감독들의 무수한 영화들은 실은 그 폭력을 현실에서의 폭력과 상당히 구분하고 있고, 양식화 시켜놓고 있습니다. 샘 페킨파가
됐던 타란티노가 됐던, 영화 안에서 폭력 묘사가 강해질수록 이 폭력을 둘러싼 ‘영화’라는 경계, 현실에서 분리된 ‘허구’라는
경계가 그만큼 강해지는 거거든요. 하지만 <추격자>는 그렇지가 않죠. 저는 이 영화가 그 부분에 대해 아예 아무런
생각도 배려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든 영화를 재미있게 만들겠다, 잘 만들겠다는 일념 하에, 모든 창작자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고민을 해야 하는 어떤 경계를 아무 생각없이 넘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라 해야 하나.

사실 저도 제가
느끼는 이 덩어리진 느낌들을 어떻게 해야 가장 효과적으로, 가장 속시원하게 표현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길게 쓴
글이 제 생각을 제대로 전달을 한 건지 어쩐지도…  조금 더 정리가 됐을 때 쓰는 게 좋겠지만, 그러다가 오히려 아무 말도
못한 채 그냥 지나가 버리게 될 것 같아서… 누군가 제 글에 마구 반론을 해서 제가 막혀있는 부분에 돌파구를 마련해 주시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더 큽니다.

뭐, 그렇다고요.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21 Comments

  1. 어쨌든 이런 종류의 이슈를 언급할 수 있게 해준 영화도 < 격자>가 처음인 것 같아요.

  2. 노바리님의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사실 저도 이 영화를 보고 리뷰를 하지 않기로 결심한 이유가 바로 그거 였습니다. [추격자]는 분명 잘 만든 영화입니다. 그러나 ‘좋은 영화’는 아닙니다. 상당수의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느낀 ‘재미’보다는 그 ‘더러운 느낌’이 더 오래 남았다는게 증거입니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영화는 넘어야 할 수위를 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영화의 잔혹성이나 초딩들도 당연시 여기는 쌍욕들의 남발은 제껴두죠. 그러나 그 소재나 표현법에 있어서 영화니까 봐줄 수 있는 정도를 지나쳤다면 이는 문제가 됩니다. 단지 ‘영화니까 저럴수도 있지’와 ‘실제로도 저렇구나’의 차이는 엄청난 것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추격자]는 감독이 제 아무리 그럴듯한 답변으로 치장을 하려 해도 그 본질에는 더욱 자극적이고, 더욱 충격적인 요법으로 관객들의 무뎌진 감성을 뒤흔들었다는 것 외에 그 이상의 의미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물론 2시간 내내 관객의 시선을 붙잡는 복선의 배치라던가, 연출의 짜임새 등 영화적 기법에 있어서는 칭찬 받을만합니다만 그 이상의 가치를 부여하기에는 결코 개운한 영화가 아니라는 거죠.

    저도 쓰다보니 횡수가 되어버렸습니다만, 아뭏든 저는 개인적으로 [추격자]같은 영화가 더 이상은 안나와 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가뜩이나 삭막하고 각박한 세상, 스크린에서나마 알흠다운 세계를 보고 싶어요.

    • 페니웨이^^ 의 말에 적극 동감합니다. 도무지 무엇을 전달하려 했는지 저도 모르겠군요. 사회적으로 따뜻하지도 않은데 영화에서나마 따뜻한 말이 나왔으면 좋으련만 아쉽네요..대중들이 다 인정한다고 그게 100%의 진실이라고 저는 믿지않습니다.

  3. 저도 감히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씀 드리옵니다.
    제 블로그에 아주 간단히 평(?)을 했었지요. 트랙백 걸어 둡니다.

  4. Pingback: 박장(호)빵맨
  5. 영화의 ‘윤리성’ 관련해서 더 하고싶은 얘기가 있는데, 제 내공부족 탓에 그걸 제대로 말로 풀어내질 못하겠네요. ^^;;; 하여간 댓글들, 고맙습니다.

    페니웨이님, 사실 이 글 쓰면서 더 나가고 싶었던 얘기들이, < 격자>도 그렇지만 요즘 영화들이 대체로 계속해서 자극 강도가 높아진다는 점이었어요. 장르가 어떤 쪽이든, 정서들이 세고 폭력적이에요. 시대가 폭력의 시대가 그런가 봅니다.

  6. 잘 읽었습니다. 저도 공감하는 부분이라 한마디 남기고 싶어져서요. 씨네21에서 이 영화를 제작한 비단길 대표 인터뷰를 읽고 나니 더 찝찝한 기분이 들더군요.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그 제작자 분 말에 의하면 나홍진 감독이 처음 들고 온 시나리오는 연쇄살인의 잔혹성과 스릴러의 쾌감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고 하네요(나홍진 감독의 단편 완벽한 도미 요리를 생각하면 충분히 그랬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작자 분은 거기에 사회적 메시지를 넣도록 계속 압력을 넣었고요. 매체 인터뷰를 액면가 그대로 받아들일 순 없겠지만, 만약 그런 맥락에서 영화가 제작되었다면 추격자의 ‘사회적 메시지’가 억지춘향으로 보이는 부분이 어느 정도 설명될 것도 같습니다. 감독 본인이 어떤 사회적 교훈보다는 영화적 쾌감에 더 관심이 많았다는 얘기니까요.

    • 그런 뒷얘기가 있었군요.
      그런데 만약 (장르)영화적 쾌감에 집중돼 있었다면 오히려 이런 찝집함은 남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물론 흥행이 이만큼 되진 않았겠지요. 그냥 장르영화팬에게 컬트영화로 남았을까요? 사실 화면 안에서 아무리 잔혹하고 피가 튄다 해도 “이것은 영화”라는 게 강조되는 한 오히려 안전하고, 이것이 더 윤리적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윤리성과 사회성, 골고루 고려하느라 영화에 사회성을 반영한 걸 텐데, 그게 오히려 비윤리적으로 보이니, 영화라는 매체와 이 매체가 사회와 갖고 있는 관계에 대한 깊이있는 통찰이라는 게 모두에게 필요하지 않나 싶네요.

  7. 저는 좀 다르게 영화를 보았는데..

    —-
    별 생각 없이 극장에서 티켓을 사 추격자를 봤을 때 이건 ‘사람은 구조적인가 주체적인가’ 란 물음에 대한 탁월한 묘사,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아니나 다를까, 이 영화는 유영철 사건에서 큰 모티프를 가져온 것이라 한다. 익스트림 무비의 나홍진 감독과의 인터뷰를 읽어보아도 마찬가지 이야기를 하는데, 유영철 사건에서 같은 구조적 환경에 처해 있을 때 과연, 모든 사람이 같은 선택을 하냐, 에 대하여서다.

    ‘잡히고 나면 자신이 했던 끔찍한 짓거리를 생각지 않고 자라온 환경을 탓한다. 그렇게 자라난 사람들이 어디 한 둘인가? 왜 그 새끼들만 유독 그럴까? 원래 그 새끼들은 그렇게 태어난 거다. 후천적 영향으로 그렇게 되었다는 데에는 단 1%도 동의할 수 없다.’

    나홍진 감독은 추격자의 주인공이기도 한 연쇄 살인범들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냐, 고 묻자 단번에 이런 답변을 한다. 분명 이건 영화에서 가장 주요한 포인트다. 추격자에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유전자, 혹은 주변 환경으로 인해, 비록 우리가 알기는 힘들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미래의 행동이 예정되어 있을 것이라는 ‘구조적’ 관점, 그렇더라도 그 와중에 주체적인 행동을 할 자유의 영역이 남아 있을 것이라는 ‘주체적’인 관점이 혼재하고 이것은 긴장감을 일으킨다. 그리고, 여기서 연쇄 살인범 지영민이 죄인인가, 아닌가, 는 중요치 않다. 그는 머물러 있는 존재로서 다른 이의 갈등을 이끌어 내며 동시에 갈등의 원인이 된다.

    보도방 업주 엄중호와 그가 데리고 있던 창녀를 살해한, 연쇄 살인범 지영민의 대결 중 엄중호의 심리 변화는 특히나 자세히 표현된다. 그리고 그 자세한 표현에는 의도가 있다. 창녀의 딸을 데리고 다니는 와중에서 그 두 여인을 매개로 한 엄중호의 변화는 그 동안 자신이 해왔던 일들이 이 모녀에게는 어떤 것이었나, 를 윤리적으로 환기하며 ‘과연 무지는 죄인가?’ 라는 오래된, 그러나 해결하기 힘든 철학적 물음도 제시한다. 이건 살인범 지영민은 평면적 인물인 반면 추격자, 엄중호는 입체적인 인물이며 그의 심리 묘사를 축으로 한 진행으로 그에 몰입된 관객이 그의 심리 변화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들기에 그렇다. 보도방 업주라는 실상은 부정적인 인물의 엄중호가 주인공이 됨으로써, 이런 ‘윤리적’ 물음이 호출되는 것이다. 엄중호도 실상은 환경에 지배받는 부정적인 인물이지만 그의 전후사를 알고 그를 들여다 보면 또 그렇지 않다. ‘추격자’는 이런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탁월하다. 아주 결정적인 요소다.

    흥미로운 점은 지영민이 망치와 정으로 창녀들을 살해한 구조적인 동기가 발기 부전인 ‘성불구자’라고 경찰의 취조 도중 드러나는 씬이 있었고,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관객들이 그런 원인이 지영민을 연쇄 살인범으로 몰아갔겠구나, 하고 판단했지만 나홍진의 의도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것. 그는 외려, 얼마나, 이런 원인의 제시(그에게는 ‘짜맞춤’이겠다.)가 기만적이며 더 나아가서는 얼마나, ‘개소리’인지 드러내려 했다고 밝혔지만 대중은 전혀 그렇게 영화를 보지 않았다. 이는 어쩌면 나홍진 본인의 어떤 ‘급진성’에서 비롯한다. 하지만, 그러면 또 어떤가, ‘추격자’는 러닝 타임 내내 그런 급진적 생각들에 대한 강요를 제거해 어쩌면 지나치게 강렬한 현실의 제시를 건조하게, 그리고 밋밋하게 만들어내 거기서 어떤 아름다움을 창조해 낸 건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영화 전체를 통저하는 나홍진의 이런 근본적인 인간에 대한 지속적인 성찰과 깊은 직관, 그리고 탁월한 감독으로서의 묘사력은 이 영화로 깊이 빠져들게 하는 직접적인 동인이며 또 추격자가 가진 팔할의 매력은 여기서 연유한다.

    —-

    제가 영화를 보고 써두었던 감상문입니다.
    나홍진 감독의 인터뷰를 보고 좀 당황스럽고 ‘생각없어 보이는’ 사람이라는 느낌은 받았지만 뭐, 그것도 그 이만의 개성이라 생각했고 그랬기에 영화가 좀 더 논쟁적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추격자, 이 영화 아주 좋던데요. 감독이 인터뷰에서 무슨 소리를 했건 간에요 ㅎ

    • 엄중호는 입체적인 반면 지영민은 평면적이다, 라는 데엔 좀… 저는 지영민이 평면적이라기보다는, 우리같은 사람들에게 이해되지 않는 이해 너머의 ‘대상’ 그 자체로 성공적으로 그려졌다고 생각해요. 제가 하정우에게 놀랐던 것도 바로 그런 ‘대상’ 그 자체를, ‘대상’ 그 자체로서 연기해냈다는 것이었거든요. 대다수의 이해 바깥에 존재하는 인물을 연기한다는 건 저한텐 거의 상상 바깥의 영역인지라. 엄중호는 아무리 나쁜 놈이라도 이해하고 접근할 만한 여지가 있는데, 지영민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정말 연기하기 어려웠을 텐데…

      사이코패스건 연쇄살인범이건 이제까지 한국영화는 어설프게라도 그들을 우리 식의 이해의 영역 안으로 끌어들이려 했고 바로 거기에서 언제나 삑사리가 났던 반면(가장 대표적으로 어이없이 초라해진 영화가 최근의 < 은집>이죠), 우리에게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영역 저 너머에 존재하는 대상을 바로 그대로 그려냈다는 점, 더욱이 그런 인물을 그토록 뛰어나게 하정우가 연기해냈다는 점. 이 점이 이 영화의 가장 뛰어난 점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불구 운운은, 사실 모든 프로파일러들이 지적하고 있는 연쇄살인범의 특징입니다. 모든 성불구자가 연쇄살인범이 되지는 않는데, 연쇄살인범의 대부분은 성에 대한 좌절을 경험한 사람들이지요. 그 부분이 연쇄살인의 ‘의도’로 연결되지 않은 건 사실인데, 전 그 부분에 대해 미국식 장르영화를 많이 본 사람들이 한국식 호러영화에 가지는 짜증과 불만 – 대체 왜 굳이 이유와 사연을 구비구비 엮여주는가, 나쁜 놈은 그냥 나쁜 놈으로 내버려 두면 안 되는가, 지각 너머의 ‘대상’으로서만 존재하는 존재를 그냥 ‘대상’ 그대로 묘사하면 안 되는가 – 을 뛰어넘으려 했던 시도.. 정도로 보입니다. 나홍진 감독에게 특별한 철학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그냥 그는 영화광 출신 영화감독으로 보여요. 전 대체로 영화광 출신 영화감독들을 무척 좋아하고 그런 영화들에 열광하는 편인데, 솔직히 이 경우는 ‘생각없어 보여서’ 말이죠… 저 윤리적 문제라는 부분은 감독이 단 한번도 창작자로서 생각해본 적이 없고, 다 만들고 나서야 뒤늦게 어마낫 하고 스스로 찔려하는 게 보여서 기분이 좀 그렇네요.

  8. 저도 이 영화를 보고나서 애매모호한 느낌을 받았어요.뭐랄까 영화를 보기전에 여주인공의 죽음에 대한 논란(?)을 알고 봤는데 그부분에선 너무 전형적인 시나리오라 불편함은 별로 없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와서는 다른 나라(미국)의 스릴러랑 계속 비교하고 있더군요.미국 영화에서 그려지는 냉정함(?)보다 감정의 과잉이나 날것 같은 느낌이라서 ‘외국에서는 안팔리겠군”우리나라 영화들은 왜 이런 영화들이 많지?’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는데 이글을 보니까 그때의 애매모호한 느낌이 좀 명확해 지는 느낌이네요.거리두기가 이렇게 어렵군요^^;

  9. 아, 그렇군요. 저도 하정우의 캐릭터에 굉장히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심지어 사이코패스 범죄자를 내세운 [검은 집]에서도 범죄자에 대한 관객의 이해의 여지를 억지로 남겨두려고 하는(…) 한국 호러영화의 일종의 관행 같은 것을 깨 버렸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중간에 등장한 심리학자 아저씨와 하정우의 간격도 흥미로웠고, 그저 거기 존재하는 알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한 공포를 잘 재현해냈다고 생각했어요. 라고 쓰고 스크롤해보니 위에 리플에 다 있는 얘기군요ㅋㅋㅋㅋ 아무튼 그런 점이 이 영화의 괜찮은 점이라고 생각해서 당연히 감독도 그런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만든 줄 알았는데….요즘 영화잡지를 거의 안보거든요. 감독이 뭔가 다르게 의도한 게 있다고 하면 그거야말로 정말 찝찝하네요…

    오히려 전 지영민에 대한 냉정한 거리두기의 포스와 달리 김윤석 캐릭터와 여자주인공(이름을 잊었어요;;)을 묘사하는 방법이나 심지어는 지영민이 여자주인공을 살해하는 장면, 머리를 갖다가(어떻게 빼간 건지…-_-) 어항 속에 넣어놓고 싸우는 라스트 배틀 등등의 장면들이 지나치게 감정 과잉이라 뭔가 부조화를 느꼈어요. 잘 빠지려다가 말고 뒤로 갈수록 쓸데없는 군살을 붙여 가는 무거운 느낌이라서 감독이 지영민이라는 ‘괴물’을 탄생시킨 건 정말로 의도했던 건가? 하는 의문도 좀 있었어요.

  10. 수하이 / 영화라는 허구의 세계와 우리의 현실 사이의 거리라는 게, 좀 오묘한 듯해요. 저도 이 영화를 보고서야 당황해서 다시 생각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소루 / 지나친 감정과잉이라… 음, 확실히 그렇네요. 굉장히 드라이하게 나가다가 뒷부분에서 갑자기 확… ‘장르적 쾌감을 좇는’ 부분과 ‘사회적 메시지를 반영하는’ 부분 사이의 부조화가 그런 데에서 드러나 버린 것일까요.
    그나저나 이 영화는 김윤석, 하정우를 캐스팅하지 않았으면 도대체 어쩔 뻔했는지 말입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해요.;;

  11. 이야기가 그대로 주제지, 이야기 되고 있지 않는 어떤 것을 요약 정리한게 주제는 아닐거얌.

    영화가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은데, < 구>가 두려운 것은 사람들이 모방범죄를 일으킬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폭력이 아주 자연스럽게 용인되고 있다는 것에 있을거야.

    그러나, 그래도 할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언젠가 말했듯이, 문학이 15세 소녀를 고려해 줄 수는 없는 법이지. 어쨌든 훨씬 더 위험한 외설물을 읽어대는 법이니까”(어떤 글에서 인용; 누가 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다)

    세계평화를 위해서는 전쟁영화가 없어지는게 좋을까? < 레드라인>을 전투장면 잘 묘사한 전쟁영화로 보는 친구들을 사람과 있을 때 그 답답함이란….

    (미안, 나도 내가 먼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회사서 놀고, 집에서 일하려니까.^^;;)

    • 솔직히 말하면 나는 < 구>가 보여주는 폭력의 수위가 아니라, 그 영화의 ‘미적 테러 수준’이 더욱 걱정된다. 미감의 하향평준화에 톡톡히 일조하는 영화 중 한 편이라 할 수 있는데, 작금의 대한민국은 ‘흥행성적’ 이거 한 마디면 졸작이 걸작되고 마스터피스가 후진영화 되는 요상한 땅이기 땜시.

      폭력의 강도가 굉장히 심한 영화들, 그 강도 자체에 걱정을 하진 않는다. 위에서 예를 든 샘 레이미 같은 감독 경우는 ‘폭력의 시인’이라고까지 불렸던 감독이다. 타란티노의 영화도 언제나 주제는 폭력이지. 심지어 폭력을 ‘즐기는’ 영화들에 대해서도 나는 미적 감각이 폭력적이지 않다면 환영하는 바다.

      그런데 그러한 환영이 전제하는 바가 무엇이냐. 바로 그 부분에서 영화의 윤리성에 대한 얘길 해야 할 것 같은데. < 격자>가 건드리고 있는 바로 그 부분이 아직 명확히 인지되지도, 논의되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 생각해. 나는 그 부분에 있어, 영화라는 것이 허구와 실재를 구분하는 그 경계, 테두리의 전제의 문제가 혹 문제가 되지 않는가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장르’ 혹은 ‘장르문법’이라는 건 사실 허구와 실재를 명확하게 구분해주는 굉장히 유용하고도 관습화된 경계막 중 하나이기도 하거든. 혹은 우리가 종종 ‘상투적인 설정’이라 부르는 것들 역시.

      물론 20년쯤 뒤엔 나의 이런 호들갑이 ‘상당히 시대에 뒤진’ 혹은 ‘어이없는 인식’으로 평가날 수 있고, 나부터도 아마 그럴 가능성이 80% 이상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의 예술작품은 시대를 헤치고 길이 남는 고전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대에 대중과 교감하는 면, 현실을 얼마나 반영하고 다시 현실을 얼마나 추동하는가도 상당히 중요하지. 단순히 < 격자>가 현실의 폭력을 용인하고 추동한다, 는 이유로 위험한 영화는 아니라 생각한다. 나도 열심히 답을 찾는 중이야.

      ‘주제’에 대한 부분은… 음. 박노인 특유의 선문답 정도로 이해하겠어.

  12. 저는 이 영화에서 극단적인 절망을 봤습니다. 움직여야만 하는데, 되는 건 없고, 그래서 날뛰지만, 누군가를 구했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고, 결국 위안이라고는 조그마한 손을 붙드는 것밖에 없는, 그런 상황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그 위안이 눈물날 만큼 소중합니다만, 그게 전부인 상황. 이건 하나의 거대한 악몽입니다.

    (버지니아 텍이나 콜럼바인 같은) 강렬한 악몽의 이미지에 사로잡힌 이에게, 논리나 짜임새는 무장해제 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감독의 손짓이 “Welcome to my nightmare”였다면, 이 영화는 확실히 성공한 것 같습니다. 줄담배와 폭음 외에는 탈출구가 없었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스탭들도 이런 악몽에 휩싸여 있었던 건 아닐까, 의미를 파악할 짬도 없이 그냥 홀려 있었던 건 아닌가, 궁금해집니다.

    하지만 진짜 궁금한 건 이겁니다: 어떻게 이런 영화가 이렇게까지 히트했는가.

    • 백발소년님은 ‘착한 관객’이신 듯합니다. ^^ 때때로 감독들은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던 의미를 읽어내는 관객들에게 놀라움을 느끼면서도 그 의미를 애초에 자신이 의도했던 양 블러핑을 치는 습성이 있곤 하는데, 나홍진 감독이 백발소년님의 이 리플을 봤다면 굉장히 좋아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디가서 이번엔 백발소년님의 이 리플을 원래 자신의 의도인 양 말하고 다니지 않을까… ㅋㅋㅋ 농담입니다.

      감독들이 의도하지 않음에도 일관성있는 어떤 의미가 영화에 담기는 것은 그 감독 역시 당대를 살아가며 이 사회에 영향받고 사회와 소통하는 개인이기도 하기 때문이죠. 또한 감독은 우리와 세상을 보는 방식이 좀 다른 존재들이기도 하고요. 우리는 일반적으로 ‘문자’를 통해 그걸 구체화한다면, 감독들은 감각 자체가 이미지와 심상 쪽이겠죠. 전 심지어 감독들이란 냄새 같은 것마저도 이미지와 심상으로 감각하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곤 합니다. 하여간 그걸 읽어내고 ‘문자’로 제대로 옮기는 관객을, 저는 종종 ‘착한 관객’이라 부르고, 혹자들은 ‘날카로운 비평적 시선을 가진 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

      사실 ‘극단적 절망’이라는 것 자체가 이 영화의 출발점인 건 확실해 보이긴 합니다. 다만 감독 자신이 그걸 말로 잘 설명해내지 못하고 있고, 감독은 그 극단적 절망보다는 ‘장르규칙 놀이’에 더 빠져있는 듯도 보이고요.

      우리가 느끼고 있는 어떤 공통된 절망, 거대한 암흑, 그것이 무엇인지 대면하고 싶은 게, 지금 우리들의 공통된 욕망이 아닐까요? < 격자>가 확인해주는 건, 어떤 존재가 있긴 있는데, 그 존재는 우리처럼 비슷하게 생기고 말을 하는데, 그런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우리 사고 저 너머의 존재라는 걸 보여주는 것이고요. 그것이, 이 영화가 그토록 어필한 지점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13. 그런데, N.님은 추격자보다는, 추격자의 감독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인가요? 감독이 알고보니 어떤 생각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더라, 는 생각이 추격자에 대한 평가에 영향을 많이 끼치고 있는 듯이 보여서요.

    • 그건 아닌 것같습니다. 오히려 저는 그가 “내 의도는 이거다”라고 말로 설명하고 있는 부분들을 의심하고 있는걸요. 그 의심의 근거들은 모두 < 격자>라는 영화 안에서 제가 느꼈던 의문과 모호함과 불편함에서 시작하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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