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레이디 맥베스 2008>, 변화의 기로에 서다

권력을 향한 야망과 명분 없는 야망에 대한 죄의식 사이에서 갈등하던 맥베스의 등을 떠밀며 그의 악행을 격려했던 맥베스의 부인, 즉 레이디 맥베스는 맥베스의 악행에 강한 동기를 부여해주고 함께 뒤처리를 하는 중요한 공범이면서도, 정작 셰익스피어의 원작희곡 [맥베스]에서는 그 중요성만큼 복합성과 입체성을 부여받지는 못하는 캐릭터다. 그런데 <레이디 맥베스>는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맥베스가 아닌 레이디 맥베스가 주인공이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가 지녔던 웅장한 비극적 인물의 광휘, 야망과 양심 사이의 격렬한 고뇌와 갈등은 이 연극에서 오롯이 레이디 맥베스의 몫이 된다. 맥베스는 그저 주인공의 남편으로서 부인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심약한 기질과 성품의 공처가로, 유약함과 우유부단으로 한껏 희화화된 채 표현된다. 심지어 연회 장면에서는 원작보다 더 나아가 만인 앞에서 옷에다 실례를 하기까지 한다.

한태숙이 창작하고 연출한 연극 <레이디 맥베스>가 1998년에 초연되었을 당시 얼마나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는지는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당시 이 연극이 “셰익스피어에 대한 모독 및 훼손”이라는 평을 받았다면, 이것은 정말 고전 중의 고전에 손을 댄 것에 대한 불편함보다는 여성 캐릭터가 남성 캐릭터를 압도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사실 셰익스피어의 원작들이야말로 대체로 여성 캐릭터들이 남성 캐릭터에게 종속되거나 주변화 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런 거부감이 꼭 남성우월적인 구시대의 유물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세익스피어에 대한 모독 및 훼손’이라는 비판 역시 구차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톰 스토퍼드가 [햄릿]의 두 조연 캐릭터를 등장시켜 무려 ‘코미디’로 재창작한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은 죽었다>가 에딘버러에서 초연된 게 벌써 1966년이 아닌가. 1998년은 톰 스토퍼드가 각본에도 참여한 영화 <세익스피어 인 러브>가 개봉된 해이기도 하다.

레이디 맥베스

셰익스피어의 번외작, 사실 좋은 공연이긴 한데 기대에 비해 실망이 컸다.

지난 4월 13일 막을 내린 2008 <레이디 맥베스>는 예술의 전당이 개관 20주년을 맞으면서 기획한 ‘최고의 연극’ 시리즈 제1호 작품이다. 초연된 지 10년, 2002년 이후 오랜만에 재공연된 이 극은 초연 때처럼 서주희가 다시 레이디 맥베스를 맡았고, 실험 오브제극의 성격이 더해졌다. 진흙과 밀가루를 적절히 이용해 레이디 맥베스의 부서지고 공중에 휘날리는 심리와 덩컨 왕이 암살당하는 장면을 매우 효과적으로 그려낸다. 무대 위 삼면에 객석이 설치되어 관객들은 중앙무대를 내려다보게 되고, 배우들은 객석 사이 통로들까지 적절하게 무대의 일부로 이용함으로써 객석과 무대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관객은 이 연극을 관람하는 관중이자 동시에 레이디 맥베스가 보는 거대한 환영의 일부로 극의 일부가 된다. 타악기 위주의 효과음, 그리고 스산한 분위기를 한껏 강화하는 무시무시한 여인의 구음 역시 이 연극의 완성도를 더욱 높인다.

그럼에도 이제 10년째인 만큼, 시대의 변화 앞에서 이 연극의 가장 근본적인 부분들이 살짝 빛이 바래기 시작했다는 느낌 역시 지울 수 없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도 있는 장면들이 재해석되는 장면들은 여전히 매우 좋지만, 레이디 맥베스의 고통과 광기는 이제 다소 평면적으로 느껴진다. 세익스피어의 원래 대사와 새로 덧붙여진 전의-레이디 맥베스 사이의 대사가 그 밀도에 있어 도드라지게 차이가 드러나는 것도 사실이다. 마지막에서 전의와 광대들의 존재가 실재가 아닌 환영이라는 사실이 폭로되고 전의가 직접 자신의 정체를 레이디 맥베스의 ‘검은 마음’ 나아가 그녀의 ‘죄의식’으로 굳이 명시해 버리는 장면은, 앞에서 차근히 쌓아올린 긴장감과 극적인 분위기를 최고조로 폭발시키지 못 하고 도리어 맥없이 주저앉혀 버린다. 공연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관람한지라 배우들의 에너지가 많이 떨어졌을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짐작이 가지만, 레이디 맥베스의 내면의 갈등과 그 고통, 그리고 갈등이 지나치게 ‘피로감’의 형태로 드러나는 것도 이 연극이 원래 지향하고자 했던 방향과 거리가 있는 듯하다. 오브제들이나 대사들은 피로감보다는 ‘격렬함’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레이디 맥베스가 지친 몸을 겨우 끌고 원래의 객석 위치에 마련된 길을 따라 걸어가는 엔딩 역시 그 의도와 근거는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지나치게 노골적이다. 차라리 맬컴과 맥더프가 버냄의 숲에서 쳐들어오고 있는 상황에서 레이디 맥베스가 자살하기 직전의 긴박한 장면으로 마무리가 됐다면 어땠을까. 안 그래도 배우에게 육체적, 심리적으로 강도 높은 에너지를 요구하는 이 연극이 ‘배우에게 더욱 가혹한’ 극이 될까.

10년을 맞은 <레이디 맥베스>가 그간 쌓아온 명성에 충분히 어울리는 연극이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과 그 10년간 사회가 너무 많이 변한 만큼, 그리고 이 극에 명성을 더해준 전통 – 여성의 입장에서 다시 쓰고 재해석하는 페미니즘 예술의 전통 – 이 이제 충분히 대중화된 만큼, 이 연극이 계속해서 명성을 이어가려면 다른 식의 변화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이번 2008년의 공연은 이 작품이 어떤 기로에 서 있는지를 보다 명확히 밝혀주고 확인해 준 데에서 진짜 의미를 찾아야 할 듯싶다.

ps. 4/13 일, 3:00, 토월극장

ps2. 프레시안무비에 기사로 올라간 글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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