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창호 | 고래사냥 (1984)

고래사냥

시대를 초월하는 걸작


애초 <고래사냥>에 대한 관심과 보고싶다는 기대는, <깊고 푸른 밤>과 마찬가지로 당대 최고 흥행작 중 하나를 확인한다는 거였지 걸작 아트영화일 것이란 기대가 아니었다. 시대를 ‘초월할’ 걸작에 대한 기대는 오히려 <황진이>에게 갖고 있던 편이다. 그런데 <꼬방동네 사람들>과 <깊고 푸른 밤>을 틈내서 본 뒤, 본격적으로 배창호 감독의 영화를 보기 시작한 첫 날, 첫회로 이 <고래사냥>을 보다가 뒷통수를 꽝하고 얻어맞는 것 같았다. 젠장, 이 영화는 기막히게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는 걸작이었다. 1984년작이니 벌서 24년 전 영화다. 그런데 스크래치가 잔뜩 난, 일명 비내리는 화면과 후시녹음된 모노 사운드(그래서 소리가 꽤 날카롭게 변한)만이 세월을 증명해줄 뿐이다.


영화는 다들 아시는 대로 어리버리한 철학과 3학년으로 인생이 의미없다며 가출한 병태(김수철)가 자신을 ‘왕초’라 부르라고 하는 거지(안성기)와 함께, 벙어리 어린 창녀 춘자(이미숙)을 그녀의 고향 우도에 데려다 주기 위해 동행하는 과정을 그린 로드무비다. 가출 대학생에 거지가 유곽에서 몰래 빼낸 벙어리 창녀를 데리고 포주 일당에게 쫓기며 도망치는 중이니 돈이 있을 리 없고,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 없는 일행이 여행을 하는 과정을 그린 로드무비는 그 영토 곳곳의 자본화된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 도시화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을 또렷이 드러내주기 마련이다. 이것이 한창 개발, 도시화를 부르짖던 7, 80년대의 한국땅이라면 더욱 그렇다. 보통의 로드무비는 ‘엄마’ 혹은 ‘고향’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 되며 이 과정은 곧 너른 세상에서 자아를 발견하고 성숙시키는 과정을 은유하는 영화들이 되는데, <고래사냥> 역시 별로 예외는 아니지만 유독 당시 급격한 자본주의화가 진행되고 있는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은유가 많이 드러나는 것도 사실이다. 병태가 처음 왕초를 만날 때, 왕초는 자신을 ‘진짜 거지’라 소개하며 “거지는 욕심이 없다, 그저 하루 세 끼 먹을 것과 잠 잘 곳만 있으면 된다”고 얘기한다. 병태가 유치장에서 왕초를 만나게 된 것은 그의 손목시계를 훔치려 들었던 여자에게 속아서다. 춘자는 돈을 벌겠다며 도시로 떠난 뒤 어찌어찌 비싼 값에 유곽에 팔려온 처녀. 그리고 이들이 그 쌩고생을 하게 되는 건 역시 돈이 없어서이다.


거지왕초는 병태가 다니던 학교의 학생이었던 것으로 암시되고 그의 이름은 한민우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병태나 거지왕초는 모두 급격한 가치관의 혼돈을 느끼면서, 당시 개발 독재에 동의하지도, 저항하지도 못한 채 낙오된 청춘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에서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인텔리들에게 있어 구원해야 할 대상으로서의 민중은 문학에서건 영화에서건 ‘창녀’로 형상화되기 마련. (개인적으로 이런 식의 ‘구원’의 메타포와 ‘창녀’로의 대상화는 그리 좋아하지도 지지하지도 않지만.) 게다가 춘자는 벙어리며, 그것도 생래적인 것이 아니라 심리적인 것으로 추측된다. 이런 설정들은 이 영화가 당시 흥행에 성공한 것이 암울한 시대적 상황의 비유로 이 영화가 읽혀서였겠지만, 정작 배창호 감독이 정말로 날카로운 정치적 감각을 갖고 비유를 하려 했는지는 별개의 문제. 그러나 영화는 관객의 다양한 해석과 감정이입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매체이기도 하다. 다만, 24년이 지나서 본 내 눈에는, 이 영화가 당시 제5공화국의 정치적 현실보다는 급격한 도시화와 개발에서 도태돼가는 소시민들의 상실과 이들의 고향찾기에 대한 비유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게 보인다. 이것을 증명하는 게 이 영화의 엔딩이다.


로드무비라는 장르가 가지는 비유성, 그리고 그 리얼리즘적 측면을 본다면 이 영화의 해피엔딩, 특히 이대근이 연기한 포주의 급작스러운 회심과 호의는 뜬금없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우도를 30km 앞둔 바닷가에 도착했을 때 우리의 주인공들은 ‘너무 일찍’ 환호성을 터뜨리고, 항구에서 우도 앞바다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는 씬에서 갑자기 사운드가 오프되고 화면은 슬로우 모션이 되며, 이들의 헉헉대는 숨소리만 크게 들린다.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며 즐겁게 질주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갑자기 이런 장면이 나오는 건 불길한 앞날에의 예시로 충분히 받아들여질 수 있다. 게다가 결국 이 영화가 암울한 시대상황에 대한 풍자요 비유라면, 춘자의 고향에 가지 못한 채 – 혹은 도달은 했으나 그토록 춘자가 그리워하던 어머니는 만나지 못한 채 – 비극적 운명을 맞을 것이라 추측하는 게 당연하다. 과연, 우도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데 춘자의 뒤를 쫓던 포주일당(이대근과 남포동 등의 일당)이 미리 도착했다가 이들 앞에 나타난다.


그러나 여타 이 장르의 영화가 당연히 비극적 결말을 맺는 것과 달리, 배창호의 <고래사냥>은 병태가 다치는 걸 막기 위해 제발로 따라나서는 춘자의 착한 마음씨에 감동한 포주의 회심에 따라 급격하게 해피엔딩으로 방향을 튼다. 심지어 병태가 맞는 걸 견딜 수 없었던 춘자가 말을 되찾기까지 한다. 여기서 우리는 그의 한계이자 동시에 그만의 개성이자 강점으로 양면적 평가를 받고 있는 배창호 감독의 영화적 지향점을 확인할 수 있다. 배창호 감독의 특징으로 여겨지곤 하는 이른바 ‘착한 낙관주의’는  바로 이 지점에서 관객들의 상반된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 이 장면에서 객석에는 웃음이 일었는데, 나는 이 장면에서 영화적 미학을 포기하면서까지 관객들에게 희망과 격려를 주고싶은 감독의 따뜻한 진심을 보는 것 같아서 눈시울이 짠했다. 감독 역시 영화의 그 지점에서, 안타까움과 절망에도 불구하고 결국 코앞에서 고향에 결국 가지 못하는 엔딩으로 맺는 것이 더 완성도 있는 영화로 평가받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주인공들은 이러한 포주의 회심과 호의 속에 결국 춘자의 고향에 도착하고, 춘자는 변함없이 일을 하고 있는 엄마와 눈물겨운 재회를 하며, 따뜻한 고향의 품, 엄마의 품에 무사히 안착한다.


고래사냥

어두운 터널을 통과해도 웃음을 찾을 수 있는 낙천성이야말로 배창호 영화의 힘이다.


그런데 이런 결말은 정말로 영화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것일까? 글쎄, 나는 오히려 배창호가 자신이 추구하려는 것이 현실을 반영한 리얼리즘이라기보다는, 영화적 판타지, 더욱 정확히 말하면 영화의 장르와 양식이 주는 쾌감과 이를 통한 희망의 발견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선언하는 듯한 엔딩으로 보인다. 인텔리들이 민중이라는 대상에게 흔히 시혜로서 내려주곤 하는 거짓 희망이 아닌, 영화 속에서만이라도 자신의 주인공들에게 안식을 주려는 진심어린 애정이 더 먼저 보인다. <빌리 엘리엇>에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굳이 성인 빌리의 힘찬 도약으로 구성하는, 그런 식의 건강한 희망의 판타지 말이다. 나는 이것이 ‘대중영화’의 건강한 의무 중 하나라 믿고 있고, 배창호 감독의 영화 역시 이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믿는다. 바로 이런 결말 때문에 병태가 춘자를 구원한 것이 아닌, 오히려 병태가 춘자를 통해 구원과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이다.






ps. May 28, 2008 수요일 두시 반, 서울아트시네마

ps2. 영화를 보다가 갑자기 든 생각. 미국의 로드무비들은 2인조 짝패가 많은 반면 한국형 로드무비들은 왜 남자 둘 여자 하나의 3인 팀 구성이 그리 많은 걸까? <삼포가는 길>, <고래사냥>, <세상 밖으로>, <로드무비>, <삼인조>… vs. <이지 라이더>, <아이다호>, <델마와 루이스>, <보니와 클라이드>,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

ps3. 흰 잠옷의 이미숙은 천사 그 자체. 언니, 아름다우십니다… ㅠ.ㅠ 쌩얼에 뜯어진 스웨터를 입고 있는데도 그렇게 아름다우실 수가. 게다가 너무나 사실적이고 사람 감성을 확 찌르는 연기.

ps4. 왕초가 병태를 구해 달아나는 장면에서 소화기를 분사하는 장면을, 누군가는 사방에 정액을 뿌리는 분출의 장면으로 이야기하더라. 영화를 보다보니 그가 왜 그런 식으로 연상했는지 알 것 같았고, 충분히 설득력있다 생각한다. 그 바로 앞 장면에서 병태는 자신을 잡는 사람의 사타구니를 발로 차서 가격한다.


ps5. 포주 일당을 피해 기차에 올라타는 장면은 정말 명장면이라는.


ps6. 영화를 보면서 여러 번 울컥하고 눈물을 흘렸는데, 특히 미숙언니가 “우리 정말 말 못 하는 벙어리들이다”라며 손짓연기를 하는 장면 역시 명장면. 사실 이 영화는 명장면으로 가득할 뿐만 아니라 굉장히 유려한 카메라 이동 / 편집을 보여준다. 진정 시대를 뛰어넘는 걸작이다.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6 Comments

  1. 나 이거 대빵 어렸을 때 TV로 봤는데 중간 중간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있어. 근데 젤 기억나는 건 안성기가 생식을 해야한다면서 수퍼마켓 같은데서 막 집어먹고, 생닭을 먹은 담에 껌한개 계산하면서 나오는 장면. 그런 장면 진짜 있어?

    • 그건 2에서 나오는 장면입니다….비극적이죠. 2라는 숙명 자체가 비극.

    • 라이 / 버디님 말씀대로 2에서 나오는 장면. 2는 좀… 감독님도 대놓고 ‘내가 영화를 왜 이렇게 만들었나’ 후회하시더라. 그러나 1은 정말 걸작이야. 나중에 기회되면 꼭 보시오.

      버디 / 혹시 알고계씨는 뒷얘기가 있다면 풀어주세용. 황기성 사단에서 제작을 의뢰한 영화 정도로만 알고 있어요.

  2.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이 영화만큼은 꼭 보고 싶었는데… 어렸을적 엄마들 잡지에 연재된 ‘고래사냥’을 읽고 ‘엄마.. 창녀가 뭐야?’라고 물어봤다가 엄마의 당황해하던 눈빛에서 이미 그 뜻을 알아버리고 말았던 기억이 있네요. ‘영화의 미학을 포기하더라도’ 관객에게 희망과 격려를 주고싶은… …. ….

    • 일단 한번 전작전을 했으니, 앞으로도 기회가 여러 번 있지 않을까 싶어요. 새로 개관한 상암동 영상자료원의 시네마테크를 주시하시면… ^^ 저도 이번에 배창호 감독님 내외와 영화들에 완전히 홀딱 반한지라, 혹여 상영 얘기를 듣게 되면 이곳에 꼭 공지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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