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창호 | 고래사냥 2 (1985)

고래사냥 2

전편보다 영화적 완성도는 떨어진다.


연보를 찾아보면, <고래사냥 2>는 황기성 사단의 첫 제작 작품으로 기록돼 있다. 아마도 과거 황기성 감독과 배창호 감독 사이의 친분 때문에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게 아닌가 싶은데, 특별전 때 배창호 감독은 이 영화를 20여 년만에 다시 보니 왜 저렇게밖에 못 만들었나, 식은 땀이 났다고 말씀하셨고, 부인인 김유미 씨는 이틀 밤을 잠을 못 주무시더라 증언을 하시기도 했다. 프레시안 인터뷰에서도 배창호 감독은 자신의 작품 중 유일하게 자신의 예술적 영감과 의지가 아닌 기획사의 요구로 시작돼 만든 영화로 이 <고래사냥 2>를 꼽은 바 있다. 감독님의 이런 발언들 때문에 특별전 당시 영화를 나름대로 재미있게 본 사람들도 민망해했다고 하는데, 솔직히 나는 이 영화가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방식은 물론 화면 구성마저도 너무나 안이하고 늘어져서 아니 이게 정말 배창호 감독님의 영화 맞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는 몇몇 흥미로운 요소들이 보인다.


사실 영화들을 쭉 보면서 <고래사냥>의 진정한 속편은 <고래사냥 2>보다는 <안녕하세요 하나님>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안녕하세요 하나님>에 대한 감상문은 이후 쓸 예정이고, 아무래도 <고래사냥 2>가 전편에서 제목을 빌어온 만큼 전편과의 비교는 피할 수가 없겠다. 소심한 대학생의 이름은 또 다시 병태(손창민)이고, 그는 우연히 ‘기인’인 도사(안성기)를 만나며, 또다시 우연히 소녀 영희(강수연)를 만나는데 그녀는 벙어리는 아니지만 부분 기억상실증을 겪고 있고, 이들은 팀을 이루어 영희의 어머니를 찾아나선다. 영희의 뒤를 쫓는 악당들을 피하며. <고래사냥 2>는 노골적으로 전편을 언급하기도 하는데, 이를 테면 병태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자 도사가 “또 병태냐, 3년 전에도 너 같은 병태를 만나 쌩고생을 했다”고 말한다. 즉 시간상으로 <고래사냥 2>는 <고래사냥>에서 3년이 지난 뒤, 그 사이 거지에서 도사로 변신한 왕초가 또다시 병태와 소녀를 위해 여행을 하는 형식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전편의 병태와 <고래사냥 2>의 병태는 다르다. 전편의 병태는 암울한 시대상황 속에서 짓눌린 채 자신의 정체성도 존재감도 스스로 갖지 못했던 청춘이다. 좋아하는 여자한테서 보답받지 못하는 괴로움을 안고 있긴 하지만, 영화 초반 삽입된 긴 내레이션을 보면 그의 고민은 그저 실연만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총체적 난국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반면 <고래사냥 2>의 병태는 그저 자신과 연애를 했지만 결혼은 다른 남자와 하는 여자의 결혼식에서 깽판을 부리고, 그 괴로움 때문에 자살을 시도하는 철부지 청년일 뿐이다.


영희와 도사의 캐릭터는 보다 흥미롭다. 특히 전편의 그 거지왕초가 3년 후에 도사가 되어 나타났다는 설정은, 사실 내게는 매우 예지적인 것으로 보인다. 전편에서 거지왕초는 사실 명문대의 대학생 한민우였던 것으로 암시가 되는데, 한국에서 과거 운동권들 혹은 지식인층에서 심심치 않게 생명사상이나 도, 기 등 신비주의 사상으로 안착한 예가 흔하다. 박노해나 김지하뿐만 아니라, 이름이 덜 알려진 사람들에게서도 흔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정신적으로 깊은 내상을 입은 사람들이 결국 그쪽으로 가는 건 (좀 우스갯소리를 섞어) 딱 무협지 스타일인데, 실은 그 무협지적 정서가 한국인들에게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정서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딱 한민우가 그렇지 않은가. 명문대 대학생이었던 그는 (운동권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래사냥> 시절에는 모든 소유를 버리고 거지가 돼 있고, 3년 뒤 <고래사냥 2>시절에는 다시 도와 기를 읊조리고 생식을 해야 한다며 대파와 생무는 물론 생낙지와 생닭을 뜯어먹는 ‘도사’가 돼 있다. 이 설정이, 과연 감독이나 작가가 ‘아무렇게나’ 우연히 설정한 것만은 아닌 걸로 보인다. J.와 나는 얼마 전 저런 식의 신비주의 사상으로 귀결되는 예가 매우 한국적인, 그러나 이 한국에서는 매우 일반적인 현상이 아닌가 하는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1985년작인 이 영화가 바로 그것을 벌써부터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고래사냥 2

병태, 표정은 어벙하지만 너무 잘 생겼다.


전편에서 창녀였던 여자의 설정은 소매치기 여자로 바뀌었다. 여기서 여성의 성에 대한 남성의 착취를 보여주는 방식은 전편보다 한편으로는 더 은근해졌고, 또 한편으로는 매우 스펙터클해졌다. 그녀는 창녀는 아니지만 그녀에게 아비 노릇을 자처하며 드레스를 입히는 악당 두목은 그녀에게 왜곡된 성적 판타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영화에 유난히 창녀인 여성이 많이 등장했던 건 아무래도 현실 자체가 극도의 가난 속에서 생계와 가족 부양을 위해 몸을 팔아야했던 여성들의 숫자가 급속히 증가했기 때문이기도 한데, <고래사냥 2>에서는 여주인공이 그저 소매치기이고 이런 매매춘과 별 상관이 없는 대신, 그녀가 어머니를 찾아 헤매는 동네들은 소위 ‘양공주’들이 있는 동두천 일대가 된다. 매매춘이 ‘국가적 차원’에서도 은근히 장려되고(“여러분들은 달러벌이의 역군들입니다”) 조직화돼있는 한편 국가가 처한 모순까지 개입돼 있는 매매춘의 장소가 아닌가.


사실 이 영화는 반미까지는 아니어도 비틀린 아메리칸 드림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적지 않다. 아마도 <깊고 푸른 밤> 이후에 찍은 영화여서일까? 병태를 버린 원래 여자친구는 ‘미국’으로 유학을 가기 위해 유학생과 결혼하며, 그 여성은 영문과 출신이다. 영화가 시작되고서 10분도 지나지 않아 ‘미국’이 세 번이나 언급된다. 우리의 주인공들은 얼마나 영어에 대한 강박증을 보이는가. 병태와 도사가 굳이 이태원에 가서 안 되는 영어로 미국인에게 돈을 구걸하는 장면도 곁들여 있다. 이들이 한국인 출입금지인 클럽에 통과하게 된 계기는 한쪽은 교포로, 한쪽은 흑인으로 변장을 하고서인데, 이 장면은 얼굴에 검은칠을 하고 흑인인 척하는 안성기의 모습 때문에 웃음이 터지기도 하지만, 묘하게 굴절된 슬픔을 안겨주기도 한다.


고래사냥 2

<고래사냥 2>에는 군경과 대치하는 몇 번 장면이 나온다. 이것도 그 중 하나.


하지만 중요한 것은 수많은 창녀들, 양공주들이 등장함에도, 영희는 창녀가 아니라는 점일 터이다. 강수연에게 배역을 맡기면서 그녀에겐 창녀보다 소매치기라는, 보다 ‘말괄량이’ 이미지(혹은 보다 ‘순수한 소녀’의 이미지)가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 감독의 판단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나 이것은 한편으로, 창녀의 딸이 더 이상 창녀의 딸이 아닐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이 짠하다. 물론 그럼에도 그녀는 다른 방식으로 남자들에게 착취를 당하지만.


<고래사냥>도 그렇고 <고래사냥 2>도 그렇고, 아버지의 존재는 철저하게 지워져 있다. 사실 두 영화 다 거의 전체가 세 명의 ‘아이들’의 좌충우돌이고, 영화 마지막에 가서야 그토록 그립고 보고팠던 어머니가 제시된다. 한국인들의 고아의식과 외로움이 배창호 감독의 영화에도 이런 식으로 투영이 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

ps. May 28, 20008, 오후 5시, 서울아트시네마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One Comment

  1. 그당시고래사냥의주인공(병태)
    역할을맡았던역대남자배우는
    김수철을제외한다면모두잘나가는
    미남배우들뿐이다!(손창민-고래사냥2
    최진영-92고래사냥(KBS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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