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창호 | 황진이 (1986)

황진이

정일성 촬영감독과의 첫 작품.


<황진이>는 배창호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일대 전환을 이루는 영화로 기록된다. 평론가들의 평가도 그렇지만, 감독 스스로도 인정하는 바이다.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들에 비유하곤 하는데, 그건 단순히 픽스된 카메라와 극도의 롱테이크 때문만이 아니라 이 영화 속에서 보이는 기독교적 희생정신과 사랑 때문이기도 하다. 정작 배창호 감독은 타르코프스키 얘기가 나오는 걸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 듯. <황진이>를 만들기 전까지 타르코프스키 영화를 보지 않았다고 하시고, 롱테이크만으로 그런 얘길 하는 거라면 롱테이크가 삽입된 다른 영화들을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다고까지 하시더라는. :)


이장호 감독의 <어우동>이 대히트를 친 직후였고 배창호 감독이 이장호 감독의 조감독 출신이었던 만큼, ‘당대 최고의 흥행술사’ 배창호가 만든 황진이 영화에 관객들이 몰려가면서 걸었던 기대는 당연히 화려하고 야한 사극이었을 터이다. 그런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당혹감에 빠졌던 것 역시 충분히 당연한 일이다. 사실 <어우동>이 개봉된 직후이건 아니건, 배창호 감독의 <황진이>는 한국영화사에 있어 매우 이상한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이번에 필름으로 보고 내가 새삼 확인한 건 이 영화가 공간의 깊이와 입체감을 얼마나 잘 활용하는가 하는 것인데, 솔직히 말하면 그런 식의 ‘깊은 공간감’을 잘 살리는 영화, 요즘에도 별로 나오질 않는다. 내가 <살인의 추억>에 열광했던 데에는 지하에 위치한 좁은 취조실의 그 ‘깊은 공간감’ 때문이기도 한데, 근 10년간 본 극장개봉작 중 거의 유일했지 싶으니까. 극도로 움직임을 자제하는 카메라, 그리고 그 안에서 거의 ‘구도자’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장미희의 황진이. 아마도 사극이라 더 그렇겠지만, <황진이>는 지금 봐도 매우 현대적이고 세련되며 완성도가 훌륭한 영화다. 도저히 20년 전 영화라는 느낌이 들지 않고 감탄만 나온다.


<황진이>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돼 있고, 여기에 안배된 러닝타임 비율도 비슷하다. 첫번째는 혼사를 앞둔 ‘소녀’ 황진이(장미희)와 갖바치(안성기)와의 인연이다. 황진이를 사모하던 갖바치는 진이의 집에 침입해 번번이 그녀의 신발을 훔쳐간다. ‘갖바치’는 원래 전통 가죽신을 만드는 장인을 가리키는 말, 그러니 제가 만들고 제가 훔쳐가는 것인데, 그 이유는 그래야 진이를 좀더 ‘공식적’으로 자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발 뒤의 모습이긴 해도. 어느 날 딱 걸리고 만 갖바치, 관아에 끌려가는 순간 그를 ‘관대하게’ 대하기 위해 진이가 직접 나서지만 그건 가파치에겐 가장 혹독한 처벌이어서, 그는 결국 자살하고 만다. 그의 시신이 담긴 관은 진이의 집 문앞에서 멈춰서고,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새벽, 진이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치마를 벗어 그의 관 위를 덮어준다.


황진이

진이와 갖바치. 둘은 눈조차 마주치지 못 한다.


두번째 부분은 ‘명월이’ 황진이와 벽계수(신일룡)의 인연. 배창호가 그려낸 황진이는 도발적이고 뭇 유학자들을 시험에 들게 하는 도발적인 기생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정조를 지키기 위해 콧대를 세우는 매우 정숙하고 내성적인 황진이다. 그런 그녀를 뻔질나게 찾아와 소위 ‘도끼질’을 하는 게 벽계수인데, 그와 사랑에 빠진 진이는 결국 그에게 처녀성을 내준다. 이 장면에서 진이는 수줍게 고개를 숙인 채 머리에 꽃을 두르고 있다. 황진이와 신선놀음을 하던 벽계수는 진이의 치마에 시 한 수 써 주고 송도를 떠난다. 물론 겨울 되기 전 다시 오겠다는 약속 따위 지킬 리가 없다. 그러니까, 콧대높은 기생 하나와 잘 놀다 간 셈, 혹은 ‘콧대 높은 기생 내가 자빠뜨렸다’는 영웅담이나 하나 추가한 셈이다. 벽계수의 집까지 찾아갔다가 쓸쓸히 돌아서는 진이의 뒷모습이 인상깊다.


세번째 부분은 신분을 숨기고 유랑하는 황진이와 이생(전무송)의 인연. 송도의 그 유명했던 진이는 초라한 행색으로 이름을 숨긴 채 장터의 조그마한 주막에서 지나는 행객들의 술을 따르거나 하면서 밥을 빌어먹으며 전국을 유랑하다가 역시 초라한 행색의 이생을 만난다. 역적으로 몰려 가문이 화를 당해 수배된 채 숨어 도망다니는 이생과 진이는 길을 함께 나서 유랑한다. 병약한 이생의 뒷수발을 들며 함께 길을 다니던 진이는 이생에게 한 끼를 먹이기 위해 몸을 팔기도 하며 계속 유랑하다가 그만 폐병에 걸린다. 처음엔 그녀를 안타까이 여겼던 이생은 나중에 그녀의 포주 노릇을 하기도 하여, 마지막으로 이생에게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하기 위해 황진이는 병든 몸을 간신히 이끌며 사당패를 나서지만, 결국 바닷가에서 죽음을 맞는다.


영화의 줄거리를 이렇게까지 요약하는 것은 어차피 만인에게 알려진 황진이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이 영화에서 줄거리 요약 따위는 스포일러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영화가 그리는 황진이는 우리가 익히 ‘야사’로 전해들어 아는 도발적인 황진이와 상당히 다르긴 하다. 황진이가 평생을 가장 애정하며 존경했다는 서화담 따위는 나오지도 않고, 벽계수와의 관계도 정반대로 그려졌다. 알려져 있기로는 오히려 진이가 벽계수에게 굴욕을 안겨준 것으로 돼 있지 않은가. 이생과의 관계는 더욱 픽션화돼 있다. [어우야담]에서 묘사되는 이생은 근심걱정 없는 딱 한량인 모양이고, 둘은 금강산 유람을 위해 길을 나서 거지꼴을 하고 밥을 빌어먹고 하다가 무사히 송도로 돌아왔다고 전해지지만, 영화에서 이생은 상당히… 무기력하고 고지식한 선비이고, 나아가 찌질하게 변하기까지 한다. 어차피 진이에 관한 이야기는 그 이름에서부터 제대로 기록된 것도 아니고(본명이 ‘황진’일 것이라 보는 설이 꽤 있다), 그렇게 유명한 당시 명사들과 교류했음에도 사망한 해도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지족선사를 비롯해 그녀가 당대 어떤 이들을 파계시키고 유혹했는가, 그리고 어떻게 서화담에게는 실패했는가가 흥미거리로 전해지는 반면, 말년의 생애(그래봤자 40대에 요절했다고 하지만)도 그저 명산들을 두루 유람다녔다고 전해지는 정도.


황진이

벽계수와 사랑을 나누는 장면.


이렇게 드문드문 알려진 사실들을 가지고 배창호 감독이 그려낸 황진이는 한마디로 ‘구도자’라 할 수 있다. 서화담과의 문답에서 ‘내 삶은 인간을 알기 위한 것이었노라’라고 답했다고 하니, 배창호 식 해석이 틀렸다고 할 수도 없다. 배창호 감독은 유난히 로드무비를 많이 찍었고, 그 자신도 길을 참 좋아한다고 말한 바 있는데(그래서 그의 2004년작은 아예 제목부터 <길>이다.), <황진이>뿐 아니라 <정>에서도 ‘길을 떠나는 여인’의 이미지는 구도자의 그것과 같다. 세 남자와의 인연을 통해 황진이는 점차 저 위에서 맨바닥으로 추락하고, 이생과의 에피소드에서 진이의 모습은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피로와 병색이 가득한 초라한 모습이다. 그럼에도 영화 후반부에서 본격적으로 자주 나오는 그 ‘길 떠나는 장면’들이, 바로 황진이를 구도자의 모습으로 만든다. 내가 참석하지 않았던 관객과의 대화에서 원래 배창호 감독은 이 장면들을 빼려고 했는데, 정일성 촬영감독이 “그거 빼면 나 안해!”를 외치며 끝까지 버텼다는 후문이 있다. 만약 그 장면들을 뺐다면, 그저 남자들 잘못 만나 신세 망치고 추락하는 여인네의 이야기로만 전락했을지도 모르겠다.


<황진이>를 이야기하면서 정일성 촬영감독이 만들어낸 그 ‘화면’들의 얘기를 빼먹을 수 없다. 나는 <황진이>를 아주 오래 전 비디오로만 보았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비디오야 원래 화면비가 1.85:1(비스타비젼)이건 2.35:1(시네마스코프)이건 양옆 다 잘라먹고 4:3 TV 화면에 팬앤스캔으로 만들었으니까, 양옆 잘린 화면을 보며 당연히 이 영화가 시네마스코프일 것이라 지레짐작했다. 그런데 정작 필름으로 확인해 보니 이게 웬걸, 비스타비젼이네? 즉, 그렇게 ‘이미지’와 풍광을 중시여긴 영화인데도 비스타비젼을 선택했다는 것인데, 화면 중앙 저 깊은 후경에 문을 두거나 길을 내놓고 인물들이 후경에서 앞쪽 전경으로 걸어나온다거나 하는 장면들로 ‘공간의 깊이감’을 살려내며 풍광을 묘사한다. 심지어는 황진이가 혼자 방안에 있는 장면에서도 방은 좁고 깊게 묘사되었다. 진이의 집을 비추는 카메라 앵글도 마찬가지. 이명세 감독의 <형사 : 듀얼리스트>에서 하지원과 강동원이 칼춞을 벌이는 벽 옆 좁은 골목길을 ‘깊게 잡은’ 구도는, 배창호 감독의 <황진이>로부터 영향을 받은 게 아닌가 싶은 장면들이 있다. 특히 이생과의 에피소드 부분에서는 아예 벽이 화면 중앙 저 깊은 곳 후경에서 시작해 화면 전경에서 오른쪽으로 90도로 꺾어지도록 미장센을 구축한 장면도 꽤 된다. 인물들은 그 벽을 따라 후경에서 전경으로 이동하는 식이다. 좌우로 길게 풍광을 표현하거나 인물이 좌에서 우로, 혹은 우에서 좌로 이동하지 않고(그렇게 이동하는 장면은 단 한 컷, 그나마도 진이가 화면 왼쪽에서 걷기 시작해 화면의 중앙까지 반도 오지 않고 멈춰선다.), 주로 후경에서 전경으로 이동한다. 황진이가 벽계수에게 넘어가는 장면도 폭포가 수직으로 떨어지는 가운데 깊은 공간적 입체감을 선사한다.


황진이

바로 이런 식으로, 90도를 이루는 벽 장면이 많다.


배창호 감독은 각각의 씬들을 컷을 많이 나누지 않고 롱테이크를 많이 썼으며, 카메라 역시 픽스된 상태로 화면을 만들었다. 좀처럼 영화 속에서 이동하는 법 없이 고정돼 있던 카메라가 (내 기억으로는) 거의 끝 부분에 가서 단 두 컷에서 움직인다. 하나는 사당패들이 있던 낡은 집에서 사당패들과 진이가 떠난 빈자리를 카메라가 좌에서 우로 천천히, 그리고 길게 비추다가 마지막에 홀로 누워있던 이생을 비추면서 멈춘다. 또 하나는 사당패를 따라나선 진이의 모습을 천천히 좌에서 우로 따라가는 장면. 이 장면이 또 이 영화에선 아주 드문, 인물이 좌에서 우로 이동하는 장면이다. 해가 뜨는 새벽의 바닷가에서, 사당패가 좌에서 우로 다 지나갈 동안 카메라는 롱샷으로 사당패가 걷는 속도보다 더 늦게 좌에서 우로 이동한다. 곧 프레임 안으로 사당패의 뒤를 따르던 진이의 모습이 들어오는데, 사당패보다 느린 카메라의 이동속도는 바로 진이의 걸음 속도였음이 드러난다. 결국 진이가 쓰러지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멈추었다가, 그녀의 모습을 풀샷으로, 그리고 클로즈업으로 비춘 뒤 다시 풀샷으로 잡는다. 죽음이다.


이런 식의 화면 만들기는 지금도 대단히 놀랍고도 드문 것이지만, 당대엔 더욱 그랬으리라. 혹자들은 이 영화에 있어 이런 식의 화면을 전적으로 정일성 촬영감독의 공으로만 돌려버리기도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물론 이런 독특한 화면은 정일성 촬영감독이 없었다면 만들어지지 않았을 거고 그의 예술적 야심이 십분 발휘된 게 사실이지만, 그 이후 배창호 감독의 영화들, 예컨대 <기쁜 우리 젊은 날> 같은 영화에서도 롱테이크는 빈번하게 쓰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것을 오로지 정일성 촬영감독의 공으로만 돌리며 배창호 감독의 미학적 성취를 과소평가하는 건 매우 부당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스카우트>의 김현석 감독의 증언을 빌면, 오히려 <황진이>보다도 <기쁜 우리 젊은 날>의 컷수가 더 적다.


나는 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보는 스타일은 아닌데, 이 <황진이>만큼은 어딘가에서 상영을 한다고 하면 그때마다 가서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굉장히 아름답고 중요한 영화다. “한국영화는 너무 말이 많아”라는 게 내 평소의 불만인데 – 장면으로 충분히 제시해줄 수 있는 걸 굳이 대사로 떠벌떠벌 설명해주는 촌스러운 센스가 지금 한국영화에도 여전히 넘쳐난다 – <황진이>는 영화란 게 얼마나 인간의 시각에 호소하는 매체인지, 영화에서 새삼 ‘편집’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 공정인지 증명하는, 아주 영화다운 영화다.




ps. May 30, 2008, 오후 2시 30분, 서울아트시네마


ps2. 송혜교 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장미희 버전의 황진이에 비하면 송혜교는 그냥 ‘따위’가 돼버린다는. (그러게 감독을 잘 만나야 한다.) 하지원의 황진이는 안 봐서 모르겠고… 그러나 장미희가 딱히 ‘한복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는 장미희가 대단히 세련된 현대적 이목구비를 가졌다고 생각한다. 한복보다는 역시 현대식 정장을 입었을 때가 훨씬 잘 어울린다.


ps3. 생각해보니 이 영화에선 안성기의 대사가 거의 없었던 것 같아… 고작해야 맞을 때 신음소리 정도;;;


ps4. 이 영화는 국내 최초로 파나비젼으로 촬영되었다. 마지막 엔딩에도 파나비젼 로고가 선명히 찍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2 Comments

  1. 픽스 장면이 많은 반면 카메라 무빙도 많더군요
    더더군더나 줌렌즈까지
    말씀하신 최후의 그 카메라워킹도 나름 좋더군요.

    • 움직일듯 움직이지 않고, 움직이지 않듯 움직이는 카메라였던듯요. 영화 본지 또 2년이 넘어가니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필름으로 다시 보고 싶은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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